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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비나리마을 몇몇 주민과 함께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모임은 비나리마을에 [자활농장]을 만들기 위한 예비 모임이었습니다.
봉화군 자활후견기관의 김휘연 관장님과,
비나리마을에서 자활농장사업에 참여를 희망하는 3가구,
그리고 저가 한자리에 모여
'자활농장'이란 어떤 사업이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듣고 의견도 나누었습니다.

'자활농장'은 경제적 곤경에 처해 스스로의 힘만으로 헤어나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
정부의 최소 지원을 기반으로 한정된 기간동안 공동으로 농장을 운영함으로써
의지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자활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사업입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한 것은 없지만 우선 3가구가 참여키로 하고
면사무소에 각각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확인 신청을 해 놓았습니다.
자활농장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있는 수급자가 1가구이상 참여해야하고,
기본적으로 차상위계층만 공동으로 참여가 가능하답니다.
비록 월 70만원 정도로 3년을 한정해서 지원하는 것이지만
어려운 농촌 형편에 우선 공경을 벗어나는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급한 위기를 넘기는 데에 도움이 될뿐아니라
 자활농장을 기반으로 해서 자활공동체로 나아가
참가자중 일부라도 자활의 기반을 가꿀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기쁘고 의미있는 일일것입니다.
빠르면 3월 중으로 시작하게 될 비나리자활농장은 
곧 착공하게 될 마을방문자센타와 귀농레지던스와 결합해
비나리권역 주민이 공동노동의 경험을 축척하고  
풍요롭고 인심좋은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작년에 봉화자활후견기관에 의해
명호에 밭두렁 공부방사업이 착수되어 이제 안착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자활후견기관은 소규모 노인요양시설을
명호 지역에 설치하려고 토지를 알아보는 등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이 모든 사업을 통해 우리 지역사회가
모범적인 복지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우리 주민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3월이되면 자활농장 소식을 수시로 올릴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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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했다해도, 설날의 정취가 옛날 같지가 않다고해도
비나리마을  떡방앗간은 옛날 못지않은 분주함과 넉넉함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설날이 이삼일 앞으로 다가오면 명호면 골짜기 골짜기마다 
대여섯가구씩 모여사는 산산오지마을 할머님께서 
바리바리 떡쌀을 지고 들고 [명호 떡 방앗간]으로 모여듭니다.
이골짜기 저골짜기 할머니께서 모여드는 그만치
명호 방앗간에는 이 마을 저 마을 기쁜 소식, 슬픈 소식,
이런 사연 저런 사연들이 쌓여갑니다.

[명호떡방앗간]은 몇년전 비나리마을의 새 주민이 된 
나무네가 꾸리는 방앗간입니다. 
명호면 소재지에 하나밖에 없는 방앗간을 운영하시던 전 주인내외께서
오랜전통을 이어오던 방앗간을 나무네한테 물려주게 된 것입니다.
나무네는 방앗간의 이름에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추가했지만,
명호떡방앗간의 떡맛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옛주인 내외께서 고객부터 기지떡 만드는 비법까지
어느 전통 하나 버리지 않고 모두 전수해 주셨기 때무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명호떡방앗간]은
젊은 새주인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었고
명호사람은 그냥 [아름다운방앗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방앗간]은 그렇게 아름다운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방앗간이 '아름다운'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아름다운 방앗간]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모여듭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들어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풍성하게 이루어나가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방앗간]에 설대목이 시작되면
명호면 젊은 친구들이 하나둘 [아름다운 방앗간]으로 모여듭니다.
역계골 멋쟁이 총각이 할머니들의 주문사항을 체크하고, 
꾸구리 이장인  어진이 아빠가 떡가루를 반죽합니다.
나무엄마 아빠가 이리뛰고 저리뛰고 다된 떡을 포장하고 떡값을 받는 사이
이웃 고계리 청량산장 주인이신 예연이 아빠가 가래떡을 뽑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방앗간]은 아름다운 이웃이 모여
설날 대목을 함께 치룹니다.
어느 한 사람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나무네 대목 큰일을 함께 치루기위해
나무네 [아름다운방앗간]으로 모여든 것입니다.
세상인심이 변하고 두레의 전통이 사라져가는 농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방앗간]은 이웃간의 풍성한 정으로
산골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인심을 이어나갑니다.

