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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앞집 형님이 송이 따러 산에 갖다오셨다며 우리집엘 들렀다.

한손에 커다란 봉투를 들고 오셨는데, 우리집 마당엘 들어서자마자

들고 오신 까만 비닐봉투를 펼쳐보니 능이버섯이 가득 담겨있었다.

 

'"자네 능이버섯 먹을 줄 아는가?"

"예? 왠 능이요???"

"아이고 귀한 능이를 뭔다꼬 들고 오셨니껴?

팔아서 돈만들어야지예."



형님 말씀이 능이는 서로 모여 자라기 때문에

한번 발견하면 엄청나게 많은 양을 딸수 있는데

이날도 송이는 별로 못따고 능이만 한 가방 가득

딸 수 있었다고 하셨다.

능이를 받는 저가 미안해 할까봐 하신 말씀이겠지만

양이 많아 아들한테 한 박스를 택배로 붙이고

형님 내외가 드실만치 남겨두고도 많아서

저에게도 한 보따리 주실수 있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런데 능이버섯은 5~6년전에 한번 먹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으로는 맛과 향이 그렇게 좋았던 것 같지가 않았다.

많은 이웃분들이 능이 버섯이 얼마나 맛있는지,

그 향이 얼마나 좋은지 항상 송이버섯과 견주어 말씀해 오시는 걸 듣곤 했는데

요리를 한줄 모르는 것이 문제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능이를 들고 온 형님께 그 조리법 마저 여쭸다.

 

"건데 행님, 우째 해 먹는지 잘 몰라가지고..."

 

형님한테 들은 조리법에 따르면 일단 능이를 끓는 소금물에 잠시 데쳤다가

찬물에 씻고 물을 짜서 초장에 찍어 먹거나,

육고기랑 양념을 해서 볶아 먹으면 맛이 죽여준다고 하신다.

 


물가는 비싸고 먹을거는 없는 시절에

앞집 형님 덕에 건강에 좋고 맛도 좋은

능이버섯을 한보따리나 얻어 절반은 또 다른 이웃에게

선심도 쓸 수 있었다.


 

산골마을에 이웃과 더불어 사는 맛을 가슴깊이 느끼며,
가슴 따뜻한 가을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준 앞집형님께

마음으로나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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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비나리마을 가을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아직 덜 가쉰 한낮의 더위에 비나리농부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고

여름 내 검게 그을린 목덜미에 가을 햇살이 따갑지만

오고 가는 계절은 어쩔 수 없이 이제 가을의 문턱입니다.

늦게 핀 호박꽃은 지난 성하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한웅큼의 가을 햇살이라도 더 받기 위해 자태를 가다듬고

부지런한 꿀벌들은 찬바람 이는 겨울을 준비하느라 날개짓이 바쁩니다.

키낮은 해바라기가 청명한 가을하늘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마당 한켠에 아무렇게나 심어져있던 이런저런 가을 꽃들이

비나리마을의 가을을 향기롭게 합니다.
 

여름의 열정은 식고 곡간은 허전하지만

긴 겨울의 안식을 기다리는 비나리농부의 마음만은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농부로 태어나 농부로 살아가는 사람도

농부가 좋아 농부가 된 사람도

세상은 농사를 접어라하고 농부의 삶을 미천하게 여겨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비나리마을 농부들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가을은 비로서 농부의 가치를 만천하에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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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도 입추도 지나고, 본격적인 수확철에 접어든다는

'풋거먹는 날'도 지났지만, 늦더위에 늦은 장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음은 감자밭에 가 있지만, 땅은 질척거리고 시도 때도 없이

장대비가 내렸다, 가랑비가 내렸다 비는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올해 비나리는 장마같지 않은 마른 장마가 계속되더니, 장마철 다 지나고

때늦은 가을장마가 농부의 속을 태웁니다.

