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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의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1. 지난 가을 손에 들어왔지만 흙 묻은 손으로 두어번 뒤적이다 밀쳐두었던 시를 쓰지 않아도 좋은 날을 그리는 시인 안상학의 6번째(?)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을 읽는다. 농부에게 주어진 자연의 선물, 안식의 시간 겨울이 다 지나가고 남아 있는 날들이 얼마 없는, 봄이 오는 낌새가 은밀히 번지는 입춘 언저리에 절박한 마음으로 시인의 말귀에 귀를 기울이고 시인의 글귀에 눈을 연다.

 

2. 시집 남아있는 날들바닥에 내 몰린 혹은 생과 사의 갈림길 생명선을 딛고 선 시인의 목소리다. 전적으로 개인적 느낌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페이지를 넘기다 지나온 삶을 회상하는 유서의 냄새를 맡기도 하고 다시 슬픔을 사랑으로 이기려 사력을 다하는 의지를 느끼기도 했다. 시집의 제목은 위중한 병중에 주어진 오늘 하루의 절박함으로 어제를 뒤돌아 보고 다시 남아있는 남들을 세며 내일을 점치는 처연함을 담아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이 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3. 안상학 시인은 늘 사랑보다 슬픔이 많은 곳, 그래서 넘치는 슬픔을 시로 달랠 수 밖에 없는 곳, 천상 시인이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세상에 거처한다. 그래서 그의 싯귀를 따라가는 길은 어쩌면 구도의 길이고, 조금은 고행의 길이고, 그래서 정화의 길인지 모른다. 그의 손길에 이끌려 그가 사는 세계를 한바퀴 주유하고 나서면 코맹맹이가 되도록 싣컷 울고 난 다음 큰 슬픔 조차 눈물에 다 씻겨 가고 다시 맑은 눈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는 순간을 맞듯,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다뜻해진다. 그래서 [남아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은 내게 슬픔을 통한 정화의식으로 나가왔다.

 

4. 나에게 지금까지 안상학의 시는 냉정할 정도로 절제된 목소리로 세상을 담담하게 노래한 것으로 느겨졌다. 어떤 때는 무미건조할 정도로... 이번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은 지금까지의 시와는 달리 조금은 더 절박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술한잔에 들뜬 가벼운 목소리는 아니다. 죽음에 직면하고 극복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한 절실함을, 온기에 대한 절절함을 담고 있다.

 

5. 이제 제주에 가면 涯月을 지나며 어느 돌담밑 제주수선이 꽃을 피우는지 다시 한번 살피게 되었고, 화산도 중산간을 걸으며 죽다 남은 사람들을 기리고, 윗세오름을 넘어 날아가는 새가 입산했다 돌아오지 못한 산사람들임을 느끼게 되었다. 임하를 지날 때면 물아래 마령리 이식골 문상길 중위의 고향마을을 기억하고 그가 꿈꾸었던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그 꿈이 살아있음을 몰래 들려주고 올 것 같다. 시인 안상학의 눈길은 참 넓고도 깊다.

 

6. 시집을 덮으며 나는 시인 안상학이 더 가난하고 더 외롭게 살아 더 높은시를 남겨도 좋겠지만, 사과꽃 피는 봄밤 친구들과 왁작직껄 술판을 벌이고 외로움도 가난도 잊고 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래도 저래도 다 좋으니 시인이 다시는 몸도 마음도 잃어 버린 사람처럼 세상을 떠돌지 않기만을 빌었다.

 

7. 참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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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명호면의 '비나리마을'은 권정생선생님의 작품

[비나리달이네 집]의 배경이 되었던 동네입니다.

권정생선생님과 이야기의 주인공이되었던 달이 그리고

정호경 신부님 마저 다 돌아가시고

이제 비나리마을에는 달이가 살았던 통나무집과

권정생 선생님이 전하고자 했던

애틋한 생명사랑의 정신만 주민의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비나리마을 학교에서는 권정생선생님의 마음을

세상의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

"비나리 달이네 집에서 시작하는 [권정생 동화캠프]"를 열게 되었습니다.

