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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대구가톨릭대학교 학생 100여명이

봉화에 농활을 왔습니다.

봉화군 농민회와 인연이 되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농활을 온 대구가톨릭대학생들은 춘양면과 명호면으로 나누어

그중 50명이 명호의 청량산비나리마을에 배정되었습니다.

 

학생들을 인계받은 청량산비나리권역의 주관으로 진행되는 이번 농활은

권역 시설인 마을 활성화센타를 숙소로 해서

권역 참가 각 리별로 10여명을 기준으로하여

필요한 농가에 따라 탄력적으로 배정하여

농촌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23일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일 돕기를 시작하여

25일까지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26일 오전

춘양면 참새골에서 감사잔치를 가지고 해단할 예정입니다.

 

이번 학생들의 농활덕분에 지역농민들은

곧 시작할 장마에 앞서 손늦은 콩밭, 고추밭의 풀을 뽑고

제초작업을 놓친 논에 들어가 잡초를 뽑을 수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농사일을 해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처음해보는 농사일에 몸사리지않고 떼약볕아래서

밭일을 하는 학생들을보니 한편 안스럽기도하고

고맙기도했지만 무엇보다 젊은 청년세대가

한국 농업의 현실을 직접 몸으로 느껴볼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모습이 대견스러웠습니다.

 

다시는 평생  다시는 농사일을 해볼 기회를

가지지 못할 학생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이번기회를 통해 농촌의 아름다움과 농업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는 그런 가치있는 농활이 될수 있도록

농민과의 많은 대화와 교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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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귀농자를 위한 귀농인의 집

처음 귀농을 결정하고 귀농처를 물색할 때 제일 아쉬웠던 것은

최종적으로 안착하기까지 임시로 지낼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기억에 착안해 예비 귀농자를 위한 임시 거주공간인

'귀농인의 집' 사업을 지자체 등에 제안해 왔는데,

이제는 여러 자치단체는 물론이고 봉화군 관내도

몇채의 귀농인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나리마을은 농림부 주관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다양하 사업중 하나로 '귀농인의 집'을  추진해 이제 완공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청량산 비나리마을에서 귀농을 준비합시다

청량산비나리마을은 '귀농인의 집' 준공과 함께

첫 입주자로 5가족의 예비귀농인을 모집합니다.

'귀농인의 집'에 입주하시면 아름다운 비나리마을에서

온 가족이 편안하게 지내면서 최종 귀농처를 찾고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 나가실 수 있습니다.

 

도시의 삶을 떠나 아름다운 산골마을에서 새

로운 삶을 열어나가길 희망하는 모든 분들이

비나리마을에서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텃밭을 가꾸고 이웃을 사귀면서

구체적인 산골의 삶의 현실을 체험하고

실제적인 귀농 준비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나리 귀농인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소재지: 경북 봉화군 명호면 풍호1리 230-1

◎ 인터넷, 케이블TV등 사용자 설치

◎ 건물 소개:

- 1층 2동 15평 : 방 1칸, 거실, 부엌, 욕실, 보일러실, 세탁실 (싱크대, TV테이블, t테이블세트)

- 2층 3동 15평 : 방 2칸, 거실, 부엌, 욕실, 보일러실, 세탁실 (싱크대, TV테이블, t테이블세트, 행거)

 

 "비나리 귀농인의 집" 임대 조건

청량산비나리마을 '귀농인의 집' 사업은 영리목적이 아니지만

시설 관리인에 대한 인건비, 건물의 유지보수비 등에 충당할 

임대료를 받고 있습니다.

  

◎ 임대료: 년 500만원 (권역내 정착시 정착지원금 200만원 지급),

6개월 300만원(권역내 정착시 정착지원금 100만원 지급),

6개월미만 단기 계약시 월50만원(정착지원금없음)

◎ 계약기간: 최장 1년 (최단 1개월단위계약)

◎ 시설물 사용: 상수도, 전기요금 등 사용자 부담

 

 "비나리 귀농인의 집" 임대 절차

'비나리귀농인의 집'은 선착순 임대를 하지 않고

예비귀농자의 신청을 받아 마을 운영위원회의 간략한 심사후 

임대를 결정합니다.

선정의 기준은  귀농의지가 강한 분 우선으로

가족 단위 귀농 준비자로서 식구가 많은 순,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아름다운 마을,

인심 넉넉한 마을을 함께 만들어나가실 분을 우선해 선정합니다.

