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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꿈많은 청년"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이다. 그래서 내리는 비인가 보다. 전날 시작한 비가 하루 온종일 내리고도 못다내린양 밤늦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농사일에 쫒겨 도착한지 일주일 넘어 손에 들지 못했던 책을 펼쳤다. 그는 [운명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깊은 슬픔을 감춘듯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싱긋이 웃어보이며 우리를 떠나갔다. 그가 떠난 자리는 너무도 컸다. 세상은 꺼꾸로 돌기 시작했다. 해는 서쪽에서 뜨고 동쪽으로 졌으며, 낮에 달이 뜨고, 밤에 해가 떴다.
민주주의는 독재자의 전용어가 되었고, 평화는 전쟁을, 환경은 무자비한 토건공사를 의미하게 되었다. 모든 진보적 가치는 좌익뺄갱이의 기만선전술에 불과한 것으로, 복지에 대한 요구는 거지근성으로 치부되었다. 진솔함과 정직함은 무능력의 다른 이름으로 뜻이 바뀌었고, 분권과 자치, 대화와 타협은 사전에서 사라졌다.  

[운명이다]는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간단한 가족사와 어린시절의 추억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자의식의 흔적들을 추적한다. 가난에 대한,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이 자라나는 청년 노무현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나고 자라고 살았던 시대,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시대의 흔적들을 만난다. 그는 어떻게 한 평범한 인간이 시대의 격랑속에서 한명의 시민운동가로 정치가로 그리고 마침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살았고 그리고 죽어갔는지 담담히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이야기를, 한명의 정치가가 아니라 한명의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불의에 맞섰고, 어떻게 '사람사는 세상'을 실현하고자 분투했는지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에 깊은 슬픔이 묻어난다. 그의 한계가 아니라 시대의 한계를, 그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의 실패를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쉬 끝나지 않고았 낙숫물소리와 함께  신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책을 덮었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나는 오늘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나 아니면 대한문 앞에서 비를 맞고 서 있어야했다. 지인으로 부터 문자가 온다. '혹시 봉하마을에 와 계신가 해서요?' 나는 오늘 집을 나서지 않았다. 하루종일 [운명이다]를 읽고 그의 삶을, 그리고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생각했다. 가슴이 미어진다. 그의 삶과 죽음이, 우리의 삶과 우리시대의 과제가 뒤엉킨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묻고 또 물었다. 