떡을 기다리며 방앗간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않은 할머니들은
손자손녀들 보고싶은 마음을  한 보따리 풀어놓으시고
아들자랑 딸자랑에 하루해가 저문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방앗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이웃이 함께 만들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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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에도 일년에 두 세 번은 사람이 붐빌 때가 있습니다.

청량산과 낙동강을 끼고 있고, 낙동강과 나란히 마을 앞을 지나는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 유교문화권이 이어지는 위치한 비나리마을은 여름 휴가철 한 달만은 외지인의 발길이 넘쳐 납니다.


그리고 두 번의 명절, 추석과 설날이 되면 어린 시절을 마을에서 보내고 철들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대구로 부산으로 일자리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 출향민들의 귀향발길이 넘쳐납니다. 일년 내내 아이들 울음소리도, 어른들 웃음소리도 드문 마을에 명절 한 때 나마 왁작지걸, 사람 사는 소리와 온기로 넘쳐납니다. 마을 길 여기저기에 승용차들이 서있고, 이웃 할머니의 좁은 마당가에도 반짝이는 승용차가 그 집의 자식들 수 만치 들어서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 세대전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 온 마을을 구석구석 쓸고 다니며 고함을 치고, 싸우고, 웃고 그리고 여기저기 저지레를 해 놓습니다.

설날을 기다리는 산골마을 주민들은 풍요로웠던 지난 시절이 되살아나는 그런 신명 넘치는 꿈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산골 마을 비나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바람이 지나가듯 이삼일 그냥 스쳐 지나갈 명절이지만 그날이나마 옛날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으십니다.  집집마다 아홉이나 열씩 자식을 두고 앞마당에 강아지 두어마리와 외양간에 소한마리 그리고 뒷마당에 풀어놓은 닭까지 대여섯마리가 모두 한식구로 살았던 옛날이 그리우신 것입니다. 


<이웃 갈골의 민순기 어르신 부부>같이 늙어가는 산골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옛날을 추억하고 새날을 꿈꾸시는 명절을 코앞에 둔 비나리마을 할머님들은 세상 누구보다 바빠집니다. 설을 쇠고 돌아가는 자식들 차 드렁크에 누렁호박 두어 덩이와 깨끗이 골라 곱게 빻은 고추가루 한 보따리, 그리고 참깨와 콩은 물론 지난 가을 손수 산과 들을 헤매며 캐서 말린 산나물 한 꾸러미까지 차곡차곡 채워주기 위해 지난 한해 가꾸고 다듬은 농산물을 미리 챙깁니다. 기름방에 들러 참기름이며 들기름을 짜고, 고추방앗간에 들러 고추가루를 빻습니다. 마음은 바뿐데 그렇게 준비가 되어가는 만치 설날은 내일 모레로  다가오고, 혹시라도 빠뜨린 것이 없나 헛간을 둘러보고 부엌을 둘러보고 미리 싸둔 보따리를 다시 풀어봅니다.


설날이 눈앞에 다가오면 할머니 마음은 더욱더 바빠져가고 기다림에 지쳐 초조하기 조차 합니다. 아직은 두세 밤은 더 자야 자식이며 손주들이 들이닥칠 것인데 세월은 일년 열두달이 그리도 잘 흘러가다가 왜 명절을 코앞에 두면 이리도 느려터졌는지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을은 할머니 마음에도 아랑곳없이 명절분위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동네거리는 여전히 고적하고 찬 바람만 가득한 채 사람 발길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이동슈퍼라도 들어와야 하는데 명절 대목이라도 보러 어디 장터 한 모퉁이에 전을 펼쳤는지 일주일에 두어 번씩 마을을 들르던 이동슈퍼마저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래도 간혹 어디 택배사 트럭이나마 들어오기는 하는데, 명절을 코앞에 둔 택배는 대부분 아쉬운 사연이 묻어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귀향을 하지 못할 사정인 자식이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보내는 선물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나마도 없으면 자식도 아니겠지만, 그냥 선물 하나 받고 자식얼굴도 못보고 명절을 나기에는 할머니 가슴에 묻힌 그리움이 너무나 큽니다.

