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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31일 아침 Tal을 출발 카르테지나 다라파니에서 점심을 먹고 바가르찹지나 다나큐에서 길을 멈추고, 2월1일 다나큐를 출발 티망지나 탄촉에서 점심을 먹고 고토지나 차메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 했다. 



딸을 출발해 마르상디의 동쪽 강변길을 걷다가 출렁다리를 넘어 서쪽 찻길로 접어들었다. 얼마를 걷다가 다시 동쪽으로 강을 건너고 마을이 보이는 데서 서쪽으로 강을 넘어오니 카르테다. 역시  걷는 길은  옛길이 좋다. 그 길을 걸은 사람과 동물의 발자욱이 보이고, 흘린 땀내가 맡아지고, 사연 깊은 이야기가 들려 오기 때문이다. 산과 강이 만나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강과 산과 하늘빛이 조화로운 카르테를 지나 이른 점심 무렵 다라파니에 도착했다. 다라파니는 마나슬루산군과 안나푸르나 라운드코스가 갈라지는 분기점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서 마나슬루 산군으로 갈까, 가던 길을 이어 서쪽으로 계속가서 쏘롱라까지 올라갈까 마음이 흔들리는 마을 다라파니에서 점심을 먹었다. 



딸 지나 다라파니까지도 그랬지만 다라파니 지나  다나큐까지 이어지는 길도 평탄했다. 중간의 바가르찹은 오래전 산사태로 롯지들이 매몰되는 사고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흔적을 느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강을 따라 편안한 길만 걸다보니 동네 뒷산 산책 나온 듯 마음이 가벼웠다. 고산증을 느끼거나 추위를 걱정할 만치 높은 고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더워 걷기에 불편하게 낮은 고도도 아닌데다가 가파르고 험한 길도 없었다. 앞으로 하루하루 고도가 높아지고 길은 험해지고 추위와 고산증의 위험이 커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아다. 



하루 밤을 쉬어갈 다나큐가 다가오자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끝내  진눈깨비를 뿌렸다. 진눈깨비를 맞으며 Hotel Peacefull & Restaurant를 들어섰다. 룸에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한기를 느끼고 다이닝 룸을 찾아 난로를 부탁했다. 네팔에서 아직까지 훨훨 타는 난로를 본적이 없었고 이 롯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부족한 연료로 지핀 알뜰한 작은 불씨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따뜻했다. 난로가로 모여든 중국인 커플과 우리 일행은 덜마른 빨래를 말리고, 지도를 살펴 내일의 일정을 체크하고, 난로가 전해주는 온기에 기대어 여행이 주는 행복에 취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얼마되지 않아 계곡에 어둠이 깔리고 빗소리가 굵어졌다. 그때 갑자기 한무리의 네팔리가 조용하던 다이닝룸을 들이 닥치고  씨끌벅쩍해지면서 우리의 안식은 끝이 났다. 



룸으로 돌아와 침낭에 들어가니 자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지루한 저녁 시간을 줄이려 모처럼 책을 들었다. 혹시하면서 굳이 배낭에 넣어 온 덕분에 참 오랜만에 니이체를 읽었다. 하지만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가슴만 울릉거렸다.  내 젊은 날의 꿈들이 꿈틀거리며 되살아났다. 인식에 내 삶을 온전히 받치겠다는 호기는 간데없고 생활의 노예가 되어 힘겹게 견뎌온 나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과잉 자의식과 무기력 말고는 달리 규정할 수 없는 나의 지난 세월이 이제는 후회하기에도 너무 늦었건지도 몰랐다. 남은 나의 인생을 잘 살자는 다짐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남은 한가지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고 그런 태도가 나이가 주는 지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덕분에 단잠이 들었다.



2월 1일 아침 다나큐의 Hotel Peacefull & Restaurant 을 나오니 밤새 내리던 비는 거치고 말쑥한 하늘이 우리를 맞았다. 마을을 벗어난뒤 얼마지나지 않아 가파른 숲길을 만났다. 다나큐에서 티망까지 무려 700m의 고도를 1시간 남짓만에 올려야 하니 모처럼 숨이 차고 땀이 났다. 몇구비의 비탈진 산길을 올라 시야가 시원하게 터이는 마을에 도착하니 티망이었다. 티망에서 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마나슬루봉이 손에 닿일듯 바짝 다가와 있었다. 어제 내린 진눈깨비가 고도 덕분에 티망에서는 눈이되어 쌓여있고 동네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 노는 모습을 사진에 담다가 사진만으로 당이 차지 않아 어른들도 나섰다. 아이들에게 부탁해서 썰매를 빌려 바수와 라마나쉬 그리고 우리도 잠시잠깐이나마 동심으로 돌아갔다.



