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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을 통한 도시재생과 도시해체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은 몇년전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가까이 두고 읽었다는 책의 목록이 공개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그뒤 구입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맙게도 친절한 이웃으로 부터 먼저 선물을 받게되었다.  이렇게 내 손에 들어온 [아바나의 탄생]은 나의 게으름과 산만함에 쫒겨 책장 한켠에 몇년을 고스란히 방치되어 있었다.  

[아바나의 탄생]이 나의 책장에 방치되어 있던 세월동안 생태도시 아바나는 참 친숙한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작동불능에 빠질 조짐을 보이자 사람들은 부지런히 쿠바를 찾았다고 한다. 환경운동가나 농촌운동가는 물론이고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발길까지 부지런히 쿠바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쿠바는 신자유주의의 작동유무이전에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도시의 황폐화, 후쿠시마가 보여준 핵재앙,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기상재앙 등 기존의 세계를 지탱해왔던 기반이 흔들리게 될 때마다  우리의 의식에서 되살아나는 어떤 이상향 같은 곳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제 쿠바는 하나의 엄연한 생태적 대안 모델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비록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부당한 무역봉쇄정책에 맞선 생존전략으로 채택된 쿠바의 도시농업 도시공동체 사업이지만 이제는 쿠바모델이 에너지 위기- 경제위기 대응전략이 아니라  하나의 엄연한 존속가능한 반생태적 자본주의 대안 모델로 모색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쿠바의 도전은 적지않은 충격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렇게도 살 수 있을까하고 의문을 가질정도로 소비적 반생태적 삶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사실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해본 사람은 다 아는 유기농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고 전국적으로 보편화시키는 과정은 참으로 고무적이었다.  "중앙집권적 '복지국가'의 체제를 개조하여 의사와 환자와의 동반자적 관계에 의해  개인의 자연치유력과 커뮤니티의 힘을 이끌어내는 '자급적인 의료'로 전환을 꾀"한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중국의학을 도입해 약품등 물자부족으로 인해 의료가 중단된 서양의학을 대체해 나가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로 감동적이었다. 특히 빈곤문제를 사회자본의 활성화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문제의식은 낙후된 한국의 복지 인식에 비해 훨씬 진전된 것으로 느껴졌다. 저에너지를 넘어 에너지 제로 사회를 향한 쿠바의 노력은 핵위기에 노출된 한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아뭏튼 쿠바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사회 구성을 상상할 때 불가능하다고 밀쳐두게 되는 영역이 그만치 줄어들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한명의 농부로서 이 책의 내용을 다시금 음미해 보면 몇가지 의구심을 피할 수 없었다. 도시농업과 농촌농업의 건강한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하는지 이 책은 다루고 있지 않았다. 사실 사회 시스템 전반이 바뀌지 않고 도시농업을 도시 재생 프로그램으로 적용가능할지도 잘 이해되질 않았다. 도시 근교의 텃밭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서울 도심에 개인적 취미 생활정도가 아니라 유의미한 채소밭이 가꾸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잘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앞장서서  황폐한 서울의 삶을 치유하기 위해 공동체의 가치와 도시농업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고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도시속으로 들어간 농촌이 진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지  궁금해 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도시는 도시적인 편리를 비롯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급기야 농촌스런 가치마저 흡수하게 되는 현실이 결국 농촌의 존재가치를 손상하는 로 나아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농촌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도시농업을 통한 도시의 재생이 더나아가 도시의 해체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도시의 해체는 지방과 서울의 차별을 사라지게 하고 나아가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도시의 유지 존속을 위한 많은 노력들 대신에 도시해체를 통해 시가 갖는 병폐 자체를 해소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센프란시스코 등 소개된 다른 도시의 도시농업은 쿠바의 도시농업과 비교될 수 없어보인다. 도시농업을 통해 도시 재생이 과연 가능할까는 의구심을 가지는 사례는 바로 서울이나  센프란시스코와 같은 도시의 모든 경우에 해당한다. 쿠바의 사례는 그런 도시의 사례와 분명히 단전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아바나는 도시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속에서 도시의 해체ㄹ르 통해 도시를 구한 사례가 아닐까? 그런데 과연 서울이, 센프란시스코에 쿠바의 사례를 적용하는게 가능할까? 사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끝내 해결되지 않는 한가지 의문이 남았다. "카스트로 정권은 이전까지의 중앙집권적인 관료국가 체제를 개혁하고, 관청을 반으로 줄이는 철저한 행정개혁을 추진하면서 시장과 경쟁원리를 끌어들여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동을 시험하고 있다'는 필자 요시다 타로의 진술을 어디까지가 질실인지 가름할 어떤 논거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 극복 방안으로 주목받는 쿠바가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동을 시험하는 사례로 언급된다는 점은 아무리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쿠바의 노력은 중앙집권적 국가주의 사회주의에서 민주적 분권적 사회주의로의 전환으로 이해해야하지 않을까?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농민시장을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로 이해하는 필자의 입장을 나는 받아 들일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새로운 세상을 구상하는 데 있어 보다 폭넓은 자유를 얻었다.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는 늘 경험에 종속된다. 그 한계를 깨고 상상력을 넓혀주는 책은 분명히 양서일 것이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은 그와같은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에 누구에게라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그런 책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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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2011년 발행, 21세기북스)를 읽고

