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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들른 봉화장은

연두빛 머금은 봄나물 향기가 넘쳐나고

막 농번기를 끝낸 산골할머니의 여유로운 발길이 모여듭니다.

함지박 가득 미나리며, 철늦은 두릅이며,막 캐온 도라지가 넘쳐나고

멀리 남쪽지방에서 올라온 햇마늘이며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풋고추가 작은 소쿠리에 이쁘게 담겨

산골할머니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봉화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간

산골짜기 끝 어느 마을에서

평생을 호미질로 산전을 일궈 자식 먹이고 가르쳤을

등굽은 할머니께서도

봄산 가득한 뻐꾸기 소리에 가슴 울렁이고

갑자기 세상사 궁금한게 늘어나

굽은 지팡이 딛고 산굽이 걸어,

한참을 기다린 버스를 타고 봉화장엘 나왔습니다.


할머니 살아 생전 인연들이 갈수록 줄고,

이제 귀도 눈도 어두워, 기억마저도 가물거리지만

그래도 남은 기억의 한 자락을 움켜지고

먼 친구들의 안부를 나누고,

이제 인적이 사라지고 녹음방초만 우거진

친정마을 소식을 더듬어 봅니다.

     

한번씩 들러는 봉화장에서

나는 눈을 씻고 마음을 씻고

다시금 사람사는 맛과 멋을 되찾는 의식을 치룹니다.


늦은 봄, 봉화장에서 여러분을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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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했다해도, 설날의 정취가 옛날 같지가 않다고해도
비나리마을  떡방앗간은 옛날 못지않은 분주함과 넉넉함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설날이 이삼일 앞으로 다가오면 명호면 골짜기 골짜기마다 
대여섯가구씩 모여사는 산산오지마을 할머님께서 
바리바리 떡쌀을 지고 들고 [명호 떡 방앗간]으로 모여듭니다.
이골짜기 저골짜기 할머니께서 모여드는 그만치
명호 방앗간에는 이 마을 저 마을 기쁜 소식, 슬픈 소식,
이런 사연 저런 사연들이 쌓여갑니다.

[명호떡방앗간]은 몇년전 비나리마을의 새 주민이 된 
나무네가 꾸리는 방앗간입니다. 
명호면 소재지에 하나밖에 없는 방앗간을 운영하시던 전 주인내외께서
오랜전통을 이어오던 방앗간을 나무네한테 물려주게 된 것입니다.
나무네는 방앗간의 이름에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추가했지만,
명호떡방앗간의 떡맛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옛주인 내외께서 고객부터 기지떡 만드는 비법까지
어느 전통 하나 버리지 않고 모두 전수해 주셨기 때무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명호떡방앗간]은
젊은 새주인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었고
명호사람은 그냥 [아름다운방앗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방앗간]은 그렇게 아름다운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방앗간이 '아름다운'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아름다운 방앗간]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모여듭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들어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풍성하게 이루어나가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방앗간]에 설대목이 시작되면
명호면 젊은 친구들이 하나둘 [아름다운 방앗간]으로 모여듭니다.
역계골 멋쟁이 총각이 할머니들의 주문사항을 체크하고, 
꾸구리 이장인  어진이 아빠가 떡가루를 반죽합니다.
나무엄마 아빠가 이리뛰고 저리뛰고 다된 떡을 포장하고 떡값을 받는 사이
이웃 고계리 청량산장 주인이신 예연이 아빠가 가래떡을 뽑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방앗간]은 아름다운 이웃이 모여
설날 대목을 함께 치룹니다.
어느 한 사람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나무네 대목 큰일을 함께 치루기위해
나무네 [아름다운방앗간]으로 모여든 것입니다.
세상인심이 변하고 두레의 전통이 사라져가는 농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방앗간]은 이웃간의 풍성한 정으로
산골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인심을 이어나갑니다.

떡을 기다리며 방앗간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않은 할머니들은
손자손녀들 보고싶은 마음을  한 보따리 풀어놓으시고
아들자랑 딸자랑에 하루해가 저문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방앗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이웃이 함께 만들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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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에도 일년에 두 세 번은 사람이 붐빌 때가 있습니다.

청량산과 낙동강을 끼고 있고, 낙동강과 나란히 마을 앞을 지나는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 유교문화권이 이어지는 위치한 비나리마을은 여름 휴가철 한 달만은 외지인의 발길이 넘쳐 납니다.


그리고 두 번의 명절, 추석과 설날이 되면 어린 시절을 마을에서 보내고 철들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대구로 부산으로 일자리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 출향민들의 귀향발길이 넘쳐납니다. 일년 내내 아이들 울음소리도, 어른들 웃음소리도 드문 마을에 명절 한 때 나마 왁작지걸, 사람 사는 소리와 온기로 넘쳐납니다. 마을 길 여기저기에 승용차들이 서있고, 이웃 할머니의 좁은 마당가에도 반짝이는 승용차가 그 집의 자식들 수 만치 들어서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 세대전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 온 마을을 구석구석 쓸고 다니며 고함을 치고, 싸우고, 웃고 그리고 여기저기 저지레를 해 놓습니다.