티망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뒤 다음 목적지인 탄촉을 향했다. 고도 3, 000m인 티망에서 탄촉까지는 300m의 고도를 내려야 하는 완만한 내리막 숲길이 이어졌다.  탄촉 직전  Evergreen Hotel & Restaurant의 눈쌓인 야외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점심을 먹고 지난 한달간 나의 머리와 얼굴을 지켜주던 모자를 남겨두고 길을 나섰다. 계곡으로 내려가 다시 오르막을 타고 산사태로 무너져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길을 통해 마을로 들어섰다. 어떤 마을은 지나고 나서야 더 머물렀어야 했다는 미련이 남곤했는데  탄촉 마을이 꼭 그랬다. 딸이나 차메는 트레커가 붐비고 트레커를 위해 만들어진 마을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면 탄촉은 그와 반대였다.  탄촉은 주민에게는 트레커가 낯설고, 트레커에게는 주민을 마주치기가 어색한 전통적인 산간 마을로 다가왔다.  



야외에서 눈을  밟으며 점심을 먹고 출발한뒤 한시간여만에  Naar -Fu 계곡과 마르샹디강이 만나는 koto 를 지나고 오후 3시 30분에 마낭주의 수도 차메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가이드에게 숙소 선택을 거의 맡기다 싶이 해 왔는데 이날만은 우리가 롯지를 정했다. 한국에서 오랜동안 일을 해서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인의 식성과 문화를 전적으로 이해하는 사우니(여주인)가 운영하는 Potala Guest House에 짐을 풀었다. 



모처럼 한국어에 능통한 사우니를 만나니 묻고 싶은 것도 많았고 말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롯지의 여주인은 서울 근처 도시에서 오랜동안 일을 하다가 이명박정권 때 불법체류 노동자로 적발되어 추방당했고 지금도 한국가서 일하고싶다는 뜻을 내비췄다.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친절했고 한국식 수제비를 맜있는 깍두기와 함께 내어 놓아 우리를 기쁘게 해주셨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중에 어쨌던 한식을 먹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는데 배가 작아서 아쉬웠다. 



나에게 차메는 본격적인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같은 마을로 느껴졌다. 차메 다음 코스인 피상만해도 해발 3300m나 되니 술과 담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이 차메인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메에 도착하면 똥바라도 한잔하고 쏘롱라를 넘을 때 까지는 술과 담배를 절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라운드 때는 그래도 나름 절제를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해발 3500m인 마낭에서 마지막 술을 마시고 해발 5400m인 쏘롱라를 넘을 때까지 담배를 계속 피워댔다.  



포탈라롯지는 밤새 정전이 되었다. 정전된 방에 일찍 올라가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난로가 있는 다이닝 룸을 떠나기 싫어 밍거적 거렸다. 그나마 다이닝 룸은 충전지를 이용해 켜진 여린 전등이 있었다. 심한 고산증으로 쏘롱라를 넘지 못하고 하산한 캐나다 청년과 쏘롱라를 향해 우리와 같이 올라가야할 씩씩한 스페인 청년 그리고 영어에 젬병인 우리 일행이 난로를 사이에 두고 어색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네팔 트레킹 때는 늘 밤이 길다.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계절이 꼭 겨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서 그렇기도할 것이지만 아마도 잦은 정전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밤은 긴데 책을 보기에는 눈이 시리고, TV나 PC도 없고 폰도 와이파이가 불안전하니 마땅히 할짓이 하나도 없다. 영어가 짧으니 대화상대를  만나도 그냥 간단한 인사이상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게 말하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정전마저 되어 일찍 침대에 들었지만 두 눈은 감기지 않고 의식은 말똥말똥 되살아나니  밀쳐둔 생각들이 구름처럼 밀려 왔다. 삶의 현장을 탈출해 보내게 된 두달의 네팔 망명(!)이 이후 나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까, 아니면 그 자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는 의문이 일었다. 하지만 이번 여정을 통해 단지 쉬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과욕이 분명한 것 같았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냥 일상의 긴장 속에 굳은 의식의 근육을 풀수 있도록  내 자신에게 스스로 자유를 선물하는 것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하지만 단지 그 정도를 위해서 두달의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도 좋은가는 물음에는 단호히 그렇다고 정리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여행보다 대단한 일상이 있어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확실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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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여정이다. 딸에 오후 5시쯤 도착하기 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하산이라고 느긋하게 내려올 수도 있었지만 남은 15일의 일정을 고려해 시간을 아껴야했다. 사실 남은 여정이 빡빡해서라기 보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겠지만 베시사하르에서 포카라로,  포카라에서 ABC코스를 다녀오고 다시 포카라에서 좀 느긋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베시사하르로 되돌아 내려오는 여정에서는 올라갈 때보다 꼭 2배의 속도로 걷기를 강행했다. 차메에서 출발해 상행 때 하루 걸리던 티망까지 반나절도 걸리지 않고 내려왔다. 티망에서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일러 다나큐까지 더 내려와서야 늦은 점심을 먹었다.
  



