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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8년전이다. 지역을 좀더 알고 건강도 챙기자는 마음으로 마을길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행없이 우리 부부만 걸었는데 두번째 부터는 이웃들과 같이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지를 했다. 예상밖으로 많은 분들이 걸음에 동참했던 첫길이 북곡리 윗뒤실 길이다.

처음 시작한 마을길 걷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중단되었지만, 2년전 좋은 친구들 덕분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덕분에 어제 다시 8년전 그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좀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난 8년의 세월을 지고 걸었다. 그때 손을 잡고 같이 걸었던 이웃 아이들은 다 자라 마을을 떠났고 40대 중반의 동행들은 오롯이 50대 중반의 중년으로 바뀌었다. 그땐 분명히 지역학교와 교육의 문제가 화두였었는데 어제는 건강이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투병중인 동행이 있어 더 그랬겠지만 어떻게 건강한 삶이 가능한지 그리고 현대 의료의 문제와 대체의학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산길 내내 이어졌다.

걷기는 아침 9시 명호면 북곡리 소재, 폐교된 북곡분교에서 시작했다.  목적지 재산면 남면리에 있는 역시 폐교된 남면분교장까지 10km의 거리를  청량산과 문명산이 만나는 능선을 타고 걷는 길이었다. 북교초등학교를 나와 윗뒤실까지 가파른 마을길을 걸으며 고개를 돌려 멀리 만리산자락의 마을을 건너다 보는 것도 좋았고, 청량산 북쪽 사면의 언덕길을 오르며  햇살속에 번지는 청량산의 자태를 바라다 보는 것도 너무 좋았다. 게곡에는 아직 두터운 얼음이 얼어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봄기운을 느낄수 있어 좋았고, 끝나가는 겨울과 아직 시작하지 못한 봄이 만나는 경계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어 더욱 좋았다.

윗뒤실 마을 입구 당나무 아래서 간식을 나누며 쉬다가 마을을 가로질러 비포장을 길을 접어들었다.  청량산 자소봉과 장인봉 사이의 하늘다리가 보이고 봄의 기운이 번지는 탓일까, 엷은 안개가 산을 휘감고 역광 속에서 겹겹히 드러나는 청량산의 자태가 너무나 신령했다.  길의 정상부위였던 지명이 '옥새이'에 펼쳐져 있던 빈밭이 인상적이었는데 새로 난 길은 옥새이를 거치지 않고 거리를 줄이며 바로 천애수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천애수를 지나며 뒤돌아 보는 천량산의 산새가 아름다웠는데 남면리 쪽으로 난데 없는 댐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100억원의 돈을 들여 작년 연말에 완공했다는데 댐의 용도는  '다목적 농촌용수 댐'이라고 했다. 완공된지 얼마되지 않아서겠지만 댐은 비어 있었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시야를 압도했다. 하지만 저 정도의 돈으로 산과 계곡을 밀어 만들어진 댐이  얼마나 소용에 닿을지는 알 수 없었다. 자연과 마을을 만나기 위해 걷던 중에 만난 이질적인 풍경은 뒷맛이 무지 썼다. 

이번 마을길 걷기는 아이들이 떠나고 없는 빈 교정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마을의 빈교정에서 끝났다. 아이들이 떠난 학교에서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며 끝나가는 겨울의 하루를 만끽했다. 이제 곧 봄이오면 교정에는 다시 풀이 자라고 들꽃이 피어나겠지? 그렇다고 떠나간 아이들은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햇살 가득한 봄 교정에서 좋은 친구들과 다시 한번 마을의 삶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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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걷기가 끝난뒤 쓴맛은  남긴 또 하나의 화두가 있었다. 소위 귀농자와 현지 주민과의 갈등에 관한 것인데 내 스스로 봉화에 농부로 정착한지 20여년을 넘기다보니 양쪽으로 부터 다른 입장의 말을 들어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나는 귀농인과 현지인을 나누는 것 자체를 반대할 뿐아니라, 각각이 상대를 이해하는 부정적인 내용의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농업농촌정책에서 귀농정책으로 특화해 차별적인 지원을 하는 방식의 정책에도 동의하지 않으며, 농업농촌의 문제가 해결될 때 농민의 재생산 문제는 큰 틀에서는 저절로 해소될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사실 귀농인에 대한 차별적 지원이 현지인에게는 박탈감을 주고, 현지인의 귀농인에 대한 시각을 왜곡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지방권력은 자신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가로막기위해 귀농인을 관변화하고 또 하나의 기득권으로 육성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현주민들은 귀농자들이 원재 자신의 몫이어야할 농업 예산을 따 빼아간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귀농자들은 자신이 막닥뜨리는 지방 유지나 토호의 특권적 행태를 현주민 일반의 경우로 확대 해석하게 된다. 대부분 갈등의 경우 각자의 인격이 문제겠지만 제도적 문제는 이와 같은 갈등을 조장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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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휘어 감는 낙동강 따라 걷는 길-명호에서 청량산입구까지 

일시 : 2016년 8월 13일 오전 9시~ 12시 30분

코스 : 명호면 낙동강 시발점 공원 - 고계다리-비나리거리-선유교-관창리 입구-북곡리입구-청량산도립공원상업지구

참가자 : 28명


명호면 소재지에서 낙동강은 시작된다. 