 

◎ 문의처

(영농조합법인) 청량산비나리마을

송성일 : 010-6345-6234

정도윤 : 010-3233-1917

정근영 : 010-7755-8618

자세한 내용은 전화문의 및 방문 상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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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마을학교] 풍물강좌 첫 수업이 있었다. 이번 강좌는 마을에서 오래전부터 여러 관련 기관에 풍물반 개설과 강사파견을 요청해온 끝에 봉화 국악협회 도움으로 개설하게 되었다. 봉화국악협회는 문광부의 지역특성화사업을 선정받아 봉화군 관내 2개마을에서 풍물반을 개설하게 되었는데, 비나리마을은 그 두개 마을 중에 하나로 선택되어 풍물강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되었다.

 

 

 

[비나리마을학교]는 [청량산비나리정보화마을]과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청량산비나리권역]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도농교류위 거점이자 마을 주민을 위한 문화 공간이다.  앞으로 [비나리마을학교]를 통해 지역주민과 도시민 유치를 위한 다양한 문화강좌와 인문학 강좌, 치유프로그램 등을 개설하여 운영될 계획인데 정식 오픈에 앞서 먼저 첫 주민문화강좌로 풍물교실을 개설하게 된 것이다.

 

 

 

첫 수업이 열린 이날은 모임 시간으로 잡은 저녁 7시가 너무 일러서인지 처음에는 참가자가 적어 걱정을 했는데 7시 반이 넘자 한부 두분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 서른명이 넘는 주민이 참여를 했다. 멀리 명호면 관창리 만리산에서도 몇 분이 오시고, 명호면 소재지와 북곡리에서도 여러 분이 오셨다. 예상치 못한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비나리마을학교 첫강좌가 성공리에 진행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날은 먼저 임영훈 한국 국악협회 봉화군 지부장님의 인사 말씀이 계셨고, 앞으로 수업 진행에 대한 논의와 우리 수강생을 대표할 회장님, 그리고 실무 진행을 도울 총무를 뽑았다. 비나리 마을주민 윤길학님이 비나리풍물반 회장님으로 만장일치로 추대되셨다. 그리고 정근영 사무장님이 풍물반 총무를 맡아주시기로 하셨다.

 

 

 

강좌에 참가한 주민들은 난생 처음 잡아 보는 장구를 들고 모두들 들떤 얼굴로 강의에 몰두 하셨다. 정적이 지배하는 마을에 일주일에 한번씩이나마 풍물 소리가 번져나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았다. 첨 잡는 장구로 휘몰이 장단을 신나게 두르리는 회원님들 모습이 너무아름다웠다. 그동안 마을의 아름다운 문화와 전통이 사라져가고 대보름 등의 마을행사에도 풍물소리가 사그라들어 안타까왔는데 이번 교육 덕분에 다시 마을에 풍물소리가 나고 신명이 넘쳐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앞으로 마을 사업이 잘되어 풍물강좌를 시작으로 다양한 주민을 위한 강좌가 개설되고, 더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이렇게 마을과 마을을 넘어, 세대와 세대를 넘어 서로 모여 얼굴을 맞대고 웃고 떠들고 즐기며 소통하는 속에서 우리 자신과 마을의 미래를 공유하고 우리 지역의 인심이 더 깊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된다. 교육과정에 남녀노소 주민 누구라도 참가하여 더불어 정도 나누고 마을의 살림도 같이 걱정하며 마을의 아름다운 미래를 같이 준비할 수 있게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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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경운기 소리를 듣고 눈을 떠니 새벽 4시 반이 조금 넘었다. 오늘은 앞집 형님댁이 고추를 심는 날이다. 늘 신세만 지고 살다보니 일년에 하루라도 농사일을 돕고 싶었는데 오늘도 오전에 군청에 들어갈 약속이 있다. 그래도 이왕 눈 뜬 김에 일찍이라도 나가서 돕다가 볼 일을 보러 갈 요량으로 집을 나서니 5시 20분이다. 바로 형님댁 비닐하우스에서 고추 모종을 싣기 시작했다.

 

 

형님 내외는 벌써 밭에 가서 계시질 않았지만, 마냥 기다리기에도 그렇고 또 밭으로 나가보기에도 일단 고추 모종이라도 트럭에 싣고 있으니 형수님이 모종 한 경운기를 밭머리에 싣어다 놓았다며 돌아오셨다. 그렇게 형님 내외랑 오늘 심을 고추 모종 나르기를 시작했다. 서너 트럭을 나르고 나니 형수님께서 이른 아침상을 차려 놓으셨다.