티망에 도착할 때 쯤 혹시 배가 고프지 않냐고 파샹에게 물었다. 네팔리들은 보통 아침을 먹지 않거나 간단히 해결하고 오전 11시전에 이른 점심겸 아침을 먹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포터를 위해 점심을 11시정도는 먹을 수 있도록 여정을 배려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혹시 오전 일정이 늦어지면 꼭 파샹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우리가 파샹을 생각하는 만치 또 파샹은 우리 생활습관에 자신을 맞추려 했고 그러다보니 12시 이전에 점심을 먹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오늘은 탄촉에서 블랙티를 한잔 나눈 것을 제외하곤 간식도 휴식도 없이 계속 걸었다. 혹시라도 파샹이 배가 고프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역시 파샹은 또 'No problem!'이다.


점심을 좀더 내려가 다라파니 정도에서 먹기로 결정하고 티망을 스쳐지나갈 때 상행 때 묵은 롯지 앞을 지났다. 마당에서 롯지 사오니(주인아주머니)가 우리 일행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파샹과 무슨 이야긴지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배낭을 돌담에 내려놓고 잠시 쉬고 있자니 사오니께선 파샹을 줄 차 한 잔과 책을 한 권 들고 나왔다. 퍄상이 얼굴에 가득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책을 건넸다. 그 책은 내가 상행 때 짐을 줄인답시고 룸 탁자에 남겨두고 온 [바가바드기타]가 아닌가. 매정하게 버린 강아지가 다시 돌아왔다면 아마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반갑기도 하고 좀 머슥하기도 한 이중적인 감정이 일었다. '내가 잊고 간 것이 아니라 버린 것이다'고 말을 하기에는 책보기가 낯부끄럽기도 했고, 책을 챙겨놓았다가 전해주는 사오니의 정성과 그 책을 자랑스레 건네주는 파샹의 우쭐함에 찬물을 끼얹기도 싫었다. 무조건 반가운 표정을 짓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사실 별반 반갑지 않은 [바가바드 기타]가 다시 나의 품에 돌아왔다. 어쩔 수 없는 인연인가 보다. 폭설이 와서 쏘롱라가 막히지 않았다면, 티망을 지나면서 묵었던 롯지 앞을 지나는 시간에 사오니가 마당에 나와 있지 않았다면, 그렇지 않더라도 사오니께서 불쏘시개로 태우거나 그냥 쓰레기로 버려버렸다면, 혹은 롯지 룸에 두었다가 어떤 한국인 트레커가 한국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책이 아닌가? 다시 내 손에 들어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치고 또 겹쳤는지를 생각하니 [바가바드기타]를 다시는 가벼히 여길 수 없게 되었다. 억만겁의 인연이 겹쳐 나의 손에 돌아온 [바가바드 기타]를 그동안 짐이 줄어 여유로와진 배낭에 고히 모셨다.


