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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5일 아침 울레리를 출발하여 난계탄티를 거쳐 고라파니 Hilltop 호텔에서 여정을 풀고, 1월6일 새벽일찍 푼힐을 오르고 다시 고라파니로 내려와 반탄티를 거쳐 다라파니에서 묵었다.

 

이틀의 여정은 극적이지 않았지만 나름 걸음을 통해 큰 산과 만나는 잔잔한 감동이 이어졌다. 첫날은 고도 2000m의 울레리에서 3000m의 고라파니까지 무려 1000m의 고도를 높여야 했고, 다음 날은 어두운 새벽에 3200m고지의 푼힐을 올라 서광에 살아나는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 산군을 마주 했다. 서울을 출발하는 날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챙겨온 "박근혜 탄핵" 손피킷을 들고 안나푸르나 산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시민들과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대신했다. 전망대를 오르내리고 뜀박질을 하며 기념사진을 찍다 처음으로 불편한 호흡을 통해 고도를 느낄 수 있었다.

 

 

우연히 같은 코스를 걷는 한국에서 온 유명 여행사의 단체 여행객과 조우했다. 한국인이 유달리 많아 특별히 서로를 주목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냥 동행으로 서로 '나마스테'를 주고 받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걷다보니 한짐을 지고 나르는 여행사 고용 포터들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너무 심하다'는 말이 터지자 마자 모두 하나같이 돈과 노동, 고용과 인권, 그리고 네팔의 경제 사정에 대한 갑론을박을 이어나갔다. 우리 가이드인 라마는 특히나 과도한 짐을 맡기는 여행사의 처사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우리 일행 모두가 동의했지만 어떻게 할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쉬 의견을 내지못했다. 여론환기를 위한 SNS 공개이상 우리가 포터의 짐을 줄여줄 수있는 특뱔한 방법은 강구할 수가 없었다.   

 

 

푼힐을 내려와 다시 푼힐 못지않은 조망을 가진 언덕을 오르고 고도를 낮춰  밀림으로 덮힌 계곡을 지나며 고도 2600m정도의 타다파니에서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날 하루는 유달리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코스였다. 푼힐 까지 200m를 올렸다가 금세 다시 내려오고 다시 한참을 오르막을 걷다가 어느새 깊은 계곡을 한없이 내려갔고 또 어느새 다시 끝날 것 같지 않은 언덕길을 올라야했다. 원래 산이란게 그렇커니 나는 무심했지만 일행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참을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무릎관절에 문제가 있는 친구와 역시 산행에 무리가 있는 친구의 부인은 한참을 시간이 흐른뒤에야 그날 너무 힘들었다는 고백을 했다. 하지만 산을 걸을 때는 누구도 아픈 다리와 지친 호흡에도 불구하고 그만 걷자고 말하지 못했고, 자신의 고통을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눈치없이 혼자 신나게 걷고 또 걸었다. 오직 일행의 최고 연장자 한분만이 푼힐 이후에 지친 표정이 역력해 가이드가 배낭을 대신 들어주고 따로 보조를 맞춰 걸어주기도 했다. 이날은 특별히 힘들여서 일까 드디어 한국을 떠난뒤 일주일만에 사단이 났다.

 

 

Tadapani의 Superview lodge에서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이후의 일정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지난 이틀동안 힘든 여정을 묵묵히 견뎌온 일행들은 내일이면두명이 룸비니를 목적지로 간드룩 쪽으로 떠나기로 예정돼있었기도 했고, 나머지 7명은 상하행이 갈라지는 총롬을 지나게 되어 전체 일정에 대해 결정을 할 필요가 있기도 했다. 떠나오기전 이번 여정의 원칙은 가장 가난한 사람에 맞춰 숙식수준을 정하고, 가능하면 대중교통으로 그보다는 도보로, 그리고 가장 약한 사람에 맞춰 걸음의 속도를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걷지만 이는 목적지가 아니고 우리 여정의 목적은 안나푸르나 언덕에 기대 살아가는 네팔리의 삶속으로 들어가 같이 산과 사람을 느끼는 것으로 잡았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일행들은 대충 생각을 같이한다는 믿음을 갖고 길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펼쳐놓고보니 상행이냐 하행이냐에는 양자 택일의 문제에 막닥뜨리게 되었고, 의견은 갈라졌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국 한분만 상행을 원했고 나머지는 지누단다를 거쳐 란드룩으로해서 담푸스까지 평탄한 내리막길을 쉬엄쉬엄 걷기를 원했다.  타협은 불가능했고, 다음 날이 밝으면 먼저 2명이 룸비니를 행해 떠나고, 또 한분은 촘롱을 걸쳐 상행길로 떠나고 나머지 6명은 지누단다를 거쳐 킴롱콜라를 건너 란드룩쪽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결정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을 붉힌 우리는 끝내 마음을 풀지못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래도 내일이면 떠날 분들은 떠나고 새로이 시작될 여정을 꿈꾸며 지난 시간을 정리했다. 

나는 어린왕자가 되어 지구별을 밟았다. 보드라운 흙과 풀의 촉감을 느끼고, 땅의 온기와 차가운 돌의 체온을 음미하며 걷고 또걸었다. 내가 만날 내일의 우주는 또 어떤 모습일까 내딛는 걸음마다 설레임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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