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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우곡성지 내 청소년수련관에서 참여당 삼각끈담쟁이동호회 회원들과 가족 그리고 기타 참여당 지지자들이 단합대회를 가졌다. 준비단계에서 100여명의 회원 가족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갑작스런 폭우성 비바람에 참가 인원이 30여명으로 줄었다. 
주최측인 봉화군지구당 준비위원회 위원장이신 "사과꽃향기"님을 비롯한 지역 당원가족분들이 여러 날을 준비해 100여명이상의 손님을 맞을 음식과 잠자리등 충분한 준비를 하였지만 직전에 있은 김해을 재선거 결과와 행사 당일의 불순한 기후 때문에 참가인원이 대폭줄게 된 것이었다.

나는 참여당 당원이 아니지만 아내가 참여당 당원이다보니 "사과꽃향기"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게되었고,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단지 봉화지역분들이 보고싶어 행사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사과꽃향기님은 1여년전 연락을 주시어 만나게된 분으로 척박한 지역 토양에서 기필코 참여당 지구당을 만들고말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나에게 연락을 하셨던 분이다. 그분의 열의에 감명을 받고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긴 했지만 내 자신이 정치적 기반이 조금은 다르고 무엇보다 일상의 삶에 쫒겨 이내 잊어 버리고 말았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존경심을 가지고 정치적 지지자로서 그의 정치적 꿈을 실천하는 한명의 시민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이지만  참여당의 당원이 아닌 타당의 당원인 사람으로 이날 모임에 참가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기우와는 달리 행사 참여자 모두가 반겨주시고 배려해 주신 덕에 참으로 편안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나 행사 예상 참여자가 대폭 줄어들어 힘빠지고, 성의없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나의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모이신 한분한분이 열정과 동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즐겁고 진지한 행사를 진행해나갔다.

행사중에 참여자 한분한분이 자기소개를 하는 기회가 있 을때 나는 나의 정치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봉화군 같은 지역사회에서 진보 개혁을 표방하는 사람이라면 설사 당을 달리할지라도 당원동지나 진배없이 반갑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나아가 수구 한나라당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경북북부지역의 봉화군 같은 지역사회에서는 최소한 반한나라당을 지향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동지적 연대를 가지고 서로 협력해야함을 주장했다. 

이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봉화군에 참여당  진성당원이 불과 수명에 불과하고, 잘 모르긴 해도 사회당이나 진보신당은 물론 민주노동장, 나아가 민주당 마저 진성당원이 몇명에 불과하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지역 현실에서 서울 중심의 중앙정치무대에서  진보개혁진영의 정당들이 뿔뿔이 흩어지도록 하는 작은 정치적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비록 정치적 지향이 달라 정당을 달리할 지라도 동일한 정치적 실천의 기반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

지난 재보선이후 이명박정부, 수구 한나라당을 제압하고 다시 우리 사회를 진보의 길, 평화의 길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면서 진보개혁진영의 통합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진행은 지지부진하고  통합을 위한 논의과정이 생산적이지 못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진보개혁세력의 대통합과 민주개혁정부로의 교체를 희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다소간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현실에서 봉화군같은 정치적으로 척박한 토양에서 몇몇에 지나지 않는 진보개혁인사들이 지역사회에 진보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실천을 같이하고 통합을 위한 토론과 학습을 선도적으로 진행해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아가 밤낮 정치권을 비판하는 민주시민 개개인이 자신이 상대적으로나마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을 하고 큰 틀에서 우리사회가 진전시켜나가야할 가치를 진작시키는 일에 작은 실천들을 같이 해 나간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중앙'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작은 지역에서 해 내고 오히러 '중앙'에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한 당의 당원이 서너명에 불과한 봉화군이지만  "봉화군 진보개혁군민 연석회의"같은 모임을 하면서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큰 차이의 해법을 찾아내는 작업을 선도적으로 해나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나는 그날 참여당 봉화군 지구당 준비위원회 위원장님과 그외의 당원들의 열정, 그리고 그 순수한 인간미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역사회의 좋은 분들이 한분두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을 하고, 그런 분들이 어떻게든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지역사회에서 사회당 당원이 참여당의 지구당이 건설될 수 있도록 당원모집에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4대강 죽이기 같은 명백한 정치적 이슈에 공동대응을 한다면, 지리멸렬한 중앙정치가 바귀고 나아가 불의한 세상조차 쉽게 바꿔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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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펜을 잡으면 다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런데 유시민이 편역한 '일본문화이야기'는 원래부터 유명한 책이란다.
이 책은 영국에서 [제노포브스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나온
세계 여러나라에 대한 문화안내서중 일본 편을  편역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위트와 해학을 문화비평과 버무린 맛깔난 책'이다. 
얇은 책에다 흥미진진한 소재, 그리고 유려한 필체와 해학들...
이런 류의 책은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틈 날때마다 짬짬이 읽어나가야 제맛인 책이다.
그런데 이책을 가방에 넣고 다닐 책으로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결정이었다.
그 이유는 이책이 너무 지나치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시간 나는데로 틈틈히 읽어야될 책을 한번에 다 읽어 버렸다. 그래서 아쉼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그냥 당분간은 가방에 넣어다니면서 두고두고 재독 삼독을 할 수밖에 엀을 것 같다.