* 주관 : 비나리마을학교

* 후원 :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 일시 : 2013년 1월 26일(1박2일) / 오후2시까지 비나리마을학교 참가자 개별 도착

* 참가대상 : 초등생을 포함한 가족 누구나

* 정원 : 50명

* 참가비 : 1인 8만원 / 2인가족 15만원 / 3인가족 21만원 / 4인가족(26만원)

         (농협 355-0018-5420-33 예금주 : 청량산비나리마을)

* 참가 신청 : 비나리마을학교 010-6345-6234/ 010-7755-8618 / 054-673-1927

* 프로그램:

01/26()

14:00~14:50

일정 시작-도착 후 숙소배정 명찰, 팀 구성

15:00~15;50

오리렌테이션, 권정생 작가, ‘비나리달이네집에 대한 소개

16:00~18:00

비나리달이네집통나무 집 방문, 주인공 신부님 이야기 듣기

18:00~19:00

저녁식사

19:00~19:30

그림자 연극 공연

 19:30~20:00

 참가자 시나리오 작성(비나리달이네집주제를 바탕으로 )

 20:00~20:50  시연(역할극)

21:00~22:00

동화구연 한마당(놀고 즐기는 시간)

01/27()

07:30

기상

08:00~08:50

아침식사

09:00~10:00

독서 골든벨

10:00~11:00

전래놀이(비석치기, 마당 윷)

11:00~12:00

편지쓰기- 달이에게, 신부님에게

12:00~13:00

중식 프로그램 종료

 

글 : 권정생
그림 : 김동성

다리를 잃은 강아지 달이와 비나리 마을로 귀농한 신부님 이야기입니다.

자연 속에서 살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귀농한 신부님. 신부님이 농사 일로 바빠서 혼자 놀던 달이는 마을 사람들이 산동물을 잡으려고 놓아둔 덫에 다리를 잃게 됩니다.

농촌 생활을 하면서 달이와 신부님이 나누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입니다.

비나리 달이네 집에 나오는 달이와 신부님은 비나리 마을에 살고 있는 실제 인물을 토대로 쓰여진 동화입니다.

달이는 그후 몇 년 뒤 나이가 들어 신부님 곁을 떠났고 달이를 대신해 반달이라는 강아지가 신부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달이도 사람들이 산동물을 잡기 위해 놓아둔 덫에 다리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강아지 못지 않게 세 발로 온 동네를 뛰어 다니는 못 말리는 개구쟁이 강아지로 마을에서 유명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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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아내 류준화가 "인생이여 고마워요"展에 참여하고,
이 전시와 관련해 남편인 나와 지인인 안상학 시인이 작가 관련 글을 쓴 관계로
3명이 대전까지 전시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동행하게 되었다.

봉화를 출발하는 날 아침은 새벽부터 분주를 떨어야 했다.
산골에 살다보면  한번 도시로 나가는 일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게 된다. 
집을 비우기 위한 준비도 만만치 않지만
그동안 밀쳐 두었던 온갖 잡사를 다 처치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택배 보낼 농산물 두 박스부터 포장을 하고, 
가는 길에 안동 장모님한테 들러 드릴 김치와 감자를 챙기고,

3일동안 굶어 죽지 않도록 초롱이 사료도 듬뿍 주고,
화목 보일러도 둘러보고, 그리고 혹시 어디 문이 열려 있지나 않은지, 
동파위험은 없는지 살펴야하는 곳도 여러 곳이다.
또 하필 이날 농협 농자금 배당을 위한 마을 회의란다.
앞집 형님에게 달려가 여유가 된다면 최대한 많이
배정을 좀 해줍시사 부탁을 드리고,
대전 전시 오픈에 참가한뒤
다음 날 명절 때 가지 못한 고향 진해에 들를 계획이다보니

따로 챙겨야하는 짐들도 챙겼다.

다행히 서둔 탓에 출발은 늦지않게 할 수 있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농협에서 전화가 왔는데 오늘이 조합원 대학생 자녀에게 주는
장학금 100만원의 신청 마감일이란다.

마을에 다른 신청자가 있어 올해 타는 걸 포기했는데 
지역에 학생이 줄어 여분이 생겼다고 급히 신청하란다. 
고맙게도 소소한 일까지 챙겨주신 지소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여유도 없이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면사무소를 들러 아이 학자금 관련해서 서류를 떼고
다시 그것을 들고 농협에 가서 처리를 하는데 이게 순탄하질 않다. 
필요한 서류가 늘어나고 결국 서울있는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등록금 고지서를 보내라고 농협 팩스번호를 알려주는 것으로 일단 농협 일은 마무리했다.
그리고 우체국에 들러 택배를 발송하고
영주로 내달렸다.