티망에 도착하기전에 차메와 티망사이에 있는 탄촉이란 마을에서 블랙티를 한잔 나눌 때 작은 소동이 있었다. 티하우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차를 시키는데 바로 차메서 부터 상하행 여정을 같이 하고 있는 한국 남녀 청년과 그들의 포터가 도착했다. 블랙티 6잔을 시키고 그들이 내놓은 네팔 쿠키를 나누며 담소를 즐기고 있는데 화장실 갔던 아내가 화장실 자물쇠와 키 뭉치를 변기에 빠뜨려 버렸다며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지만 '돈'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 것같아 짜증이 났다. 그런데 웬걸 티하우스의 여주인은 또 'No problem'이란다. 이런저런 여행후기에서 네팔리들과의 나쁜 해후에 대한 글들을 읽은 적이 여러번 있었지만 우리가 라운드 중에 만난 인연은 하나같이 선하고 친절한 네팔리 뿐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자물쇠는 돈이 들어가야 하는 공산품으로 적어도 블랙티 몇잔을 팔아서는 살 수 없는 값이 분명했지만 여주인은 꽨찮다는 것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길을 떠나려다 마음에 남는 미안함때문에 아내와 잠시 답례를 고민했다. 아내는 한국에서 가져왔지만 많이 입을 기회가 없었던 자신의 추리닝 상의를 배낭에서 꺼내 티하우스의 사오니에게 드렸다. 한국돈으로 오육만원은 족히 하는 추리닝이 아까웠지만 아내는 미련이 없어 보였고, 추리닝을 받은 사오니는 의외의 선물에 너무 즐거운 표정을 지으니 잠시 들던 아깝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다나큐에 오후 1시쯤 도착해서 포탈라게스트 하우스에서 어제 눈에 젖은 옷을 햇살좋은 마당에 늘어놓고 달밧을 시켰다. 'Potala'는 티벳 불교의 성지 '포탈라궁'이나 포탈라궁이 있는 지역의 지명을 가리킬 것이다. 티벳탄이 운영하는 롯지답게 다이닝룸 한쪽에는 불교식 제단이 설치되어있고 제단앞에선 귀여운 두 아이가 놀고 있었다. 얼굴에 온통 콧물을 바르고 있어 더 귀여운 아이들이 사진기를 들이되자 이쁘게 웃어준다. 햇살이 비치는 창밖에는 맑은 하늘이 싱그럽고 눈이 가쉰 골목은 봄날의 나른한 오후 풍경같이 따사롭고 한가로왔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거리를 힘겨운 삶의 짐을 지고 상행하는 네팔리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짐을 진 그분들이 이어가는 세상살이를 고달프게 느끼기엔 따스한 햇살과 파란하늘, 한가한 골목의 풍경이 너무 평화롭다. 같이 짐을 지고 올라가며 서로 농을 치는 네팔리의 표정에도 웃음이 한가득이다. 내 마음의 평화가 단지 투사되었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의 평화가 온 세상의 평화이기도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파샹은 '태양열 온수'가 된다며 머리를 감을 것을 권했다. 머리를 감은지 한참이나 되었고 슬슬 머리가 건질거리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고도가 있어 추위가 겁이 났다. 파샹만 머리를 감고 아내와 난 사양했다. 양배추 볶음이 같이 나온 달맛을 맛있게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니 막 도착했을 때 와는 달리 한기가 느껴졌다. 아내와 나는 머리를 감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하며 길을 나섰다.


다라파니를 지나고 카르테에 접어드니 휘날리는 적기가 우리 일행을 맞았다. 반가운 마음에 파샹에게 물어보니 마오주의자가 장악하고 있는 마을이란다. 몇년 전에는 정부군과 맞선 자치주로 전운이 감돌았는지 모르지만 이제 마오주의 정당이 집권당이 된 마당이니 더 이상의 긴장감은 없어 보였다. 단지 적기는 우리 마을이 어떤 사상을 공유하고 어떤 마을의 미래를 꿈꾸는지 나타내주는 표식으로만 다가왔다. 그들이 공유한 사상이나 공통의 꿈이 가진 현실성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마을 공동체의 역동성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을의 공기가 달리 느껴졌다. 여전히 인적은 많지 않았지만 햇살은 더 따스하고 마을이 가진 문화적 정치적 저력이 마을의 밝을 미래를 예견케했다.



상행길에 'South korea is good!'을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세워주던 네팔리를 만났던 지점의 롯지에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차를 마셨다. 한 때 꿈꾸던 해방구를 네팔의 안나푸르나 산중에서 만난 셈이니 잠시 머물며 담배라도 한가치 안할 수가 없었다. 적기가 휘날리는 마을 '카르테'를 벗어나려는 찰나 '맛있는 김치있어요' 라고 쓰인 한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표지판은 성공한(!)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많은 트레커들이 오고 있고 또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네팔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글표지판이 보여 주는 현실과 마을 입구를 지키던 붉은 깃발이 품고 있는 꿈이 공존하는 카르테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오후 5시에 오늘의 목적지 딸에 도착했다. 역시 '김치있어요'라고 씌여 있는 마르상디 호텔 마당에는 노란 단국화가 길손을 맞이했다. 이츰 룸에 짐을 풀고 마당에 내려와 파란 벤치에 앉아 커피를 한잔하며 딸에 내리는 저녁 어스름을 맞았다. 오늘 하루 상행 이틀분 여정을 주파하며 고도 약 2,700미터에서 1,700미터까지 1,000미터를 내려왔다. 이틀동안 백설의 설국에서 초록의 겨울 아열대 지역까지 약 46km를 걸어 고도를 1,700여미터 줄인 셈이다. 이틀 연속된 강행군으로 몸은 지칠데로 지쳤지만 핫샤워를 하고, 파샹이 좋아하는 피자까지 시켜 푸짐한 저녁상에 로컬와인까지 한잔 나누니 몸이 봄햇살에 눈처럼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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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마신 락시 한잔이 다 얼굴로 갔나보다. 일어나자 마자 얼굴을 만져보니 내 것이 아닌듯 퉁퉁 불어있다. 한잔의 술이 이렇게 대단한 걸까? 아니면 일종의 고산증일까. 티망의 고도는 고작 2,270m인데 벌써 고산증이 올리는 없다. 순전히 술한잔 때문인 것 같다. 아직 고산이라고 하기엔 멀었지만 어제는 그래도 가파른 길때문인지 걷는데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출발전에 최대한 짐을 줄여보려고 이것저것 뒤척여보지만 마땅히 버릴 것이 없다. 다 욕심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여정의 초입부터 너무 많이 버렸다가 나중에 필요한 사태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 든다.  몇종류의 상비약중 오래된 것은 버리고 쓸만한 잡동사니는 롯지에 남기기로 한다. 그래봤자 무게로 몇백그램이상 되지 않는다. 다시 짐을 뒤척여보니 마지막 짐은 역시 책이다.