다행히 수박출하기까지는 날씨가 좋아,

이웃 수박농가들은 무사히 좋은 값에 수확을 마쳤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고추 수확에 들어가야할 판에 연일계속되는 비는

올해 고추 작황을 걱정스럽게 합니다.


집마당 한켠 솟대끝에 앉은 기러기는

젖은 날개를 털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날고 싶습니다.

굵어가는 열매를 달고서 무거운 비까지 머금은 대추는

축처진 어깨로 산들바람 부는 가을을 기다립니다.

철늦은 장마가 거친뒤에도 한 더위는 물러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기상청의 발표가

자못걱정스럽지만.. 메뚜기도 한철이고 또 한더위도 한철이겠지요.

가을장마에 마음상하지 말고, 여름을 씻고 가을을 준비하는 반가운 비로 받아들이며

비내리는 한낮의 한가로움을 만끽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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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산골짜기에도 어제 처음으로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났습니다.
중복과 말복사이 여름의 한가운데 걷혀버린 요 몇일은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아침저녁에 농사일을 조금씩 한다고는하지만
해가 뜨자마자 등판은 뜨거워지고, 땀은 팥죽같이 흐르고
또 한낮의 뙤약볕을 피해 밭으로 나가려고하지만
오후 네댓시가 되어도 한낮의 열기는 쉬 식지 않습니다.

그래도 산골마을에 사는 덕에 열대야가 없어 해만 떨어지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한 여름이라도 이불없이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분들의 부러움을 살만할 것입니다.

한여름의 불볕속에 속을 익혀온 수박이 곧 도시로 팔려갈 채비를 하고 있고,
싱싱한 풋고추가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합니다.
마당가 텃밭에는 참외, 옥수수, 토마토 그리고 가지며 오이가 넘쳐납니다.
양대콩 꽃은 붉게 피고 연두빛 사과는 초록빛이  짙어갑니다.
그렇게 한여름의 햇빛은 자연을 풍요롭게 했지만
여름이 그 절정에 달할수록
우리는 가을이 더 가까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덥다 덥다해도 이번 주말이면 벌써 입추고 말복이랍니다.
그리고 다음절기인 처서를 맞으면 여름의 자취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하늘은 더 높고 청명해지고, 공기는 더 맑고 시원해질 것입니다.

 




여름의 끝자락, 비나리마을의 새벽녘,
동녘하늘을 붉히는 여명이 가을의 색을 띠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해의 여름은 또 가고
비나리마을 농부들은  풍요로운 가을 들녘에서
지난 여름을 추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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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농협(봉화농협 명호지소)이 얼나전부터 농산물 출하를 시작했습니다. 출하되는 품목이 아직 감자와 강남콩이 전부지만 여름이 깊어갈수록 옥수수며 호박 등 다양한 품목들이 출하될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이웃 어르신의 부탁으로 강남콩 16푸대를 싣고 명호농협 농산물집하장으로 나갔습니다. 본격적인 농산물 출하철은 아직 멀었고, 또 한낮의 더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농협 집하장이 있는 경제사무소는 물론 명호면소재지 전체가 한산 했습니다.