영주에서는 아내의 은행 일이 기다리고 있다.
불필요해진 통장과 카드를 해지하고 
카드로 자동결제되던 보험 등의 결제 계좌를 옮기는 일인데
급하진 않지만 집 나온 김에 처리해 버릴 요랑이었다.

은행일이 끝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안상학 시인을 만나기 위해
안동으로 내달리면서야 카드 해지를 깜빡했다는 사실이 생각났지만
어쩔 수 없다.

안동에서는 안시인과 대전으로 떠나기 전에
장모님한테 들러 감자와 김치를 전해드리기로 했는데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안시인이 미리 주문까지 해둔 식당에 들러
안동국시를 한그릇씩 하고 나니
감자며 김치는 안시인 몫으로 내려놓고 
바로 대전으로 향해야만할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대전으로 달리는 내내 안시인과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길 나누다보니
예정보다 자꾸 시간이 늦어져 조금은 초조했지만
그래도 운전이 전혀 지루하질 않다.
아내 덕에 안시인을 알고 지낸지 10년이 넘었는데

처음으로 한 차를 같이 타고 객지로 여행을 하게 된 셈이다.

몇번을 길을 잘못들어 지체한 뒤에 급히 도착한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타는
보기 드문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참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전에 대전 농산물검사소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시립미술관 창작센타 이름으로 미술관의 별관처럼 사용하는 건물이란다.

대전시립미술관 송미경 큐레이터가 기획한
[인생이여 고마워요]전은 
작품과 작가의 삶을 동시에 대중에게 내보이는
보통의 전시와는 다른 특별한 전시였다. 
주로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살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모색하는 작가들인 
류준화, 이진경, 박석신 등 5명의 작가가 작품을 걸고,
또 각각의 작가마다 2명의 지인들이 작가에 대한 글을 쓰고 
그것을 '잡지' 형태의 책으로 묶었단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집어든 도록이 참 재미있다.

기획의 특수성 때문인지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한 작가마다 동행한 지인들만해도 적지가 않았고 
그럭저럭 관객도 많아 보였다.
특히나 성광명 작가와 동행한 지리산학교 중심의 인사들이 엄청났다.
전시장을 제대로 둘러 보기도 전에  
얼떨결에 대전 MBC에서 나온 리포터와 인터뷰를 하고는
송미경 선생님,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그리고 다른 작가의 동행인인 박남준 시인 등과도 인사도 나누다 보니 
전시 오픈 행사를 알렸다.

송미경선생님의 사회로 대전시의회의장의 인사,
그리고 대전시립미술관 관장님이 외유중이어서
김준기 선생님의 환영사로 이어지다가
5명의 작가, 그리고 안상학을 비롯한 시인들의 인사로
식이 끝나고 간단하지 않은 오픈 음식을 먹고는 바로
저녁식사 자리로 옮겼다.

저녁을 먹고 나서 하루밤 신세를 지기로 한
참여작가 정순자님의 소여공방으로 향했다.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방을
막무가내 휘저으며 서른명이 넘는 전시관계자분과 그 지인들이 엉켜
밤이 늦도록 술과 노래, 환담을 나누며 
하루 낮을 정리하고 하루 밤을 향유했다.
좋은 분들 많이 만나 즐겁고,
농사꾼인 나의 일상과 사뭇 다른 세상속에서 보내게 되어
무척이나 환상적이었던 하루였다.  

전시 타이틀인 [인생이여 고마워요]는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가 노래로 불러 더 유명해진
시인이자 가수였던 비올레타 파라가 쓰고 부른 노래란다.
비올레타 파라는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자살하는 그 순간조차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고마워했는지 궁금하다.
삶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 순간 그녀 자신의 주어진 삶을 스스로
마무리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생이여 고마워요]전은 역설적 의미가 아니라 직설적으로
인생의 고마움을 체득하고 작업에 그 고마움을 녹여내는 작가를 모아
그들의 고마운 삶과 그 삶을 담은 작품을 동시에 전시하는 
특별한 기획전이다.
  