[바가바드 기타]!  책표지 안쪽에 1985년에 구입한 걸로 기록되어 있다. 인도철학사 수업 때문에 구입한 책인데 작고 가볍다. 그래서 이번 여정에 동행하게 되었는데 벌써 짐으로 느껴진다. 네팔이 흰두교국가고 인도 문화권이라는 생각에 들고 온 책인데 영 정이 들지 않는다. 저녁 때마다 몇번 펼치기는 했지만 읽히지가 않았다. 읽은지 26년이나 지난 책을 그것도 까마득히 잊고 살던 인도의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우파니샤드, 절대 지혜, 아르주나와 크리쉬나, 브라만과 아트만, 우주, 궁극적 존재... 눈에 들어오는 단어마다 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같이 낯설고 생뚱맞다. 안나푸르나가 있고. 그 언저리에 살아가는 삶들이 있고, 그 산속을 걸으며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생각하는 지금 브라만이나 우주, 궁극의 지혜는 너무 멀고 무겁다. 내 발을 딛는 땅의 구체성, 내 발바닥 감촉의 직접성에 빠져든 내가 지금 바가바드기타를 읽는다는 것은 허영이고 기만으로 느껴졌다, 지금 읽히지 않는다고 해서 나중에 다시 읽을 것 같지도 않다. 방을 나서면서 과감하게 탁자에 남겨놓는다. 아마 불쏘시개로 사라지겠지. 아니면 혹시 다음 한국인 트레커가 이 책의 주인이 되고 다시 읽힌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으련만... 지금 나에게 [바그바드기타]는 단지 짐일 뿐이다.


오믈렛과 티베탄 브레드로 아침을 해결하고 티망의 마나슬루 호텔을 나선다. 이내 아침 산그늘 추위에 얼어붙은 티망을 벗어나 밝을 햇살 속에 드러난 따뜻한 마을길과 산길을 걷는다. 이름 모를 마을을 지나고, 소와 개들을 만나고, 그리고 어제처럼 하산중인 사람들을 만난다. 지나는 작은 마을들은 비어있고, 길을 오가는 소와 개는  춥고 외로워 보인다. 겨울철만 비워둔 집인지 마당이 단정하게 정리된 집은 그나마 정감이 느껴진다. 한쪽 벽이 허물어가고, 마당에 아무렇게나 자란 풀이 말라가는 집은 흉물스럽다 못해 처연하기조차 하다. 너른 마을을 지나도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사람사는 세상이지만 티망을 지나서부터는 점점 안나푸르나로 빨려 들어가는듯 흰산이 가까워진다. 사진기의 앵글 가득 흰산이 잡히고, 목덜미를 지나는 바람에 냉기가 감돈다.       


'니 하오마!' 한 무리의 하산중인 트레커들과 조우했다. 할머니와 함께 한 가족으로 이루어진 팀같다. 그 할머니는 나를 중국인으로 보았지만 나는 그들의 발음을 듣고 그들이 일본인임을 알아 본다. '곤니찌와!' 나의 인사에 그들은 국적을 물어온다. 그분들이 다시 인사를 정정한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어서 내려 오는 한무리의 사람들과 엉킨다. 중국인 팀은 피상에서 철수 중이란다. 국적을 묻지 않았던 한 팀은 하이캠프에서 이틀을 대기하다가 결국 포기 하고 내려온단다. 서로 행운을 빌며 손을 흔들고 돌아서지만 또 얼마가지 않아 하산중인 트레커와 마주친다. '쏘롱라를 지나 오시는 길이세요?' 뻔히 알면서 자꾸 묻는다. 혼자 하산중인 어떤 백인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 마구마구 위의 상황을 쏟아낸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쏘롱라 패스를 포기하고 내려가는 중이고, 위의 상황이 너무 좋지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 하산중이지만 그래도 반대편에서 쏘롱라를 넘어 온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도 쏘롱라를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없다. 올라가는 무리와 내려가는 무리가 뒤엉키고 나면 다시 올라가는 사람들끼리 얻은 정보를 나눈다. 결론은 연초부터 지금까지 러시아 트레커 1명만이 유일하게 쏘롱라를 패스했다는 것이다. 갈수록 절망적이다.  