그는 부림사건을 통해 새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긴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었다. 도반이 없어도, 노자가 떨어져도 그는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길의 끝이 모멸과 오욕, 좌절과 실패의 구렁텅이일지라도 그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9년 5월 23일, 지구가 꺼꾸로 돌기 시작하던 날 [운명이다]는 멈춘다. 그의 삶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고, 술수가 정직을, 돈이 사랑을 이기는 세상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삶은 비장하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그는 이웃 형님의 한분같이 소탈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고 그래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그의 죽음은 그만의 죽음이 아니고, 그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었기에! 책을 덮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 이야기는 우리의 몫이다. 그가 던지고 간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꿈은 온전히 우리 손아귀에 남아있다. 그리고 삶들은 계속되고 그 꿈은 싹을 피우고 자라날 것이다. 노무현의 자서전은 우리의 자서전이 되고, 우리의 자서전은 완결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한다. 그것은 운명이기 때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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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든 보수든 고노무현 대통령을 철저히 무시하고 저주했고,
그가 죽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지금까지 그를 격하하고 능욕하는데
침을 튀기는 자들이 있다. 
사실 조중동이나 그 추종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여전히 진보세력 중 일부는 한미FTA와 이라크파병, 대연정제안 등의 사례를 들며
삼성과 노무현의 유착, 정치적 무이념, 나아가 진보를 가장한 보수의 간첩 운운 하며
그를 능욕하기에 망설임이 없다.
충분히 근거있는 입장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니깐
그르거니 하고 일단 이들은 도외시 하자.
이들에 대한 판단은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참 많은 사람들이 고 노무현대통령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에 기대어서나마 나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새로운 사회,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역사적 징조를 보고싶기 때문이다.
[사람사는 세상]은 보편적 인권이 존중되고,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복지제도가 완비된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정의가 통하는 그런 세상이다.
고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인간 개개인의 삶이 보호되고 존중되며,
보다 덜 경쟁적인 사회적 풍토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진실과 정의가, 그리고 옳은 사람이 존중받는
[사람사는 세상]을 예견케하는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섰던 정치적 포지션을 문제삼으며
진보의 적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바로 그 이유로 그를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재임기간동아 실행한 치적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람됨의 매력에 끌려 그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궁극적으로 정치인으로 살았던 한 인간에 대한 판단은
그의 정치적 실천과 사람됨을 통일적으로 바라다 보는게 옳다고 보지만
사실 유독 노무현대통령에 대해서만은 정서적 판단이 앞선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깊이에서 치미는 울컥함이 있다.
그것은 그가 비겁한 정치검찰의 공작의 희생양이되어서가 아니라
그의 재임기간 내내, 아니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고 당선되던 그 순간에 조차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통해, 
굴종의 삶을 강요했던 부정의한 역사에 대한 한국민중의 승리의 감격을 나누었고
그리고 끈질긴 지배세력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에 치를 떨고 맞서야했기 때문이다. 
권모술수와 음모가 항상 승리하는 세상,
돈과 권력이 정의를 짓누르고, 거짓과 위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 노무현의 반역의 삶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바라는
민중의 염원을 현실에 구현했기 때문이고
그 지난한 도정에 같이 서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독선과 비열한 음모, 부정의와 거짓이 판치는
MB정권의 치하에서 3번째 5월을 맞았다.  
5월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자기 삶의 모범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의 다하지 못한 정치적 역정을 계속하기로 다짐하고 실천하는 달이다.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진솔함,
특정 정책적 결정에 대해 철저히 반대하면서조차
그 진정성에 끌려 납득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 노무현이
뼈에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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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진보를 생각한다]의 필자 김창호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그의 정치 철학을 같이 하고자 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일원으로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사람이다. 필자는 참여정부의 성공과 좌절, 성과와 한계에 대해 두루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사회의 근본 프레임을 바꾸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한 교과서를 꼭 쓰고 싶다는 꿈을 종결짓지 못하고 떠난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잇길 희망했다. 그리고 , 이 책 [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를 저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내려놓기 직전까지 "진보의 시대를 대비한 미래 담론을 준비하여 선투자 후복지, 성장 중심의 50년간 이어 온 보수주의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다는 희망으로 진보의 미래’를 집필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후보시절 스스로 이야기했듯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한 사람으로 끝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미완에 그친 그의 작업은 [진보의 미래]로 출간되었지만,  필자 김창호는 그 작업의 연장선에 이 책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를 놓기를 원한다.
 
이 책에서 김창호는 보수의 사회에서 진보정치를 실현하고자 고군분투했지만 끝내 '정통 진보'로 부터도 버림받은 참여정부의 핵심인사의 한사람으로서 현실 정치의 파란만장한 경험을 토대로 다시 진보란 무엇인지, 어떻게 지속가능한 진보를 확보할 수 있을지 고뇌한다.
먼저 그는 변화하는 한국사회에서 진보정치는 어떻게 지속 가능한가를 묻는다.

