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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던진 질문에, 기성세대로서, 후원회원으로서, 아빠로서 답합니다.
딸이 대학 졸업후 짧은 공백을 딛고 [노무현재단]이라는 꿈의 직장에 취직했다는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2006년에 있은 [전원생활페스티벌]에 귀농자 대표 가족으로 초정되어 존경하는 대통령을 뵙고, 2009년 5월 통한의 심정을 부여안고 봉하마을까지 운구를 따르던 송화가 다 자라 노무현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일에 종사하게 된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송화는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하고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노무현재단]의 문제를 폭로하는 일인 피킷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딸과 고민을 나눈 댓가로, 그리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에게 답하고 딸을 응원하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회운동의 목적이 정의롭다면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조차 정의로워야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운동의 과정은 그 운동을 통해 성취하고자하는 가치가 녹아들어가 있어야합니다. 저가 오랜동안 지지했고 후원했던 노무현재단이 설립 목적에서 이탈해 몇몇 명망가의 정치적 진출을 위한 징금다리로 이용되거나 몇몇 인사의 생계형 일자리로 전략하는 과정을 목도해 왔습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떠나가고 문제가 되었던 사람들이 견고한 아성을 쌓아가는 모습을 보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살아 돌아오신다면 지금의 노무현 재단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실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고 분노가 치밉니다.
노무현재단이 노무현의 정신과, 십시일반 후원과 자원 봉사 등을 통해 사람사는 세상을 앞당기고자하는 6만 후원회원의 꿈을 구현하는데 유능한 조직이 되지 못한 데에는 그동안 이사장을 위시한 이사진의 책임도 가볍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실제적인 운영을 책임져온 운영진의 책임이 무엇보다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 조직의 비젼을 세워나갈 의지도 역량도 없는 이사진과, 그 가치를 구현할 운영 마인드가 전혀 없는 운영진이 조직의 숨통을 막고 조직의 구성원들이 지쳐 떨어져 나가도록 방관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구성원들이 지금까지 거저 묵묵히 참고 견뎌온 것만은 아닙니다. 토론의 장을 요구해 반복적으로 조직이 가진 문제를 제기했지만 지금까지 하나도 개선되거나 진전될 조짐조차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노무현재단이 가진 특수한 성격에 기인한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노무현재단이 노동중심의 가치를 구현하는 조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간부는 생계형 일자리로 결정권을 끼어 차고, 어디 비례 국회의원이라도 한자리 얻을 궁리만 하고 있고, 말단 직원들에겐 ‘우리 때는 차비도 못받 고 활동했는데 너희들은 월급까지 받고 활동하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꼰대 정신에 충만해 열정 페이와 무한 봉사를 요구하는 반노동의 아성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개혁을 강제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비단 노무현재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시민단체들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제기가 왜곡되어 한 개인이 분란을 야기하는 문제로 낙인 찍히는 것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지만,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일부 세력으로부터 노무현 정신을 폄하하는 데 이용될까 오랫동안 내부적 문제제기만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내부적 문제제기로 해결되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외부로 문제를 들고 나왔지만, 노무현 재단에 스며든 병징을 치유하고 백년 천년의 비젼을 가진 조직으로 거듭날 것을 기대합니다.
노무현재단이 더 이상 우리 딸의 직장일 수 없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도 굴종과 패배 속에 다음 일로 도망치지 않고, 정확한 매듭을 짓고 당당하게 다음으로 나아가는 딸을 보게 되어 무척이나 다행스럽습니다. 우리 딸의 희망대로 노무현재단의 겨울이 가고 봄이 활짝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그 봄을 앞당기는데 아빠로서, 기성세대로서, 노무현정신을 추구하는 후원회원의 한사람으로서 같이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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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25년이 더 되었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은 했는데 직장생활은 죽어도 하기 싫고

그렇다고 뭐 뚜렷한 대안도 없는 막무가내 삶을 살 때

아주 잠시잠깐 극장을 기웃거린 적이 있었다.

신촌이나 대학로의 예술영화전용관 비슷한

작은 극장들을 들락거리며 나름 영화에 매료되었고,

어쩌다 혼자서 포스터를 보고 동국대를 들러

난생 처음 영화학과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라고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다가

무려 25년만에 명지대 영화학과를 졸업하는 딸아이의 졸업작품전을 관람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고 한국영화는 일취월장 발전을 거듭해왔다.

기술적 진보는 말할 것도 없고 기술접근성이 엄청나게 진전된 덕분이긴 하지만

어쨌던 25년전 작품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졸업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복한 경험이었다.

 

사실 별기대 없이 딸아이의 졸업작품전이라니

가줘야지 하는 의무감만 가지고 관람을 하게 되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지금 청년세대의 세상을 보는 시각의 넓이,

나름의 삶을 바라다보는 눈의 깊이, 

그리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나름의 방법론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제출된 4편의 작품을 일일이 평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니

일단 밀쳐두고 이번 작품들을 통해

지금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세대가

부모세대로부터의 정신적인 독립을 위한

늦은 산고를 겪고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 졸업전에 제출된 4편중 3편에

작중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문제가 놓여 있었다. 

최지연 감독의 []에 비친 골통 아버지 한준,

김하나 감독의 작품에서 주인공 홍매의 아버지,

그리고 송화의 [비나리의 꿈]에서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든

새로운 세대의 성장을 위해 '아버지'

한번쯤 정리되고 처분되어야할 대상일 것은 분명하다. 

사실 이번 졸업작품전의 컨셉을 한마디로 '지체된 성인식'이라고 한다면

편협된 시각일 것이다. 분명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관람한 이번 졸업전은

딸들의 (공교롭게도 작품을 제출한 졸업생이 모두 여학생이었다)

아버지 떨치기가 전체적인 컨셉으로 다가오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정신적 발달장애에 연유하던 아니면  

강고한 기성세대의 세대지배가 원인이 되었든지 

10대 사춘기 때 치렀어야 할 통과의례를

20대 청년이 치룬다는 것은 분명 문제 있어 보였다.

 

어디선가 읽었지만 

지금의 시민운동이 청년세대 나름의 과제가 없이

80년대에 제기된 과제를 아직도 수행하는 

낡은 시민운동의 보충대 정도로 소모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역사의 진전은 분명 낡은 것에 대한 거부와

새로운 것에 대한 열광 속에 이루어진다.

 

늦었지만 홍매와 기열, 그리고 송화의 아버지로 부터의 해방과 독립을 기원하며 

이번 졸업전을 준비한 김소연, 김하나, 송화, 최지연 네 감독의

성공적인 작품활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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