정확히 말해 춘양쪽에서 흘러오는 운곡천과 석포 소천을 지나오는 

명호천이 만나 비로서 하천법상 낙동강이라 불리는 지점이 

명호면 소재의 낙동강 시발점 공원이다. 

이날은 바로 낙동강 시발점공원에서 시작하여 청량산도립공원까지

약 10km를 3시간여에 걸쳐 걸었다.



올해는 유난히도 덥다고들 하지만

하필 이날은 올 여름 치고도 더위의 절정을 기록했다.

걷기 시작하면서 땀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서쪽으로 산을 끼고 돌아 오전내 그늘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무너지고

코스 곳곳이 때약볕에 노출되어 있었고 

늦게 걸음을 시작한 덕에 시간이 지날 수록 그늘은 줄고

햇살을 더 뜨거워졌다.



팥죽같이 땀을 흘리는 일행들에게

괜히 눈치가 보일 만치 힘겨운 걸음이었다.

하지만 서울서 오셨다는 봉봉조합원 가족인

건이라는 아이의 씩씩한 발걸음은 

지친 어른의 발걺음을 재촉했고 힘든 내색을 감추게 했다.

사실 이날 걸음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추억이 되었다.


이 힘든 계절을 걸었으니 앞으로

맞은 가을의 걷기가 벌써 기다려지고

어떤 난이도의 길도 거뜬히 걸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덤으로 얻었다. 


이날 코스를 굳이 평가하자면 

전반적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았고 

군데군데 코스를 알리는 안내문이 없거나 불확실해 불편함이 있었다.

또 사람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까닥에 

인적이 드물어 풀이 너무 자라 길을 개척해야만하는 곳도 한두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잘 관리만되면 걷기에 좋은 길이 될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강을 따라 걸으며 청량산이 주는 풍광을 두눈에 가득 담을 수 있어 좋았고

조금만 일찍 출발하면 오전에 청량산 산그늘이 코스 전반에 드리우는 점도 

여름 트래킹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봉화주민은 물론 아무런 사적 인연이 없는 영주나 인근 도시, 

멀리는 서울에서 오신 분들과도 단지 같은 길을 걷는 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동질감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던 이날 트래킹을 마치고 나니 

벌써 9월의 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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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문화산업 육성을 위한 포럼 발제


주민의 삶이 곧 자원이다

: 봉화 지역문화자원의 산업화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문화산업’이라고 하면 문화생산물을 상품화하는 현대의 산업형태를 말한다. ‘지역문화자원의 산업화’란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을 지역주민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기반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지역문화자원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상품화 혹은 산업화 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이해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두가지 중요한 문제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취사선택 가능한 ‘지역문화자원’의 외연을 확정하는 문제로 지역사회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의 가치를 발굴하거나 부여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구체적 상품 아이템 개발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두 번째 문제는 ‘산업화’의 성공 여부를 확정짓는 핵심적 측면으로 그 지속가능성과 ‘산업화의 결과가 초래할 지역주민의 변화된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문화 자원의 산업화 과정은 ‘지역 문화자원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하되, 전 과정에서 어떻게 지역주민을 참여시키고 주역주민의 이해에 입각해 사업을 수행할 것인가 하는 과제로 집약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을 가진 지역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지역‘축제’와 봉화를 대표하는 ‘청량산’, 봉화의 최대 문화 자산인 ‘마을’ 그리고 근래에 붐이 되고 있는 ‘걷기 길’만들기 사업과 봉화군이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있는 ‘봉화정자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자원 산업화 과정을 되짚고 동시에 각각의 단위 사업들과 관련한 단상을 정리해 본다.

축제

봉화군의 은어축제와 송이축제는 상당한 성공사례로 많은 상도 타고 봉화를 상징하는 축제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하지만 외부적 평가와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적잖은 반론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 부정적 입장은 면단위 간 혹은 농업/상업 간의 이해관계 대립에 연원한 측면도 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이들 양대 축제가 지역의 핵심 산업인 농업 자원에 기반 하지 않고 있고, 특히 ‘은어축제‘의 경우 지역 주민의 삶과 밀착된 파급력 있는 자원이 아니라는 데 있는 것 같다.

다시말해 봉화의 대표적 축제가 외형적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지역민의 삶과 괴리되어 지역민의 삶을 고양하지 못하고 지역민의 경제적 이해와도 일정정도 분리된 채 진행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은어축제, 송이축제는 현재의 성공에 머물지 말고 지역민에게 자긍심을 주고,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민밀착형’축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진행해야 할 것같다. 나아가 이들 대표 축제와 병행해서 이를 보완할 보다 주민밀착형인 작은 ‘마을축제들’의 발굴과 육성이 필요하다.