'정통진보' 세력은 자본지배에 대한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극복 대안을 추구하는가가 '진보정치'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라고 보고, 참여정부가 자본에 대해, 삼성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했다고 비난한다. 이제 대해 필자는 보수의 시대에 현실적 진보세력이 할 수 있는 자본 지배에 대한 저항은 직접적 반자본 투쟁이 아니라 자본지배의 실체를 가리는 언론특권과 지역주의의 청산이 현실적 실천의 방안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확충하고, 진보 어젠다를 보편하고 그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그것이 필자가 제시하는 진보정치의 다는 아니다. 그는 정치체제의 민주화에서 사회경제체제, 다시 생활세계로 이어지는 민주화 과정을 통해 확보된 민주적 가치와 자원을 재구조화하여 풍부한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진보정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본다. 즉, 다양화한 균열쟁점들인 문화, 예술, 환경, 젠더 등  생활세계에서 진보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낯설지 않은 담론이다. 하지만 자신이 당선되거나 집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소주파지만 개혁적 보수, 혹은 중도좌파의 낙선과 실권에 영향을 주기에는 충분한  '정통진보'의 근본주의는 현실 정치 지형에서 결과적으로 극우 보수, 반공 보수세력의 집권에 기여하며 중도좌파와 동반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끝없는 '정통 진보'에 대한 애착과 함께 깊은 아쉬움을 가지고 다시 묻는다. 현실정치속에서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진보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이 물음에는  진보정치의 지속 가능성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진보정치의 연대가능성에 대한 필자의 피끓는 갈구를 담겨 있다.

필자의 지속가능한 진보정치에 대한 모색은  대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위기에 대한 진단, 그리고 한국의 제 사회세력 정치세력의 공공성의 상실에 대한 진단으로 나아간다. 그는 '연대의 틀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의제설정자로서 참여정부의 통한의 실패를 자인하기도 하지만, 시민세력의 미성숙, 대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위기, 권력화된 보수언론, 사회 제세력의 사익화, 그에따른 공공성의 위기라는 현실적인 사회적 토대에서 나름 진보정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고,  최소한 진보정치의 가능한 토대를 넓혀나가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진보정치 실현을 위한 참여정부의 노력이 좌절된 지점에는 한국 보수의 강고한 벽이 존재한다. 필자는 오늘날 한국의 보수가 합리성과 정당성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까지 강력한 힘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의 저변을 장악한 강고한 조직기반이라는 월등한 물질적 힘을 보수가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허물기 위한 처방은 의외로 단순하다. 지역정치의 부활, 다양한 층위의 깨어있는 시민의 공동체, 그리고 문화적 층위에서의 근본적인 변화다. 물론 그들 저변의 변화가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표로하는 진보정치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할 것인가는 중요함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애끓는 토로는 참여정부에 대한 '신자유주의'라는 주홍글씨로 이어진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우리사회에서 이미 악마의 주술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신자유주의'는 사회과학적 개념이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의성과 추상성이 강화되어 문화적, 이데올리기적 함의를 갖는 도덕적 용어로 변질했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신자유주의 정부'라는 좌파의 비판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지난 정치상황을 되돌아 보면 신자유주의라는 한 마디로 친자본 보수 우익과, 중도좌파 참여정부의 구별을 무의미한 것으로 돌려 궁극적으로 보수 우익의 지배를 돕는 우를 범한 점은 부인하긴 어렵다. 필자는 민주, 참여정부 10년의 '신자유주의'는 선택된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자본지배를 근본적으로 대체한 대안이나 가능성이 없는 역사국면에서 시장의 진보성을 인정하고, 복지정책을 그사회적 처방으로 제시한다.    

사실 [다시진보를 생각한다]의 독자로서 이책이 던지는 문제제기에 세세한 부분까지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큰 문제의식에서 공감하고 공유해야햐할 지점이 많다고 본다. 특히 진보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연대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현실정치속에서 구현 가능한 진보적 의제를 생산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집필이, 그리고 진보개혁세력내 꼬리표붙이기나 사적 증오에 기반한 비난에서 벗어나 생산적 토론과 지적 작업으로 이어지길 빈다. 

