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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회는 각 시군별로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철에 
영농발대식과 풍년기원제를 지내는 전통이 있습니다.
영농발대식은 보통 차량을 이용한 가두시위와 집회로 이루어지고
풍년기원제는 그야말로 돼지대가리 올려놓고 고사도 지내고
지역농업계 인사를 초청해서 인사도 하고 그런 자리입니다.

올해 봉화군 농민회도 4월 27일, 좀 늦었지만
영농발대식과 풍년기원제를 지냈습니다.
시골집회가 그렇지만
많지 않은 인원이 참가해 좀 썰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멋이 있습니다.

아침일찍 각 면단위에서 집결지인 춘양면으로 출발,
40여대의 차량이 집결해 깃발을 달고
봉화읍까지 30여km를 가두행진을 합니다.
앰프로 농민가나 노동해방가 등을 틀고 
가두연설도 하기도 하는데
올해는 엠프가 고장나서 새로 사야하는데 미루다가
그냥 침묵 차량시위가 되었습니다.

한시간 정도 가두행진을 하고
봉화읍 장날에 맞춰 봉화농협 앞에 집결해
어설프지만 집회를 진행합니다. 
이 역시 한시간 정도로
올해는 동지들이 돌아가면서
세월호 진상규명,
낙동강 중금속 오염원인 석포영풍제련소 불법3공장 철거 요구,
그리고 정부의 농업중시, 농산물가 보전, 
한중FTA  쌀개방 등을 이슈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차량 40대에 동원인원 60명에 불과하지만
이 바쁜 농사철에 그만한 동원능력을 가진 조직은
그래도 봉화군에서 농민회밖에 없다고 자부합니다.

올해는 특히 여성농민이 여러분 참가하셨고,
새로 소천면 농민이 지회를 결성하고
집회에 참가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정보과 형사들만 왔다갔다 하고
무장경찰도 없는 
시시한 산골의 집회와 시위 모습 한번보세요^^






ㅇ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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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저뭅니다.

한해의 마지막 날 가는 해가 아쉬워 뜬눈으로 밤을 샙니다.
초저녁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 새벽2시부터
책상에 앉았습니다.

무엇을 할까 할참을 망설이다가
자판을 두드립니다.
지난 한해 나를 둘러싼 세상에는 어떤 일이 있었고
나는 어떻게 대응하고 무슨 새로운 시도를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놓쳤는지
정리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농민인 저에게 주어진 지난 한해 최대의 화제는 
한국 농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탄시킬 한중 FTA 협상과
30년래 최대의 농산물가 폭락사태일 겁니다.
한달이 멀다하고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집회를 가야했고
급기야 년말에는 농협은행 마당에 농산물을 쌓고 21일을 넘기며
칼바람 속에서 농산물생산비보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천막노숙투쟁까지 벌였습니다.


지난 한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던 집회와 농성 등이 
외부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대한 일차적 대응이었다면
'봉봉협동조합'은 그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실천이었습니다.
그래서 2013년 저의 삶을 규정하는 최고의 화두는 단연 '협동조합'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극단적 경쟁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왔고
개인의 삶조차 한발짝도 그 지배로 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아가야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감히 '협동과 신뢰'를 기반한 새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협동조합이란 걸 통해 그걸 이뤄보자는 꿈을 나누었습니다.

먼저 시작한 협동조합들도 많고
참 잘하는 협동조합들도 많지만 
우리가 발딛고 사는 조그만 공동체를 기반으로해서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사회를 100개의 한살림과 100개의 아이쿱 그리고 수천개의 
군소 협동조합들로 얽히고 섥힌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세상살이는 좀더 아름답고 편안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봉봉협동조합은
몇달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6월 29일 발족을 했고
다시 몇달의 정비기간을 걸쳐
부족한 중에 10월 중순부터 물품공급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꿈을 꿀 때와는 달리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경영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보고 안되면 말고'가 아니라 꼭 되도록해야한다는 마음의 짐은 참으로 무거웠고
그 짐을 고스란히 지고 나가기엔 허리도 약하고 지혜도 부족했습니다.
좌충우돌하는 지난 몇개월간 낙담을 하고 의기소침하기도 하고
다시 용기를 얻어 일어나 달리기도하고, 넘을 수 없는 벽을 향해 
머리로 부딪혀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맞은 연말,
여러가지 측면에서 되짚고 반성하고 나 자신의 한계, 우리의 한계, 
그리고 시대의 조건에 대해 고민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나누는 일일 것입니다.
지난한해 실수와 실패,  좌절과 고통속에서 나는 무엇을 건졌는지 되돌아보는것 
그것이 송년에 임하는 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주 오래전에 접한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시인의 화두에 비소를 보냈지만
내 삶의 경험속에서 다가온 '사람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은
다시금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화두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합니다.

