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문화예술의 존재조건
- 산업화의 중심에서 문화 예술을 통한 탈산업화의 상징 도시로!
포항은 제철의 도시다. 철의 이미지는 차갑고 딱딱하다. 하지만 포항은 문화예술의 대척점에 서있을 것 같은 제철산업의 도시를 문화화, 예술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꽃과 그림이 가득한 푸른 청림동 만들기]등 각종의 공모 지원 사업 등 포항을 풍성한 문화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시도를 해오고 있고, 지역 미술문화의 전당인 포항시립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130억 원의 예산을 들인 포항 시립미술관은 기초자치단체가 건립한 경북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지역미술문화는 물론 한국미술 발전의 일익을 담당하고자 하는 포부를 표명하고 있다. 포항시립미술관은 다음 달 22일부터 내년 3월 14일까지 그 설립취지에 맞춰 ‘신철기 시대의 대장장이’를 주제로 개관전을 갖는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포항시립미술관 인근에 곧 ‘경북학생문화회관’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 시설은 경상북도 교육청이 420억의 예산을 들여 각종 공연장과 수련시설을 갖춰 경북의 청소년뿐 아니라 시민의 문화적 수요를 충당할 예정이다. 새로 건립되는 시설 뿐 아니라 포항 문화예술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포항문예회관은 근년에 들어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가지면서도 대중적인 각종 전시와 공연을 기획함으로써 시민친화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시도하고 있고, 일정한 성과도 얻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가 포항은 축제의 도시라 해도 가히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수많은 축제를 열어오고 있다.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비롯해 과메기축제, 포항 바다 국제연극제, 영일만축제, 구룡포 해변축제, 포항 국제 불빛축제, 정몽주축제, 일월문화제, 아트페스티발 등 포항은 연중 축제가 끊이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이렇게만 두고 보면 포항은 문화예술측면에서 가히 “꿈과 희망의 도시 글로벌포항”을 향한 순풍을 만난 듯하다. 하지만 최근 포항시가 추진 중인 전통문화체험관 건립이 시의회에서 제동이 걸리는 등 문화 시설에 대한 과잉 투자와 과시적 행사가 과연 포항 지역 예술문화발전에 도움이 되는가는 의문이 싹트고 있다. 전국의 수많은 문화공연시설이 그 규모에 걸 맞는 알찬 운영을 뒷전으로 한 채 과시적이고 행정적인 성과에 집착해 설립 운영되면서 철학의 결핍과 부실한 내용으로 운영의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엄청난 예산을 들여 지은 포항시립미술관이 그 외형적 규모에 어울리는 탄탄한 내실을 갖추고 지역주민의 삶을 문화 예술적으로 고양하는 미술관으로 운영될 수 있기 위한 인적, 내용적 준비를 건축 공사의 진척에 맞춰 갖추어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경북 지역의 학생 야영장, 청소년 수련관, 청소년 수련원의 경우도 꼭 필요한 지역에 설립하거나 낙후 시설에 당장 필요한 유지보수나 보완, 인적자원의 지원, 내용성 강화 등에 필요한 예산은 아끼면서 편협한 지역 이기주의와 행정 성과주의에 빠져 무분별하게 신설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설되고 있는 경북학생문화회관의 경우도 지역편중과 과잉 투자 문제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나 프로그램 개발에 인색한 채 오직 시설투자에만 올인 하는 문화적이지 못한 문화 행정의 산표본이 되지 않을까는 걱정이다.