티망을 출발한지 2시간을 조금 지나, 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는 마을에 들어섰다. 붉은 깃발이 걸려있고, 마을 초입의 건물에 [HILALI AUTONOMOUS STATE]라고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안나푸르나 산자락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 심어지고 자라고 있었던 흔적들이다. '자치'라는 단어를 보자 뜬금없이 나의 가슴도 뜨거워진다. '중앙'권력을 배제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해 나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은 아마 '자본'과 '국가'가 소멸하는 먼 훗날까지 인류의 가슴에 불을 지필 것이다. 물론 안나푸르나 산자락 마을의 '자치'와 '해방'은 추상적인 꿈이 아니라 지주의 횡포, 폐습의 억압 등 현실적인 질곡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꿈과 열정이  마오주의 분파 등 좌파 정당으로 모아져 네팔은 큰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지금도 그 여진이 진행중이다.  마오주의 공산당이 합법정당화되고  집권에 성공하면서, 1997년에 시작된 내전이 2006년에 종식되었다는 네팔. 이어서 2008년에 국민투표를 통해 왕정이 폐지 되어 네팔은 해방되었지만 '정권획득'보다 더 심원한 문제는 부정부패의 척결, 기득권 일소, 가난으로부터의 국민의 구제였다. 가난한 소국 네팔이 이 아름다운 자연만치 정의롭고, 풍요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의 해결은 지연되고 40여개 이상의 정당이 난립한 정치는 혼란스럽단다. 그와 같은 현실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일부좌파는 나름의 자치구, 해방구를 기반으로 현정부에 저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5,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의 총소리는 사라졌지만 인민의 삶을 옥죄던 근원적인 악이었던 부패하고 무능하고 폭압적인 왕정이 폐지 되었을 뿐 그로 인해 야기된 네팔의 사회적 과제들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어 보인다. 
 


차메에 도착한 것이 11시 30분. 차메는 마냥주의 HeadQuart란다. 마을의 초입에 안전한 식수를 유상으로 공급하는 [SAFE DRINKING WATER STATION]이 있고, 얼마 안가서 일종의 보건소인지 사설 병원인지 [HAMRO MEDICAL HALL]이 있다. 이들 역시 계절탓인지 문이 굳게 잠겨있다. 초라한 [MEDICAL HALL]의 외양이 이곳 의료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다. 시가지로 접어드니 일종의 농업기술센타, 경찰서가 있고 은행도 있다. 은행은 무장한 군인이 길 양쪽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 참 인상적이다. 그만치 치안이 불안전하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아직 내전의 여진이 남아 있는 걸까?


어제 딸에서 티망까지 오르는데 조금 힘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차메까지만 오르고 남는 시간을 쉬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부리고 바로 커리라이스를 주문한뒤 차메의 거리를 나섰다. 차메는 베시사하르를 떠난 뒤 만난 제일 큰 마을이다. 사실 마낭주의 수도라지만 그렇다고 도시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마을의 규모를 넘지 않는다. 차메는 단지 조금 큰 마을인 셈이다. 한 주의 행정 중심답게 있을 것은 다 있지만 산골마을의 정취를 헤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을의 곰파를 돌고,  마을길을 따라 마니차를 돌리며 온천이 있다는 파샹의 말을 듣고 찾아나섰다. 차메의 끝단, 강이 흐르고 있고 그 강을 건너 온천이 있단다. 막상 다리를 건너 온천을 가리키는 표지를 따라가니 온천 시설이 아니라 그냥 강둑 여기저기 바위 밑에서 온수가 솟아오르고 온수가 솟는 바위마다 서너명씩 모여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는 그야말로 노천온천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비치는 큰 바위위에 앉아 안나푸르나의 눈이 녹아 내린 찬 강물과 안나푸르나의 땅속에서 솟은 뜨거운 물이 만나는 진풍경을 바라다본다.


