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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 산수유 꽃봉우리가 한껏 부풀었습니다.
오늘같은 햇살이면 몇일 지나지 않아 
꽃망울을 터뜨리고야 말것같습니다.
요 몇일 꽃샘추위 핑계로 대낮에 방구석에서 책도 읽고,
블로그도 주물럭거리면서 한가로움을 만끽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오후부터 갑자기 풀리기 시작한 날씨는
완연한 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 푸른 하늘,
그리고 산들바람조차 훈기를 품었습니다.
드디어 더는 견디지 못하고 작업복을 챙겨입고 마당을 나섰습니다.


지난 몇일사이 고구마와 야콘 모종도 작업을 끝내었습니다.
다음 작업은 한 열흘뒤에 사과나무 500여그루를 심는 일인데
지금쯤 밭정리부터 들어가야합니다.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어 슬슬 일을 시작해야 되는데
다음주초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로하고
오늘 내일은 집주변 대추밭부터 손을 보기로했습니다.


지난 가을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
투명한 빛색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선사해주었던
시들은 국화며 코스모스며 여러가지 꽃 대궁을 거두고
국화꽃을 받쳐주고 있던 철사도 제거하고 
올 봄 나무를 심을 구덩이도 서너개 파놓는 걸로 
오늘 아름다운 봄의 하루 오후를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봄날의 하루는 어떠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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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와 야콘 파종을 마쳤습니다.
고구마는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 보일러실에 쌓아두고
주문이 간혹 들어오면 조금씩 팔기도하고,
가까운 이웃과나무어 먹기도하면서 겨울을 나고
이제 다시 싹을 띄우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굽은 소나무가 묘를 지킨다고,
모양이 좋은 놈은 다 팔려나가고 남은 못생긴 놈들만 
고구마농사를 잇기위해 종자로 남았습니다.
작년에 500여평을 심어, 사실 많이 남아버렸는데
올해는 한 300평만 심을 생각입니다.

야콘은 줄기와 먹는 뿌리사이에 돌덩이 은 모양의 '뇌두'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눈이 수십개씩 달려있다가 봄이되어 온도와 습도가 맞으면 싹을 틔웁니다.
작년 가을에 수확을 끝내고 이 뇌두를 컨테이너박스로 5박스정도 모아서
땅을 깊이 파고 묻어 놓았습니다.
50CM깊이로 땅을 파고, 그 밑에 낙엽을 깔고 뇌두를 놓은 뒤에 
이불을 덮고 다시 비닐을 덮은뒤 흙은 두텁게 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빗물이나 눈이 녹은 물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위해 마 비닐을 씌우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고정시켜놓았습니다.

올 겨울 추위가 대단했기때문에 혹시라도 얼어썩지나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건강히 겨울을 잘 났습니다.   
그 놈들을 캐내어 비닐하우스에 모판을 만들고
나란히 심었습니다.

먼저 고구마를 심고, 다음에 야콘을 심었습니다,
한 하우스안에서 어깨를 맞대고 누워있는 야콘과 고구마가
사이좋게 싹을 틔우고 무럭투럭 자라나길 산신령님께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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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일 볼일이 있어 지방을 다녀왔습니다.
그 사이 계속된 비 덕분인지 날씨가 많이 눅었습니다.
비닐하우스안은 따뜻하다 못해 더워지기 시작했고,
지난주에 파종한 고추가 싹을 틔웠습니다.
운좋게 비닐하우스 안에 자리잡은 풀씨들은
벌써부터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비닐하우스 바닥을 녹색으로 칠해 버렸습니다.

비닐하우스안에만 봄풀들이 제철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뒷마당 언덕도 옅은 연두빛을 띄기 시작했고,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마른 풀입과 나뭇가지 사이로
연두빛 새싹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봄은 소리없이 비나리마을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제 농부의 마음은 바빠지지만,
세상은 더 아름다운 절기를 맞이 하겠지요.
봄은 맞는 농부의 마음은 각별합니다.
다 잘 될 것 같고, 무엇이라도 새로 시작하고 싶은
그런 계절이 바로 봄이랍니다.

