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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4월23일

이번 여행은 하나 있는 딸 혼례를 마치고 남은 부부의 새로운 삶을 여는 계기이자 그동안 작업으로 고생한 아내에 대한 위로 그리고 세상살이를 나름 잘 버텨낸 내 자신에 대한 위무차원이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만나 일했던 베트남 분들을 통해 궁금해진 베트남을 여행하고픈 숨겨진 의도도 있었다.  덤으로 청년시절 읽었던 [베트남혁명사]와 [사이공의흰옷]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베트남의 정치경제 사회적 변화를 읽고 싶었다. 작은 여행에 너무 큰 미션을 얹다보니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모든 것이 허욕임을 직감했다. 일단 그 부여된 의미의 무게에 비해 너무 초라한 일정이었다.  여행 전후의 준비와 마무리도 너무 허술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떠나 여행은 난에게 더 많은 여행의 꿈을 선물했다.  모든 것이 감사한 여행이었고, 지나 온 모든 시간에 감사하는 여행이었다.

사소하지만 이번여행을 통해 처음 만난 베트남에 대해 알게되거나 더 궁금해진 사실이 있다. 베트남에 의외로 모기가 많지 않았다. 건물은 좁은 터에 지어진 경우가 많았고 창문이 너무 작았다. 대중교통비가 싸서 여행하기에 너무 좋았다. 시내외 버스며 택시며 기차 요금이 기대 이상으로 저렴했다. 내가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다 친절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했다. 안내문이나 표지판에 의외로 영문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군경 등 공직자들은 의외로 권위적 이어서 놀랬다.

하노이 다녀오면서 비엣젯 타면 반복해서 나오던 노래가 궁금해 찾아봤다. Hello Vietnam. 단순히 달콤한 사랑 노래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베트남계 벨기에인인 ‘팜 꾸이난’이 조국 베트남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처철한 전쟁으로 기억되는 베트남을 넘어 그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애끓는 사랑이 가사에 담겨 있어서일까 오랫동안 하노이여행을 환기하는 노래로 나에게 기억될 것 같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OY1o16T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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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신혼여행 가고 우리 부부는 舊婚旅行을 떠나다!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 아이 하나 낳아 기르며 산지 삼십 몇 년이 흘렀다. 그사이 아이는 자라 짝을 만나고 혼례를 치루니 우리 부부도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하노이 구혼여행길에 올랐다. 지난 고난의 기억을 지우는 행복한 여정을 기록에 남겨 노후를 대비해 본다.
 
2023년 4월 14일
휴가를 얻어 딸아이 결혼식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사실은 딸 결혼식보다 식 끝나고 떠날 울 부부 베트남 여행에 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서울 왔다. 용산역에서 마라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23서울화랑미술제”를 관람했다. 일만여점의 현란한 작품에 눈이 호사를 누렸지만 그림이 너무 많아 어떤 작품도 귀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2만원이라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방대한 아트페어 현장을 누볐지만 그래도 마음에 남는 유일한 작품은 [관훈갤러리]를 통해 출품한 아내 류준화의 작품이었다.

코엑스 나와 홍대로 달려오니 아내와 딸은 네일샵에 들어가고 나는 거리의 미아가 되었다. 아내가 홍대서 학위를 하고 내가 합정에서 친구들과 출판사를 하면서 합숙을 할 때 자주 들렀던 홍대거리를 혼자서 배회했다.

추억이 서린 홍대 거리를 걷고 고풍 찬연한 프랑스식 요리점에서 딸과 아내와 더불어 세 식구가 같이 비싼 저녁을 먹고 초저녁에 호텔에 들어와 곯아 떨어졌다. 새벽에 눈을 떠니 축의금 문자가 쌓였고 꼭 그만치 사정이 생겨 혼례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메시지가 쌓여 있다. 오히려 마음 쓰이게 한 내가 미안하다. 결혼식이란 게 참 걱정이 많다. 평생에 한번 치루는 대사니 시행착오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객이 너무 많을까봐 걱정이었는데 나중엔 너무 안오실까봐 걱정이다. 신랑신부에게 누가되지 않을까 사돈께 실례를 범하지 않을까 다 걱정이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데 다시 생각하니 그냥 되는대로 즐기면 되는 게 아닌가는 생각도 들었다.

4월 15일 혼례가 무사히 끝났다. ‘식’은 단순하고 단조로웠고 부모의 역할이라고는 하객맞이와 정해진 성혼선언문과 당부의 글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부모로서 별로 도와주지도 못했고, ‘식’보다 ‘실’을 중시하기에 아쉬운 것도 없었다.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결혼식이었지만 그래도 식이 끝나니 긴장이 풀리고 미리 세워둔 하노이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비로소 일기 작했다. 인근 까페에서 마지막 하객과의 담소가 끝나고 작별한 뒤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고, 살아갈 날을 점치며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인천공항 는 지하철로 달려갔다. 올림머리에 메이크업 그대로 딸사위보다 먼저 공항으로 떠나니 지인들이 놀리며 부부여행이 아니라 재혼여행으로 보인단다.

출국 때마다 자주 이용하는 인천공항 찜질방인 [스파온에어]에 누울 자리를 확보하고 몇 일간 먹지 못할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마땅히 할일도 없고 마음은 들떠 그냥 공항 청사를 할 일없이 걸었다. 공항은 나에게 알 수 해방감을 준다. 내안에 사는 내가 통제 불가능한 내가 숨을 죽이고 내가 통제 가능한 내가 기세를 얻는다. 나는 늘 길 위에서 행복하다. 자식가진 인간의 책무를 벗어던지고 나니 이제 좀 막 살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6일 새벽6시 출발하는 비엣젯을 타기위해 4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트램을 타고 승강장 까지 이동하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침식사를 해결할 곳은 유일하게 햄버거집 밖에 없었다. 그것도 주문의 선택지는 없고 오직 한 메뉴만 주문이 가능했다. 비싼 기내식 사먹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란 생각에 새벽부터 버거랑 찬 콜라로 배를 채웠다. 정시에 비엣젯에 올라 덜 잔 잠을 채우려 애쓰는 사이 착륙준비 멘트가 잠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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