 롯지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머무는 롯지 바로 옆 건물 2층에 여성인권보호센타가 있다. 작은 빨래를 하고, 배낭의 짐을 정리하다보니 우리가 가진 짐을 줄이면서 작은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 나온다. 이번 여정을 떠나면서 집에 뒹굴던 묵은 상비약을  챙겨왔는데, 또 한의사 친구와 약사친구가 집나선 친구를 위해 챙겨준 상비약까지 필요이상의 약을 가져오게 되었다.  오늘 [여성인권보호센타] 를 보고, 마을 초입의 보건소를 생각해보니 우리가 가진 상비약을 나눈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파샹과 아내는 너무 많이 가져온 물휴지와 상비약을 들고 여성인권센타를 다녀왔다. 아내는 용도와 투약법을 설명하기에 힘이 들었지만 그들의 정말 고마워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단다. 기부는 작은 것을 나누고 큰 마음을 같이하는 것인가보다.



차메에서 첫 롯지다운 롯지를 만났다. 위로 올라올수록 롯지의 시설은 좋아지고 트레커의 발길이 잦다. 길을 걷기 시작한지 5일만에 한국인 트레커를 만나고, 다이닝룸에서 난로불을 사이에두고 자리가 마련되었다. 독일인 3명, 프랑스인 1명, 한국인 5명, 그리고 국적이 기억나지 않는 서너명의 백인들...그리고 몇명의 네팔리가이드와 포터가 둘러 앉으니 거의 국제적 모임이 된 셈이다. 짧은 영어 탓에 숯한 대화의 주제는 포기되고 대화의 주제는 하나, 우리 모두 쏘롱라를 건너갈 수 있을까 없을까다.  오직 인도서 인턴과정을 마치고 여행길에 올랐다는 대구청년만이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독일인들은 원래 과묵한 성격탓인지 서먹한 자리가 이어지다 결국 자국인끼리의 수다로 모아진다. 특수학교 선생님, 대학생인 제주 아가씨 이렇게 모두 오랜만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 길떠난 자의 설레임을 서로 나누다 보니 여행의 참맛이 느껴진다.


장작 난로만치나 훈훈한 저녁시간을 가지고 룸으로 돌아오니 하루의 피로가 몰려온다. 잠에 골아 떨어져 다시 눈을 떠니 새벽 2시 50분. 초저녁 9시에 잠이 들어 새벽 3시전에 눈을 뜨니 새벽 시간이 너무길다. 모처럼 여행경비를 정리하고 일기를 쓰고 싶어 안경을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온방의 짐을 다 뒤적이다 보이질 않는 일기를 쓰고 다시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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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물과 안개가 잔뜩 묻은 조랑말 방울 소리에 잠이 깼다. 방울소리는 같은 지상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멀리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아니면 땅속 깊이에서 솟아나는 소리같다. 중국영화의 귀신이라도 나오는 장면에서 배경음으로 사용하면 적격일 그런 소리다. 가만히 누워 한참을 가까워 졌다 멀어져 가는 방울 소리를 들으며 몽환속으로 빠져든다. 나에게 안나푸르나를 소리로 기억하라면 아마도 저 조랑말이 달고 다니는 방울소리가 될 것 같다. 조랑말 방울소리는 안나푸르나의 거친 자연과 네팔리의 고단한 삶, 그리고 어설픈 트레커의 설레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기위해 들어선 다이닝룸에서 피상에서 리턴한다는 혼자 여행을 하는 독일인을 만났다. 그는 눈과 추위를 대비한 옷과 장비를 전혀 준비해 오지 않아 도저히 더 오을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네팔라면이라는 Nuddle Soup을 먹으며, 리턴하는 독일인이 조그만 카메라에 담아 온 피상의 눈풍경을 구경했다. 그는 우리의 행운을 빌며 길을 떠났고, 우리는 짐을 챙겨 그가 내려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기 위해 롯지를 나섰다.

딸은 추웠다. 계곡 안에 위치한 딸은 해가 늦게 뜨고 일찍지고, 또 계곡을 따라 정상의 얼음바람이 쓸고 내려왔다. 으슬으슬 추운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추위가 느껴진다. 길을 걸으니 손과 귀가 시리다.

 

 

딸을 떠나 도착한 첫마을인 카르테 골목에 한국어 간판이 보인다. '맛있는 김치 있어요.' 그리고 길가 롯지 마당에서 모여있던 네팔리들이 말을 건넨다. 'Are you korean?' 나의 답이 떨어지자 마자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다시 묻는다. 나중에 알았지만 네팔사람들에게 한국은 남과 북 공히 관심의 대상인가보다. 한 때는 북한과 관계가 좋았고, 다시 남한과 사이가 좋아졌지만 네팔은 집권당이 공산당인 나라다보니 남북 양쪽에 다 연이 닿아있다. 하지만 더 많은 네팔리들이 남한의 노동자로 인연을 맺고, 또 훨씬 많은 남한 사람들이 네팔을 왕래하다보니 네팔에서 지금은 남한이 더 인지도가 높은 것 같았다. 활짝 웃는 얼굴로 그는 나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세워보이며 말한다. 'North korea is bad. South korea is good!' 하지만 내가 남한 사람이라서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우리의 분단현실이 그냥 씁쓸할 뿐이다.