올 봄 저의 농장에도 작은 희망을 심을 것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사과농사가
3년뒤면 우리집 살림살이를 책임져 줘야하는데...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농사라지만
그래도 나무를 심는 마음은 희망으로 부풉니다.

아름다운 봄날,
새봄을 맞는 농부의 기쁨 마음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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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철 노는 재미가 농사짓고 사는 가장 큰 이유인데
왜 이리 겨울이 짧은지 모르겠습니다.
 
  


저가 사는 봉화는 겨울이 춥고 긴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아무 일도 없을 때는 그리도 춥고 긴 겨울이
꼭 농사일을 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면 
왜 그리 짧기만한 겨울인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은 한 철인데 저의 마음속에는
긴겨울과 짧은 겨울이 동시에 들어가 있는가 봅니다. 

 

우수가 지난 요 몇일 사이 본격적인 새해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닐하우스의 낡은 비닐을 걷어내어 새비닐로 바꾸고,
모판을 놓을 자리를 다듬고 전열선을 깔고, 속 터널을 만들고,
그리고 상토를 담은 모판에 고추씨를 부었습니다.
터널안에 모판을 늘어놓고 또다시 비닐과 이불을 덮어주고나니
이제 곧 고추를 딸 수 있을 것 같이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올해 고추 농사는 1200립짜리 8봉을 파종했습니다.
90%가 발아하고, 포트에 이종해서 활착한다치면
약 8~9천 포기 가량을 심게 됩니다.
고추 농사를 주로 하는 이웃에 비하면 너무 작은 양이지만
사실 혼자하는 농사치고는 만만한게 아닙니다.
거기다 주로 잡곡 농사를 위주로 하면서
덤으로 하는 농사다 보니 나중에 수확기가 되면
혼자 다 따기에 버거울 정도입니다.
그렇더라도 올 한해 고추 농사 잘되어
다 딸 수 없을 만치 주렁주렁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



한해의 희망을 담은 고추씨가 
봄기운 듬뿍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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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끝나면 '이놈에 농사 다시는 안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웃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긴 겨울 휴식을 보내고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다가오면 너도 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작하는게 농사입니다. 농사가 업이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지만 농사가 가지는 묘한 중독성도 무시 못할 이유인 것 같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린다는 것의 의미는 경제 활동으로만 이해한 투자라는 개념과 조금은 다릅니다.
농부가 뿌리는 고추씨는 수확후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투자와는 다른, 안될 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숙명성 같은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항상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숙명처럼 돈 안되는 농사를 지어야되는 이웃 어르신의 삶이 솔직히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저 자신이 농사가 업이고 그래서 똑같이 가을이면 '이놈에 농사 때려치운다'고 떠들고 다니다가 이렇게 입춘이 지나고 집앞 개울에 얼음이 녹아 물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추 종자를 뭘로 할지, 농사 일정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스스로 선택한 삶에 대한 괜한 집착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농사를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농사를 통한 비젼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질 못합니다. 어떤 분들은 농촌공동체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폐해를 줄이거나 치유해줄 새로운 대안공동체로 받아들이고 귀농켐페인을 사회운동차원에서 수행하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생명을 다루는 농업이 가진 특성에  몰입해 자연파괴적이고 반생명적인 현대 산업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획으로 농업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연 농업을 넘어 도시농업으로 까지 농업의 영역을 확대하기도 하고, 농업의 산업 경쟁력보다는 경제적 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자연적 사회적 순기능에 촛점을 맞춰 농업을 이해합니다. 

