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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일

비오는 아침에 구례포를 출발, 신두리해변을 걷고, 소근진성을 거쳐 만리저수지, 의향3리를 지나 천리포, 만리포까지 걷고 롱비치패밀리호텔에 여정을 풀었다.

코로나 창궐뉴스가 계속되고 식당과 팬션에서 숙식을 거부까지 당하다 보니 잔뜩 위축되기 시작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주인부부께 인사도 남기지 못하고 파스텔 펜션을 나서는데 겨울비 답지 않은 빗줄기가 우리를 막아섰다. 빗줄기를 보나 하늘을 보나 쉬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았다. 나름대로 여정을 위한 꼼꼼한 준비를 자부해왔는데 꼭 이를 때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비옷을 챙기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젠장!! 가까이 비옷을 살 곳도 없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옷깃을 세우고 모자를 눌러 쓰는 것으로 비 방비를 대신하고 그나마 빗줄기가 가늘어지는 순간, 길을 나섰다. 634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으니 금방 향촌리 마을회관이 나오고 20여분쯤 더 걸어 오른쪽으로 도로를 벗어나 향골이라는 마을로 들어섰다.

한적한 농로를 따라 드문드문 농가가 흩어져 있는 마을을 관통해 신두리로 넘어가는 양청이재로 향했다.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은 인기척마저 드물었고 비가 지척이는 논두렁을 지나 언덕을 오르자 금방 마을은 끝이 났다. 다행히 그즈음 빗줄기가 가늘어 졌고, 우리는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신두리 해변에 거의 다가왔다는 느낄 수 있었다. 길은 언덕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 작은 마을을 지나 곧이어 중장비가 쓸고 지나간 지형이 넓게 퍼져있는 황무지로 이어졌다. 안내판은 공사를 하다만 것 같은 황무지가 조성중인 골프장임을 알렸다. 잠시 길을 잃고 우리는 골프장을 조성중인 사유지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돌아 나오기는 아까워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황무지를 지나 마침내 우리는 저수지를 끼고 돌아 신두리사구가 시작하는 해안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해변은 저멀리 달아난 바닷물 때문에 광활한 갯벌이 펼쳐져 있었고 이 곳이 해변길 1코스 바라길의 시작점임을 알리는 표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해변과 저수지를 가르는 둑방 위로 트레일이 조성되어 있었다. 해안으로 내려갈지 트레일을 따라 걸을지 잠시 망설였지만 해안의 사구는 어디까지가 보호구역이고 진입이 개방되어 있는 곳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아 결국 트레일을 선택했다.

왼편으로 저수지를 접하고 오른쪽으로는 썰물로 드러난 넓은 모래사장과 더 멀리 펼쳐진 약 1키로를 걸어 갈림길이 나오는 지점에 이르자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급히 사람의 기척이 없는 관리사 같은 빈집의 처마 밑으로 달려가 비가 잦기를 기다렸다.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우리는 다시 걸음을 이어갔고, 길이 갈라진 지점을 만나 해안과 나란히 나아가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목재데크가 깔린 길이 갈대밭 속으로 우리를 이끌자 본격적으로 신두리 해안사구의 풍경이 펼쳐졌다. 끝을 알수 없는 갈대 숲속에서 가물가물 흐려지는 지평선을 바라다 보다 문득 우리가 길을 잃고 사막에 갇힌 듯 느껴졌다. 아니 세상을 피해 사막 속으로 숨어든 듯 평안과 안도가 그리고 조금의 외로움이 일었고 저 멀리 모래언덕 넘어 혹 어린왕자라도 마주칠까 설레임이 피어났다.

 

2키로 정도를 걸으니  위락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갈대마저 드문 모래 언덕들을 넘으니 신두리 관광단지 같은 곳에 도착했다. 단지를 관통하는 까페와 호텔이 즐비한 도로로 접어들자 허기를 느꼈고 우리는 한 까페에 들러 가벼운 피자로 늦은 아침겸 점심을 해결했다. 우리는 길을 계속 이어 신두리해수욕장을 벗어난 지점에서 다시 바다와 접한 해안길로 접어들었다.