둘러보면, 우리 지역의 특유한 장례문화, 동제, 풋거 먹는 날(머슴의 날), 초롱계 등 마을축제화 할 수 있는 자원이 산재해 있다. 이들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하면 농촌공동체의 행복한 삶, 아름다운 마을살이를 드러내고, 주민의 삶을 고양하는 축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축제의 최종 목적이 주민의 행복한 삶이고, 주민의 행복한 삶이 바로 관광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비나리초롱축제’가 성공가능할까?)

현재까지 봉화군에 여러 걷기길이 생겼고 지금도 만들어 지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길을 만들고 관리하고 홍보하는데 많은 예산이 들어간 것에 비해 가시적 성과는 크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실 걷기가 붐이 되는 트렌드에 맞춰 걷기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미 선점된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의 성공 사례를 모방하는 방식으로는 그 성공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차라리 상품화된 ‘큰길’이 아니라 봉화지역에 맞는 무수한 작은 길을 만드는 사업이 보다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은길’은 예산중심 사업이 아니라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업으로 ‘돈’보다는 ‘공’이 더 들어가야 하는 사업이다. 나아가 걷기 트렌드를 이끄는 가치(반개발주의, 자연과 일치하는 삶, 마을공동체에 대한 그리움 등)에도 더 부합한다.

봉화만의 작은 길 만들기는 지금은 단절된 마을간 실핏줄을 잇는 작업으로 마을간 소통을 통해 침체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하면서 동시에 농촌과 도시를 잇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이 되지 않을까?

봉화를 대표하는 산은 청량산이다. 청량산은 유불선 문화의 보고로 알려져 있고 숱한 명사들이 다녀갔던 산이다. 그러다보니 100여 편의 유산기와 1,000여 편의 시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풍부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청량산에 대한 개발을 주로 하드웨어적인 개발에 머물렀고 그 문화적 내용을 자원화 하는 데 소홀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산행 중심의 단일한 방문객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공원 상가에서 매출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지역 농민들은 더더군다나 불만을 가지거나 무관심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비춰보면 청량산의 문화적 자원을 상품화하여 방문객을 다양화하고 등산객의 체류시간을 늘이기 위한 작업이 좀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유산기를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청량산을 불교 성지화 하는 작업 그리고 다양한 성씨의 역사적 명사들이 다녀간 길을 따라 안내문 등을 설치하여 문중 순례지 등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청량산을 단지 등반용 산이 아니라 문화적 명승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청량산 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청량산 박물관은 청량산의 문화적 자원을 집대성하여 ‘상품화’를 위한 기초 자료를 생산해내는 역할과 더불어 청량산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단위로 거듭나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량산 박물관을 관리사무소 부속 기관에서 독립시키고 대폭적으로 인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청량산 박물관이 청량산의 자연자원, 문화자원에 대한 조사, 각종 연구 및 전시, 방문객이 참여 가능한 상설 프로그램,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수행하는 실행기관으로 청량산 방문객이 반드시 들러봐야 하는 명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청량산 도립공원”이라는 상품에 마을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들마을이 보고 싶어, 아름다운 윗뒤실이 보고싶어’ 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 날 수 있도록 ‘청량산’에서 차지하는 마을의 위상을 제고해야한다. 사실 도립공원내 주민들은 ‘도립공원 청량산’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일 경우까지 있다. 도립공원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안될 뿐아니라 불편마저 초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이와같은 현실을 타개하기위한 사업들이 시작되고 있다. ‘북곡리 명품마을 사업’과 공원내 ‘농산물 홍보판매장 설치’ 등이 그것이다.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사업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더 나아가 ‘마을’을 청량산이라는 상품에 결합시키기 위한 작업들은 보다 더 심원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봉화 정자 투어

봉화 정자투어는 대표적인 봉화 관광 투어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봉화가 전국 최다의 정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성립가능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정자를 단일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힘들다. 정자들 간 투어도 성공적이지 못하다. 다시생각해보면 정자라는 ‘건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을 수는 없다. 따라서 봉화의 훌륭한 자산을 관광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정자가 마을살이에서 가지는 의미를 살리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을과, 마을사람의 삶과 결합된 의미의 정자를 생각한다면 부가적인 보조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정자’가 아니라 정자가 있는 ‘마을사람의 삶’이 상품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기에 덧붙여 ‘정자’를 현대화해서 현대인에게도 친밀한 공간으로 되살려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이 요구된다. 특히 유교와 연관된 유무형의 자원을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해석‘이 꼭 필요하다. 유교가 ‘충효교육’이나 ‘예절교육’에서 풀려나 스마트한 유교가 될 때만이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 과자축제 : 닭실 마을과 후토스 동산, 전통한과와 현대식 과자의 기묘한 결합이 가져온 작은 성공!)