집하장엔 오전 일찍 집하된 감자와 강남콩을 멀리 부산의 도매시장으로 실어나르시는 기사분이 작업을 하고 있는 출하장 한켠에  강남콩 자루를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러
근무중인 직원과 인사도 나누고 요즘 농산물의 경락가가 얼마나 나오는지 확인도 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농산물 생산량이 많지 않아 도매시장에 출하하지 않고 대부분 직거래로 처분하고는 있지만 간혹 직거래가 어려울 경우 농협을 통해 출하를 하기도 합니다. 재작년에는 고구마 생산량이 많아 보일러실에 보관할 수 있는 양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도매시장에 출하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공판장을 통한 거래에 대한  좋지않은 기억이 있어 직거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후 농사도 가능하면 직거래가 가능한 품목으로 짓고, 홈페이지도 개설하고, 옥션 등 여기저기 직거래 시장을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직거래 역시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간의 경험상 그래도 직거래가 가능하다면 도매시장 출하보다는 훨씬 농민에게 이익이다는 생각입니다.물론 생산자가 판매에 직접 뛰어드는 일이 엄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밭에서 일하기에도 바쁜데 작업중에 고객의 문의나 주문전화도 받아야하고, 메모도하고, 또 포장하고 발송 처리까지 해야되는 직거래는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농산물 유통구조가 합리화되는 과정은 유통의 경로는 다양화되고, 유통의 단계는 줄어드는 과정일 것입니다. 이전같으면 농산물 판매는 현지 수집상에 거의 의존했습니다. 현지 수집상은 또 전주에 의해 예속된 경우가 많았고, 중도매, 도매, 공판장을 거쳐 다시 최종 소매처까지 순환하면서 엄청난 유통비용이 발생했습니다. 그로 인한 부담이 고스란히 농산물 가격에 반영되어 생산자에게서 최소한의 값만 주어지고, 소비자에게는 비싼 가격으로 팔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농민의 요구와 정책적 변화 요인 등으로 현지 수집상을 통한 출하의 비중이 줄어들고 생산농민이 직접 도시의 대형마트같은 판매처와 거래를 하거나 전자상거래 등의 방식을 통한 직거래가 상당히 늘었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도시 소비자 수십가구를 회원제로 모아 그 회원들만을 위해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고 가공농산물을 포함해 일정한 가격으로 연중 공급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도농교류, 도농공생의 방식을 실현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일년내낸 엄청난 신경을 쓰야만 가능한 일이라서 저 역시 엄두가 그런 방식의 유통을 시도할 엄두가 나질않습니다.


하여튼 아직은 가장 일반적인 농산물 유통은 현지농협의 수집을 통해 농산물공판장에 출하하는 방식일것입니다. 현지 농협의 업무가 금융중심에서 지속적인 농민조합원의 요구에 의해 농삼물 유통의 비중이 높아져오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그 변화의 폭은 상당히 미미한게 현실입니다. 당장 차도 없는 우리동네 어르신은 현비 농협 마당까지 농산물을 운반하는 비용을 추가 부담하셔야하는 형편입니다. 특화된 농산물을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일부지역에서는 밭둑까지, 그리고 농가까지 직접 농산물순회수집차량이 들어간다고하는데 우리 지역같이 농지도 좁고, 농사규모도 가족 소농위주인데가 재배풍목도 일정하지않은 산골마을은 비용대비 효율이라는 이유로 농산물현지수집차량의 운행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산에 전념하세요. 판매가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농협"
언제 길을 가다가 본 플랭타드 문구입니다. 저 문구같이 우리 지역도 늙고 병든 몸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을 시작으로 모든 농민의 농산물 유통이 보다 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웃 어르신의 부탁으로 도매시장에 출하하기 위해 지역 농협 물류집하장에 강남콩 16자루를 실어드리고 나서 농산물 유통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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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들어가자마자 딸은 호기롭게 외쳤다. 온종일 도서관에서 살면서 엄청나게 독서를 할거고, 친구도 다양하게 많이 사귈거고, 그동안 미룬 기타도 서클에 가입해 열심히 배우고 그리고  아르바이트도 할거라고!! 아빠 입장에서 딸의 다짐들에  대해 처음부터 초칠 수는 없고 '그래야지' '그래 열심히 해봐라'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청춘은 허비하는 와중에 그 소중함이 드러나는 것임을 스스로 체득했던 아빠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딸의 다짐들이 젊은 객기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학기가 흘렀다. 한학기동안 두어번 집에 내려왔고, 그리고 일주일에 두어번씩 전화통화를 했는데 딸은 많은 다짐 중에 두개 정도는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첫째는 기타 써클에 가입해 열심히 기타를 치고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친구를 많이 사귀는 건지는 몰라도 친구들이랑 열심히 논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혜화동에서 친구들이랑 연극보기로 되어 있다는 둥, 강남에서 식사약속이 있다는 둥 엄마아빠는 영 뒷전이었다. 그렇게 한학기가 흘러가고 드디어 첫 여름방학을 맞아 딸아이는 많은 다짐들 중의 하나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우리나라 아르바이트 처우수준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차라리 부모가 좀더 고생을 하더라도 그 시간에 딸아이가 공부나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램을 이야기했다. 대학 등록금은 다른 선진국 수준을 추월하고, 임금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차라리 공부 좀 더 하는게 낮다는 것이 아빠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고집하는 딸아이는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더니. 결국 수원시내의 한 문구점에서 주말 이틀을 일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일자리를 찾은 딸아이에게 축하를 할 겨를 도 없이 두주가 지난뒤 딸아이는 별안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고작 4일 일하고 그만두었냐고 놀렸지만 딸아이는 나름대로 고민도 하고 또 짧은 아르바이트 경험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는가 보다. 먼저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처우에 대해 엄청난 불만을 토로했다. 하루 12시간을 가게안에서 손님을 안내하고, 물건을 찾아주고, 돈을 받아 계산을을 하고, 틈틈히 흐트러진 상품진열장을 정리도 하고 하지만 딸아이가 받는 임금은 너무 초라했다. 시급 3500원!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일당 42,000원을 받기에는 억울해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법정 최저임금이 4,110원인 것을 확인한 딸아이가 문구점 주인에게 따지니깐 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밥값을 치면 법정 최저임금 이상이 된다며 알바비 인상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딸아이의 첫 아르바이트는 끝이 났다.  