 

 

아침상머리에는 벌써 이웃들이 모여계셨다. 도시에 나가 사시다가 내년부터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시겠다는 이웃 할머니의 자제분과 늘 씩씩하게 사시는 수야 어머님과 같이 고추 모종을 한차 더 싣고 밭에 도착했다. 모종을 내리고 작업 준비를 시작하니 길학이 형님내외, 심봉남 전부녀회장님, 성철이 어머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밭으로 모여드셨다.

 

 

북삽을 들어본지 참 오랜만이었다. 딱 1년만에 잡아 보는 북삽을 들고 밭골에 앉으니 고향집에 온듯 마음 편안했다. 3마지기 밭에 일꾼만 10여명 모였으니 오전이면 여유롭게 일을 마무리할 거 같았다. 창목이 형님이 앞장을 서서 이랑에 구명을 뚫고 나가면 한 사람이 모종을 넣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북삽을 들고 모종에 북을 주며 그 뒤를 따랐다. 간혹 한명이 호스를 당기거나 모종을 나르고 그렇게 손밭이 착착 맞아 드니 일이 일같지가 않고 재미가 났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구름이 몰려오고 청명한 봄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8시가 조금 넘어 한줄기 소나기가 내리기 까지 했다. 애간장을 태우는 반갑지 않은 비를 맞으며 하늘을 보시는 밭주인 앞집 형님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어떻게든 오전에 고추 정식을 끝내보려고 모두가 하나같이 비에도 아랑곳없이 고추를 심어나갔다.

 

 

 

오전 9시가 되자 밭이 절반이나 줄었다. 10시 약속 때문에 죄송한 마음만 남겨둔체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갑자기 굵은 소나기가 쏟아 붙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비나리마을에는 일꾼을 사온 주민까지 여러가구가 고추를 심고 있었는데 더 이상 견뎌볼 수 없는 거친 소나기가 대지를 쓸어내렸다.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마을을 떠나 하루 볼일을 다 마치고 오후 일찍 들어오니 다시 마을은 봄 햇살이 쨍쨍했다. 언제 비에 쫏겨 달아났냐는 듯 온 주민이 고추밭마다 매달려 고추를 심고 있었다.



 

큰 비든 센 바람이든 자연은 잠시잠깐 농부를 놀래키고 일손을 놓게 하지만, 망연자실 하늘을 보던 농부는 이내 굳건한 표정으로 밭으로 향한다. 농부가 가진 그런 결기가 척박한 사회적, 자연적 조건속에서 우리 농업을 지켜오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오늘 애간장을 태우고, 비에 쫏겨 도망까지 치며 심은 곡절 많은 고추는 틀림없이 씩씩하게 잘 자라 넉넉한 가을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올 가을 고추농사 대풍이뤄 함박웃음 머금은 앞집 형님내외 얼굴을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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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아침 9시가 되면 비나리정보화센타 앞마당에 이쁜 차가 도착합니다.

"명호 보듬이 나눔이 어린이집" 통근차량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작년 경제단체의 지원을 받은 봉화군이 명호면 면민회관을 리모델링하여

올 3월에 명호어린이집을 개관했습니다.

명호어린이집은 명호면민이 육아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보다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명호어린이집에는 현재 총 11명의 어린이가 등록을 하고 있고,

두분의 교사가 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부터 드디어 명호어린이집 통학차량이 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나리마을에는 명호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단 한 명밖에 없지만

아침마다 정보화센타마당에는 진풍경이 연출됩니다.

 

 

비나리마을의 유일한 '명호어린이집' 원생은 권영식 어르신의 손주 기현군입니다.

어르신의 자제분은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 부부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향마을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손주를 맡아 돌봐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귀한 동네에 '기현'이는 온 동네 주민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답니다.

마을회관에 주민모임이라도 있는 날이면 온동네 사람이

서로 기현이를 안아보고싶어 시셈을 할 정도로,

기현이 하나 때문에 동네에 생기가 돌고 사랑이 넘쳐납니다.

 

오늘 아침 권영식 어르신께서 손주 기현이를 업고 마을 정보센타 앞마당까지 나오셨습니다.

어린이집 차량이 도착하고, 선생님이 기현이를 데려가자하자

할아버지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기현이가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그 모습이 아름다운 봄날의 비나리마을 풍경과 어우러져

보는 사람마다 절로 얼굴에 웃음을 머금게 했습니다.

기현이 하나때문에 비나리마을이 더 아름답고

정감이 넘치는 마을로 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 

마을에서 한 아이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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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봉화군 농민회 영농발대식 및 풍년기원제가 있었습니다.