마을

봉화의 최대 자산은 전통마을들이다. 이골 저골 아름답지 않은 마을이 없다. 앞으로 봉화의 최대 관광자원이 바로 이 마을들이 될지도 모른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공동체가 해체되면 될수록 전통적 마을 공동체에 대한 향수는 늘어날 것이다. 유럽인에게 네팔이나 티벳여행은 일생 일대의 꿈이다. 이곳은 현대문명에 반한 곳이고, 심원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지역이면서 동시에 ‘불행한’ 현대인 자신들과는 달리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봉화의 많은 마을들은 충분히 도시인의 로망에 부합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마을의 상품화는 이제까지 진행되어온 ‘체험마을’ 등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행복한 주민의 삶이 전제되어야만 진정한 행복을 찾는 도시인의 발길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마을이 어떻게 보전되고 어떻게 ‘변화’되어야할지 고민해야한다.

“주민의 삶이 곧 문화자원이고, 문화자원의 산업화의 주체는 지역주민이다.” 충분한 자료를 검토하고 세련된 입론에 입각하지 못했지만, 가능한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고, 나름대로 봉화 문화자원을 이용한 관광산업화 과정을 전반적으로 되짚어 보았다. 잘못되고 부족한 생각을 토론과정에서 바로잡고 채울 수 있길 빈다.

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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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지인들과 함께 겨울 청량산을 올랐다.
아침 9시, 인적이라곤 없는 청량산 입구에서 만나
눈길을 헤치고 응진전 까지만 올랐다가
청량사 지현스님을 뵙고 차 한잔 얻어 마시고 하산을 했다.
이번 산행에서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사시사철 아름다운 청량산은
그래도 겨울산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신록으로 우거진 성하의 청량산보다  
잎은 다 비우고 흰눈으로 정화된 겨울청량산 풍경이
더욱더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다.
청량산 눈덮일 산길을 걸으며 겨울의 깊이에 빠져들다가
어느새 저 산넘어 어디쯤 오고있을 봄을 맞을 꿈에 가슴 부푼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반가운 분들과 함께한
긴 여운과 깊은 서정을 남긴 즐거운 산행이었다.

겨울이 끝나가는 날,
아름다웠던 겨울 청량산 풍경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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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는날, 강건너 거무실을 걸었습니다.

늦은 아침, 살을 에는 추위가 한낮의 햇살에 누그러들자

간단한 간식을 챙기고 아내와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이런저런 핑게로 오랫동안 떠나지못한 마을길 순례를

이번은 사전 계획도 없이 갑자기 나서게 되었습니다.

 

거무실은  비나리마을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입니다.

비나리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쪽으로 오백미터만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초방산 가는 길이 나오는데, 바로 그 반대편 강건너

보일듯 말듯 골짜기에 숨어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몇년전에야 겨우 전기가 들어가면서 언론도 타고,

그 덕분에 외부에 알려지게된 거무실은

직선거리로 따진다면 국도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마을앞은 낙동강으로 막히고 마을뒷길은 청량산의 한자락인

문명산에 가로막혀, 차로는 당연히 접급할 수도 없고

걸어서도 접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세상에 숨겨진 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비나리마을에서 출발해서 옷갓재를 지나 고계다리를 건너고,

고계리 마을을 관통하다 오른쪽으로 틀어 산길을 접어듭니다.

고계리를 지나 30분쯤 산길을 오르다보면

정상쪽으로 난 가파른 비포장길과 오른쪽 강쪽으로 나있는

오솔길로 나누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가파른 산길에는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차바퀴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산이 깊어질수록 그 길마저 사라집니다.

매서운 추위가 살을 애는 한겨울에도 등에 땀이 흐를 만치 걷다보면

그 길의 끝에서 민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세상이 싫어서 이렇게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가 싶기도하고, 어쩌면 옛 고향집을 꾸며

간혹 들러서 쉬어가는 집같기도했지만

아무리 불러봐도 사람은 나오지 않고 빈마당엔 겨울 바람만 가득했습니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강쪽으로 갈라진 오솔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첩첩산중이지만 그래도 가는 길목마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가쉰 폐가들을 만날 수 있고,

잘 손질된 잔디가 덮인 무덤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대신해 객을 반깁니다.

 

풀숲을 더듬어 없는 길을 만들어 30분쯤 더 걷다보면

이제는 포기하고 돌아서야지 하고 마음먹기 시작할 즈음

오랜동안 그리도 가 보고싶었던 거무실 아랫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옛날에 살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는 두어집이 남아 동네를 지키지만

가파른 산능선에 심겨진 대추나무와

겨울 찬바람에 마른 고추댓궁이 겨울 햇살을 받으며 천연덕스럽게 지난 여름 받았을

따뜻한 사람의 손길을 이야기해 줍니다.

 

두어채의 폐가와 사람사는 흔적이 있는 또다른 두어채의 집이 전부인 마을에는

인기척이라곤 찾아볼수 없고

낯선 객을 반기는 강아지 한마리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명산자락이 모은 빗물이 지나는 거무실 계곡은

도연명이 찾던 무릉도원이 꼭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치

선계를 닮아있습니다.