물론 재미 하나가 책은 평하는 절대지존의 기준일 수 없다. 특히나 문화비평이나, 문화안내서는 나름의 합리성과 객관성, 그리고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독자에게 충분한 공감을 주어야한다. 사실 이책의 내용은 내가 가지고 있던 일본에 대한 이런저런 선입견들과 대부분 합치한다. 그래도 이 책은 일본 문화연구서가 아니라 그냥 대중적 안내서이기 때문에 큰 문제될 것은 없다고 하겠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일본,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은 너무 일반적인 것이어서 오히려 더 그 진실성에 의문이 간다. 솔직히 나는 집단에 대한 획일적 규정에 대해 좀처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일본 문화에 대한 극도로 단순화된 명쾌한 규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본인은 본심을 숨기는 이중인격자 일까? 일본인은 결벽증을 가진 건강강박증 환자들인가? 일본은 개성이 아니라 통일성을 중시하는 전체주의적 심성을 가지고 있는가? 일본인에게 스포츠는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극기일 뿐일까? 일본인은 자기주장이 없고 대세에 순응하는 현실적 처세주의자들인가? 사실 나는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많은 책이나 개인의 발언중에서 그런류의 일본에 대한 판단이 전제된 것을 직간접적으로 느껴 왔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선입견을  재미나게 정리하는데 성공한 책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런 선입견의 원천이 되는 책인 것 같기도 하다.

한권의 책을 통해 일본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은 알려고 한다면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욕심쟁이에게 적합한 책이 아니다. 일본을, 일본 문화를 가볍게 스케치해 볼 수 있는 아주 가볍고 재미있는 책일 뿐이다. 그래서 조금은 불만스럽고, 아쉽기도 하지만 용도가 다른 독자에게라면 얼마든지 권해주고 싶은 책이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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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는 유시민의 사상적 지평을 연 지성의 토대가 되는 청년시절 독서의 여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오해도 많고 열성팬도 많은 '정치인' 유시민에게는 어쩌면 최종적 '입장'이 아니라 그 입장의 원천을 드러내는 일이 꼭 필요했었다고 보는데, 바로 그와같은 역할을 거뜬히 하고 있다. 물론 필자 유시민의 집필 동기는 스스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다른데 있고, 그것은 바로 지표를 잃어버린 자의 삶의 길찾기, 즉 한국사회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자의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와 나아갈 바에 대한 모색일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 [청춘의 독서]는 청춘시절 독서의 중요성이나 책읽기의 방법을 청춘들에게 들려주는 측면보다는 필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과제를 지고 살아가야 할 이미 기성세대가 된 나같은 독자와 그 고민을 나누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길은 잃'은 유시민은 오래된 지도를 다시 편다. 그 지도는 청춘시절 읽었던, 이후 유시민의 삶의 방향을 이끈 나침판같은 역할을 해주던 주옥같은 14권의 고전이다. 그리고 다시 길이 보이지않는 지금 그는 새로운 지도가 아니라 바로 그 낡은 지도를 다시 편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 리영희의 [전화시대의 논리], 칼막스의 [공산당선언], 사마천의 [사기], 다윈의 [종의기원],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맹자], ... 어느 것 한권 무겁지 않은 책이 없지만 그렇다고 이들 14권의 고전이 세상의 근본을 모두 보여주거나 우리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은 보여주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필자 유시민은 자신의 사고와 행위의 근본을 이루는 가치의 보고를 다시 뒤적거림으로써 저만치 나아간 자가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하는 자의 태도를 되찾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막무가내 밀어부치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위대한 바보들이 지배하는 시대에, 길이 막히면 돌아가고, 그 근본으로 돌아가 초심에서 다시 시작하는 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주할 수 있었던 그의 겸손한 삶의 태도가 참 건강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 http://usimin.net/  에서 퍼옴

근본을 되짚는 [청춘의 독서]는 그렇다고 한가한 고전읽기의 흔적은 아니다. 그는 치열한 현실에 두발을 딛고 달음박질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는 마음으로 현실과 책속을 오간다. 그 접점이 어디이고, 그의 사색의 과정이 가져올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휴머니스트 유시민의 젊고 건강한 정치적 행보와 삶의 여정을 지켜보고 싶다.

