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동백을 주제로한 리조트에서 가진 동백을 주제로한 전시회

2009 3월 제주도 서귀포에 위치한 리조트 카멜리아힐(http://www.camelliahill.co.kr/)의 부대시설인 [갤러리 카멜리아]에서 동백꽃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있었다

8천년 동안의 봄, 다시 8천년 동안의 가을 – 동백언덕을 노닐다

2009. 3. 28 () ~ 6. 14()

리조트 카멜리아 힐 內 갤러리 카멜리아

강석문, 김경신, 노석미, 류준화, 박형진, 최혜인, 황희진


카멜리아 힐은 5만여평의 정원을 20여년을 가꾸어 온 양언보 사장의 일생의 역작이다. 전시회에 맞춰 참여 작가의 가족까지 초청해주신 양언보사장과의 식사자리에서 간략하게 나마 카멜리아힐의 역사에 대해 들을 수 있었지만 한 명의 농부가 지금의 카멜리아힐을 일궈내는 과정은 짧은 식사자리에서 나눈 담소 정도로 다 전해 듣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할 것이다. 남들 다 감귤 농사에 올인 할 때, 그리고 감귤 농사가 한창 큰 돈이 될 때 양사장은 감귤 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동백을 심었다고 한다. 주위의 만류와 어리석은 짓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동백나무를 심은 것은 단지 동백나무에 매료되어 그 아름다움에 빠져버린 자신의 내면의 욕구에 따른 것일 뿐이란다. 물론 농장 외의 다른 사업을 벌여가며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돈도 고스란히 감귤농장을 지금의 [카멜리아힐]로 바꿔나가는데 밀어 넣었단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을 받쳐 지금은 서귀포의 한 명소로 자리잡을 카멜리아 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사업적 성과도 낳은 경우를 언론 등을 통해 종종 접하게 되는 데 바로 카멜리아힐이 그 대표적인 경우의 하나인 것이다.

 


34일동안 머문 카멜리아 힐은 그야말로 동백정원이었다. 겨울의 여왕이라 불리는 동백을 전세계를 누비며 5백여종의 희귀종까지 모아 동백정원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 같았을 것이지만 그 과정이 힘들었을 만치 지금의 그 결과물은 희양찬란 했다. 국내 유일의 동백을 테마로 한 리조트인 카멜리아힐에는 물론 동백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석구석 돌 하나, 풀꽃 하나까지 정성을 다해 가꾸어 놓은 정원은 그렇다고 드러나게 인공적이지도 않았다. 화려한 동백꽃과 어우러진 정원의 아름다움은 그 공간에 들어 오는 모든 사람이 단지 그 사실 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이 고양됨을 느끼고 그리고 삶과 세상의 존귀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것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힘인지 모르겠다.


카멜리아힐이 오랜 준비기간을 걸치면서 일부 시설이 완비되는대로 이용이 되어 왔지만 2008년 11월이 되어서야 최종적으로 완공되었다. 화려한 준공식을 가진뒤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동백을 주제로한 리조트인 카멜리아힐에서 동백을 주제로한 전시회를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참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이끄는 젊은 작가들과 함께 [동백언덕을 노닐다]전에 작가의 한명으로 참가한 와이프 덕에 농부의 한명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오신 카멜리아 힐 양언보 사장민도 만나고, 아름다운 카멜리아 힐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사실 가장 큰 수확은 다른데 있었다.
바로 카멜리아힐을 노닐면서 자연스럽게 제주 올레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올레길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전시여행을 우리 부부의 올레길 걷기 여행으로 계획을 세웠지만 사실 막연하고 확정적이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동백길을 걷는 재미가 쉬 올레길을 걷을 용기를 가져다 주었고 그리고 마침내 카멜리아 힐을 나와 올레길 10코스를 항해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반응형
반응형

강석문展 / KANGSUKMOON / 姜錫汶 / painting   2009_1223 ▶ 2010_0110

강석문_풀과 친구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_98×33cm×4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20080723e | 강석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122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9:00pm

갤러리 쌈지_GALLERY SSAMZIE 서울 종로구 관훈동 38번지 쌈지길(아랫길 B1) Tel. +82.2.736.0900 www.ssamziegil.com

인사동 갤러리 쌈지에서는 2009년12월23일부터 2010년 01월10일까지 19일간 강석문 개인展을 전시합니다. 강석문은 삶의 터전(과수원)에서 늘 함께 하는 풀과 벌레와 나무의 모습들을, 하루하루 엮어가는 소소한 일상과 진정한 삶의 모습들로 작업의 화두를 삼고 있습니다. '안에서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 자연 속에서 풀들과 대화하고 나무와 이야기하노라면 어느덧 자연과 동화된다'라고 말하며 작가는 화폭 속에 자연이 주는 생명의 소중함과 가족애를 담아 표현합니다. 2009년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과 2010년의 새로운 다짐의 1월의 메시지는 사랑입니다. 작품을 통해 따뜻함을 나누고 행복을 전하는 작가 강석문의 작품 세계에서 관객과의 진정한 소통을 기대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0호-100호 크기의 다양한 작품 30여 점이 전시됩니다. 또한 연말연시 선물 시즌을 맞아 20-30만원 가격대의 소품들도 선보입니다. ■