큰물에 씻긴 집채만한 바위로 이루어진 거무실계곡은

언제 다시한번 꼭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찾고 싶습니다.

계곡을 이루는 바위위에 작은 상을 차리고 오늘은 만나지 못했던

거무실 사람들과 잔을 비우며 물소리와 함께

거무실 사는 이야기라도 듣고싶습니다.

 

한해를 보내야하는 즈음,

거무실을 걷기는 큰 행복을 주었습니다.

* 비나리마을에서 거무실까지 왕복 10km // 일부구간 난코스

* 소요시간 4시간

* 거무실마을 도착후 낙동강을 따라 북상, 고계 다리에서 강을 건널 수 있지만 비나리마을 앞 구간에서 강변을 따라 지나기에 어려운 코스가 있다.

* 고계리에 차를 세워두고 걷기를 시작하면 넉넉잡아 3시간이면 거무실 마을 걷기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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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청량산은 요즘 단풍이 한창입니다.

도시민들은 아름다움을 더해가는 가을 단풍으로 눈을 닦고,

서늘한 산공기로 떼묻은 마음을 씻길 원해서일까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청량산길 가득 넘쳐났습니다. 



그렇게 좋은 날, 봉화군은 청량사 입구에
우리농산물 한마당 장터를 열었습니다.
청량산비나리마을은 11월말까지
임대료 30만원을 내고 부스를 하나 얻어
다양한 마을 농산물을 가지고 참가를 하고 있습니다.
더덕과 도라지, 누렁호박과 죽호박,
호두와 감자 고구마 등 고추나 땅콩 등을 특화해서  
판매하는 다른 부스에서 다루지 않는 각가지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는데
저 역시 하루는 당번을 맡아 부스에서 판매를 해 보았습니다.

하루종일 청량산에서 등산객들과 더불어 흥겨운 하루 낮을 보내면서

이웃 부스를 들러 인사도 나누고 농산물 구경도 하고,

이집저집 사과도 얻어먹고 맛도 비교도 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랜만에 도시민을 상대로 농산물 장사도 하면서,

우리 농산물이 갖는 장점과 한계,

우리의 농산물 유통방식이나 소소한 손님 응대의 기술까지,

이것저것 많이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당번을 서는 날은 아침 일찍, 장터로 나서는 길에 밭둑에 버려지다시피 자라고 있는

애호박 24개를 따가져가 한개 1000원씩 내어놓았더니

예상밖으로 쉽게 판매가 되었습니다.

이날 저 개인의 농산물 판매액은 호박24개 2400원이 전부였지만

더덕이며 도라지, 오미자와 상추 등 총 45만여원어치를 팔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적은 판매량은 아니지만, 좀더 농산물 품목을 다양화하고,

포장이나 가격결정 등에서 세심함을 더한다면

내년부터 권역에 농산물판매장을 운영하는데

좀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듯 실었습니다.



지금까지 도립공원내에서 판매행위가 원천 금지 되어있다는 '공원법'문제로
지역내 농민들의 농산물 판매마저 금지되어있습니다만
봉화군 박노욱 신임군수가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지역농민을 위해 장터를 개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역농민의 한 사람으로 무조건 환영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도 처음여는 장터인 만치 이런저런 개선점도 있어 보입니다.


총 10여개의 부스중 절반 가까이가 사과판매 부스다보니
내부 경쟁이 심해 판매자간 조금의 다툼이 생기기도 했고
그리고 대표작목반으로 참가를 해서
특정한 단일 농삼물만 판매하는 부스는 빈약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여는 장터다보니 작은  미비점이 보이기도 했지만
내년에는 더 치밀히 준비해서 봉화군의 대표 농산물을 판매도하고
전국에서 몰려 온 등산객에게 지역농산물도 홍보하는  것은 물론
지역농닌이나 농민단체가 교류의 장이 되는
알찬 장터가 되어나갈 것이라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달 말까지 계속열리는 청량산 농산물장터에
더욱 많은 손님이 찾아들고 지역 농민의 농산물이
좋은 값에 많이 팔려나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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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명호면 청량산도립공원 서쪽 맞은편에 만리산이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로는 명호면 관창리와 상운면 신라리에 걸쳐있는 만리산은
해발 792m로 정산부근에 비교적 완만한 지형의 넓은 농토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직접 가보기 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들만치 
산 정상부근에 넓은 농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밭은 옛날부터 소 9마리가 갈아야 할 만치 넓은 밭이라고
구우전(九牛田)이라 불려 왔다고 합니다.
지금도 주민들은 이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구우전을 중심으로 10여가구가 삶의 터전을 일구며 마을을 이루어 있는데
1950년대는 빨치산과 내통한다고 한 때 마을주민 모두가
강제 이주당하기도 했고,
1960년대는 울진삼척 일대의 독농가들이
무장공비와 내통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이 마을로 강제 이주당하기도 한
특이한 내력을 가진 마을입니다.
지금도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집단이주민 주택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마을은 최근까지 고냉지 채소재배단지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고냉지 채소를 많이 재배하기도 하지만 
10수년 전부터 사과과수원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봉화군내에서도 사과 재배단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몇년전 마을 작목반에서 재배한 사과가 [탑푸르트]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국내뿐 아니라 수출용으로도 각광을 받는
품질좋은 사과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저가 이 마을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이유는 사과맛이 아니라
마을과 과수원의 풍광때문이기도 하고
그 마을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 때문입니다.
10여년전부터 마을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귀향을 하고
지금은 40대의 젊의 친구들이 4가구나 고향마을을 지키며
아름다운 과수원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처자식과 더불어 만리산 기슭에
아름다운 과수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타인의 가슴에 온기를 전해주기에 충분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서 더욱 아름다운 만리산 과수원은
낙동강을 사이로 청량산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마을의 동쪽 기슭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강을 건너 청량산이 우뚝솟아 마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시사철 밭에서, 집에서 고개만 돌리면
멀리 청량산과 청량산 기슭에 자리잡은 또다른 마을인
윗뒤실마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시사철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지만
특히나 사과꽃만발한 봄이나
과수원의 사과가 익어가는 늦가을이면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마을이 있을까 싶을만치
구우전 마을의 아름다움은 그 극에 도달합니다.