요즘 조국 교수가 인기가 많다.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으면서 거기다가 '개념'까지 있는 인물이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 하여튼 섹시한 진보 인사의 한명인 조국은 그 뛰어난 상품성으로 인해 앞으로도 한참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의 한마디 한 동작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표적이 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이번 붐은 조국이 낸 [진보집권플랜]과 바로 이 책 [조국,대한민국에 고한다]가 촉발한 듯하지만 그보다는 이명박의 폭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세력화 되고 있지 못한 무능한 진보세력의 현 정치구도에서 대중의 열망이 만들어 낸 측면이 많아보인다. 다시 말해 조국에 대한 인기는 일정정도 대중들이 선호하는 인물, 학벌, 개인적 자질 등등에 기반하고 있는게 사실 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현 정치적 지형이 대안적 진보, 다시말해 '성찰하는 진보' 인사를 요청하고 있기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해 혹은 오해를 가지고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를 읽고나서 솔직히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다. 은연중에 나는 그의 책을 통해 무슨 대단한 신체제에 대한 마스터 플랜이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미래상을 제시하고 그를 구현하기위한 정교한 로드맵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벌써 25년은 된 것 같은데 지금은 까마득히 잊혀졌지만 '사회구성체 논쟁'류의 책이나 당시의 이런저런 정치서적을 통해 늘 단언적이고 명료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교시'를 제공받았던 기억이 난다. 적은 분명하고 적을 물리치고 새롭게 건설될 사회상은 명료했다. 다시 말해 그 시대에는 모든 정치 서적이 사회 변혁의 '전략과 전술'을 담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사실 그와같은 실천이론의 한계가 진보세력의 답보상태를 지속시키는데 일정정도 기여한 측면이 있고, 여하한 이유에서건 정체된 진보의 이론, 조직, 실천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조국이 말하는 성찰하는 진보의 요구로 나타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때 그 청년들은 세월을 겪고 현실은 훨씬 더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와같은 입장에서 조국은 명료한 시대규정과 체제분석, 그리고 전략 전술을 내어놓지 않고 훨씬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사회의 진보, 우리사회의 진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 진보적 상식 혹은 합리적 상식을 각각의 세력 혹은 분야를 향해 직언한다.

먼저 조국은 MB가 이상사회의 모델로 삼고 있는 두바이와 싱가포르의 허상을 지적함으로써 현정부의 국정철학의 부재 혹은 그 시대적 낙후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어서 한국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을 향해 쓴소리를 내어 놓는다. 그의 발언은 시민의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반성을 요청하기도하고 법률가의 눈에 비친 부정의한 법현실을 질타하고 올바른 법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의 한사람으로 나는 그의 자본에 대한 고언에 이 책의 핵심이 놓여있여야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에 대한 규정, 체제모색적 이해없이 현 시대는 극복될 수 없음을 필자 역시 인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 부분 역시 충분하지 않은 내용때문에 적잖은 실망을 느꼈다.