하여튼 딸아이는 처음으로 이 징긍징글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 것이고, 그것도 하루 12시간이라는 장시간 근무를 견뎌야했고, 그 긴 시간을 거의 서서 걸어다니며 손님을 대하는 노동을 한 것이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겪은 딸아이는 나름대로 할말이 많았는지 알바를 그만둔 날 30분을 넘게 엄마랑 통화를 했다. 그리고 와이프가 딸아이랑 통화한 많은 말중에 전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빠의 사랑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는 어쨌다나~~

'먹고사니즘'이 뭔지. 나날이 경쟁을 격화되고, 복지는 개선되지않거나 후퇴하고, 기득권의 탐욕을 갈수록 크지니 이 암담한 현실에서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밤낯으로 공부타령이나 하고 있고, 뼈빠지게 벌어 오직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불구적 삶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이런 현실을 전언이나 이론이 아니라 몸소 느껴야했던 딸아이의 다음 선택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참혹한 생존경쟁의 장에 자식을 내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렇더라도 아빠의 입장에서는 딸아이가 이번 아르바이트 경험을 세상에 대한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높이고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또 자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절감하는 그런 기회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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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베푼 기억이 거의 없다. 세상살이가 제각각인 시대를 탓하며 어느 누구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고 살아가지만,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일까... 참 많이도 세상 신세를 지고 살고 있다. 보답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고마움의 마음도 전하지 않은 채 그냥 주니깐 받는 몰염치에도 불구하고 착하고 너그럽고 마음 넉넉한 분들과의 인연이 늘 이어지니 바로 그분들은 물론이고 하늘에도 감사를 드려야할 것 같다.