학자에서 기자로, 기자에서 참여정부의 국정홍보처장을 거쳐 다시 정치가로 변신을 도모하고 있는 김창호의 성공적인 정치역정이 자신이 제시한 한국 진보정치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역정일 수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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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논쟁은 쉽고 재미있다. 정치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봐도 그렇고, 하나의 정치적 기사에 대한 댓글 논쟁만 봐도 그렇다.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답을 제시한다. 나름의 '확신'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그리고 그 '확신'에 기대어 쉽게 정책적 대안까지 제출한다. 어쩌면 인간이 바로 정치적 동물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고아니면 정치적 관심도가 유달리 높은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대중적 정치 과잉이 이론가들, 학자들에게서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한번씩은 지식인의 자기 확신이 가지기만을 넘어 자기주장의 절대화로 나아가는 모습을 목도한다. 관념의 덫에 빠졌다고나 할까? 그 예들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고, 이 책도 그와 같은 예를 보여주는 여러 글들을 담고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지만 그 만치 또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책이 담고 있는 몇몇 주장들은 자기 모순에 빠져있다. 그런 판단을 하는 나의 시각도 마찬가지로 관념의 덫에 빠져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말이다.

 

이책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은 인터뷰어 지승호가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인사들과 나눈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인터뷰의 내용은 책이 출간된 시기의 노무현정권에 대한 비판을 주로하면서 대한민국의 식민지성, 자본지배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 끝끝내 베알이 꼴리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말이 있다. 공감이 가는 군사적 전술이다. 시골에 살면서 알게 되었지만, 농지가 붙어있거나 집의 경계가 겹쳐있어 공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과 감정적으로 가장 먼이웃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정치적 투쟁의 장에서 사상적 스펙트럼을 놓고 본다면 "원교근공"이 아니라  "근교원공"이 보다 정직한 역사적 선택이고, 현실적으로 주장하는바 정치 이념에 충실한 선택이 아닐까? 왜냐면 정치투쟁은 단순한 정치적 패권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가치전쟁이고, 영토쟁탈전이 아니라 보다 인간적인 복지 공동체를 향한 이념투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세력의 지형을 본다면 제도권밖의 극좌 조직부터 제도권안의 극좌파를 대표하는 사회당, 그리고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해보면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이 있을 것이고 더 오른쪽에는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민주당이 있다. 여기까지가 좌파를 비롯한 합리적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본다면 그 반대쪽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에 결쳐있는 잡탕보수우익을 아우르는 단일 정당인 한나라당이 있다. 물론 보수정당인 친박연대나 자유선진당이 있긴하지만 이들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달리하는 정치 세력이 아니라 단지 보스를 달리하는 세력으로 '한나라당류'로 뭉쳐봐도 좋을 것이다. 필자와 인터뷰를  한 진보적 지식인은 아마도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 정도의 정치적 입장을 가진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참여당과 민주당으로 분화되기전의 '열린우리당'이 여당인 시절 왜 좌파는 '중도개혁세력'을 자임하는 열린우리당을 정치적 연대세력에서 배제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현실인식과 자기 비판없이 '노무현정권'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늘어 놓고 있다.


그래서 이책은 혼란스럽다. 극히 정치적인 비판의 끝에 무당파적인 입장을 표방하기도 하는 모습에서 지식인의 이중성이 보인다. 자신의 정파적 입장의 선명성을 주장하면서 여타 정치세력의 입장차를 두루뭉실 뭉개어 버리는 태도에서 연대의 결핍에 시달리는 진보세력의 고질병이 보이기도 한다. 내용적으로 세세하게 비판하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사실 리뷰는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 정치적 입장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이 ''에 대한 나의 이해를 표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나의 미천한 책읽기가 나의 뇌리에 남긴 긴 여운의 문제의식을 나열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치고 싶다.

 

먼저 노정권에 대한 비판이 소위 중도 개혁세력에 대한 수구세력의 공격에 동조하여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역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두번째진보의 지평을 넓혀내는 비판이 아니라, 중도개혁세력을 무력화하면서 그 영향으로 진보의 몫마저 잃어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 아닌가?

