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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포에서 시내 버스로 태안읍 터미널로 가고, 태안에서 대전, 대전에서 안동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 안동에서 지인의 도움으로 봉화 집까지 무사히 도착, 67일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여행은 늘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67. 국내 여행치고는 짧지 않은 기간이었고, 특히 태안해변길에 집중된 여행인 만치 여한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렀고, 우리의 여정은 쉽게 줄었다. 전주를 거쳐 영목에서 시작해 꽃지로, 몽산포로  다시 학암포에서 신두리로 만리포로 이어지던 여정은 끝났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몇일 더 이어가고 싶었던 길이지만 아쉽게 접고 집으로, 일상으로, 일속으로 돌아왔다. 나는 여정을 끝내며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맺어진 인연들에 더욱더 감사하자 다짐했다.

지난 일주일 사이 겨울은 더 깊어졌고, 나에게 가장 파란만장했던 한해인 2020년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겨울추위와 코로나에 기대어 남은 한해, 최대한 나 자신에게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고, 지난 행적을 정리하고, 앞날을 꿈을 그리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같은 방향을 보면서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바다를 보고, 같은 바람을 마시면서 일주일간 땅과 하늘, 바다와 육지사이를 걸었던 아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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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일

비오는 아침에 구례포를 출발, 신두리해변을 걷고, 소근진성을 거쳐 만리저수지, 의향3리를 지나 천리포, 만리포까지 걷고 롱비치패밀리호텔에 여정을 풀었다.

코로나 창궐뉴스가 계속되고 식당과 팬션에서 숙식을 거부까지 당하다 보니 잔뜩 위축되기 시작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주인부부께 인사도 남기지 못하고 파스텔 펜션을 나서는데 겨울비 답지 않은 빗줄기가 우리를 막아섰다. 빗줄기를 보나 하늘을 보나 쉬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았다. 나름대로 여정을 위한 꼼꼼한 준비를 자부해왔는데 꼭 이를 때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비옷을 챙기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젠장!! 가까이 비옷을 살 곳도 없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옷깃을 세우고 모자를 눌러 쓰는 것으로 비 방비를 대신하고 그나마 빗줄기가 가늘어지는 순간, 길을 나섰다. 634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으니 금방 향촌리 마을회관이 나오고 20여분쯤 더 걸어 오른쪽으로 도로를 벗어나 향골이라는 마을로 들어섰다.

한적한 농로를 따라 드문드문 농가가 흩어져 있는 마을을 관통해 신두리로 넘어가는 양청이재로 향했다.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은 인기척마저 드물었고 비가 지척이는 논두렁을 지나 언덕을 오르자 금방 마을은 끝이 났다. 다행히 그즈음 빗줄기가 가늘어 졌고, 우리는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신두리 해변에 거의 다가왔다는 느낄 수 있었다. 길은 언덕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 작은 마을을 지나 곧이어 중장비가 쓸고 지나간 지형이 넓게 퍼져있는 황무지로 이어졌다. 안내판은 공사를 하다만 것 같은 황무지가 조성중인 골프장임을 알렸다. 잠시 길을 잃고 우리는 골프장을 조성중인 사유지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돌아 나오기는 아까워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황무지를 지나 마침내 우리는 저수지를 끼고 돌아 신두리사구가 시작하는 해안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해변은 저멀리 달아난 바닷물 때문에 광활한 갯벌이 펼쳐져 있었고 이 곳이 해변길 1코스 바라길의 시작점임을 알리는 표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해변과 저수지를 가르는 둑방 위로 트레일이 조성되어 있었다. 해안으로 내려갈지 트레일을 따라 걸을지 잠시 망설였지만 해안의 사구는 어디까지가 보호구역이고 진입이 개방되어 있는 곳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아 결국 트레일을 선택했다.

왼편으로 저수지를 접하고 오른쪽으로는 썰물로 드러난 넓은 모래사장과 더 멀리 펼쳐진 약 1키로를 걸어 갈림길이 나오는 지점에 이르자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급히 사람의 기척이 없는 관리사 같은 빈집의 처마 밑으로 달려가 비가 잦기를 기다렸다.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우리는 다시 걸음을 이어갔고, 길이 갈라진 지점을 만나 해안과 나란히 나아가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목재데크가 깔린 길이 갈대밭 속으로 우리를 이끌자 본격적으로 신두리 해안사구의 풍경이 펼쳐졌다. 끝을 알수 없는 갈대 숲속에서 가물가물 흐려지는 지평선을 바라다 보다 문득 우리가 길을 잃고 사막에 갇힌 듯 느껴졌다. 아니 세상을 피해 사막 속으로 숨어든 듯 평안과 안도가 그리고 조금의 외로움이 일었고 저 멀리 모래언덕 넘어 혹 어린왕자라도 마주칠까 설레임이 피어났다.

 

2키로 정도를 걸으니  위락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갈대마저 드문 모래 언덕들을 넘으니 신두리 관광단지 같은 곳에 도착했다. 단지를 관통하는 까페와 호텔이 즐비한 도로로 접어들자 허기를 느꼈고 우리는 한 까페에 들러 가벼운 피자로 늦은 아침겸 점심을 해결했다. 우리는 길을 계속 이어 신두리해수욕장을 벗어난 지점에서 다시 바다와 접한 해안길로 접어들었다.

비가 완전히 그치자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날릴듯한 바람을 맞으며 해안길을 따라 소근진성을 지나고 직선으로 뻗은 제방도로를 걸어 제방이 끝나는 지점에서 해안을 벗어나 천리포로 바로 넘어가기 위한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마을 초입에는 너른 논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곧게 뻗은 논두렁길을 걸어 마을을 가로질러 천리포로 가는 언덕길로 접어들어 걷기시작하고 걸음이 늘어날수록 시야는 터이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적은 드물었고 시야에 들어오는 낡아가는 집과 방치된 밭은 쇠락해가는 농촌의 슬픔을 전해주었다. 그래도 마을 한켠에서 세월을 버티고 있던 늙은 감나무 한그루가 상처받고 능욕당하고도 끝내 존엄을 잃지 앓은 늙은 인디안 추장처럼 마을을 지키녀 지난 삶의 온기를 전해주었다.

 

언덕길의 넘어서자 마자 천리포가 나왔고 천리포의 마을을 관통해 남쪽으로 계속 걸어 천리포수목원을 지나자 그곳이 만리포임을 알리느 표지판들이 나왔다. 만리포는 늘어선 호텔과 까페, 레스토랑을 통해서도 얼마나 큰 관광지인지 알 수 있었다. 역시 다른 곳에서 불수 없던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겨울바다를 보는 것 만도 오금이 저리는데 추위에 아랑곳하지 안고 서핑을 하는 청춘이 부러웠다. 점심겸 저녁을 먹고 바람이 거세지는 거리를 걸어 롱비치페밀리호텔을 숙소롤 잡고 짐을 풀었다. 어두워지기전에 인근 마트에서 저녁과 다음날 아침까지 해결할 장을 보고 태안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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