이 전시를 기획한 대전시립미술관 송미경 학예사님, 김준기 학예연구실장님, 
작가의 작업장 까지 전국을 누비며 사진을 찍어주신 김완모 사진작가님,
그리고 아내에게 글을 주고 전시 타이틀을 적어준
안상학시인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개 요

전시기간 : 2012. 2.24~5.20(87 일)

전시장소 : 창작센터 전시실

전시내용 : 5작가 30(회화, 공예, 설치, 영상, 사진, )

참여예상작가 : 류준화(서양화, 경북봉화), 박석신(한국화, 대전),

성광명(공예, 경남하동), 이진경(서양화, 경기 파주)

정순자(공예, 충남 공주)

추진계획

진정성을 품고 있는 작가들의 삶이 담겨 있는 전시 개최

- 휴먼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 본성의 한 단면인 위로와 위안을 제공코자 함.

작가의 삶에 주목,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형 전시로 연출

- 작품을 통한 작가적 접근 방식에서 작가의 삶을 통한 작품에의 접근방법으로, 예술에 대한 새로운 소통구조를 제시코자 함.

일반인에게 친밀성과 동질성이 만나는 지점을 제공

- 다소 난해한 현대미술의 관람에서 벗어나 누구나 자신의 삶의 한 부분과 맞다는 지점이 제공되는 리얼리티 전시를 개최코자 함.

특이사항

전시구성

- 삶의 이야기와 모습들, 작품들을 함께 전시한다.

- 이번 전시에 수록 된 작가글들을 전시장에 배치한다.

이번 전시는 평론가의 글이 아니라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지인들의 작가관련 글을 싣는다.

- 성광명작가 (신희지(잡지 <차와 문화> 기자), 이원규(시인, 지리산 거주), 박남준(시인, 지리산 거주)

- 류준화작가 (송성일(농부, 남편, 봉화거주), 안상학(시인, 안동거주)

- 정순자작가 (김정홍(소설가, 서울거주), 이기웅(한의사, 논산거주)

- 박석신작가 (최서연(방송작가, 서울거주), 송인걸(기자, 대전거주)

전시기간 중 이벤트 행사

- 성광명과 지리산 사람들

공지영의 책 <지리산의 행복학교>에 나오는 버들치 시인, 낙장불입시인, RPM 여사등이 함께하여 지리산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며, 자체 결성된 동네밴드의 공연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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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남편은 누구인가


나는 화가 류준화의 남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화가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부러워한다. 멋진 화가가 아내이니 얼마나 좋겠냐며. 그런데 아내의 전시장에 가서 만나는 화가라는 직업을 알고, 그림을 아는 친구들은 애처로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며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고생 많다.”

화가인 아내는 늘 자신과 자신이 그리는 그림의 정체성을 묻는다. 화가의 남편인 나도 마찬가지다.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동정의 대상인 나의 정확한 아이덴디티는 무엇일까 늘 묻고 또 묻는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화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정체성이 화가의 남편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 당한다. 아니 화가 남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는 스스로 찾아내고 성취해 나가는 요소보다는 외적으로 부과된 자격 조건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좋게 말해 화가의 남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일정한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화가의 남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화가를 꾀어 아내로 삼는가 하는 천박한 문제가 아니라, 화가의 남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을 갖추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요건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화가의 남편은 힘이 세야 한다. 캔버스 틀을 짜고 천을 씌우는 작업에서부터 그림을 포장하고, 들고 나르는 일은 육체적 힘(체력)을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더 중요하게는 아내의 작업 전 과정 -창작과 홍보 마케팅까지-을 서포터 할 수 있는 경제적 힘(재력)과 컬렉터를 조직하고 인맥을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힘(권력)을 필요로 한다. 덜 중요하게는 아내의 그림은 제일 먼저 보아야하는 비평가의 입장에서 작업의 방향을 조언하거나 그것이 안 되면 최소한 다 그려놓은 아내의 그림에 아우라를 부여해 주고 멋진 이론적 포장을 할 만한 지적인 능력(지력)과 감성적 능력까지도 요구된다. 뭔 말인가 하면, 아내는 그림을 그리지만 화가의 남편은 아내의 그림이 미술시장을 포함한 사회적 인정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후원군의 역할을 해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가 류준화는 참 복이 없다. 재력과 권력은 물론이고 감성적 능력과 지적 능력도 갖추지 못한 무지렁뱅이 농부를 남편으로 맞았으니 말이다. 한번 씩 한숨을 쉬며 아내는 말한다. ‘야, 우리 둘 중에 하나라도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던지, 안정적인 벌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장면에서 가만히 있을 화가의 남편이 아니다. “그래 말이야. 너라도 좀 잘 벌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는 한숨을 쉬며 골백번 더 리피트 된 에필로그로 대화를 마무리 한다.