그러다보니 봄이면 사과꽃 그늘아래서 
봄날의 하루를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도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아마추어나 프로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진가들이 몰려듭니다.
가을이면 사과다기 체험을 하기위한 도시민의 발길이 
또 한번 몰려듭니다. 아직 마을까지 대형 버스가 올라올 수 있는 
도로 여건은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마을아래에서 승용차나 승합차,
어떤 때는 동네 트럭에 나누어 타고 사과수확체험에
나서는 도시민의 상기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오늘 그곳 구우밭마을의 과수원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몇일전 우리집 사과나무 심기를 도와준 친구네 과수원에서
추가로 조성하는 사과밭의 나무심기 작업을 하였습니다.
삽질에 허리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고개를 들어 멀리 청량산을 바라다 보면
어느덧 육체적 고통이 가쉬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 더욱 아름다운
만리산 사과과수원에서 보낸 오늘 하루.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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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나리농장에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농사 13년 동안 몇번을 생각하고 망설이던 사과농사를
좋던 사과값 다 떨어지고 나서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0~40년전에 사과농사는 많은 농민이 선망하는
돈되고 폼나는 농사였다고 합니다.
사과과수원을 조금만 가꾸면 자식 몇 대학보내는 것이
문제없을뿐 아니라 몇몇 농사가 잘된 사람들은 서울같은 도시에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과농사는 아무나 할수 있는 농사가 아닙니다.
나무를 심고 첫수확까지 3~4년이란 시간이 필요한데다
농장은 사과농사를 할 만한 토질과 기후조건이 되는 곳이어야되고
그리고 전지나 시비 기술도 뛰어나야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흘러 사과과수원이 늘어나고,
사과재배기술도 변하면서 왜성밀식재배라는 
신기술이 도입되는 등 수확량도 늘어나고
무엇보다 수입과일이 사시사철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그 좋던 사과값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는 어제 M26대목으로 250여그루의 부사와
100여그루의 홍로, 80여그루의 아오리를 심었습니다.
사과를 심기로 결정한 이유는 돌많고 경사진 밭에
일반 경작물을 재배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자상거래 위주로 농산물을 판매해오던 저에게
사과라는 품목의 판매가 더 용이하다는 면도 있었습니다.
또한 늦어도 내년 중반까지 비나리마을에는 '마을활성화센타'가 들어섭니다.
마을 방문자가 늘어나면 이분들을  타킷으로 한
사과따기 체험농장으로 활용도 할 계획입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웃 만리산에서 아름다운 사과과수원을 가꾸고 있는
한 친구 금동윤씨의 권유때문입니다.
멋진 사과과수원를 꾸리면서 지역사회에서 많은 봉사도 하는 그분의 과수원은
멀리 청량산이 내려다 보이는 만리산 산꼭데기에 위치해 있는데
한번씩 갈 때마다 멋진 과수원이 부럽기 짝이었었습니다.
매년 얻어먹는 사과도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과수원을 가꾸시는 분이 
사과재배와 관련한 모든 자문과 기술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물론 그분만 믿고 시작할 수 있는 사과농사가 아니지만
이렇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준 그분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과나무를 심는 작업에는 이웃 젊은친구들이 대거 같이하셨습니다.
만리산 근동윤씨 내외, 만리산 여포도령님, 비나리 꺼꾸제 정형,
비나리양지마 민서네 내외,  그리고 나무아빠가 같이했는데
누구보다도 우리앞집 형님이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모든 분의 정성이, 아름다운 마음이 그대로 우리집 사과나무를
키우는 밑거름이 될것입니다.
맛있고 이뿐 사과 줄주렁 달리는 날,
제일 먼저 같이 사과나무를 심은 이웃께
한아름씩 우리집 사과를 선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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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봉화 산골 마을 걷기]가 있었습니다.
화창한 하늘에 바람마저 숨을 죽인 아침,
급히 김밥을 싸고 출발예정지로 잡은 청량산약초농장으로 달렸습니다.