 세번째. 진보 의제는 대통령의 몫이 아니라 진보적 아젠다를 국민적 의제로 키워내야 하는 진보세력의 몫이다. 그것을 제출하고 국민적 인정을 끌어냄으로서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체택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하는것 아닌가?

네번째, 기본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복지예산을 가지고 '분배'중심의 좌파정권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북한과의 최소 수준의 평화공존 정책조차도 북한에 휘둘리는 일방적 퍼주기 정책으로 매도하는 수구냉전세력과의 역관계에서 소위 진보세력이 힘을 보태준 것이 있기나 하나? 오히려 어긋장을 놓아 중도개혁세력인 노정권을 무력화하는데 앞장섬으로써 진보세력이 수구냉전세력의 지배권을 넗히는데 기여한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것 아닌가

다섯번째, 진보세력이 하는 많은 주장들중 많은 부분이 도덕적 선언에 불과하고, 실천력을 담보하기 힘든 것은 왜일까? 지적 유희, 자기논리의 탐닉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사회주의 이상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구체적 현실에서 수행해야 할 당면한 과제를 설정하고, 실행하기위한 전술,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명쾌한 답을 듣고 싶다

여섯째, 진보적 지식인들은 '노정권의 무지'(홍세화), '철학의 빈곤'  ',, '(박노자) 들의 개념으로 노무현정권을 비판하는데 이는 노무현대통령을 '무식하다'고 비판하는 조선일보의 논조를 그대로 답습하는 학력 우월의식을 가진 자의 모습이 엿보인다.

 

노무현대통령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노무현을 죽인 세력은 현 MB정권과 검찰마피아만이 아니다. 어쩌면 더 큰 상처는 바로 '약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정치가 그립다'면서 노무현대통령의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던 이들 몇몇 진보인사들이다.  그의 사후 많은 지식인과 정치인이 때늦은 사랑고백을 늘어놓았지만, 사자의 길은 간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이 책이 참여정부 후반기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갖는 한계가 있다면 이해해 주고 싶다. 노무현대통령을 욕만해도 되는 상황에서 이런 류의 책은 분명 시장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무책임한 변설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변화된 지금의 상황에서 다시한번 이전의 자기주장을 되돌아 보는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회주의자"가 성립할 수 있는 진보세력의 유연성을 보고 싶다. 바로 그때가 진보세력의 수권능력이 갖춰진 때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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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또 한해를 시작했다.

도대체 2010 한 해는 또 어떤 해일까?

지난한해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자본권력의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용산참사로 시작한 2009년에는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긋는 큰 별-김대중 대통령이 영면하고, 등락을 거듭하긴 했지만 처음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오직 그 힘으로 대통령에 오른 '국민의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대통령께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다. 그리고 인기 연예인이의 자살 같은 대중적 관심을 일으킨 일들도 많았지만,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난 음지에서 고통 속에 죽어가거나 죽음보다 못한 삶은 이어가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실업률은 높아만 가고, 취업자의 근무조건이나 임금수준은 갈수록 열악해졌다. 언론은 연일 2008년에 시작한 세계경제위기를 MB정권의 노력덕분에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며 떠들어대고 있지만 일반 국민의 삶의 질은 끝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먹고 사는 데 연연해야 되는 대부분 국민들에게 전통 박통시대를 방불케 하는 정치사찰과 반대자에 대한 탄압, 국정원 같은 공공기관의 정치공작과 언론탄압, 노조를 위시한 자본의 잠재적 걸림돌에 대한 대대적인 공작과 탄압은 먼 나라의 일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골목 가계를 중심으로 중소상인이 몰락해 가고, 비정규직이 보편화되어 알바인생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이전 정부에서 기초를 닦았던 복지서비스는 대폭적으로 축소되거나 정치적 생색내기용으로 전략했다.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 닿고 하루가 다르게 열악해져 가는 삶의 조건은 대부분 국민들이 외면하거나 피해갈 수 없었다. 구체적인 개인의 삶의 안정성이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되었는가는 바로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 대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조중동이 '한국은 모범적인 위기 극복 사례'다면 떠벌리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그것이 바로 GDP 등으로 대표되는 경제지표다. 한국경제는 분명히 지표상으로는 최악의 위기상황을 돌파했다. MB가 호언하는 보랏빛 미래는 불가능할지 모르나 많은 불안요소를 내포하고 있을지언정 우선의 경제지표는 나름대로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10 성장률 속에 감춰진 한국사회의 진실]은 출발한다. 일반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은 날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최소한의 안정성마저 소멸해 가는데 어째서 경제지표는 항상 보랏빛인가? GDP는 회복세라는데 국민 개개인의 소득은 줄어들고, 실업도 갈수록 늘어나는 이 역설의 근저를 헤집고, 경제 지표가 아니라 국민의 구체적 삶의 조건이 기본이 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출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이다.