강석문_풀 친구들 1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33×196cm_2009 강석문_풀 친구들 2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33×196cm_2009

우주의 중심엔 나무가 있었네 ● 강석문의 그림은 착하다. 하지만 그림을 '착하다'고 하면 비난이기 쉽다. '경쟁'이 세상을 움직이는 유일원리로, '경쟁력'을 지배적 가치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착함은 무능력이거나 무기력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류적 가치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한 없이 착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착함'이, '착한 그림'이 흉이 되는 세상을 향해 풀벌레보다 작은 소리로 외친다. 생명의 본질은 경쟁이나 지배가 아니고 조화와 협력임을! 그리고 그 외침을 화폭으로 옮겨 작은 세상을 이루었다. 그 세상은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뭍 생명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과수원'이다. '과수원'이 품고 있는 작은 '생명'들과 그 생명의 존재 원리이자 기초인 '가족성'은 그의 작업의 근간이자 끝없이 천착해 오고 있는 화두이다. 나무, 풀, 새, 그리고 작은 곤충들, 가끔 씩은 사람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자연과 구별되는 사람이 아니라 의인화된 나무에 벌레와 더불어 깃들여 사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은 평생을 나무와 더불어 살아 나무를 닮아 버린 사람-아버지(큰 나무)이고 그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온 아들-강석문(작은 나무)이다. 사람이 있고, 사람과 구별되는 나무가 있고, 풀과 풀벌레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작은 울타리 안의 우주-과수원의 뭍 생명들이 더불어 한 가족인 세상이 화폭 안으로 옮아왔다.

강석문_큰나무작은나무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162×130cm_2008
강석문_연인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101×34cm_2009 강석문_나무와 친구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143×78cm_2008

의인화된 생명체들로 가득한 그의 그림은 「소란한 봄날, 2009」조차 요란스럽지 않다. 폭발하는 생명의 넘치는 에너지로 충만한 봄날의 분주한 하루일 망정 결코 시끄럽지 않다. 사람의 눈으로 사람의 손으로 의인화된 나무와 벌레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 서로를 닮아버린 착한 자연-착한 생명만이 가득한 세상은 가을밤 암컷을 부르는 귀뚜라미의 애절한 소리조차 없다. 먹과 청과 적이 맞서는 것 같지만 결국 거친 붓 터치로 조화를 이루듯 갈등구조가 사라진 그의 화폭에서는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소리가 이내 잠잠해져 버린다. 그가 그려낸 세상은 산들바람에 풀잎 부딪는 작은 소리들, 풀벌레의 작은 몸을 쓸고 지나가는 부드러운 바람이 일으키는 작은 소리들만 가득한 청아한 세상이다. 「키스, 2007」와 「연인, 2008」이 사랑과 화해를 보여준다면, 「풀과 친구, 2009」 「꽃과 벌레, 2008」는 모든 생명들 간의 연대,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존재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인과 연으로 묶여있듯이 그의 작품 속에서 모든 사물과 생명들은 연인이자 친구다. 서로는 맞서거나 쟁투하지 않는다. 「손을 잡다, 2009」 「걱정마, 2007」라고 다독거리고 「할 수 있어, 2008」라고 격려한다. 모든 부정적인 가치가 사라진 그의 화폭에서는 세상의 그렇지 못함을 탓하지 않는다. 착함이 흉이 되는 세상과 맞서지 않고 그냥 착한 세계를 살아가는 화가의 눈길은 그 착한 눈빛으로 세상과 조우한다. 그는 세상을 향해 '평화'를 외치지 않지만 봄날 매화꽃 향기마냥 낮은 쥐똥나무 울타리를 넘어 세상 밖으로 아름다운 생명의 향기를 퍼뜨린다. ● 강석문의 그림은 이슈를 선점하고, 주목을 받기 위한 오버액션이 없다. 풀벌레보다 몸을 낮춰 이슬이 촉촉한 땅을 벌레와 더불어 기어가는 그의 붓 끝에는 항상 생명의 원천인 흙이 묻어있다. 묵향보다 더 진한 흙 냄새가 묻어나는 그의 붓질은 빠른 손놀림으로 무작위적 흔적을 화폭에 남기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가벼움'조차 작위 하지 않는 원초적 가벼움, 근원적 가벼움을 구현한다는 것이 형용모순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화폭에 이룬 그 가벼움은 의식되거나 추구되지 않아 그냥 然하다. ● 그의 화폭은 먹의 엄숙함이나 근엄함이 사라진 풀밭이다. 포스트모던 하지 않은 가벼움은 수묵의 엄숙함조차 마음 가는 대로 휘저은 붓 놀림 속에 사라져버리게 한다. 풀 끝은 뾰족하나 날카롭지 않고, 먹은 무거우나 위압적이지 않다. 먹이 가득하나 적과 청을 누르지 않고, 아크릴 물감은 날렵하나 비작위적 붓 터치로 먹과 하나가 된다. 나무와 풀조차도 눈 코 입을 가지나 발랄한 붓 터치에 뭉개져 버려 벌레의 다리와 날개와 눈 코 입이 그가 서식하는 나뭇가지와 그 경계가 모연해졌다. 무한 조화의 세계인 그의 화폭에서는 식물성과 동물성은 물론 생명 개체들 간의 경계조차 뭉개져 버린다. 풀과 나무는 눈 코 입을 가지고 곧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올 듯 하고, 새와 벌과 벌레들의 사지는 나뭇가지와 겹치고, 나무 역시 벌레의 사지를 자신의 가지로 삼았다. 사람이 벌레를 닮고 풀을 닮고 나무를 닮았듯 과수원의 뭍 생명들은 또한 사람을 닮았다.