비가 완전히 그치자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날릴듯한 바람을 맞으며 해안길을 따라 소근진성을 지나고 직선으로 뻗은 제방도로를 걸어 제방이 끝나는 지점에서 해안을 벗어나 천리포로 바로 넘어가기 위한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마을 초입에는 너른 논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곧게 뻗은 논두렁길을 걸어 마을을 가로질러 천리포로 가는 언덕길로 접어들어 걷기시작하고 걸음이 늘어날수록 시야는 터이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적은 드물었고 시야에 들어오는 낡아가는 집과 방치된 밭은 쇠락해가는 농촌의 슬픔을 전해주었다. 그래도 마을 한켠에서 세월을 버티고 있던 늙은 감나무 한그루가 상처받고 능욕당하고도 끝내 존엄을 잃지 앓은 늙은 인디안 추장처럼 마을을 지키녀 지난 삶의 온기를 전해주었다.

 

언덕길의 넘어서자 마자 천리포가 나왔고 천리포의 마을을 관통해 남쪽으로 계속 걸어 천리포수목원을 지나자 그곳이 만리포임을 알리느 표지판들이 나왔다. 만리포는 늘어선 호텔과 까페, 레스토랑을 통해서도 얼마나 큰 관광지인지 알 수 있었다. 역시 다른 곳에서 불수 없던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겨울바다를 보는 것 만도 오금이 저리는데 추위에 아랑곳하지 안고 서핑을 하는 청춘이 부러웠다. 점심겸 저녁을 먹고 바람이 거세지는 거리를 걸어 롱비치페밀리호텔을 숙소롤 잡고 짐을 풀었다. 어두워지기전에 인근 마트에서 저녁과 다음날 아침까지 해결할 장을 보고 태안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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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2일

아침 8시 백사장항과 드르니 항을 이어주는 조망다리를 건너 청포대, 달산포, 몽산포를 그쳐 해안사구에 형성된 솔숲길을 걷고 해안으롭 멋어나 남면에서 버스를 타고 태안읍을나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학암포까지 이동하고 학암포에서 걸어 구례포에 도착 하루 여정을 마무리 했다. 

어제는 노을없는 5코스 노을길을 완주하고, 집나온 지 처음으로 실망스런 저녁을 먹고, 여정의 끝에 김기덕 감독의 사망 소식마저 들었다. 나에겐 아무 일도 없었던 평화로운 하루였지만 영화감독 김기덕은 낯설은 이국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고,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단지 그의 고향이 봉화라는 이유로 딱 한번 생가터를 찾아 이웃의 입을 통해 그에 대해 들었던 것이 전부였지만 그의 죽음은 계속 나의 뇌리를 맴돌았다. 천제적인 영화감독으로 살다, 성추문으로 상처받고 이국땅에서 쓸쓸히 죽어가야 했던 그의 운명이 애닯았다. 하지만 한 인간이 가진 어리석음과 잘못의 댓가는 또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기에 그의 영광과 치욕이 함께 그의 죽음을 통해 무로 돌아가길 빌었다. 죽음 뒤에 따르는 비난도 생전의 예술적 성과에 대한 칭송도 이제 산자의 몫이지 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은 드르니항에서 태안 8경의 하나인 몽산포로 이어지는 4코스 솔모랫길을 완주하기 위해 조금 일찍 숙소를 나섰다. 백사장항에서 드르니항으로 넘어가는 인도교는 엄청난 높이에 큰 규모로 지어져 다리를 건너는 내내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생활도로도 아니고 물론 차도 다닐 수 없고 오직 트레커나 관광객을 위한 다리치고는 너무나 거창했다. 그래도 막상 다리위에서 바라다 보는 서해의 풍경은 장엄했다. 다리를 건너자 아침 해가 동쪽하늘로부터 비추기 시작했다. 석양대신 여명을 사진에 담고 드르니를 벗어나 갯벌과 양어장 사이의 둑방길을 따라 길을 이어나가자 바다풍경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신온리라는 지명의 염전이 펼쳐졌다. 염전을 따라 걷다보니 길은 다시 솔숲으로 접어들었고 우리는 고운 모래밭에 형성된 솔숲 사이를 쉼 없이 걸어 나갔다. 2시간을 걸려 6키로쯤 솔숲을 걸은 끝에 청포대에 이르렀고, 길은 다시 해변을 따라 달산포까지 이어졌다. 해수욕장은 청포대, 달산포, 몽산포로 나뉘어져 이름을 얻고 있었지만 뚜렷한 경계도, 이름을 나눈 특별한 이유도 없었고 그냥 하나의 해변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간혹 바닷새 무리를 만나 걸음을 멈추기도 했고, 그래도 주말이라고 해변에서, 솔숲길에서 사람들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마음의 평화를 깰 정도는 되지 못했고, 그냥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빨아들이며 아무런 동요도 없는 적멸의 영역에 들어선 듯 가볍고 평화로운 걸음을 이어가니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길이 줄어 몽산포의 헤수욕장의 남쪽 끝단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몽산포로 접어들 무렵 시간은 정오를 넘어서고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해변을 다라 가서는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 길을 육지 쪽으로 틀어 남면 면소재지로 기수를 돌렸다. 금방 나올 것 같던 시가지는 쉬 나오지 않았고, 배고픔에 거의 지쳐갈 즈음 남면 면사무소에 도착했다. 면사무소 건너길 모서리에 자리한 후줄구레한 식당은 한눈에 썩 끌리지는 않았지만 배는 고프고 다른 대안을 찾기도 귀찮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신성식당이라는 이름의 동네 식당에는 이미 피크를 넘긴 점심시간이기도 해선지 조용했다. 공사장 인부차림의 손님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드시고 계셨지만 이내 식당에는 우리만 손님으로 남게 되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추천하는데로 평소에 먹고 싶던 물곰탕을 시켰다. 이내 상이 차려지고 물곰탕이 나왔다. 그런데 웬걸,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너무나 푸짐하고 시원하고 맛있는 식사를 만났다. 아침도 먹지않고 오전에 15키로를 쉬지 않고 걷고 나서 만난 물곰탕은 허기와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남면에서 오전 걷기를 멈추고 버스를 타고 태안읍으로 이동했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태안의 북단이자, 해변길 1코스의 시작점인 학암포롤 향했다. 남면에서 태안읍을 거쳐 다시 남폭운전하던 버스를 갈아타고 학암포까지 도착하는데는 한시간을 조금 넘는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학암포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숙소를 얻을 계획이었지만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다보니 걸음을 조금 더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학암포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풍경이 아름다운 만치 그만치 사람의 발길이 잣고 상업화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애써 눈을 바다로 돌려 섬과 해안이 조화로운 풍경만을 담았다. 해안까지 바짝 붙어 형성된 사설 텐트촌과 방갈로, 그리고 상업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상가들을 피해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나갔다4키로 정도를 한시간 동안 걸으니 구례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구례포 역시 해안쪽 모레사구에는 텐트촌들이 형성되어 있었고 예상외로 텐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아이들이 텐트사이를 뛰어다니고 여기 저기 고기곱는 연기조차 피어오르고 있었다. 막 텐트장을 들어서는 차들도 적지 않았다.