오전 9시45분, 우리 부부가 도착을 하고보니
먼저 도착한 분은 하나도 없고
집주인마저 볼일이 있어 집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혹시 이러다가 우리부부만 가는것 아냐?'라며
우리 부부는 마주보고 서로 질문을 던졌지만
누구도 섣불리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0시가 다가오자, 전날 전화로 동행을 청해오신
이재현선생님을 시작으로, 집주인인 욱이아빠, 준우네 내외,
그리고 곧이어 예연이네 5식구와 한걸음님이 도착했습니다.

지난주 첫 걸음때 저희 부부만 걷기에 아쉬워,
혹시나 하고 공지를 했지만 과연 누가 동참을 할까
저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저의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갔습니다.
초면이신 분까지 포함해 무려 13명의 인원이
한 길을 걷기시작했고,
그리고 동행의 식사를 모두 준비하신다면
늦게 출발하신 솔비네 다섯가족까지 합해 무려 18명의
큰 무리가 형성되었습니다.

 

먼저 약초농장에서 오가피 엑기스를 한잔 나누고,
초면이신 분과 인사를 나눈 일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리를 지어 걷기시작했습니다.
북곡을 지나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어
<허리꺽기>라는 재미난 이름을 가진 동네를 지날때쯤,
솔비네 차가 도착을 해 아이들을 싣고 먼저 윗뒤실로 떠났습니다.

 

어른들만 남아 윗뒤실까지 가는 길 중간중간에 멀리 관창과 만리산,
그리고 청량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과 산야의 풍광에
눈을 씻고, 마을을 씻고,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생명의
고마음을 오는 봄기운과 함께 절실히 느끼면서,
서로가 있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풍성하고 가치로운지
그 고마움을 짓궂은 풍자에 담아 나누는 걸음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초행이신 이재현선생님의 사정 말씀을 듣고
그리고 한걸음님 장가를 독려하는 짓궂은 농담으로
산길 험한줄 모르고 웃음으로 거뜬히 윗뒤실까지 올랐습니다.

 

10여년전 저의

자식이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었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라욌었던 윗뒤실은
항상 저의 기억속에 하나의 이상향, 일종의 무릉도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윗뒤실은 그만치 속세와는 다른 신선만이 살듯하고,
누구라도 살면 곧 신선이 될듯할
그런 선기가 서린 마을입니다.
세상과 동떨어져 하늘과 맞닿아 있는,
그리고 청량산이라는 영산의 정기를 받은 윗뒤실은
세상의 어떤 마을보다 더 북국토를 닮아 있습니다.
윗뒤실에 머문 짧은 시간, 저 역시 신선이었습니다.
 


윗뒤실 당나무둘레에 앉아 쉬면서 오늘 꼭 같이 했어야 했지만
바쁜 농사일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던
[청량산여동생] 정근영씨를 만나 잠시나마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쉬 헤어지기가 아쉬운 한걸음님의 기대를 물리치고
산행은 계속 이어져,
윗뒤실을 떠난지 1시간 만에 옥산에 도착했습니다.
'옥세이'라고 불리는 옥산은
눈짐작으로도 사오만평을 족히 되어 보이는
묵은 산전이 한때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 사실보다는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더 직접적으로 전해주는듯
쓸쓸하고 허허로웠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오늘 걸은은 재산을 지나 다시 청량산도립공원으로 향하는
공원 뒷길의 중간쯤에서 끝이 났습니다. 

오늘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오늘 걷기에는 7명의 어린이가 같이 했습니다.
일부 차로 이동을 하고, 윗뒤실에서 옥산까지만 왕복을 했지만
어린아이들에게 쉽지않은 걷기 코스였습니다.
오늘 같이한 솔비, 민규, 민기, 예연이, 시연이, 서연이 어린이에게
칭찬을 보냅니다. 특히 어른들과 같이 코스를 완주한
김청년 어린이에게는
더 큰 칭찬을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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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30분 북곡입구 청량산약초농장 출발

12시      윗뒤실마을 도착

12시 30분 위뒤실과 옥산 중간지점에서 점심식사

오후1시경 옥산 도착

오후3시 재산 남면도착

3시 30분 재산에서 청량산 넘어오는 길 중간에서 차를 탑승.
청량산약초농장에 3시45분경 도착

* 청량산입구에서 출발  북곡을 지나 윗뒤실, 옥산, 재산, 다시 청량산 입구까지 일주시 약 20km에 5~6시간 코스로 하루 마을걷기 코스로 최적 

 

 

 

출발직전 청량산약초농장 마당을 나서는 동행들입니다.