어제는 마을 한가운데 공사장에 예취기를 들고 날품팔이를 갔다. 건물과 주차장 등이 들어 설 1,500여평의 밭에 풀을 베는 작업중에 택배사에서 전화가 왔다. 택배가 올만한게 없는데 뭔지 궁금했는데 예취기를 끄고 받아든 택배는 다름아닌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같은 농번기가 되면 일고싶은 책은 한권두권 사 모으는데 별로 읽지는 못한다. 그러다보니 읽어야 될 책들이 밀린 숙제 처럼 계속 쌓여간다.  그래도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겨울 농한기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로 박스를 뜯고 책을 꺼냈다.  얼마전 국정원의 불법사찰로 고통받았던 박원순 변호사의 [마을이 학교다]와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그리고 구도완의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사실 내게 필요한 책이면서도 또 너무 낯익어 돈을 주고 사기에는 좀 망설여지던 책들이다. 아마 익숙한 것들을 저평가하는 비합리적 습성때문일 것이지만 나는 교훈적이거나  정서적인 내용을 담을 책들을 잘 사지 않게 된다. 아마도 책이 가르키는 데로 살 자신이 없고, 또 책은 풋풋한 삶의 향기보다 뭐 대단한 진리라도 담고 있어야된다는 강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주문한 적이 없었지만 내손에 들린 책을 한참들여다 보며 도대체 누가 보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런저런 지인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포장 박스를 이리지러 다시 살폈다. 결국 인터넷 서점에서 직접 보낸 책이다보니 주문자 이름이 나와있었다. 책을 선물로 보내주신 분을 확인하고선 고맙고 기쁜 마음 한편으로 부담스럽고 죄송스런 마음이 일어났다. 왜 그분은 내게 이런 책들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니 선물이 아니라 어떤 임무를 부여받은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비나리 마을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산지 벌써 십수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작목반을 만들고 없애고, 가입하고 탈퇴하고, 팜스태이사업, 녹색체험마을 사업, 정보화마을 사업, 마을종합개발사업도 추진하고 그리고 마을 공부방과 청량산문화연구회 등 이런 저런 임의 단체를 만들거나 가입한 것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마을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마을로 되어가길 그리고 영원히 사람 사는 마을로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도한 것들이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다. 내용없이 액션만 큰 셈이다. 사람은 쉬 지쳐가고  성과는 더디 타나는게 마을사업의 이치기도 하고 또 나 자신의 무능력과 불성실 때문이기도 하다. 참 멀리 온것 같지만 되돌아 보면 그자리다.  

책을 보내주신 을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나를 독려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
"힘내세요. 아직 포기할 땐 아닙니다." 
사실 맞는 말이다. 마을은 쉬 변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깊이 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을은 학교다.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을은 오래 익은 술처럼 깊은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보물창고다. 그래서 마을에서 '희망' 만날 수 있다.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그분'께 고마운 마을을 전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기분좋은 선물인 책을 보내주신 그 분은 젊지만 가진 것 별로 없어 보이는  경북의 한 작은 지자체의 말단 공무원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도정에서 늘 가까이에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다짐하고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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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은 쉬 끝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지만 찾아오는 절기는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5월5일 단오입니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다는 단오는 멀리 마한 시절부터 파종을 끝내고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며 음주가무를 즐기던 풍습에서 기원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마을 비나리는 단오라고해서 별다른 풍습이 남아있는게 없습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단오날은 돈을 모아서라도 나들이를 가십니다. 그런데 마을분들이 어디 놀러가시게 되면 꼭 울진 바닷가로 나가십니다.


산속마을에 살다보니 항상 바다가 보고싶으신가 봅니다..
가까이에 소백산도 있고, 주왕산도 있고 태백산도 있지만
산은 다 마다하고 몇년전부터 매년 두어번은 놀러갔었을 울진을 고집하십니다.
바다도 싣컷보시고, 무엇보다 산골사람에게는 귀한 진미인 생선회를 드십니다. 
저도 두어해 따라나섰지만 관광버스에 오르자마자 술을 권하고 가무(!)를 요구하시는 놀이문화에 결국 적응을 못하고 지금은 가능하면 설설 피하고 맙니다^^*