설날을 기다리는 산골마을 주민들은 풍요로웠던 지난 시절이 되살아나는 그런 신명 넘치는 꿈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산골 마을 비나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바람이 지나가듯 이삼일 그냥 스쳐 지나갈 명절이지만 그날이나마 옛날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으십니다.  집집마다 아홉이나 열씩 자식을 두고 앞마당에 강아지 두어마리와 외양간에 소한마리 그리고 뒷마당에 풀어놓은 닭까지 대여섯마리가 모두 한식구로 살았던 옛날이 그리우신 것입니다. 


<이웃 갈골의 민순기 어르신 부부>같이 늙어가는 산골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옛날을 추억하고 새날을 꿈꾸시는 명절을 코앞에 둔 비나리마을 할머님들은 세상 누구보다 바빠집니다. 설을 쇠고 돌아가는 자식들 차 드렁크에 누렁호박 두어 덩이와 깨끗이 골라 곱게 빻은 고추가루 한 보따리, 그리고 참깨와 콩은 물론 지난 가을 손수 산과 들을 헤매며 캐서 말린 산나물 한 꾸러미까지 차곡차곡 채워주기 위해 지난 한해 가꾸고 다듬은 농산물을 미리 챙깁니다. 기름방에 들러 참기름이며 들기름을 짜고, 고추방앗간에 들러 고추가루를 빻습니다. 마음은 바뿐데 그렇게 준비가 되어가는 만치 설날은 내일 모레로  다가오고, 혹시라도 빠뜨린 것이 없나 헛간을 둘러보고 부엌을 둘러보고 미리 싸둔 보따리를 다시 풀어봅니다.


설날이 눈앞에 다가오면 할머니 마음은 더욱더 바빠져가고 기다림에 지쳐 초조하기 조차 합니다. 아직은 두세 밤은 더 자야 자식이며 손주들이 들이닥칠 것인데 세월은 일년 열두달이 그리도 잘 흘러가다가 왜 명절을 코앞에 두면 이리도 느려터졌는지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을은 할머니 마음에도 아랑곳없이 명절분위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동네거리는 여전히 고적하고 찬 바람만 가득한 채 사람 발길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이동슈퍼라도 들어와야 하는데 명절 대목이라도 보러 어디 장터 한 모퉁이에 전을 펼쳤는지 일주일에 두어 번씩 마을을 들르던 이동슈퍼마저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래도 간혹 어디 택배사 트럭이나마 들어오기는 하는데, 명절을 코앞에 둔 택배는 대부분 아쉬운 사연이 묻어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귀향을 하지 못할 사정인 자식이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보내는 선물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나마도 없으면 자식도 아니겠지만, 그냥 선물 하나 받고 자식얼굴도 못보고 명절을 나기에는 할머니 가슴에 묻힌 그리움이 너무나 큽니다.

마을에는 없어졌지만 산골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이웃이 넘치고 정과 사랑이 넘치던 옛 마을의 모습에 꿈처럼 남아 있습니다. 명절만이 아니라 언제가 비나리마을은 할머니의 뇌리에 남아있는, 이웃의 번잡한 삶이 내삶과 엉켜 두루 즐겁게 살아가던 옛 마을의 영화가 재현되길 마음속 깊이 빌어봅니다.    

올해 비나리마을 설날은 그 어느해보다 풍요롭고 정감넘치는 그런 명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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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어디에서도 마찬가지 겠지만
산골에서 겨울나기에는 꼭 필요한 두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배를 불릴 양식은 밀할 것도 없고 
몸의 체온을 지켜줄 뗄감이 그것입니다.
가을 걷이가 마무리되면 산골 농부는 본격적으로 산을 오릅니다.
죽어 말라 비틀어진 나무부터, 지나치게 우거진 숲의 잡목까지
그리고 오고가는 농로나 밭을 가리는 성가신 나무까지 
닥치는데로 베어서 집으로 나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오는 나무로는 겨울나기가 쉽질 않습니다.
사실 집만해도 옛집이 아닙니다.
기어들어가고 기어 나오는 초간 3간이 아닌다음에는
나무로 난방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뗄감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춥게 살고 아껴가며 불은 뗀다고해도
겨울 3~4달동안 1톤트럭으로 7~8대는 들어가야합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온돌아궁이가 아니고,
축열식 온수파이프방식의 난방을 하는 경우는 거의 '감당이 불감당'입니다.
우리집에도 작년 5월달에 나무보일러를 설치했습니다.
군청에서 석유연료 절약을 위해 보조금까지 주고 보급하는 덕분에 
보조 100만원 자부담 150만원짜리 나무보일러를 설치하게된 것입니다.

그전에 산을 개간하여 밭을 만들면서 베어놓은 나무들이 있어
가을에 되고 겨울이 와도 아무걱정없이 따뜻한 물을 만껏 쓰고
따뜻한 방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추위가 몰아닥치자 어지간히 나무를 해되지 않고서는
한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미리해 둔 나무는 떨어져가고 할 수없이, 눈길을 헤치고
산속을 헤메며 나무를 하러 나섰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올 한해 겨울은 쉽게 나게 되었습니다.
마을 인근의 산들에서 숲가꾸기가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벌목 전문가들이 산을 돌아다니며 잡목을 베고 우거진 숲은 정리하면서
그렇게 치워진 나무를 마음대로 싣어가도록 허락했습니다.

덕분에 어제  1톤 트럭으로 2대를 포함해 7~8대의 나무를 싣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적어도 내년 가을까지는  뗄감 걱정을 들었습니다.
그냥 배부르게 먹고 뜨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봄이 오기만을 가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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