절임배추 공장과 노숙투쟁천막을 오고가며 지내야하는 와중에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괴로워했지만
또 사람으로 인해 위로받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협동의 편익 이전에 단지 같이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희열은 진정으로 협동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힘은 같이하는 기쁨,
같이 나누는 희열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협동의 참 맛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철처히 가르고 파편화해서 지배하는
이 체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실천일 것입니다.

봉봉협동조합의 존재이유는 신뢰와 협동에 기반한
새세상의 꿈을 만들어 나가고 나누는 데에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조합원이 꿈을 공유하지 않으면
조합은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를 위해 지난 한해의 과오와 성과를 딛고
새로 맞는 2014 갑오년 봉봉협동조합은
조합원간 교류와 교육 사업에 매진해야 할것입니다.
당장은 '경영적 생존'이 더 절박하겠지만
'생존'을 넘는 지점까지 우리의 눈이 가 있지 않다면
그 생존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생존 넘어 있는 '희망'이 이끌어 주지 않는 조직은
그 동력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한해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 속에서 기뻐했고 행복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모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그 인연 내년한해 더 깊어지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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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산골마을에 사는 농사꾼이 서울 갈 일은 일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다.

그런데 최근 MB정권 덕분에 서울 나들이가 잦아졌다.

한국 농업 농촌을 실제적으로 갖다 버리는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해

상경 집회를 다녀 온지도 얼마된 것 같지 않은데

조용히 농사나 짓고 살고 싶은 사람을 또 서울로 불러 올린다.

 

7월 3일 12시에 농협중앙회 앞에서 농협법 개악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가하고

다시 오후 2시에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리는 한중 FTA저지 집회를 하기 위해서

봉화군 농민회 명호지회와 춘양지회 동지들은

봉화농업기술센타앞에서 만나 일찍 상경길에 올랐다.

 

한미 FTA를 밀어 붙인 이 정권은 농민들의 분통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중  FTA를 강행한단다.

한미 FTA로 인한 농업생산액 감소분이 정부측 연구기관의 자료에 따라도

연 1조가 넘는다는데 이번 한중 FTA는 그 피해예상액이

한미FTA와 비교도지 않을 정도 클 것이라는 점은 정부 비정부를 떠나 

대부분의 연구 기관이 동일하게 인정하는 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라도 

최소 년 2.5조 이상의 농업생산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올해 농업생산예상액이 작년도보다 1.1%줄어 44조 1천억원 정도라고 본다면

한미 한중 FTA로 인한 연 손실액만봐도 거의 총 농업생산액의 8%에 육박한다.

사실 그와 같은 예상치도 최저치에 불과하고, 그 신뢰성도 떨어진다고 본다면

한국 농업은 향후 얼마만한 타격을 받게 될지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게 사실이다.

 

복지와 내수확대 등 내실있는 경제 구조를 차분히 다져나가야 할 시기에

무역확대라는 신기루를 쫒아 1%도 안되는 재벌만 살찌우고

농민은 물론 중산층 이하 대다수 국민의 고혈을 짜는  FTA 강행 정책은

반드시 철회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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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봉화 춘양농협 2층 강당에서는 지난 3월 9일 정태인 선생님의 강연에 이어  [한미FTA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해영 선생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이날 강연은 봉화군 농민회의 주도로 봉화군 농업인단체연합이 주최하고  춘양성당과 옥방교회 등의 지원과 춘양농협의 장소 제공 등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면단위에서 이루어진 소박한 강연회였지만, FTA발효에 대한 지역 농민의 불안과 이해영 교수님의 유명세 덕분인지 강당이 꽉찰 정도로 많은 지역농민이 참여하여 이해영선생님으부터 정부가 주장하는 한미FTA의 잇점이 왜 허구이고 어떻게 기만적인 낱낱히 이해할 수 있는 값진 강연을 청취할 수 있었습니다.