오늘 아침  나들이에 나서시는 동네분들의 분주한 발걸음에 잠을 깨고
사람의 발길이 더물어져 정적이 감도는 마을에 남아 늦은 농사일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 열흘전부터 고향 진해에서 올라와 농사일을 돕고 있는 동생과 고추밭골에 풀을 뽑고는 다시 풀이 나지 못하도록 비닐로 멀칭을 하는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작업중에 동생의 한마디에 오늘 오후 일정을 바꾸었습니다.
'형집에 와서 일만하고 낚시도 같이 한번 못하고 가야되네.'라고 하는 동생 말에
콩밭 멀칭 작업을 뒤로 미루고 마을앞 낙동강에 낚시를 가기로 마을먹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낚시를 한대씩 들고 강으로 나갔습니다.
꺽지낚시를 즐기는 동생의 조언과 도움으로 작년에 이어 평생에 두번째로 꺽지 낚시에 나섰습니다. 꺽지 낚시는 '루어낚시'의 일종으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물과 산과 하늘을 바라다보고 상념에 빠질 수 있는 그런 낚시가 아니었습니다.
끊이없이 낚시를 던지고 줄을 감고, 또 던지고 다시 감고... 그리고 입질이 없으면 강을 따라 장소를 옮겨가며 낚시를 해야되는 부지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낚시였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동생을 따라 꺽지 낚시를 갔다가 스피너라고 하는 낚시 바늘과 가짜미끼가 달려있는 뭉치만 서너개 잃어버리고 꺽지는 한마리도 구경도 못했습니다.


오늘도 대단한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강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래도 왠지 작년과는 다른 예감이 들었습니다. 호기롭게 동생한테 '오늘 내가 꺽지를 먼저 잡을 것 같다' 고 큰소리마저 쳤습니다. 두어개의 스피너를 잃어버리고 서너번 장소를 옮긴 뒤에 낚시를 시작한지 거의 1시간만에 오늘의 첫 꺽지를 건졌습니다. 이 놈은 오늘 낚시의 첫 꺽지이기도 하지만 저 일생의 첫 꺽지이기도 합니다. 


다시 30여분 뒤 드디어 동생 낚시대에 대물 한마리가 걸렸습니다.
억지로 줄을 감고 물밖으로 건져 올린 고기는 역시 꺽지지만 아까의 꺽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물이었습니다. 너무 신이나 연신 사진기를 들이대고 오늘 하루 더 이상의 낚시는 필요가 없게 되어 낚시를 접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낚시는 하는 다른 낚시꾼에게 다가가서 괜히 물어보지도 않은 오늘 작항을 자랑하고 대물 꺽지를 바구니에서 건져올려 구경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를 찾아 오늘 잡은 대물 꺽지의 길이를 재어보았습니다.
무려 27.5cm!


동생이 찾아본 바로는 국내 꺽지 낚시 최고 기록이 31.5cm라고 하니 오늘 잡은 꺽지가 얼마나 큰놈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민물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그런 큰 꺽지는 일생에 몇번 잡기가 힘들 정도라니 오늘 하루 농사일을 뒤로 미루고 낚시를 나섰던 보람이 있었습니다.

망중한이라고 바쁜 중에 억지로 만든 오늘 오후의 여유는 또다시 몇달이 지나야 볼 수 있는 동생과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흐르는 물, 파란 하늘, 그리고 산... 그 속에서 동생과 보낸 오늘 하루 오후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저를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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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첫날, 몇일전까지 이어지던 한파와 진눈깨비는 자취를 감추고

파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아침을 맞았다.
긴 겨울을 지나 비로서 완연한 봄으로 접어들고
모든 생명이 살아있음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5월의 첫날이다.
오늘은 아침의 상쾌한 기분을 오래끌기위해 잠자리를 쉬 털고 일어나지 않았다.
행복한 기분에 젖어 이번 달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이번 달에 해야할 일들이 어떤 일들이 있는지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무엇보다 5월이 가기전에 고추를 비롯한 대부분의 모종들은 밭에 내다 심어야하고,
콩이나 수수 같은 잡곡류들도 파종을 마쳐야한다.
그리고 어쩌면 5월13일부터 사흘간 제주도 올레길을
봉화군의 직원들과 벤치마킹 가야하고

22일은 서울서 군홍보 문화행사장에서 미술체험을 진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재저래 참 바쁜 한달이 될 것 같다.
당장 오늘 5월의 첫날은 노동절이고,
이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
그리고 부처님 오신날까지 줄줄이 경사가 이어지는 달이기도하다.