강석문_꽃과벌레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143×78cm_2008

IMF대란 중이던 1998년에 가진 첫 개인전 "일그러진 사물들에 관하여"에서 그는 세상의 아픔에 반향 한다. 쓰임을 잃어버린 연장들과 세상으로부터 가해지는 고통에 일그러진 인간 군상을 담은 첫 번째 개인전 이후, 세상의 아픔을 안고 고향인 풍기로 낙향한다. 낙향 후, 부친과 더불어 과수원을 경작하게 된 그는 농부이면서 화가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탐색하는 작업성과를 모아 2004년 두 번째 개인전 "나도 군자"와 2005년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그는 이 두 번의 개인전에서 자신의 삶이 속한 물리적 공간이동에 따라 친숙하게 된 온갖 풀과 벌레를 통해 자아를 탐색한다. 현대화된 문인화라 해도 좋을 그의 작품은 한 포기 한 포기의 풀과 매화 그리고 벌레의 흔적을 통해, 변화된 존재 조건 속에서 화가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갈구하고 모색한다. 2008년 네 번째 개인전 "소소함과 따뜻함 그 사이"에서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작은 세계-과수원의 뭍 생명들과의 유대와 소통을 통해 화가의 정체성을 찾은 듯 사물을 보는 눈에 온기가 살아나고, 한없이 평화롭고 따뜻한 필치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낸다.

강석문_연인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78×143cm_2008
강석문_할수있어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78×143cm_2008

그리고 이번 다섯 번째 개인전은 고스란히 네 번째 개인전의 주제의식을 이어받는다. 더 완숙한 평화라고 해도 좋을까? 모든 쟁투가 사라진 공간으로서의 과수원, 그는 그 속에서 생명의 연대와 그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가족에 시야를 모은다. 여전히 화두는 가족이고 근원적 생명현상이지만 그 중심에서 아버지인 나무를 발견한다. 온갖 생명이 깃들여 사는 과수원의 중심에는 나무가 있고 그 나무는 곧 가족이 살아온 생계의 기반이자 삶의 원천이다. 그래서 그 나무는 곧 '아버지'다. 뭍 생명을 보듬고 생명의 끈을 켜켜이 꼬아 만든 우주의 근원적 바탕이자 강석문에게 삶을 부여했고 그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했던 가족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었다. 나무는 강석문이 살아가는 세상의 중심이지만 타 생명이나 사물에 대해 지배적이지 않고 위엄 하지 않다. 아버지-나무는 가부장적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의 중심이다. 그래서 강석문의 나뭇가지는 뭍 생명을 잔뜩 이고 살지만 무겁거나 힘겹지 않다. 그냥 然하다. 아버지라는 큰 나무의 그늘아래 뭍 생명의 연대와 소통으로 이룬 과수원-우주의 큰 평화가 화폭 가득 그윽하다. ● 강석문의 세계-과수원이 매화꽃 가득 넘치는 환희의 봄날을 맞듯 그의 그림세계도 그렇게 활짝 꽃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그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의 성실함과 철저함, 그리고 세상을 향한 화가로서의 따스한 눈길과 손길 때문이다. ● 그림은 무엇인지, 화가는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낮은 쥐똥나무 울타리 넘어 늘 희구네 과수원을 들여다보고 사는 이웃마을 비나리 농부 송성일 감히 쓰다. ■ 송성일

Vol.20091227c | 강석문展 / KANGSUKMOON / 姜錫汶 / painting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