포항은 제철산업을 중심으로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대표적 산업 도시로, 한국 사회가 가진 급속한 산업화의 성과와 그 한계를 오롯이 안고 있는 상징적 도시이다. 절대적 가난으로부터의 탈피가 범국가적인 절대절명의 과제이던 시절, 국가주의로 무장한 산업화 세력은 거의 전 국민적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내며 오직 경제성장에 매진했다. 산업화 세력은 경제적 합리주의와 개발주의를 앞세워 지난 시대로부터 전승되어 오던 공동체주의를 위시한 전통적 가치는 물론이고, 개발주의세력이 그 역할모델로 삼고자 했던 구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조차 그 존립의 근거로 받아들였던 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 기회의 균등성,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최소한의 근본가치들마저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팽개쳐 버렸다. 산업화세력이 초가지붕을 강압적으로 제거할 때 초가지붕아래서 보전해오던 온갖 정신적 가치와 전통문화들도 함께 버려졌다. 그렇게 성장 제일주의라는 불도저가 밀고 지나간 자리에 공장과 빌딩이 들어서고 현대화된 고속도로가 놓여졌다. 개인들의 소비수준을 급격히 증대되었고, 꿈에 그리던 ‘마이카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러나 폭발하는 한국경제의 성장이 저절로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었던 윤택한 개인적 삶은 표피에 그쳤고 정신적 빈곤과 문화적 갈증은 경제적 성장에 비례해서 높아만 갔고, 그와같은 상황에서 또 수많은 개인들은 물질적 성장의 혜택에서 마저 철저히 유리된채 물질적 정신적으로 이중의 피폐한 삶으로 몰아넣어졌다. 더불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경제 성장세가 주춤거리기 시작하자 한 시대를 지배한 성장제일주의는 회의의 대상이 되었고, 절대적 가치로 받아들여졌던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쉽게 내동댕이쳤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인간적 삶을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가치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지역문화’도 그 즈음에 탄생한다. ‘지역문화’는 지역과 문화의 철저한 파괴를 통해 그 의미를 획득했다. ‘독립’의 의미가 주권을 잃은 뒤에야 극명해지듯, 일제강점기를 통해 민속문화-전통문화로 이루어진 지역문화에 대한 가치부정과 상징파괴가 수반된 뒤, 그리고 일제의 지배정신을 잇는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새마을 운동을 통해 대대적인 지역문화-공동체문화의 말소작전이 자행된 뒤 비로소 ‘지역문화’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인식이 전면적으로 대두한다.
산업화 시대와 산업화의 극복이 과제가 되는 시대를 관통해 포항은 한국 사회의 중심에서 한발작도 벗어난 적이 없다. 한국 산업화의 과정, 그리고 한국식 산업화의 한계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의 문화화, 예술화가 과제로 제기되고 수행되는 시대의 중심에 바로 포항이 있다. 경북 지역사회로 한정해 보더라도 포항은 특별한 지위를 갖는 도시다. 포항은 구미와 더불어 경제적 자생력을 갖춘 경북의 두세 도시 중의 하나라고 보아도 무방하고, 그와 같은 경제적 자생력을 기반으로 해 도시를 예술-문화화 하는 선봉에 서있다.
제철 산업의 도시를 예술-문화화 하는 과제가 시대적 화두가 되는 시점에서 한국사회의 문화적이지 못한 문화 행정을 극복하고, 산업화의 기반위에서 포항의 지역문화예술이 활짝 꽃피기 위해서는 문화와 예술이 무엇인지, 그것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시민의 삶과 융화되어 인간적 삶의 가치를 고양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 확산에 기여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더불어 문화예술이 어떻게 탄생하고 생존하고 번성하는가는 문화생태학적 고찰과 더불어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삶을 이끄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포항이라는 도시의 특성과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포항은 예술-문화의 가치기반을 되짚고, 그 지향을 뚜렷이 하는 한에서만 진정으로 ‘꿈과 희망의 도시 글로벌 포항‘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지난 산업화 시대를 주도한 도시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 가치의 생산지이자 보급의 전진기지가 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포항은 산업화 시대를 이끈 토건국가의 전위에서 산업화시대가 남긴 정신적 상흔을 치유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가치의 원천을 되짚고 가치지향을 뚜렷이 하는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포항의 문화예술이 새로운 시대에 기반 해야 할 가치는 산업화 시대를 이끈 물질 만능주의에 맞선 공동체주의와 인류의 보편적 인권, 그리고 자연을 무분별하게 착취하는 개발주의에 맞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자하는 생태주의이다. 