이 책을 저술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진보적 발전방향에 대해 연구하고 그 성과를 토대로 꾸준히 진보적 아젠다를 우리 사회에 제출하여 공론화해 오고 있다. [한국사회의 진실]은 바로 그와 같은 작업의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먼저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한다. 신자유주의의 최고 원리는 자본의 유연성이다. 이윤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곳도, 어떤 방식으로든 쓸고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신자유주의 원리는 전 세계적으로 고용의 안정성, 삶의 안정성을 무력화시켜 왔다. 그렇게 초래된 것이 지난 경제위기이고, 이에 대한 자본 측 처방이 일정한 금융자유 규제 등 ‘금융안정성’을 구축하는 일이다. 하지만 자본의 유연성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이를 고용의 안정성, 삶의 안정성으로 대체하지 않고는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를 위시한 기득권은 현 위기를 신자유주의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로 보지 않고, 작금의 위기를 모면하고 나면 바로 위기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양 착각하고 있다. 시장을 만능으로 보았던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시장의 균열이 이번 위기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MB정권의 경제 정책은 규제완화, 노동유연성 강화 등 세계적 조류와 역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MB정권이 근본적인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폐기와 새로운 경제질서의 수립으로 나갈 것이라고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기본적인 자본 규제조차 시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더 큰 새로운 위기를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물론 이 모든 것이 MB정권의 탓이라기보다는 사실 한국인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는 박통의 유산인 성장제일주의, 경제중심주의이다. 그와 같은 국민의 사고, 가치지향이 747이라는 황당한 공약을 내건 도덕적 파산자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국가의 총량적 경제성장이 곧 자신의 개인적 삶을 직접적으로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분배원리와 사회정의를 외면한 덕분에 그와 같은 정권이 탄생하고, 반 서민적 정책이 버젓이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개인적 삶의 안정성이 확립되지 않은 속에서, 아니 그 안정성을 파괴한 대가로 가져온 성장은 결국 현격한 빈부격차를 초래하고, 빈부격차가 야기하는 사회균열은 결국 경제조차 발목을 잡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외면해온 때문이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교육에서부터 가계부채 문제까지, 남북 문제에서 올 6월로 다가온 지방 선거까지 국민이 현실감 있게 느끼는 문제의식을 총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심한 사회 양극화 문제, 고용 없는 성장, 서민 삶의 불안정성, 무한경쟁의 늪에 빠진 교육, 꼬이고 있는 남북관계, 토목위주의 사회간접투자의 비효율성 등등.

하지만 결국은 고용을 통한 성장전략이 이 책이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대안적 정책이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성장을 통한 고용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세우고 성장을 위해서 우선의 고용까지도 희생하면 언젠가는 고용이 회복될 것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고용없는 성장을 초래한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근간이었다면 이 책은 먼저 고용을 통해 소비를 진작시키고, 그와 같은 고용과 소비가 경제 성장을 가져오는 선순환을 제시한다. 그를 통해 서민적 삶의 안정성을 구축하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의 진보를 향한 출발임을 역설하고있다.

