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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은 없었지만 베시사하르 최고급이라는 호텔 투쿠체서 온수로 샤워를 하고 숙면을 취한뒤  예약한 아침을 먹기 위해 다이닝 룸으로 내려왔다. 전날 마이크로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8시 출발을 위해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버스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배낭까지 다 챙겨 내려왔는데 호텔 종업원들은 그제사 움직이기 시작하는 눈치였다. 식사를 예약해 둔 시간을 넘기고도 전혀 서두는 기색이 없었다. 결국 시간은 촉박해지고 예약했던 메뉴를 취소하고 간단한 누들수프로 급히 아침 허기를 떼우고 호텔을 나섰다.  호텔 앞 도로에서 이내 도착한 마이크로 버스 지붕에 배낭을 싣었다. 마낭에서부터 계속 마주쳤던 호주 청년 커플도 같은 호텔에서 묵고 똑같이 아침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같은 마이크로 버스에 짐을 싣었다. 


 
출발시간을 넘긴 마이크로버스는 승객에게 타라는 말도 없었고 다른 승객들로부터도 짐만 받아 지붕에 싣었다 . 짐을 싣던 버스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갑자기 출발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어떤 상황인지 몰라 파샹에게 물어봐도 자기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단다. 호주 커플은 우리를 쳐다보고 우리는 호주 커플을 쳐다보며 서로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노력했지만 도대체 상황파악이 되질 않았다. 막 깨어나는 베시사하르 거리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차가 떠난지 30분이 되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어 파샹을 앞세워 버스매표소로 가 물어보니 별거아닐거다, 차 기름 넣으러 간것 아니냐는 확실하지 않은 답변을 전해줬다.


더이상 자세한 상황 파악을 포기하고 버스가 떠난 자리가 시야에 들어오는 반경내에서 그냥 베시사하르 거리를 구경하고 있으니 9시 30분이 넘어 우리 배낭을 싣은 마이크로 버스가 원래 떠났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기사도 조수도 아무런 해명이 없고 1시간 30분을 기다린 네팔리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표정이다. 출발시간이 어떻고 승객에게 사전 설명을 해야되는것 아니냐는 식의 논쟁은 전혀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포카라에 오늘 가기만 하면 되는것 아니냐는 승객들의 느긋함이 부러웠다. 나역시 출발 시간을 아무 설명없이 1시간이상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한 원망보다, 그나마 도망가지 않고 버스가 돌아와준게 어디냐는 안도감이 더 컸다.

버스는 이내 출발했지만 시가지를 벗어나기까지 조수는 계속 문짝에 메달려 '포카라'를 외쳤다. 몇명의 승객이 더 탔지만 남은 좌석이 한두개 남은 상태에서 시가지를 벗어났다. 한 5분이나 달렸을까 핸드폰을 받고 통화하던 기사는 갑자기 좁은 길을 억지로 유턴을 해 다시 베시사하르로 향했다. 시내에 들어선 버스는 한참을 달려 주택가 골목까지 들어가 중년부인 한분을 태웠다. 순전히 짐작이지만 사적으로 아는 사람의 연락을 받고 승객을 더 실으러 돌아온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승객들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고 ,기사 역시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버스를 예정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늦게 출발시키거나, 버스의 노선을 벗어나 기사 마음대로 차를 운행해도 되는, 이 모든 것이 용납되는 네팔의 교통문화가 황당하고도 재미있었다.



베시사하르에서 포카라까지 이어지는 풍경은 슬픈 아름다움이 넘쳤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계단 논들, 흙먼지 날리는 길가의 낡은 주택들, 떼국물 떨어지는 아이들의 차림... 소읍을 지날 때마다 조수는 '포카라'를 외쳤고 나중에는 차 지붕까지 승객들이 올라탔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네팔 농촌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고 싶었지만 좁아 터진 차 안에서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포카라로 가는 길에 펼쳐진 네팔 농촌의 풍경을 카메라가 아니라 내 눈을 통해 마음속에다 수천 컷이나 퍼 담았다. 그리고 나는 70년대 초반 철없던 소년으로 돌아가 한껏 뛰어 놀던 진해 장복산언저리의  닭소리, 개소리, 차소리, 아이들 소리를 듣고, 밥냄새, 똥냄새, 사람냄새 그리고 삶에서 묻어나는 모든 인간적인 요소가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속에서 애틋히 지켜나왔을 사람의 따사로운 온기를 느끼며 졸고 있었다.