유시민은 이제 젊은 정치인이 아니라 50대의 기성세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입장은 항상 청춘을 갈망했고, 그의 지지자들 역시 청춘일 수 밖에 없었다.  자연적 나이를 뛰어넘는 그의 젊음은 바로 독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그가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노무현대통령의 삶과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독서하는 정치인, 지성적 정치인에 목마른 한국사회에 그와같은 정치인의 큰 획을 긋는 유시민의 이후 삶의 행로에 큰 행운이 함께하길 빈다. 그의 행운이 한국사회의 행운과 일치하기를, 그의 정치 여정이 표면적으론 다르지만 근본에서 같은 세력이 더불어 민주주의의 기초를 지키며 우리사회가 나아가야될 큰 비젼을 함께 모색하며 그 토대를 쌓는 과정일 수 있기를 또한 기원한다.   
  
[청춘의 독서]를 읽으며 나는 비슷한 연배로서 이제는 잊어져가는 아련한 꿈들을 되새긴다. 그리고 잊었던 이름들을 불러본다. 칼 막스, 라스콜리니코프, 쇼냐, 이명준...  그리고 늦은 숙제를 떠 안는다. 다음 두권의 책을 꼭 읽어봐야지.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과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필자가 [진보와 빈곤]에서 인용한 구절을 다시한번 적어본다.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 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정부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엑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가 나가면 더 악한 자가 들어선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상태로 전락한다.(.....)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Progressive and Poverty, p53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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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꿈많은 청년"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이다. 그래서 내리는 비인가 보다. 전날 시작한 비가 하루 온종일 내리고도 못다내린양 밤늦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농사일에 쫒겨 도착한지 일주일 넘어 손에 들지 못했던 책을 펼쳤다. 그는 [운명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깊은 슬픔을 감춘듯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싱긋이 웃어보이며 우리를 떠나갔다. 그가 떠난 자리는 너무도 컸다. 세상은 꺼꾸로 돌기 시작했다. 해는 서쪽에서 뜨고 동쪽으로 졌으며, 낮에 달이 뜨고, 밤에 해가 떴다.
민주주의는 독재자의 전용어가 되었고, 평화는 전쟁을, 환경은 무자비한 토건공사를 의미하게 되었다. 모든 진보적 가치는 좌익뺄갱이의 기만선전술에 불과한 것으로, 복지에 대한 요구는 거지근성으로 치부되었다. 진솔함과 정직함은 무능력의 다른 이름으로 뜻이 바뀌었고, 분권과 자치, 대화와 타협은 사전에서 사라졌다.  

[운명이다]는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간단한 가족사와 어린시절의 추억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자의식의 흔적들을 추적한다. 가난에 대한,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이 자라나는 청년 노무현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나고 자라고 살았던 시대,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시대의 흔적들을 만난다. 그는 어떻게 한 평범한 인간이 시대의 격랑속에서 한명의 시민운동가로 정치가로 그리고 마침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살았고 그리고 죽어갔는지 담담히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이야기를, 한명의 정치가가 아니라 한명의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불의에 맞섰고, 어떻게 '사람사는 세상'을 실현하고자 분투했는지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에 깊은 슬픔이 묻어난다. 그의 한계가 아니라 시대의 한계를, 그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의 실패를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쉬 끝나지 않고았 낙숫물소리와 함께  신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책을 덮었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나는 오늘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나 아니면 대한문 앞에서 비를 맞고 서 있어야했다. 지인으로 부터 문자가 온다. '혹시 봉하마을에 와 계신가 해서요?' 나는 오늘 집을 나서지 않았다. 하루종일 [운명이다]를 읽고 그의 삶을, 그리고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생각했다. 가슴이 미어진다. 그의 삶과 죽음이, 우리의 삶과 우리시대의 과제가 뒤엉킨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묻고 또 물었다. 



그는 부림사건을 통해 새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긴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었다. 도반이 없어도, 노자가 떨어져도 그는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길의 끝이 모멸과 오욕, 좌절과 실패의 구렁텅이일지라도 그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9년 5월 23일, 지구가 꺼꾸로 돌기 시작하던 날 [운명이다]는 멈춘다. 그의 삶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고, 술수가 정직을, 돈이 사랑을 이기는 세상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삶은 비장하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그는 이웃 형님의 한분같이 소탈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고 그래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그의 죽음은 그만의 죽음이 아니고, 그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었기에! 책을 덮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 이야기는 우리의 몫이다. 그가 던지고 간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꿈은 온전히 우리 손아귀에 남아있다. 그리고 삶들은 계속되고 그 꿈은 싹을 피우고 자라날 것이다. 노무현의 자서전은 우리의 자서전이 되고, 우리의 자서전은 완결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한다. 그것은 운명이기 때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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