사실 이책은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거나, 정치적 입장을 정리해 놓은 글이 아니다. 좀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단속적으로 언론에 게제한 것을 모아놓은 이 책은 참 쉽게 읽힌다. 하지만 책을 덮고 전체를 아우르는 이해를 도모하기엔 좀 어려움이 따른다. 부분은 다 공감하고 수용하면서도 책을 덮고 그려보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세상의 상은 그렇게 투명하게 다가오질 않기때문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필자 조국의 다음 저술은, 물론 극단적인 나 개인적 기대에 불과하지만. 좀더 확실한 우리사회의 비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글로 채워졌으면 한다.

물론 독자의 한사람이 갖는 주제넘는 기대와는 별도로 이책은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공이 인정하는 가치 기반을 높이는 작업에 일정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보수와 진보의 대결을 훨씬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야하며, 정정당당한 이념적, 정책적 대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한 룰의 만들고 그 수준을 높이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의 보수세력은 합리적 보수세력에 기생하는 극우 파시스트세력을 스스로 떨쳐내가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진보 개혁은 시대정신을 읽고 대중의 열망을 반영하는 진보적 정책, 대안 체제의 발굴에 보다 유능해져야할 것이다.

조국같은 분이 그와같은 상식의 전도사로,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매개하고, 진보적 가치에 대한 합당한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는 공정한 경쟁을 도모하는 거간꾼으로 나선것에 경의를 표한다. 이 책 한권이 그와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데 얼마만한 효과를 발휘하게 될런지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사회의 정치적 상식의 격을 높이는데에 일정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아뭏튼 필자 조국이 건강한 좌파지식인, 한국의 노옴 촘스키로 지속적으로 활동해 나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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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전도사 박원순 변호사가 이웃 영양군에 있는 우리손산촌유학센타에 [상생의 농촌 마을만들기와 사회적기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왔다. 이번 강연은 희망제작소 창립 5주년기념으로 전국 50개 지역을 순회 강연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영양에서 지역활동을 하시는 분의 연락을 미리 받고 내가 사는 봉화군 지역사회에 이 소식을 전하자 명호면의 젊은 친구들이 자비를 들여 자발적으로 강연을 알리는 플랭카드를 만들어 달기까지했다. 그리고 오늘 명호의 젊은 친구들은 2대의 차로 나누어 타고 출발을 하고, 봉화자활센타에서는 아예 관광버스를 전세내어 50여명의 자활사업 참여자를 이끌고 영양으로 향했다. 


평일 오전에 열린 강연은 예상했던대로 참여가 저조해 봉화에서 간 사람들이 영양 주민들보다 휠씬 많은 것 같았다. 원래의 강연장소는 영양군청의 비협조로 우리손 산촌유학센타로 정해졌다가 봉화자활센타의 단체 참여로 영양성당으로 급히 변경되었다.  갑작스런 강연 장소변경에 따른 이유도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경북 북부지역사회의 정치적 낙후성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았다.  박원순 같은 시민운동가에 대한 관의 시대착오적인 대우도 그렇고 지역주민의 대책없는 보수적 편향, 극우적 정치성향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어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지역공동체활동을 하는 우리 지역사회의 낮은 주체적역량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9시30분에 시작하는 강연에 늦지않기위해 8시에 비나리마을을 출발했다.  918번 지방도를 따라 봄농사준비로 기지개를 펴는 영양의 봄 언덕을 1시간여 달려 영양읍에 도착했다. 역시 남루한 농촌의 소도읍인 영양읍을 가로질러 강연이 열린 영양성당에 도착했다.  참 오랜만에 성당경내에 들어선 때문인지 카토릭신자였던 어린시절의 추억도 떠오르고, 또 종교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사회에서 종교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가톨릭교회의 물량적 성장과 보수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영양군내에서 이런 일에 장소를 제공해줄 기관이나 단체가 성당밖에 없다는 사실이 고맙기도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대중강연이 다 그렇겠지만 강연의 내용은 평이하고 단순했다. 박원순씨 자신의 삶의 역정을 보여주며 어떻게 살것인가, 어떤 가치에 기반한 삶을 살것인가는 말씀을 이어나갔고, 그리고 '커뮤니티 비지니스'의 여러 성공사례를 들어 우리 농촌사회도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미래를 맞이하자는 내용의 강연을 이어갔다. 편안하고 친근한 화법,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 박원순같은 대중활동가만이 갖는 자질이 부러웠다. 