“아이고 내 팔자야!”

사실 화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화려한 전시장에서 축하를 받고 카메라의 조명세례를 잠시잠깐 받기도 하지만 전시장에 그림을 내 걸고 전시회라는 것을 가지기까지 밤낮 들인 공을 보상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미쳐 인생을 건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이름붙이고 칭송하거나 외경하기까지 한다. 나의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그림 그리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 어쩔 수 없이 화가로 살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다. 무엇이 화가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금전적 보상, 작가로서의 명예, 예술적 성취감……. 하지만 내가 보고 겪은 바에 따르면 예술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 그래서 아내와 내가 유일하게 동의하는 한 가지 입장이 있다.

“예술은 병이다.”

아내는 전시 계획이 잡히고 나면 갑자기 변신 한다. 우리 집 불쌍한 강아지인 초롱이를 산책 시키고 밥 주는 일에 소홀해 지는 것은 이해해 줄 수도 있지만, 세상만사 다 흥미를 잃고 한 지붕아래 살아가는 남편의 존재도 잊어버린 사람 같이 행동한다. 사적인 약속들을 잊어버리는 일은 사소한 변화에 불과 하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따끈한 밥과 국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기조차 한다. 전시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면 아내는 평소에 무던하던 모습을 완전히 잃고 한숨이 늘고, 깊은 잠조차 자지 못하고 뒤척거리기 일쑤고, 근거 없고 대책 없는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간혹 캔버스를 더 이상 물감으로 채우지 못하고 방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아내는 한없이 날카로워지기고 하고 이내 또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화가의 남편은 예술이라는 병을 잃고 있는 환자를 보살피는 간병인이면서, 동시에 같은 병을 나누어 앓아야하는 만신이나 박수 같은 사람이다. 이 시점에서 화가의 남편은 자신만의 고유할 자질을 백분 발휘해야한다. 화가인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도록 재롱을 떨고, 힘 빠진 손에 붓을 다시 쥘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고, 세상은 그림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고, 설사 당신이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당신의 존재가치는 조금도 손상 받지 않는 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당신이 비록 화가지만 예술은 당신 삶의 일부분일 뿐이고, 인생의 의미는 ‘예술’보다도 더 풍부하고 심원한 것임을 피력한다. 아내는 나의 천박한 사설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게 티격태격 거리다 보면 저절로 슬럼프에 빠졌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의욕을 회복하고 필력이 살아나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으로 진입해 있다.

나는 잠시 망상에 빠져 자신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흐뭇해 하기도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되돌아보면 사실 나 자신이 화가의 남편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평생을 일관되게 그냥 화가의 ‘머슴’으로 남아있길 원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직 몸으로 때우는 역할 밖에 할 재간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최고의 남편조차 화가인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죽어가는 의뢰인을 위해 사력을 다해 굿을 하던 무당도 결국 그 의뢰인의 죽음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오롯이 자신의 몫으로 남아있는 화가인 아내의 고뇌가 때론 가혹해보이기도 하고, 나누어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짐을 넘겨받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화가 자신만의 몫 앞에서 나는 좌절하기도 한다.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올해로 벌써 22년을 맞았다.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그 세월이 흘렀지만 되돌아보면 아내에게는 지긋지긋한 세월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아내에게 월급봉투라는 걸 구경시켜주지도 못했다. 당연히 살림살이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그림만 그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재력, 권력, 지력을 동원한 지원은 고사하고 오히려 방해꾼으로 이날 평생 살아온 셈이다. 그뿐만 아니다. 괜한 호기에 귀농이랍시고 산골로 이사를 온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한 산골마을에서 농사짓는 남편과 살면서 그림이나 그리는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예술도 사회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다보니, 산골살이가 화가에게 주는 치명적인 불이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산골에서 그림을 그리지만 결국 도시로, 서울로 그림을 들고 나가야한다. ‘운송비’는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대중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차단한다. 그림 운송도 보통문제가 아니지만 동료 작가를 만나고 화단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화단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것도 못난이 짓이지만 그렇다고 담을 쌓다시피 하는 것도 화가의 바람직한 처신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화가의 남편인 내 탓이다.

