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에서 희망을 본다.
인간 삶의 시공간적 근본인 ‘마을’을 살리는데 인간 삶의 또 다른 근원인 ‘예술’ 이 기여할 수 있을까?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가능하고, 그렇게 해서 살아난 마을은 또 어떤 모습일까?
다 알고 있다시피 이미 전통 농촌 ‘마을’은 재생산구조가 파괴되어 아이들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다. 경제적 자립구조가 붕괴되어 헤어날 수 없는 부채더미에 신음하고 있고, 삶의 터전인 논밭마저 절반이상이 도시자본에 넘어갔다. 마을 내 의사결정구조인 전통적 자치 기구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전통적 자치기구를 대체해 중앙권력의 지배편리를 위해 만들어져 하부행정단위의 역할을 하는 이반장체제는 주민자치의 꿈을 실현하는 기구로 역할 하기에는 그 근본부터가 다르다. 마을 주민을 정신적으로 묶어주던 많은 제도적 문화적 장치들이 형해화 되었다. 두레나 울력 같은 공동노동. 협력노동의 전통은 사라졌고, 동제나 당제 같은 마을신앙도 사라지거나 드문 경우에 그 흔적만 간신히 보존되고 있다. 상여계, 토지계 같이 마을 공동체를 유지시켜주고, 주민의 정체성을 이뤄주는 근간이 되었던 마을 모듬은 약화되고 기금은 고갈되었다. 사실 마을의 근본인 ‘사람’이 사라지는 판에 다른 것들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젠 ‘농가부채대책’은 없고, ‘희망근로사업’도 줄어들고, 농업보조정책도 패지 해 나간단다. 경제적 파탄을 넘어 정책적 방기 속에 농촌 마을은 어떻게 될까? 농촌마을의 미래는 암담하고, 쇠락의 대세는 반전될 어떤 가능성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적으로 마을 공동체를 회복한 ‘성공’적인 사례도 없고, 따라서 마을 회복을 위해 분투하는 주민들이 의지할 마을 회복 프로그램도 그 로드맵도 없다.
그럼 도시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도시의 거주형태나 시가지 형태는 전통적인 마을 단위의 공간구분을 무의미하게 한다. 그렇다고 도시는 ‘마을’이 성립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쩌면 도시의 마을은 도시민의 생활반경, 활동반경이 물리적 공간의 협소한 규정을 넘어 그 필요와 구성원의 가치나 기호에 따라 넓혀짐에 따라 새로운 형태, 새로운 의미의 마을로 재구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주민자치, 마을만들기는 농촌에 국한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사람 사는 곳 모두가 마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도 사람이 넘쳐나긴 하지만 마을다운 마을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마을다운 마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한 공간 안에서 정신적, 문화적 일체감이라는 주민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한 경쟁하는 개인들로 꽉 찬 도시는 ‘마을’이 성립될 수 있는 토대가 너무 허약하다.
농촌마을과 도시마을의 구분을 넘어 인간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으로서의 ‘마을’은 똑같다. 사실 원시공동체에 대한 향수가 전통적 농촌 마을에 대해 우선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게 하지만, 전통마을에 대한 향수보다는 새로운 마을의 현재성에 주목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을은 ‘이념’이기 이전에 삶이고 현실이다. 그 삶과 결합되지 못하는 예술, 문화, 자치, 환경, 민주주의는 헛구호에 불과하다. 마을의 존립이 시급한 현안이 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언제부턴가 ‘마을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일어나고 농촌에는 ‘귀농’과 마을 만들기가, 도시에는 ‘녹색도시’, 도시공공디자인 운동 등이 일어나고 있다. 중앙권력의 민주화, 지배가치의 진보화에 일정한 성과와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 세력들이 주민자치(스와라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스스로 하방을 시작했다. 도시는 아파트의 동, 행정단위인 통반을 넘어 동호인모임,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모임, 정치적 지향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정당활동, 구체적 삶의 질을 결정하는 생활환경에 대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시민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자치단위, 새로운 형태의 마을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농촌은 생태환경과 근원적 생명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사라져가는 마을을 복원하고 마을자치와 마을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나눔과 공생, 순환이 마을의 가치기반이 되고, 자본이라는 단일 권력의 지배에 저항을 시작했다. 마을을 살리기 위한 활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운동, 마을자치운동, 자활농장만들기, 마을 역사연구, 마을박물관만들기, 마을자원조사 등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시도되고 있다.
그 연장선일까? 예술로 마을을 살리겠다는 일군의 활동가, 예술가들이 단체를 만들었단다. 일명 ‘예술마을네트워크(예마네)”란다. 예마네는 [마을만이 희망이다]는 기치를 당당히 내걸고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조그마한 연구실을 열었다. 웹상에 그를듯한 까페도 하나 번듯이 차려놓았고 (http://cafe.naver.com/yemane) 예술가가 사는 마을을 탐방하는 것으로 벌써 활동을 시작했다.
예마네는 “예술이 마을을 진정으로 생각한 적이 없고 마을 또한 예술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원시적 마을이 예술과 함께 했듯 이 둘의 통일을 회복하는 것이 아수라장이 된 우리의 현재적 삶을 혁파하는 첩경임을 주창한다. 이를 위해 예마네는 문화와 예술로 마을을 사유하고 연대하고 소통하고, 마을을 생각하는 모든 활동을 매개하는 연구기지를 자임하고 있다.
예마네가 스스로 상정한 과제는 다양하다. 마을의 생태 환경과, 경관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한 실태 조사 및 연구, 공동체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 문화예술 공동체 네크워크 구축을 위한 인적 물적 교류사업 등이 그것이다. 이를 좀더 구체화하면, 마을조사 및 마을지표개발, 마을축제 연구기획, 마을 박물관 보급, 마을 디자인, 그리고 마을학 연구라는 과제로 집약된다.
사실 예술이 어떻게 마을을 살리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예술이 살린 마을의 모습은 어떤 형태일지 궁금하다. 마을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는 예술은 예술일반과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을 살리는 예술은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무척 힘겹고 고단한 과정임에 분명하다. 또한 단위 마을 내 예술가와 마을주민간의 유대와 교류마저 힘든 현실에서, 예술가가 사는 마을간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는 구상은 대담하나 비현실적이고, 가치 있지만 지난한 작업으로 보인다.
누군들 그 사실을 모르겠냐만 예마네 구성원들이 어디 만만하고 손해보지 않는 작업만 해오는 그런 분들인가? 그래서 차라리 희망적이다. 안되면 당연하고 되면 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꼭 기적이 일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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