다라파니를 지나면서 체크 포스트를 들르고, 바가르찹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었고, 파상은 달밧을 먹었다. 오늘 따라 달밧을 먹는 파상의 얼굴이 어둡다. 롯지를 떠나며 물으니 달밧의 밥이 식은 밥이었단다. 사오지에게 항의를 했고, 다시는 그 롯지에 들러지 않을 것이란다. 롯지나 레스토랑에 포터 한명이 트레커 두명을 데리고 오면 기본적으로 포터의 숙식은 무료로 제공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포터의 음식은 우리 트레커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우리는 보통 달밧을 먹고, 파샹은 야크고기나 계란 프라이가 덤으로 얹혀져있는 달밧을 먹었다. 보통 포터는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주방 한구석에서 롯지 식구들이랑 같이 식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우리는 딸에서 부터 우리가 밥을 사지 않더라도 같은 테이블에서 먹기를 종용했다. 그러다보니 늘 파샹이 무얼 먹는지 알 수 밖에 없었는데 오늘 점심을 먹은 레스토랑은 파샹에게 큰 실례를 범한 셈이었다.



힘든 하루다. 길을 따라 끝없이 올라와 다시 올려다보면 안나푸르나의 남은 높이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간혹 마주치는 트레커들은 하나같이 쏘롱라 패스를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중이란다. 쏘롱라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은 우리 부부와 파샹, 슈리샤우르스의 부메랑롯지에서 같이 지낸 독인인 3명, 그리고 3명의 호주인이 전부다. 들리는 말로는 소롱패티와 마낭 등 쏘롱라를 가는 길목 마을에는 서른명 가량의 트레커들이 쏘롱라 패스를 시도하기 위해 대기 중이라고 했다. 그중 일부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쏘롱라 패스가 불가능하다면 다시 불불레로 리턴해서 버스로 포카라를 거쳐 베니, 따또파니 그리고 좀솜까지 이틀에 거쳐 버스여행을 해야한다. 끔찍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오직 일기가 좋아져 쏘롱라를 건널 수 있기를 빌 뿐이다.



첨으로 눈길로 접어들었다. 오늘의 목적지 피망이 가까워지면서 열대우림같은 수풀에 눈이 쌓혀있는 기묘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눈을 밟기 시작하자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 안나푸르나에 접어든 느낌이 든다. 피망을 30여분 남겨둔 길에서 티벳탄 차림의 가족 무리를 여럿 만났다. 파샹이야기로는 그 중 한 가족은 틸리초 캠프에서 눈에 길이 막혀 트레커의 발길이 끊기면서 겨울을 나기 위해 저지대로 내려가는 중이란다. 오늘 만난 대부분의 네팔리들은 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 하산중인 것같았다. 마지막으로 만난 네팔리가족은 예닙곱살 되는 소녀와 그 부모다. 부모는 남루한 옷차림에 등짐을 하나씩 지고 있었고 , 아이는 떼국 떨어지는 무심한 표정의 얼굴로 눈덮인 길을 양말도 신지 않은 발로 조리만 신고 걷고 있었다. 우리와 마주친 소녀는 손을 내밀며 "Sweet! Pen!"을 읊조렸다. 순간 나는 괜한 혼란에 빠졌고 우물쩍 거리는 사이 소녀는 손을 거두고, 서운한거 하나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부모를 따라 멀어져 갔다. 그 아이의 시린 눈망울이 오랫동안 나의 가슴에 남아있을 것 같다.



5시 30분이 지나 어둑어둑해질 무렵 티망에 도착했다. 티망은 사방이 눈덮인 산으로 둘러 쌓여있었다. 본격적으로 안나푸르나 안으로 들어서는 느낌과 함께 왠지 춥고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너무 늦게 도착한 마을은 늘 그런 느낌이었다. 차라리 아침 일찍 출발하고, 오후에는 넉넉하게 도착해 햇살을 받고 동네를 한바퀴라도 돌게되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티망은 해발 2200m다. 하루 일일정도 힘들었고 또 해발 2,000m에 도달한 기념으로 '락시'라는 로컬와인을 한잔씩 나누었다. 야생 과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종맛이 났다. 달밧과 락시 그리고 네팔 담배 한개비로 길었던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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