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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감사를 겪으면서 제기되었던 문제들 중에 농지 임대차 관련한 과제를 고민해 보았다. 해당기관 임원자격이 아니라 순전히 한명의 농민으로, 개인 자격에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거칠지만 생각을 나누고 싶어 글로 남긴다.

허울만 남았을 지라도 우리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헌법121조에 담고 있다. 헌번정신에 따르면 농지는 농사를 본업으로 하는 농민만 소유할 수 있다. 당연히 소작 제도 자체가 불법이다. 현실은 다르다. 농지의 절반 이상을 비농민이 소유하고 있고 소작제도와는 다르긴 하지만 농지 임대차는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니면 이 문제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 필수 농지를 공공적으로 소유(보유)하고, 민간에서 일어나는 농지 임대차를 공적으로 다루어 농민의 임대료 부담을 줄이고 영농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적 과업(공공임대용 농지매입사업)을 준정부기관인 한국농어촌공사에 부여해 수행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애초의 목적과는 다른 부작용이 일어나고 오히려 농어촌공사가 이 미션을 맡고 있는 상황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에서 농지공공임대차사업 관련해 받는 임대수수료(5%)와 직불금 대상 농지와 직불금 미대상 농지 간 임대수수료 요율 차등 적용하는 것을 두고 농어촌공사가 직불금을 부당하게  편취하는 것으로 비난 받기까지 했다. 사실에 대한 오해나 곡해, 비현실적인 요구나 서로 상충하는 입장이 실타래처럼 엉켜있지만 비판의 목소리를 집약해 보면 다음의 주장으로 요약된다.
“농어촌공사가 농지가격을 올리고 있다.”
“농어촌공사가 헌법정신을 위배하면서 지주역할을 하고 농지 임대업을 하고 있다.”
“공익형직불금을 농지 임대료 상승분으로 흡수해 농어촌공사만 배불리고 있다.”
 
하나씩 짚어보고 대안을 마련해 보자. 먼저 “농어촌공사가 농지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수요 증가는 가격 상승을 불러온다. 농지도 다르지 않다. 농지의 공공적 보유량 확대를 위해 예산을 집행하는 만치 농지에 대한 거래는 늘고 농지 값은 상승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그 정도인데 객관적 자료에 기반 해 비난받아 마땅할 만치 농지가격 상승이 초래 되었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적 매입에 따른 농민의 가격 기대치 상승을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도덕주의적 입장일 뿐 아니라 이 과업을 수행하는 농어촌공사를 ‘농지가격상승의 주범’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정책적 무능을 만만한 공공기관에 전가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솔직히 농민이 가진 유일한 자산이 농지다.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에 비해 농지값 상승이 지나치다고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도 이미 옛말이다. 이제 농지가격 하락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두 번째 “농어촌공사가 헌법정신을 위배하면서 지주역할을 하고 농지 임대업을 하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살펴보자.
현상적으로 맞는 말로 들린다. 그러면 농어촌공사가 농지 관련한 거래 및 임대 관련한 과업에서 손을 떼고 온전히 시장에 농지 거래나 임대를 맡겨 놓을 때 농민의 이익이 증대하거나 농지 보유 형태가 경자유전의 원칙에 부합하게 조정될 것인가? 이는 완전히 어불성설이다. 농어촌공사가 농지공공임대/매입 과업을 수행하는 이유는 농민의 임대 부담을 줄이고 영농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농어촌공사가 이와 관련한 미션을 받은 것은 농지 소유주 까지를 포함해 임차농이 합의할 만한 적정수준의 임대료를 유지해 결과적으로 농민의 임대료 부담을 줄이고, 농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농민이 편안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보장하기 위해서다. 악역이라고 한다면 이 악역을 멈출 다른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한다. 그 대안은 비농민 소유 농지를 유무상으로 몰수해 실경작 농민에게 분배하는 것 말고 무엇이 있을까? 그런데 그 방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이라고 기대할 순 없다.
 
세 번째 “공익형직불금을 농지 임대료 상승분으로 흡수해 농어촌공사만 배불리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살펴보자.
이 부분은 뼈 아픈 지적이다. 농어촌공사는 직불금 수령 농지에 대한 적정한 임대료를 받고 있고, 직불금을 수령하지 않는 농지에 대해 이를 할인해 줘 왔다. 이 주장이 진실에 부합할 수 있지만 현상적으로 보면 직불금미수령 농지가 직불금을 받게 되면서 받게 되는 금액의 일정액을 임대료로 농지은행에 내게 된다. 당연히 직불금이 농어촌공사를 위한 것이냐는 비난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정책 목적과 현장 정서와의 괴리를 면밀히 살펴 제도를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정책당국, 농어촌공사의 과오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직불금 미수령 농지가 직불금을 수령하게 될 때도 이전처럼 직불금 미수령농지 요율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농민에게 이익이 되고 정의로울까? 기존 직불금 수령 농가의 반발을 어떻게 할까? 당연히 마땅한 답이 없다. 단지 몇 년 유예를 통해 직불금 미수령기간동안의 손해를 회복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안이 하나 있다. 소작농을 금하는 경자유전의 헌법정신에 맞게 농지 임대료를 폐지하는 것이다. 첫 단계로 농지 임대 수수료를 폐지하자. 솔직히 농지은행이 받는 임대료의 5%에 해당하는 수수료는 경영적으로 의미 없는 금액이다. 이를 수령하고 관리하는 행정비용이 5%의 수수료보다 적지 않다. 농민(혹은 농지소유주)에겐 부담이지만 농어촌공사에는 별로 이익이 되지 않은 수수료를 폐지하고 일부 행정비용을 정부재원에서 달리 조달하는 것은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농지 임대료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다. 한꺼번에 전체 농지의 임대료를 폐지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면 우선 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 보유분(공공보유분)의 임대료부터 폐지하고, 다음 단계로 농지 소유주가 받아야할 임대료를 국가가 대신 내어주면 정책 도입에 따른 충격과 제원 부담을 분산해서 농지임대료 폐지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렇게만 한다면, 농지임대차는 유지되지만 임대료가 없으니 소작행위를 막아 농민의 부담을 막고 영농안정성을 보장하자는 경자유전의 헌법취지에 부합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문제는 재원일 수 있는데 간척지를 포함한 공적 소유의 농지에 작목 선택에 제한을 두어 쌀 재배를 막고 콩, 옥수수, 밀 등 절대 부족 작물재배로 강제한다면 쌀 과잉생산으로 유발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임대료 재원에 충당하고도 남아 농토의 공공적 보유량을 늘이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청년농과 창업농의 진입과 영농확대를 도우면서 기존 농민의 영농안정성을 보장하기위해 국가는 농지의 공적 보유량을 늘여야한다. 그리고 이 과업을 농어촌공사/농지은행이 수행하는 것은 가장 합리적 선택이다. 그러나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현실의 농지 소유와 임대 관행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궁극적으로 폐지해서 농민이 임대료 없이 온전히 자신이 농지로부터 거두어들인 땀의 결과에 대해 소유권을 행사하고 농지 소유와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는데 기여해야 한다. 수수료와 임대료 없는 농지의 경작권은 농민을 윤택하게 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 건강한 먹거리를 더욱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할 것이다.
아침부터 무리한 상상을 해 보지만 전문가의 구체적 연구를 기대해 본다.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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