 

많은 공감과 깨달음은 준 이 책을 읽으며 ‘2010지방선거에 임하는 한국 진보세력의 연대 전략에 대해선 일말의 아쉬움을 느꼈다. 필자는 최소강령 최대연합인 민주대연합론과 최대강령 최소연합인 진보대연합론을 대비하면서 양대진보세력간의 연대를 통해 중도개혁세력(민주, 국민참여당 등)과의 연대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 진보세력이 독자적 세력으로 선거에 임하지 못하고 중도개혁세력과 연대할 경우 진보적 이슈가 희석되고 진보세력이 형해화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시절의 한국 정치 역정을 보거나 최소한 참여정부시절 보아왔듯, '보수의 나라'에서 중도 개혁 세력의 몰락은 곧 진보세력의 동반 몰락을 자초했다는 사실, 반대로 중도개혁 세력의 득세는 곧 한국정치에서 진보 지평의 확대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바로 현단계 MB정권의 성격과 개혁진보세력의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하는 통찰 위에서 보다 대승적 연대의 틀을 견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튼 현시점의 우리 사회를 되짚고 미래를 전망해보게 한 [한국사회의 진실]은 깨달음의 기쁨을 주는 보기 드문 한국사회에 대한 처방이다. 많은 분들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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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라는 부제를 단 [진보의 미래]는 미완의 저술이다. 하지만  '미완'이란 수식어는 나태의 결과나 능력의 부재, 혹은 자연적 한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는 [진보의 미래]에 담고자 했던 바로 그 진보의 진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 의해 강제된 수식어다세상에 어디 완결된 삶이 있고, 완결된 역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많은 독자는 이 책이 미완으로 끝난 것만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완을 강제한 무자비한 권력의 독기가 여전히 서슬퍼른 세상에서처음 가슴으로 받아들였던 진정한 대통령,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도자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다.  

필자 노무현의 손에서 미완으로 남은 책을 전해 받는 순간 나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숨을 가빠졌으며 코 끝에는 희미한 피 냄새와 짙은 국화꽃 향기가 느껴졌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어디 진보의 진전이 저절로 주어진 적이 있었던가. 진보는 투쟁의 산물이며, 소수지배에 대한 다수 인민의 승리의 전리품이었다. 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 '진보의 미래'를 말하고 도모할 수 있겠는가? 지난 봄, 필자 노무현은 우리 곁은 떠나갔고 우리 손에는 그가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진보의 미래'가 고스란히 과제로 남아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필자의 고뇌의 궤적을 따라가는 여정은 필자가 제시하는 역사적 과제의 엄중함과 그 실천의 지난함을 마주하는 엄숙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불가능한 꿈을 가슴에 품은 이상주의자로, 그리고 그 꿈을 현실 정치판에 뛰어들어 실현하려 했던 철저한 리얼리스트로 살았다. 이 책은 그 이상주의자의 현실 속 투쟁의 발자취이자 고뇌의 옹근 결과물이다행간에서 읽는 피와 눈물의 흔적은 그와 같은 투쟁의 여정이 고스란히 책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필자 노무현이 이상주의자인 이유는 이 책을 집어 들고 몇 장 넘기지 않아 금방 드러난다. 성장주의, 개발만능주의, 물질주의가 뼛속까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그는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이고 또한 '역사의 진운이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히 세상을 '더불어 사는 복지 공동체'로 바꾸려는 '불가능한 꿈'을 가슴에 품었다. 그 이상이 필자의 삶을 정치적 실천으로 이끌었고, 정치가의 한 명으로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까지 오르는 정치적 역정을 걷게 했다. 그 역정은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 그의 입신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같이 했고, 그의 좌절은 한국 민주주의의 좌절에 다름 아니었다그것은 그가 정치적 실천의 역정에서 '불가능한 꿈'을 구체적 현실 속에 구현하기 위해 철저한 '리얼리스트'로 고뇌하고 분투한 결과이다그의 두뇌는 명석했고, 그의 가슴은 뜨거웠기에 그의 정치적 선택은 치밀하지만 차갑지 않고, 철저히 현실적이었지만 살가운 온기가 느껴졌다.