사람의 인연이 참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낯선 남녀가 만나 이렇게 부부의 연을 맺어 20년을 넘어 함께 산다는 것은 우주의 많은 신비들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와 같은 연이 화가의 예술적 성취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해도 위대한 ‘작품’은 가혹한 ‘삶’, 초라한 ‘존재’를 초극하는 지점에서 성취된다는 일념으로 쉼 없이 정진하시길 빈다. 남편으로서, 그리고 한명의 관람객으로서, 그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고 지금껏 이룩한 당신의 예술적 성취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인생이여 고마워요>展 도록 원고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타 전시실
전시기간 : 2012.2.24~5.20

참여작가 : 류준화, 이진경, 정순자, 성광명, 박석신
도록필진 : 안상학, 박남준, 송성일, 최서연,신희지 등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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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시인을 친구로 지내다보니 곁다리로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다.
산을 탄다기보다는 차라리 산을 걷다가
적당한 곳에서 발길을 멈추고 그냥 산을 바라보고, 커피를 나누고,
담소를 나누다가 내려오는,
산 정상을 오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분들과 함께하는  

가칭 '비정상산악회'라는 등산모임의 회워분들도 그런분들이다.
물론 그분들 중에는 미리 인연이 계신분들도 있긴하지만
안상학 시인을 통해 다른 차원의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안동 정상동에 있는 반구정 마당에서
안상학 시인의 또다른 친구들과 인연을 맺었다.
시인과 친분이 깊은 가수분들을 모시고,
안동 지역사회에서 안상학시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만 모여
작은 음악회를 연다는 연락이 왔다.
타이틀조차 '우리끼리음악회'란다.
안상학 시인이 지인이신 가수분들과 한 자리에서
'안동에서 하루놀자'는 말이 불씨가 되어 열게된 음악회란다.
 
우리끼리음악회에 초대된 '징검다리'의 가수 위대권님은
2004년 비나리산골미술관 개관식때 축하 노래를 해주셨고
부인이신 강미영님과 한께 징검다리라는 시노래패를 꾸리고 계신분이다. 
지금은 안동 정하동에서 라이브 카페 리코를 운영중이시다.
인디언 수니님은 광주5.18묘소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동영상을 본적은 있었지만  이날 처음으로 공연을 보게 되었고
음악에 문외한이고 식견이 좁은 사람이다보니 '녹우'님은
이날 처음으로 알게되고
공연을 보게되기까지 되었다. 
모두 인연을 맺게 되어 고마운 분들이다.

저녁 7시 30분 안상학 시인의 인사로 시작한 음악회는
미리 짜여졌던 공연을 1부라 이름붙여 마무리하고
이어서 술과 음식을 나누며 담소와 노래를 나누는 2부로 이어갔다.
다시 새벽 1시를 넘겨 부슬비가 내리는 반구정 마당을
밤새 노래와 웃음으로 채우는 와중에 아쉬움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다.

이날 녹우님의 기타소리에 혼이  빠지고,
인디언 수니님의 정열에 매혹되면서도,
안동의 가수이신 위대권강미영님의 징검다리가 노래를 부를 때
더욱 몰입이 되고 신명이 났다.

그래도 이날의 주빈은 역시 안상학 시인이었다.
다른건 다 몰라도 안시인은
얼마나 사람복이 있는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늘 행사때마다 지원에 나서고 이날도
구질구질한 뒷치닥거리를 마다않던 권경옥님, 권기혁님도 그렇고,
몸을 던져(!) 잔치판에 신명을 돋구던 박경환님 부부, 이정희님, 권두현님의
새로운 모습도 볼수 있어 너무 좋았고, 
조명을 지원해 주신 송봉근님, 찬조출연을 해 주신 김이난 가수 등도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다 베푼만치 거둘겄이지만 유독 안시인은
사람사는 멋 하나로 그냥 인심을 얻고 사랑을 받는 사람인 것 같다.

우리시대 시인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지만
안시인은 구질구질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대신해
호쾌하게 쌈빡하게 그리고 멋있게 살아주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최소한 나에게 안상학시인은 언어를 넘어 삶으로 먼저 말하는 예술가이다.
그것이 창작의 걸림돌이 아니라
작품의 밑거름이 되는 경지였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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