이들 가치에 기반 할 때만이 포항의 문화 예술은 제철산업을 중심으로 한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희생된 가치와 정서를 회복하고 기형화된 도시적 기능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나아가 지역의 건강한 정체성을 세워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정신문화, 예술을 창조하고 통합과 상생의 문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포항이 탈경제의 가치를 주도하는 지역문화를 꽃피울 수 있길 기대한다. 한국 사회의 모든 고질적 현대병을 일으키는 암세포는 한국인의 의식을 철저히 지배하고 있는 경제 일원론에 기생한다. 이는 무분별한 산업화가 낳은 정신문화적 상흔이지만 경제에 마저 걸림돌이 될 만치 그 암 덩어리가 커져 벼렸다. 경제일원론으로 바라다본 한국 사회의 문제 해법은 오직 경제성장 이다. 그와 같은 사고가 교육에 전이되어서는 성적 지상주의, 학벌주의로 귀착되고, 사회는 복지 없는 경쟁만능주의로 내몰려 가족과 개인의 삶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내재적, 정신적 가치를 배제하고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는 시장주의가 황폐화시킨 세상을 치유하고, 경제의 단일 지배로부터 다양한 가치를 지키는 문화는 지역사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역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중앙으로부터 소외된 공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제라는 단일가치의 지배를 전복할 반역의 싹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다.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획일화된 경제 만능주의의 지배 구조를 밝히는 과정이고, 지역의 차별적 위상을 또렷이 마주하는 작업이다. 지역의 위상을 분명히 인식하는 순간 지역의 정체성은 반경제, 반중앙에 기반한 대안문화 대안가치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전화되고 이렇게 만들어가는 지역의 정체성은 지역자치, 지역문화자치로 꽃피고, 탈경제의 가치를 지역문화라는 무기로 퍼뜨리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래서 포항은 식민화된 지역문화의 해방을 이끄는 지역문화예술의 성지로 거듭나야한다. 서울이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서울 문화가 표준 문화로 강요되는 시대에 포항은 다른 지역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서울공화국의 변방이 가지는 지역성을 피할 수 없다. 지역의 여타 시군과 마찬가지로 포항 역시 ‘돈 벌어 서울 가서 사는 것’이 많은 시민의 평범한 꿈이고, 아이들 키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서울로 올려 보내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인생계획인 지역 사회의 일부이다. 따라서 포항 지역의 문화 예술은 지역의 삶, 지역의 가치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해 지역민의 정체성을 찾는데 기여하는 지역성을 담보해야 한다. 서울문화를 추종하고 답습하여 그 아류가 되는 방식으로는 결코 포항이 문화예술의 도시가 될 수 없다. 포항의 문화예술이 그 지역성을 확고히 할 때 지역의 문화 공간들은 서울문화, 중앙문화를 지역에 배급하는 문화 대리점이 아니라 지역과 중앙의 문화와 삶이 만나고 소통하는 ‘장터’가 될 수 있고, 포항이 독자적 가치를 가진 주체적 문화 예술 도시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운 가치기반위에 세워질 포항의 문화예술은 현대화된 산업 기반위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동적이고 전위적인 문화예술로 꽃피어야한다. 포항은 현대적 문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한국의 산업화를 선도한 현대공업도시인 포항은 산업화를 통하여 물질적 경제적 조건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경북의 다른 시군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교적 경건성, 박제화 된 교양주의 문화, 고루한 토호문화로부터 자유스러운 도시이다. 그 물질적 조건위에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조 기반을 조성하고, 생동감 넘치는 현대적 전위예술이 꽃핀다면 포항은 하이브리드, 퓨전, 크로스오버가 보편화된 시대를 이끌 새로운 정신문화의 성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제는 오롯이 포항의 문화예술인, 더 중요하게는 시민의 몫이다. 미래적 가치와 문화가 융합되고, 문화와 시민의 삶이 일치되는 도시, 도시의 거리가 예술로 넘쳐나고 풍성한 정신문화가 시민의 일상을 행복으로 이끄는 그런 ‘글로벌 도시 포항’을 보고 싶다. [2009.12.10 / 송성일:농민]
<참고자료>
“경북 '그저 그런' 학생 수련시설 70곳 … 실효성 논란”, 이영균, 경북일보, 2009.5.6.
[지역문화 그 진단과 처방], 임재해 저, 지식산업사, 2002.
[지역창조] 화천군지역혁신협의회 저, 도서출판 다움, 2007.
<이명박시대의 문화운동-문화정책 토론자료집>, 전효관, 민예총, 2008.
[왜 지역문화인가], 이현식 저, 로크미디어, 2007.
[당신의 문화 쾌적합니까], 문화연대 저, 문화과학사, 2001.
<상식으로 엮어낸 진보적 지역문화의 로드맵>, 목수정 저, 민노당정책연구원, 2006.
<탈경제의 가치를 지역문화가 주도하자> 등, 송성일, 컬처라인,2009.
[한국의 지역문화:현황 및 정책방향을 중심으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저, 대왕사, 2008.
포항예술문화연구소 발간 [아트포럼] 2009.12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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