생태주의자를 넘어 농업근분주의자에 가까운 분들의 많은 주장이 충분이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지만 평균적인 욕망을 가진 저같은 보통사람이 실천을 하기에는 어려운, 그래서 그런 분들을 존경을 하되 감히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냥 농사 짓는 일이 다른 직업에 비해 속박이 적고 자유스러울 뿐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이라서 선택한 것뿐입니다. 
사실 농업에 대한 수많은 가치부여는 어제 오늘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야'라고 하기도 하고 현대에 들어서는 '농업의 발전 정도는 선진국이 되는 척도'라는 등의 농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참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누구는 정치적 수사로 그런 좋은 말들을 들먹였지만, 또 어떤 분들은 진정으로 건실한 농업이 번성하고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담아 그럴 말씀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말들이 농업을 경시하는 세력이나 최소한 도시민을 향해 주장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경제적 문화적 소외로 고통받는 농민에 대한 위무용 립서비스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농민 스스로 그런 말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지 비소할 따름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농업, 자연과 환경에 순응하는 농업, 인간의 보다 고양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를 제공하는 농업, 인간을 지속가능한 삶으로 인도하는  농업... 사실 농업은 이 모든 위대한 가치를 포괄하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농업에 종사하는 저 자신의 삶에 대해 뿌듯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런 이데올로기만으로 농민을 농업에 묶어두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당하게 나는 농민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회적 보상체계가 만들어 지고,가업으로 자식에게 농업을 물려줄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마련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농민의 삶이 그런 가치있는 삶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2010년 봄, 14해째 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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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농사 14년째로 접어 들지만,
정미소는 오다가다 보고 어쩌다 남따라 구경만 갔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직접 이용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미소는 그야말로 쌀을 찧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고
쌀농사를 짓지 않는 저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곳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든 것이 작년에 처음으로 수수와 기장, 그리고 조 농사를 짓게 되면서 
정미소와의 생각지도 않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 남들 다 수확 끝낸 초겨울, 어렵사리 수수와 기장, 조를 수확 해서
거의 한달 가량을 집의 비닐 하우스에 늘어 놓았습니다.
처음으로 지은 잡곡 농사라서 사실 어떻게 수확을 해서 탈곡을 하고,
그리고 정미를 하는지 안무런 감도 없이 오직 이웃어른께 여쭙고 
어림짐작으로 그 모든 과정을 해치워야 했습니다.
다행이 수확한 양이 많지 않아 3~4일을 쭈구려 앉아
일일이 알곡 송이를 손으로 비벼 탈곡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정미를 해야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용 소형 정미기가 있는 동네 형님들 신세를 질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계는 조는 되는데 수수는 안되고,
또 어떤 기계는 기장이 잘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저런 기계에 따라 용도가 달라
3가지 곡식을 빻을려고 하면 이집 저집 들고 다녀야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웃 형님 한분께서 소개해 주신 안동에 있는 정미소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잡곡이라도, 그리고 적은 양이라도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빻아주는 정미소라는 것이었습니다.


