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봉화왔다. 마당은 심술궂은 여신이 지켜보는 와중에 산마늘과 부추와 상사화가 낙엽을 밀치고 잎을 틔웠다. 앞마당 산수유는 꽃망울을 가득 달았고 곧 자지르지게 꽃을 피울 준비가 끝났다. 방안은 온갖 신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겨울 한파로 부터 화분들을 지켜내지 못했고 아끼던 커피나무와 올리브 나무까지 유명을 달리했다.
오랜만에 동네돌며 인사드렸지만 못뵌 분들이 더 많다. 지난해 유달리 세상을 떠난 이웃이 많았고 그렇게 그리움은 늘고 나는 나이를 더 먹었다. 오랜만에 만난 형님들도 그동안 주름이 더 깊어졌다. 그런 이웃 형님들이 내 걱정을 해 주신다.
몸 편하제? 나주 생할은 어떻노? 식구들은 건강하제 ? 우예 자네 흰머리가 더 늘었다. 인자 얼마나 지났노? 한 이년 됐제? 끝나면 농사지로 오나? 밥벌어묵을만 하면 농사지로 오지마라.
행님 월급쟁이도 힘드니더. 저는 농사가 났니더. 벌써 절반지났고 일년 남았니더. 우야든동 행님 형수님 건강하이소. 돌아와서 오래오래 같이 농사짓고 사시더.
동네한바퀴 도니 날이 저물고 22년5월에 멈춘 달력을 갈고 먼지 앉은 집안 청소를 하니 밤이 깊었다. 내일은 누구를 만나고 몇시에 나주로 츌발할까. 길이 멀고 여정은 짧으니 보고싶은 사람들은 다 남겨두고 비나리 바람만 한 가슴 가득 품고 집을 떠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돌아 올 마을이 있고 집이 있고 일할 밭이 있고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이웃이 있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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