바쁜 봄농사 준비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봉화군 농민회 회원들이 모여

한미FTA반대 깃발을 차량에 설치하고 봉화군 관내 가두 행진을 한뒤

춘양면 농업인회관에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임채광 봉화군 농민회 회장님의 인사와

권오연 농민회 경북도연맹 주회장님의 격려사 그리고

결의문 낭독순으로 진행되었으며

춘양농협 조합장님,  춘양이장단협의회회장님, 새마을지도자회회장님,

권영준 봉화군의회의원님 등이 참석하여 격려해주셨습니다.

내외빈 모두 하나같이 한미 FAT발효로 더욱 어려워진 농촌현실에서

농민회가 파고를 헤쳐나가는데 앞장서줄 것을 요청하셨고

특히나 선거철을 맞아 가장 대표적인 반농업농촌 정책인

한미FTA를 주도한 사람이 농촌지역구에서 당당히 후보로 나오는 현실을 개탄하셨습니다.

 

농민회 회원들 모두는 시위와 집회 투쟁이 필요없는 세상이 되어

이웃과 더불어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가꾸며

살아가는 것이 꿈이지만 아직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농민회가 마을의 인심을 일구고

문화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성한 마을을 만들어나가는데 앞장 설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위해 지금은 싸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날 행사를 위해  준비하신 봉화군 춘양면지회 농민회회원과

부녀회원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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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정월 대보름..

모두들 오곡밥은 드셨나요?

지난 가을 정성껏 거두어두었던 오곡으로 밥을 짓고

무우며, 냉이며 가지가지 나물로 국을 끓여

몸과 마음을 보하는 것이 대보름 오곡밥의 의미인 것 같은데

게으른 저는 한번도 오곡밥을 직접 지어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매년 정원 대보름이 되면

한번도 거르지 않고 오곡밥과 나물국으로

마음을 뎁히고 몸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웃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앞집 형님 내외께선 저희집 게으른 걸 너무나 잘 아시기에

챙겨주시지 않으면 오곡밥을 거르고 말것라고 걱정되시어

한해 두해도 아니고 이날 평생 보름아침이면

나물 한냄비와 오곡밥 한 대접을 꼭 가져다 주십니다.

 

어제도 집에 밀린 식빵이 있어

빵으로 아침을 떼울뻔 했지만

형수님은 올해도 잊지 않으시고

오곡밥과 나물국을 나눠 주셨습니다.

 

무엇으로 보답드릴 지 가슴먹먹하지만

정이 넘치는 이웃과

이렇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늘 받기만하고 베풀지 못하지만

긴긴 인생 살아가면서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인심좋은 비나리마을에 살아가는 저희가족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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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을 맞아 각 가정의 김장담그기는 물론
각종 단체가 주관하는 이웃돕기 김장담그기 행사가 한창이다.
이에 맞춰 봉화군 농민회는 지난 11월 6일부터 8일까지 
화원들이 재배한 배추와 각종 양념을 모아
500여포기의 [사랑의 김장]을 담았다.
이날 행사는 가진 것이라고는 농사일에 이골이 난 몸과 
직접 키운 농산물밖에 없는 농민회회원이
지역공동체의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었다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특히 이번행사에 올해 새롭게 조직을 복원한
봉화군 농민회 명호지회 회원들이 참가해
지역 사회에 뜻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다.
땅을 일궈 살아가는 농민의 생명사랑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몸소 실천하는
농민회 회원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이번의 작은 활동속에서 지역주민 모두는
앞으로 살아갈 우리 지역사회의
아름다운 미래상을 꿈꿔볼 수 있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을 지켜나가는 일은
농민형제가 먼저 서로 돕고 이웃을 보살피며
마을공동체의 온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만나서 즐겁고 행복한 농민회,
형제같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농민회,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농민회,
무엇보다 가정의 화목을 이끌고
우리아이들을 올바르게 자라가는 데
도움이 되는 농민회를 만들어나가자는
농민회 명호지회 회원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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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비나리권역 마을역량강화사업의 일환인
전문가 초청교육에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님을 모셔
"마을이 인류의 미래다"는 주제로 말씀을 들었다.
이날 명호면사무소 이층에서 진행된  강연회에
적지않은 지역주민들이 참가하여
재미있고 열정에 찬 교수님의 강연에 귀기울였다.


교수님은 우리 농민의 삶이 한 때는 낡고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되어
새로운 것, 서구의 것으로 대체되어야한다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김치, 막걸리 등등 우리의 옛생활방식이나 문화 등이
결코 진부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
지속가능한 삶의 공동체를 위해
꼭 다시 되살려야할 것으로 가치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하셨다.