해안을 벗어나 634번 지방도를 따라 드문드문 자리한 민박과 펜션을 찾아 나섰지만 쉬 숙박지를 정할 수가 없었다. 어떤 집은 영업을 접었는지 문이 잠겨있었고, 어떤 집은 아예 코로나 때문에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문적박대를 했다. 다행히 길가의 펜션 안내판을 보고 전화를 돌린 끝에 파스텔팬션에 여정을 풀 수 있었다. 코로나가 휴가 풍경도 바꿔놓았는지 텐트촌은 사람들이 붐볐지만 막상 펜션에는 손님이 들지 않았다. 우리가 묵은 팬션 역시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주인의 소개로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의 식당을 소개 받았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식당은 영업중이었고, 막 도착한 경찰관들이 식사를 위해 식당을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뒤이어 우리가 식당을 들어가려고 하니 주인이 질색을 하면 우리를 외면했다. 코로나 때문에 단골 손님외의 여행객들은 손님으로 받을 수 없다며 매몰차게 우리를 문적박대 했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 것은 사실이었지만 뭐 코로나 공포가 그런 대응을 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와 주인아주머니를 찾아 라면이라도 빌려줄 것을 부탁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슈퍼마켓이 있고 차로 우리를 데려다 주셨고 라면과 도시락 등 간단한 식재료를 구입해 숙소롤 돌아올 수 있었고, 주인아주머니께서 맛있는 김치까지 한포기 내어주시는 바람에 그나마 저녁을 성찬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집 나온지 4일동안 옷점에서 만나 신세를 졌던 최씨 할머니, 장곡에서 차를 태워졌던 주민분에 이어 오늘 예정에 없던 차를 태워주고 김치를 내어준 파스텔 팬션을 이번 여정의 3번째 은인으로 기억에 남겼다.

저녁을 먹으며 켠 TV는 코로나가 다시 대유행기로 접어들었다는 뉴스로 도배를 했다. 숙박시설이 비고 손님을 거부하던 팬션과 식당도 경험하고 나니 우리도 남은 일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일정을 줄일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한 이틀 정도 일정을 늘일까했던 나의 생각은 일단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이제는 초소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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