한시간정도의 강연을 이어 질의 응답시간을 한시간 정도 가졌다. 중1아이의 어머니께서 아이 교육에 대한 질문도 하고, 희망제작소와 지역주민의 구체적인 연대와 결합방식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방앗간'을 운영하는 명호의 나무아빠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박원순씨의 생각도 묻다보니 11시조금넘어 강연은 끝이났다.


강연을 끝나고 성당 마당엘 나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단체별로 박원순님과 기념사진을 찍고 성당을 나섰다. 일터로 바삐 돌아와야할 형편이었지만 주체측에서 식당을 예약한 탓에 원하지 않는 8,000원 짜리 비빔밥을 억지로 먹고 오후일과를 위해 명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 강연에서 박원순님한테 하고싶었지만 주제와의 관련성때문에 하지 못한 질문을 생각해봤다. 박원순씨는 전 정부시절 정부비판에 날을 세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극단적인 반환경 반인권 반민주 반노동 정권인 MB정권하에서 오히려 비판의 빈도가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혹시 최근 골몰하고 있는 '사회디자인'과 '정치'를 분리하여, 사회디자인의 고유 영역에 몰두하고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는 회의를 갖고 있는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 '희망제작소의 무상 인턴사원' 논란 뉴스를 접했다. 많은 논란거리가 있지만 나는 자식이 대학졸업후에도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받아가며 인턴사원을 한다는 것에 대해 정서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결국 '희망제작소'같은 비영리 사회단체에 인턴사원이 되기위해선 생활비 걱정이없는 부자집 자식이 되어야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때문이다. 비록 사기업과 다른 비영리사회단체일 지라도 자원봉사자와는 다른 인턴 사원에게 하루 5000원의 식비가 아니라 기본적인 생활비, 교통비, 용돈 정도는 주는것이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의지조차 지나치면 독선의 길로 빠지기쉽고, 내적 확신에 충만하다보면 타인의 작은 삶들을 보지못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는게 아닐까 쉽다.  
  
책으로만 접했던 박원순변호사를 가까이서 접하고 농촌에서 희망만들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는 시간을 가진 날, 나는 또 숱한 고민을 덤으로 안고 일터로 돌아왔다. 언제나 출발점에 머물러 있는 마을 사업도 그렇고 마을사업을 진행 하는 과정에서 갖는 나의 역할에 대한 진전없는 생각들도 꼬리를 물었다.

그래도 아직 일한 밭이 있고, 같이할 젊은 친구들이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겠지?
또 삽이나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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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영양군 수비면에 있는 [우리손배움터]에서 반가운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낮은 곳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부활을 추동하는 희망제작소의 박원순 님을 모시고 같이 배우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답니다.

이번 자리를 준비한 영양의 젊은 일꾼들이 부럽기도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피폐해가는 농촌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며 희망을 만들어가는 지역의 젊은 일꾼들이 한분이라도 더 참가하여 좋은 뜻을 나누고 같이 배우는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마을만들기'를 설파하지만 너무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라서 쉬 농촌 주민들에게 호소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농촌 마을 밖에서는 마을만들기를 외치지만 정작 마을안에서는 반향이 없고, 생태나 환경에 대한 논의들도 마을안으로 파급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유는 마을 안과 밖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한 그로인해 마을밖에서 마을에 바라는 요구가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기할 것입니다. 이런 갭을 해결하는데 박원순님의 오랜 경험과  지혜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 진행중인 비나리마을 사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시켜나가려는 전망을 세우고 있는 마을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시없는 좋은 교육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가치지향으로나 실무적 지침으로나 큰 힘을 얻는 귀한 기회가 될 이번 강연에 경북 북부지역 시군의 농민들이 많이 참여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봉화 명호지역의 젊은 일꾼들은 당일 강연이 있는 영양 수비까지 함께 이동하기로 하고 더불어 [박원순의 희망열차]에 우리의 작은 힘이나마 더한다는 의미에서 봉화지역에 2~3장 정도의 플랭카드를 우리 힘으로 제작해 게시할 계획입니다.