버스는 베시사하르를 떠난 지 3시간만에 포카라에 접어 들었다. 포카라로 들어서는 진입로를 따라 한무리의 시위대가 지나갔다. 또 얼마를 달리니 각가지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행진하고 있었는데 구릉족의 민족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드디어 활력이 넘치는 도시다운 도시, 포카라에 도착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포카라 표지판을 본지 한참을 지나서야 시내 한 복판에 버스는 섰고, 승객들 대부분은 종점이 어딘질 몰라 내리기를 망설였다. 파샹 역시 버스를 타고 포카라에 와 본적이 없는 표정이다. 조수의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소리를 듣고서야 파샹과 버스를 내리고 지붕위의 배낭을 받아내렸다. 순간 우리는 일군의 사람들로 포위되었다. 택시기사며 호텔 메니저라는 사람들이 제각각 뭐라고 외치면서 명함을 건네고 우리 배낭을 잡아 당겼다. 상황파악이 안되는 중에 파샹은 우리보다 더 당황스런 표정이다. 이들을 완전히 물리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올라탄 택시는 우리 일행과 자칭 호텔 메니저라는 사람을 싣고 포카라의 최종 목적지 레이크사이드로 향했다. 뒤돌아보니 버스를 내렸던 거리가 Prithri Chowk였다.
카트만두보다는 그래도 잘 정비되고 쓰레기도 덜한 포카라 시내를 가로질러 트레커들의 본거지인 레이크 사이들를 향해 택시는 달렸다. 쏘롱아를 넘어 서너번 정도 포카라에 왔던 적이 있다는 파샹은 서울에 올라온 촌 아이처럼 들떤 표정이었고, 연신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도시 풍경에 빠져들었다.


택시는 이내 레이크 사이드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의 스텝들이 대하는 것으로 비추어 볼 때 호텔메니저라며 우리와 같이 동행한 사람은 사실 이 호텔의 스텝이 아니라 그냥 거리의 삐끼였다. 그들 끼리 한참을 수근거린 뒤에야 온수 샤워가 가능한 룸의 숙박료가 1층은 8불, 2층은 10불, 3층은 15불이라며, 2층은 레이크만 보이고 3층은 안나푸르나와 레이크를 다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호텔 마당에서 배낭을 지키고 있고, 아내만 룸을 보러 올려보냈다. 이왕이면 조망이 좋은 방을 얻을 생각이었지만 황당하게도 2,3층 방은 모두 예약이 끝나버렸다고 했다. 사실 이미 레이크 사이드에 도착했으니 널린게 호텔이라 우리는 아무 걱정이 없었지만 우리를 안내한 '삐끼'는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연신 'My mistake. I'm Sorry!'를 외치며 이 호텔보다 더 좋은 조건의 다른 호텔로 안내하겠다며 앞장을 섰다. 


폭설로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가 막히면서 많은 트레커들이 포카라로 몰려와 비수기임에도 호텔이 거의 만원이라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Touch Nepal Hotel에 방을 얻었다. 숙박비 1,000루피에 핫샤워가 가능하고, 학국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산촌다람쥐'가 바로 붙어 있었다. 스텝이 이끄는 데로 호텔 뒷편으로 이어진 흐름한 식당으로 따라가니 한국음식 냄새가 확 느껴졌다. 산촌다람쥐 주인장을 소개받고 다시 호텔 룸으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호텔은 단체 어린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떼거리로 호텔 복도를 몰려다니고, 잘 보인다던 페와 호수는 아예 보이질 않았고, 안나푸르나 연봉은 산정상만 조그만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산촌다람쥐에서 늦은 점심으로 돼지제육볶음을 먹고 말로만 들어오던 레이크사이드 거리를 돌아 페와 호수가를 걸었다. 포카라는 안나푸르나를 찾는 외국인 들이 꼭 거쳐가야만하는 네팔 최고의 현대 도시이자 관광의 중심지라고 했다. 하지만 현대적인 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낙후되었고 호텔 방이 동이날만치 많은 트레커들이 몰려왔다고 했지만 거리는 한산했다. 안나푸르나 산속에 오래 머물다 내려온 사람들에게 포카라는 분명 파라다이스같은 도시로 다가갔을 것이지만, 나는 아직 현대문명이 그렇게 반가울 만치 오래 산속에 있지도 않았고, 포카라를 즐길만한 마음의 준비도 없었다. 쇼핑말고는 또 무엇을 할지 망설이다가 날이 저물고, 점심때 먹은 돼지고기 제육볶음에 반한 파샹이 다시 원하는 'Korean Food'을 찾아 산촌다람쥐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올라간 룸에는 잘 나온다던 온수가 어느 수도꼭지에서도 나오질 않았고 전기는 사위가 어두워진뒤 한참만에야 들어왔다. 사설전기에 연결된 희미한 보조등 하나에 의지해 룸에 머물렀지만 레이크 사이드 거리는 암흑천지로 변했다. 날이 저물면서 시작한 비는 어느새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바뀌고 바람마져 거칠게 호텔 창을 두드리니 호텔 룸이 영락없는 감옥같이 느껴졌다. 레이크사이드 거리는 불빛 하나없이 완전히 문을 닫았고 우리가 머무는 호텔은 로비나 다이닝 룸이 휴식을 취할 만한 시설이 못되었다. 비가 때리는 창 넘어 번쩍이는 번개빛에 드러나는 도시의 윤곽 넘어 눈속에 묻혀있을 안나푸르나를 걱정했다. '눈때문에 안나푸르나 라운드를 포기 했는데, 이러다간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코스 마저 포기해야되는거 아닌가?' 걱정을 안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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