정태인 선생님이 지난 강연에서 말씀하신 것은 크게 두가지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 한가지는 한미FTA를 통해 이익을 얻는 측과 피해를 입는 측의 대립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국가 단위가 아니라 한미자본과 한미민중이라는 계급구도라는 것과, 또 한가지는 자본의 목적은 상품시장의 활성화보다 공공영역에 대한 시장 확대가 핵심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오늘 이해영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새롭게 배우게 된 사실은 한미FTA가 정부측 입장에 따를 때조차 국가적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리말해 1% 재벌이 얻는 이익은 바로 99% 민중이 부담하는 것에 다름아니고 따라서 국가의 총체적 이익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정부가 한미FTA를 통해 얻게 될것이라고 홍보하는 경제성장, 물가하락에 따른 소비 진작, 투자유치에 의한 일자리 증가는 완전한 기만이라는  것입니다.

'경제 성장'에 대해 살펴보면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표준모델을 이용해 시뮬레이션할 때 한미 FTA를 통해 10년동안 약 0.3%정도의 GDP성장을 가져올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와 같은 결과를 숨기기 위해 정부는  [생산성증대 효과 고려 모델]이라는 발명품을 통해 약 5.6%의 성장 효과가 있을 것이라 선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번째 한미 FTA가 발효되면 소비자는 물가 하락으로 삶의 질이 올라갈 것이라고 하지만 약 8%의 관세가 사라진다고 해도 일시적이고 한정된 품목의 가격하락이 있을 뿐이지 실제적인 소비 진작을 낳을 정도의 물가 하락은 없다는 것입니다. 500만원짜리 샤넬백의 8%의 관세가 없어진다고 해도 그 수입원가인 70만원의 8%인 5만6천원의 가격하락만 있을 뿐이고, 이 조차도 수입상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봐야되고, 또 청바지를 보아도 백화점에서 미국산 청바지 신품이 20만원 정도한다고 봤을 때 수입원가가 3만원이고 관세 10%가 사라져도 약 3천원 정도의 가격 하락 밖에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미국 자본 투자유치로 신규일자리가 증대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한EU FTA를 통해 가져올 것이라고 했던 일자리 27만개 창출이 허구로 드러났듯 이 조차 아무런 근거없는 선정용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GDP1%에 일자리 약 7~8만개가 창출되는데, 년 0.03%의 GDP성장에 따라 약 2,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으로 산출되는데 이는 의미없는 수치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의료민영화에 따른 국민건강권에 대한 위협, 서비스 역조에 따른 국부의 유출 등 많은 문제점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특히 농업 피해에 대한 설명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정부는 한미 FTA에 따른 농어업 피해 예상액을 약 12조 7천억원으로 보고, 피해보전대책으로 10년간 22조원의 투융자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22조에는 기존 농어업정책 예산 21조를 포함되어 있어 실제 신규예산은 1조에 불과하여 정부가 예상하는 피해약 12조 7천억의 부담은 고스란히 농어민에게 지워진다는 사실은 참으로 경악스러웠고, 그런 기만적인 선전을 하고 있는 MB정부가 가증스러웠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니 머리를 명징해졌는데 가슴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의 이익에 목을 메는 정부는 한미 FTA를 발효해 버렸고 나아가 한중FTA마저 추진하겠다고 나서는데 힘없는 농민은 무엇을 어떻게 해서 이 국면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30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투표를 통해 정권을 바꾸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고 그외 다른 길은 없는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현정권에서 라도 스스로 한미FTA를 철회하도록 할 수는 없는지, 그 과정에서 한명의 농민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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