마을에는 없어졌지만 산골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이웃이 넘치고 정과 사랑이 넘치던 옛 마을의 모습에 꿈처럼 남아 있습니다. 명절만이 아니라 언제가 비나리마을은 할머니의 뇌리에 남아있는, 이웃의 번잡한 삶이 내삶과 엉켜 두루 즐겁게 살아가던 옛 마을의 영화가 재현되길 마음속 깊이 빌어봅니다.    

올해 비나리마을 설날은 그 어느해보다 풍요롭고 정감넘치는 그런 명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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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음력으로 섣달(12월) 25일로 비나리마을 초롱계가 있는 날입니다.
초롱계는 비나리마을의 전통으로 전기가 없던 시절,
큰일을 치루는 이웃에 초롱불로 부조를 하던 전통으로부터 전래되었습니다.
이웃에 상이나, 혼례가 있으면  집집이 한손에는 두부나 떡을 해 들고, 
또 한손에는 초롱불을 들고 큰일을 치루는 집으로 향했답니다. 
그렇게 이웃을 도와 가며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나마
마음 넉넉하게 살아올 수 있게 했던 아름답고 지혜로운 전통이었습니다.  
이웃의 도움으로 큰일을 치룬 주인은 그뒤 자신의 사정에 맞춰
적당한 금액의 돈을 초롱계 기금으로 내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인 돈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새마을운동으로 전통 공동체 문화가 쑥대밭이 되기전인
1970년대 초까지 이어져오던 초롱계는 그뒤 마을의 쇠락까지 겹쳐
그 흔적만이 남아 동네 상여계와 합쳐져 유지되고 있습니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나서 초롱을 부조하던 전통은 사라지고,
초롱계의 형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동네에 상이 났을 때 상주가 상여꾼에게 주는 노잣돈을 모아
여러가지 마을행사 비용이나 마을 공용 비품을 조달하는데 사용하고,
그러고도 남는 기금은 마을 주민중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일정한 이자를 물고 1년단위로 빌려주는 '계'가 '초롱계'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초롱계 날은 그렇게 빌려간 돈을 이자와 함께 모아서,
지난 일년간 동네일로 쓴 금액을 제하고
나머지를 다시 필요한 주민에게 빌려주고,
그 모든 내용을 기록하고 서명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치고,
술과 음식을 나누며 주민 모두가 하루를 즐기는 그런 날입니다. 

비나리마을 초롱계 기금은 이제 몇백만원 남지 않았습니다.
10수년 전만해도 동네에 상이나면  이웃 주민이 상여꾼으로 돕고,
상주가 내어놓은 노잣돈은 초롱계 기금으로 모았습니다.
하지만 마을에 인구가 줄고, 특히 상여를 맬 청장년이 줄어들면서 
초롱계 기금으로 모으던 노잣돈을 상여꾼의 일당으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해가 갈수록 기금이 줄어들어
앞으로 몇년이나 더 초롱계가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초롱계의 형식은 세월따라 바뀌었지만 이웃의 대사에
초롱을 부조하는 아름다운 전통은
'비나리 초롱축제'로 새롭게 태어날 예정입니다.
몇년전 비나리산골미술관 개관식에 맞춰 초롱을 부조하는 초롱행렬을
개관식 참가객과 주민이 함께 재현한 적이 있습니다.
세월따라 알게 모르게 침체되고 생기를 잃은 마을이
수많은 초롱행렬로 아름답게 되살아나는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초롱행렬의 재현은 연년이 이어지지 못하고
예산의 벽에 부딪혀 중단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끊어진 초롱축제가 곧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한 청량산 인근마을과 더불어,
주민과의 연대와 소통에서, 마을과 마을의 연대와 소통을 이루는
축제의 장으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늦어도 내년가을이면 재현될 비나리초롱축제를  
올 한해 내내 조사하고 궁리하여 멋들어진  마을 축제로 준비해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소멸되어가든 마을이 비나리초롱축제를 매개로 활력과 신명이 넘치는,
사람사는 마을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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