농촌! 농민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민을 포함한 모두의 미래가 달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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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베푼 기억이 거의 없다. 세상살이가 제각각인 시대를 탓하며 어느 누구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고 살아가지만,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일까... 참 많이도 세상 신세를 지고 살고 있다. 보답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고마움의 마음도 전하지 않은 채 그냥 주니깐 받는 몰염치에도 불구하고 착하고 너그럽고 마음 넉넉한 분들과의 인연이 늘 이어지니 바로 그분들은 물론이고 하늘에도 감사를 드려야할 것 같다.

어제는 마을 한가운데 공사장에 예취기를 들고 날품팔이를 갔다. 건물과 주차장 등이 들어 설 1,500여평의 밭에 풀을 베는 작업중에 택배사에서 전화가 왔다. 택배가 올만한게 없는데 뭔지 궁금했는데 예취기를 끄고 받아든 택배는 다름아닌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같은 농번기가 되면 일고싶은 책은 한권두권 사 모으는데 별로 읽지는 못한다. 그러다보니 읽어야 될 책들이 밀린 숙제 처럼 계속 쌓여간다.  그래도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겨울 농한기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로 박스를 뜯고 책을 꺼냈다.  얼마전 국정원의 불법사찰로 고통받았던 박원순 변호사의 [마을이 학교다]와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그리고 구도완의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사실 내게 필요한 책이면서도 또 너무 낯익어 돈을 주고 사기에는 좀 망설여지던 책들이다. 아마 익숙한 것들을 저평가하는 비합리적 습성때문일 것이지만 나는 교훈적이거나  정서적인 내용을 담을 책들을 잘 사지 않게 된다. 아마도 책이 가르키는 데로 살 자신이 없고, 또 책은 풋풋한 삶의 향기보다 뭐 대단한 진리라도 담고 있어야된다는 강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주문한 적이 없었지만 내손에 들린 책을 한참들여다 보며 도대체 누가 보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런저런 지인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포장 박스를 이리지러 다시 살폈다. 결국 인터넷 서점에서 직접 보낸 책이다보니 주문자 이름이 나와있었다. 책을 선물로 보내주신 분을 확인하고선 고맙고 기쁜 마음 한편으로 부담스럽고 죄송스런 마음이 일어났다. 왜 그분은 내게 이런 책들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니 선물이 아니라 어떤 임무를 부여받은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비나리 마을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산지 벌써 십수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작목반을 만들고 없애고, 가입하고 탈퇴하고, 팜스태이사업, 녹색체험마을 사업, 정보화마을 사업, 마을종합개발사업도 추진하고 그리고 마을 공부방과 청량산문화연구회 등 이런 저런 임의 단체를 만들거나 가입한 것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마을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마을로 되어가길 그리고 영원히 사람 사는 마을로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도한 것들이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다. 내용없이 액션만 큰 셈이다. 사람은 쉬 지쳐가고  성과는 더디 타나는게 마을사업의 이치기도 하고 또 나 자신의 무능력과 불성실 때문이기도 하다. 참 멀리 온것 같지만 되돌아 보면 그자리다.  

책을 보내주신 을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나를 독려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
"힘내세요. 아직 포기할 땐 아닙니다." 
사실 맞는 말이다. 마을은 쉬 변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깊이 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을은 학교다.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을은 오래 익은 술처럼 깊은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보물창고다. 그래서 마을에서 '희망' 만날 수 있다.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그분'께 고마운 마을을 전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기분좋은 선물인 책을 보내주신 그 분은 젊지만 가진 것 별로 없어 보이는  경북의 한 작은 지자체의 말단 공무원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도정에서 늘 가까이에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다짐하고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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