이렇게 많은 식구가 동행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출발 5분뒤, 북곡분교앞길을 지났습니다.

뒤에 쳐진 꼬맹이들이 오늘 산행을 잘 해 낼까 자못 걱정스러웠습니다.

 

 

 

 

본걱적인 산길로 접어들기전 좌축의 언덕에 욱이 할배 묘가 있는 언덕 풍경입니다.

 

 

 

 

자, 드디어 윗뒤실을 향하는 본격적인 산길입니다.

아이들과 산행을 해본적이 별로 없는 준우엄마같은 분이

가파른 산길을 걸어낼까 걱정스러웠습니다.

 

 

 

멀리 갈평과 관창이 바라다 보이는 중턱쯤을 지나며 왔던 길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저의 마음속에선 선계이자 불국토이기도 한 윗뒤실입니다.

가구수는 많아 보이지만 세월과 함께 사람은 떠나고

집만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 집 하나하나에 부부와 그 아이들, 그리고 그 부부의 부모들이 함께 사는

그런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 꿈은 버릴 수 없습니다.

 

 

 

 

윗뒤실 도착 직전 멀리 바라다 보이는 청량산의 하늘다리입니다.

사람을 모으는 명소로 자리 잡은 하늘다리지만,

개발이 구체적으로 지역주민에게 주는 혜택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습니다.

개발과 보전의 긴장을 넘어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번영하는 길은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윗두실을 떠나며 마을 산전 풍경을 담았습니다.

저 거친 산전을 일구어 자식낳아 먹이고 가르친 엣 선조들의

가쁜 삶이 느껴집니다.

 

 

 

 

 

 

 

 

 

윗뒤실을 떠난지 한시간도 안되어 도착한 옥산입구에 있는 당집입니다.

세월에 눌려 스러져가는 당집이지만

그 누추함에 굴하지 않는 고집스런 기운이 남아 있습니다.

 

 

 

옥산재사를 지나 옥산의 산전 꼭데기 까지 길을 잘못들어다가 내려오는 길입니다.

 

 

 

그림 순서가 바뀌었네요.

걸음을 시작한지 2시간만이 12시 30분,

위뒤실과 옥산 중간쯤에서 점심을 펼쳤습니다.

솔비엄마가 무려 스무개의 김밥을 준비해 오셨고,

준우네가 게란과 떡을 가져왔습니다.

거기다 각자가 가져온 조금씩의 음식을 합쳐놓으니

모두가 다 싣컷 먹고도 많이 남을 정도로 풍족한 식사였습니다.

 

 

 

 

 

 

 

옥산재사가 있는 마을 입구 풍경입니다.

 

 

 

 

 

 

 

 

 

 

 

 

 

 

재산을 지난 마지막 청량산도립공원 북쪽 물티재를 향해 오늘의 마직막 여정입니다.

끝까지 같이한 김청년 어린이가 자랑스럽습니다.

<0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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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일요일에 2번째 [봉화산골마을 걷기] 코스를 정했습니다.
청량산 뒷편, 북곡리에서 출발하여
윗뒤실을 넘어, 갈평을 지나 재산까지 약 10km코스입니다.

윗뒤실은 저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중에 하나입니다.
선계가 있다면 바로 윗뒤실 같은 마을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정에 따라 재산에서 걷기를 끝내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발지인 북곡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
신명이 뻗치면 걸어서 북곡까지 약 25km코스를 완주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표를 가진 걷기도 아니고, 서로를 실험하는 고역도 아니기에
그때그때 사정이나 기분에 따라 코스의 장단은 조정할 수 있습니다.

체력에 자신없어 참가하지 못할 일도 없고,
자신의 책임으로 코스를 줄여야해서 미안해 할것도 없고,
충분히 체력이 남아도는데 코스가 너무 짧아 아위워 할 것도 없는
그야말로 맺힌데 없는 물렁한, 그래서 누구나 같이 할 수 있는
[봉화 산골마을 걷기]입니다.

같이 하고픈 분은 일요일(3월8일) 오전 10시 북곡리 입구
청량산 약초농장(정도윤님댁)에서 만나 뵐수 있기를 기원드립니다.

 이번주 정근영아씨가 같이 하신답니다.
니사금님도, 나무네숲님도, 청년아삐님도,
통가스님도 한걸음님도, 섭섭이님도 다 그립습니다~

 

걷기를 원하시는 지역주민이든, 도시민이든
누구든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처 017-345-6234 비나리농장주~~

* 출발시간 : 2009년 3월 8일 오전 10시

* 출발지 : 북곡리 청량산약초농장

* 코스 : 짧게는 10km / 길게는 25km

* 준비물 : 김밥이나, 도시락, 컵라면에 온수, 기타 과일이나 간식거리, 물 등
             그냥 오시어 나누어 먹고 같이 조금 배고파도 됩니다^^*

* 기타 : 비가 오거나 하면 취소합니다.

<200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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