나아가 바로 그와같은 문화를 체현하고 사는
농민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농촌공동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강연을 듣는 할머니들이 공감하는
많은 예들을 드시면서 말씀해 주셨다.

사실 비나리마을에 벌써 십수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마을에 제일 부족한 것은 바로
돈도 아니고, 다른 자원도 아닌
농민의 자긍심, 마을살이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농부로서의 자신의 삶이 당대에 끝나고
자식에게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 너무 많기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마을의 미래를 꿈꾸고
가꾸어나가려는 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주민들은
듣기는 좋은 말이지만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의아해하시는 듯도 했지만
지역사회에 더불어 살아가고 계시는 훌륭한 선생님이
주민들과 만나 좋은 말씀을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시고 뿌듯해 하시는 느낌이었다.
사실 자긍심은 그렇게해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기때문에
앞으로 기회가 닿는데로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들어 나가야 되겠다.

귀한 기회주신 임재해 교수님과
바쁜 중에 강연회에 참석해주신 주민여러분께도
고마운 마음 전해드리고 싶고
이날 강연의 결론대로
'농촌 마을이 인류의 미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신나게 마을살이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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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부터 농사를 지었으니 벌써 올해까지 꼭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고 적지 않은 변화도 있었지만
꼭 그때 15년전 내가 첫발은 디뎠던
비나리마을의 가을을 잊을 수 없다.

그 고즈넉한 가을 하늘아래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전경...
살다보면 사람일은 알수 없으니 내가 설혹 비나리마을을 떠나
또 다른 낮천 거리에 헤메게 될지라도
그 때 그 비나리마을의 풍광은
고스란히 나의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해 두해 농사를 지어 가면서
그 평화로운 풍경뒤에 감춰진 한국 농촌의 참담한 현실을
눈으로 몸으로 느껴갈 수 밖에 없었다.
말로서, 글로서 알고 있덨던 실상보다 춸씬더
참혹한 농촌의 실상은 그 어떤 처방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고,
한 때는 내 자식을 키우며 살아갈 터전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탈농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든 살아보겟다고 농사를 벌이고,
정부가 지원하는 이런 저런 마을사업을 벌이면서도 
그 어떤 것도 근본적인 처방이 될수가 없다는 점에
늘 목말라하면서 결
국 농촌, 농업의 문제는
농민이 주체적으로 나서  

해결할 수 밖에 없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농민회에 가입하고 농민동지들과 전망을 찾고
한국 농촌의 미래 비젼을 공유하고자 했지만
처음 몇년은 우선 내 농사기반이라도 닦고 나서 가입하자고
미루게 되었고,
다음 몇년은 이런저런 마을 사업에 정신이 팔려
미쳐 농민회 가입을 생각지도 못했고,

그리고 최근까지는 농민회의 이념적 지향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몇가지 점들과
지역농민회와의 연결의 어려움 때문에
가입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미뤘던 농민회 가입이 이뤄지고
지난 금요일에는 명호면에서 농민회가 소집한
자역 농업인대표자 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선 자리, 두려운 자리였지만
농민회의 뚝심과 지역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을 몸소 느낄수 있었고,
비록 조직이 쇠락했지만 여전히 농민들 사이에서는
농민회가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농민회 회원 개개인의 무한정한 헌신의 삶을 목도할 수 있었고,   
그동안 관변단체로 여겨 배제했던 농업경영인회 등도
농민회와 동반자로서
투쟁에 같이 나서는 모습을 확인하는 기쁨도 있었다.

나아가 지역 각종 농민단체의 조직원으로 활동하시는
지역 형님들 선배님들의

건강한 삶의 모습으로부터도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의 다른 농민단체 형님들께서도
지금은 와해된 봉화군 농민회 명호면 지회를 복원하는 과제를
맡기면서
도와주시겠다고 나서는데 고무되어
나는 연말까지 봉화군 농민회 명호면 지회를
복원하겠다는 공언을 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를 통해 10월 10일 경북도내 각 시군 농민단체와 마찬가지로
봉화군 농작물피해대책위원회에서도
버스 10대 이상을 동원하기로 하고, 

이에 명호면은 버스 한대를 맞춰 각 단체가 인원과 비용을 배정하여  
경북 도청앞으로 집결 [경북농민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의 했다.

농민회를 가입하자마자 벌써 몸이 바빠지게되었다.
아직 밭에 할일도 태산인데 내 주머니에서 비용을 갹출해 가면서
집회에 참가하게 되니 이게 무슨 망조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농사 15년 만에 농민회 가입을 통해
나의 삶이 또 다른 비약을 하게 된 것임을 확신하다.
나는 이제 진짜 농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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