오늘 노동절은 특별한 날이다.
메이데이는 인류가 모두 축하하고 기쁘해야할 날이지만
아직도 일부의 사람들은 이날을 불편해하고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은 그들 일부의 사람들의
선전에 그들의 의식을 내맞겨 동일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19세기 말 미국의 노동자는 지금의 사회적 처지가
한국의 60~70년대와 나을 것이 없었다.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은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렸고,
그들의 생존권 투쟁은 항상 무자비한 유혈 참극으로 마무리되었다.
1986년 5월 1일 수십만 노동자가 시카고에 집결에
이와같음 ㅣ국노동자의 현실을 항의하고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역시 총칼을 동원한 무자비한 탄압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1990년 5월 1일 처음으로 국제 노동자 연대 기구인 제2인터네셔날은
1986년의 시카고 노동자 시위를 기념하는 [메이데이]를 선포하고
국제적인 노동자 행사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노동절의 역사는 1923년 일제하에서 시작되어
온갖 탄압속에 굴곡이 있었지만
꿋꿋하게 오늘날 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자본가들의 정부는 노동절의 의미를 가리기 위해
[근로자의 날]이라는 기형적인 라벨을 갖다 붙이긴 했지만
노동자에게 오늘은 여전히 노동절이고,
자본에 대한 인간의 독립적 가치를 선언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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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주년 세계노동절 범국민대회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5월은 쿠테타군에 저항하는 광주 시민들이
독재자의 꼭두각시가 된 게엄군에게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던 결코 잊지 못할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있은 달이고,
가장 가까이는 사랑하는 노무현대통령의 서거가 있은 달이다.



그래서 5월은 피빛광주가 남긴 민주주의와 민중승리의 가치를 일깨우고,
다시 한번 갈가리 찢기고 버려진  고노무현대통령의 정신을 기리며
그가 꿈꾸던 '사람사는 세상'의 희망을 
세상에 구현하기위해 작은 정치적 실천들을 준비하고 실천하는 달이기도하다.

나의 개인적 삶이 씨줄날줄로 엮어진 세상사의 중간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5월만치 절실한 달이 따로 없는것 같다.
가족의 소중한 의미와 부처님의 큰 가르침,  노동절의 가치와 광주항쟁의 교훈,
그리고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노무현대통령의 꿈이 함께하는 5월은
바쁜 만치 즐겁고,  희망으로 가슴 부푸는 그런 한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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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한 뒤 방치하다가
100여일전부터 나름대로 열심히 포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번달에 드디어 초대장 5장이 생겼습니다.

저가 처음 티스토리를 알고 참여하고싶어 안달하면서
초대장을 얻을려고 노력할 때가 생각납니다.
구구절절 사연을 적고 어떻게 하다보니
토대장을 받긴 받았는데, 블로그 개설만 해 놓은채
먹고 사는 일에 바빠 깜빡 잊어 버렸습니다.
다시 겨울이 되어 상대적으로 한가롭게 되어
티스토리가 하고 싶어 다시 초대장을 받겠다고
여기저기 신청하다가 초대장을 영 못받게되자
혹시하고 다시 살펴보니 블로그를 개설해 놓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저가 이제 드디어 초대장을
배포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꼭 필요하신분, 이왕이면 연세가 많으시거나,
농업, 농촌관련 블로그를 계획하시는 분 우선으로 배포할 생각입니다.
고작 5장밖에 되지 않으니 필요하신분만
댓글과 이메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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