안동 근처에 볼인 보려 가는 길에 소개받은 정미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종류는 3가지나 되는데 양은 얼마되지 않아 못빻아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을 해서라도 빻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건데
주인 아주머니가 하도 싸늘하게 말씀하시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나왔습니다. 
이왕 나온 김에 안동의 또 다른 정미소를 찾아 갔습니다만
이번에는 잡곡을 정미하는 기계 자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허탕을 치고, 몇일뒤 봉화읍 나가는 길에 봉화의 한 정미소를 들러 봤습니다.
역시 잡곡을 빻는 기계가 없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잡곡이 건강 식품으로 인기를 회복하고 값도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다른 농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이 쉬운만치 가격이 워낙 형편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농사 조건이 열악한 두메산골에서나 조금 지었지 
잡곡 농사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되었고,
정미소에서도 잡곡 정미를 위한 기계를 갖추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농가에서는 가정용 정미기를 갖추어 집에서 먹고 자식들 나누어 줄
쌀이나 잡곡을 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일을 트럭에 싣고 다니던 잡곡은 영 엉뚱한 곳에서 정미를 하게 되었습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바로  저가 살고 있는 명호면 소재지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국도변에
정미소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없는 잡곡용 정미기가 당연히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에 찾아가 봤더니 잡곡용 정미 기계도 있을뿐아니라
소량을 알곡도 혼쾌히 정미를 해 주시겠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다시 정미소를 찾아 작업을 끝낸 수수와 조를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기장은 탈피가 잘 안되어 정미소에 딸린 따뜻한 방바닥에
늘어 놓으시고는 설지나서 정미를 해 놓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집 수수랑, 기장이랑, 조를 정미해 주신
명호면 도천리에 있는 명호정미소 박종석 사장님께 감사드리구요.
올해는 본격적으로 잡곡 농사를 지어 좀 많은 양을 들고
다시 정미부탁드리려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 이 포스트에 나오는 정미소 풍경 사진은 모두 명호 정미소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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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어디에서도 마찬가지 겠지만
산골에서 겨울나기에는 꼭 필요한 두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배를 불릴 양식은 밀할 것도 없고 
몸의 체온을 지켜줄 뗄감이 그것입니다.
가을 걷이가 마무리되면 산골 농부는 본격적으로 산을 오릅니다.
죽어 말라 비틀어진 나무부터, 지나치게 우거진 숲의 잡목까지
그리고 오고가는 농로나 밭을 가리는 성가신 나무까지 
닥치는데로 베어서 집으로 나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오는 나무로는 겨울나기가 쉽질 않습니다.
사실 집만해도 옛집이 아닙니다.
기어들어가고 기어 나오는 초간 3간이 아닌다음에는
나무로 난방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뗄감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춥게 살고 아껴가며 불은 뗀다고해도
겨울 3~4달동안 1톤트럭으로 7~8대는 들어가야합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온돌아궁이가 아니고,
축열식 온수파이프방식의 난방을 하는 경우는 거의 '감당이 불감당'입니다.
우리집에도 작년 5월달에 나무보일러를 설치했습니다.
군청에서 석유연료 절약을 위해 보조금까지 주고 보급하는 덕분에 
보조 100만원 자부담 150만원짜리 나무보일러를 설치하게된 것입니다.

그전에 산을 개간하여 밭을 만들면서 베어놓은 나무들이 있어
가을에 되고 겨울이 와도 아무걱정없이 따뜻한 물을 만껏 쓰고
따뜻한 방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추위가 몰아닥치자 어지간히 나무를 해되지 않고서는
한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미리해 둔 나무는 떨어져가고 할 수없이, 눈길을 헤치고
산속을 헤메며 나무를 하러 나섰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올 한해 겨울은 쉽게 나게 되었습니다.
마을 인근의 산들에서 숲가꾸기가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벌목 전문가들이 산을 돌아다니며 잡목을 베고 우거진 숲은 정리하면서
그렇게 치워진 나무를 마음대로 싣어가도록 허락했습니다.

덕분에 어제  1톤 트럭으로 2대를 포함해 7~8대의 나무를 싣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적어도 내년 가을까지는  뗄감 걱정을 들었습니다.
그냥 배부르게 먹고 뜨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봄이 오기만을 가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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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은 말이 없습니다.

꽉 다문 입, 싸늘한 눈빛,

가까스레 내민 손을 외면하는 굳은 표정...

그렇게 겨울강은 깊은 침묵속에 세상을 등졌습니다.

멈춰버린 강물을 따라

찬 바람이 쓸고 지나가면

강변의 움추린 갈대들이 으스스 몸을 떱니다.

얼음에 비친 헐벗은 산은 푸른 빛을 잃었고,

지난 여름 강변을 수답게 노닐던 새들의 자취는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겨울 산 넘어 새파란 하늘은 얼음보다 더 차갑고

얼음에 비친 햇살조차 냉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깊어가는 겨울강을 따라

봄의 전령을 찾아 걸었습니다.

바스라지는 얼음사이로 생명의 흔적을 살피고

봄의 기미를 찾아 걷는 겨울 강은 말이 없습니다.

겨울 강을 걸으며 연두빛이 흐드러지는 봄날을 기다리는

비나리마을 주민의 애틋한 마음을

나직히 전했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만치 봄은 또 우리 곁에

한걸음 두걸음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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