이 책은 그의 정치적 역정의 전과정의 발자취를 담고 있지만 특히 정치적 실천의 절정에 섰던 지난 5년간의 대통령직 수행의 과정에서 절감했을 우리 사회의 역사적 한계와 그 한계를 돌파하고자 했던 개혁 정치가의 좌절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의 뒷받침 없이 보수시대에 진보정치를 펼쳤던 외로운 검투사의 좌절감이 행간에 묻어있음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재임 5년의 과제를 연구와 저술을 통해 마저 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마저 꺾인 자리에 남겨진 이 책이 담고 있는 고뇌의 깊이와 넓이는 우리 사회의 실종된 거대담론의 부활을 촉구한다. 필자가 정치의 장에서 수행하고자 했던 역할의 한계는 바로 국민의 사고를 지배하는 근본 프레임의 한계라는 엄연한 진실에 직면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근본 프레임에 대한 회의 없이, 국가 권력이 아직도 국민에 대한 지배수단의 성격을 가지고 국민의 행복한 삶을 증진하는데 기여하는 시민의 자발적 의사 결집체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 없이 천박한 정치공학과 미시 정책적 차원의 담론에 매몰된 정치 현실을 질타한다.  

필자는 사람이 성장과 개발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되는 경제만능주의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국민의 생각을 바꿔야 하지만, 국민의 생각을 실제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거대 미디어이고, 그와 같은 미디어를 지배하는 것은 돈인 세상에서 그 지배권력의 무한 반복하는 연결 고리를 끊을 힘은 어디에서 올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인터넷이란 신병기가 있지만 완벽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책이라는 지적 무기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필자의 선택은 어쩌면 무기력한 자의 불가피한 결정으로 오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한 것은 단기적 정치동학이 아니라 기나긴 역사적 안목에서 인간의 이성적, 문화적 발전의 토대 위에 인간의 사회적 존재조건을 변화시켜나가는 인간 지성의 힘이다그와 같은 인간지성의 힘을 통해 보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조건을 개선시켜나가고자 했던 그의 고민의 지점은 명확했다.

90%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이사회를 지배하고 사회적 산출물을 독점하는 10%밖에 되지 않는 지배계급의 이익에 표를 던지는가?

왜 진보세력은 중도 개혁세력의 성공을 통해 진보의 지평을 넓혀나가지 않고 극우 보수세력과 함께 중도개혁세력을 협공함으로써 중도개혁세력과 동반 몰락의 길을 선택하는가?

왜 사람들은 성장을 통해 복지가 달성된다는 트리클 다운 이론을 맹신하는가? 왜 사람들은 삼성이라는 재벌의 이익이 자신의 주머니 사정과 직접적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사람들은 자신이 복지정책의 수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복지의 증대가 우리 사회의 경제적 발전을 가로막고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을 받아들이는가?


학벌주의, 지역주의 , 그리고 재벌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권력, 교육마피아와 검찰마피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 근본적 변혁을 가능케 하는 힘으로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는 극우보수세력의 집단 광기가 자신의 목을 죄어 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위의 과제를 천착했다. 그리고 정치적 성공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바꾸고자 했던 그는 그 미완의 과제를 남기고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책을 덮으며, 필자 노무현을 질시하고 저주하고 끝내 살해한 자들에 대한 피끓는 분노로 몸서리치고 ,다시 올 수 없는 길을 떠나며 무거운 역사적 짐을 살아남은 자에게 남기고 간 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가슴 저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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