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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 발효 이후

2여년을 넘기는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7.000여개에 육박하는 협동조합 창립붐이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 내실있는 협동조합 발전의 사회적 기반이 확보되지 못한 형편입니다.
많은 협동조합이 설립만 마친채 방치되어 있거나
겨우 운영을 이어나가는 어러운 과정을 경과하고 있습니다.
봉봉협동조합도 이런 현실에서 예외일 수 없고 
나름의 길을 찾아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하고,
그 길은 같은 여건에서 같은 목적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협동조합간 연대에서 출발한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봉봉협동조합은 대구 안심협동조합, 푸른평화 협동조합 등과
의미있는 연대를 이어가고 있는 중에
무엇보다 봉화군 지역내 타 협동조합과의 연대가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봉봉협동조합과 교류중인 봉화군 관내 협동조합은 
봉봉보다 먼저 설립된 봉화친환경생산자 협동조합
얼마전 법인 전환한 봉화자활 사회적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이 세 협동조합은 지난 해 여러번 논의가 오간끝에 
상호 연대의 장을 넓혀나가기로 하고 각 조합은 총회에서
조합간 연대사업의 건으로 결의를 모았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 3월 세 협동조합의 대표와 실무책임자가 
첫 모임을 가지고 모임을 정례화하고 구체적인 연대사업을 펼쳐나가기로 결정하고
지난 주 두번째 모임에서 몇가지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각 조합별 물품을 상호 공유하고 무 수수료를 원칙으로 한다. .
2. 조합원 교육, 체험 프로그램 등을 공동으로 개최한다.

물품 공유를 통해 
각 조합은 물품 다양성을 확보하고, 
소비자 조합원 공유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교육, 체험 프로그램 등의 공동 개최를 통해 
영세한 조합의 비용 절감과 함께 조합간 연대를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미약한 힘에 불투명한 미래지만
움츠리지 않고 한발한발 내딛고 모색하는 길만이 
봉봉협동조합을 의미있는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 키워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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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밭두렁공부방 학부모회의가 있었다.

그동안 밭두렁공부방은 명호면민회관을 빌려

명호 어린이들의 방과후 휴식과 보호, 학습 등을 진행해 왔는데

급작스럽게 공부방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비워줘야할 형편이 되어버렸다.

명호면에 '어린이 집'이 들어오면서 지금 공부방으로 사용중인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기로 했기때문이다.

공부방이나 어린이집이나 똑같이 명호면민을 위한

육아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소중한 사업들인데

어떻게 하다보니 공간문제로 이 두 사업이 충돌을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사업 추진 결정과정에서 충분히 공부방의 의견을

수렴 하는 노력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충분한 논의와 대책마련없이 사업이 추진되면서

공부방이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민간이 자율적으로 하고 있는 공부방을 가볍게 여기고

전경련의 지원과 군의 예산으로 하는사업에만 올인하는 

관료적이고 성과주의적 관의 모습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정을 알게 된 몇몇 주민들이

다양한 채녈을 통해 공부방사업을 위한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고

중단기적인 문제해결 방안까지 마련되게 되었다.

장기대책으로는 2013년까지 명호초등학교와 교섭하여

마을종합개발사업 예산으로 아동센타겸 실내체육관을

짓도록 추진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아직까지 변수가 많지만 지연민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준비해 나가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은 명호면의 협조를 구해 면장 사택을

공사기간중 사용할 수 있도록 추진해 보기로 했고,

그리고 면민회관 1층을 어린이집으로 리모델링 하듯

군청에 별도의 예산을 요구해 2층을 공부방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는 지역의원을 비롯해

많은 지역일꾼들이 참석해 나름대로 위의 결정사항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결의할 수 있었다.

모처럼 밭두렁공부방 학부모 회의에

학부모도 아닌 사람이지만 참석하여

지역민의 현안을 같이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어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공부방을 위해 늘 애써온 봉화자활후견센타,

그리고 학부모여러분들의 노고가 우리 지역을 더 아름답고

사람살만한 마을로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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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전도사 박원순 변호사가 이웃 영양군에 있는 우리손산촌유학센타에 [상생의 농촌 마을만들기와 사회적기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왔다. 이번 강연은 희망제작소 창립 5주년기념으로 전국 50개 지역을 순회 강연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영양에서 지역활동을 하시는 분의 연락을 미리 받고 내가 사는 봉화군 지역사회에 이 소식을 전하자 명호면의 젊은 친구들이 자비를 들여 자발적으로 강연을 알리는 플랭카드를 만들어 달기까지했다. 그리고 오늘 명호의 젊은 친구들은 2대의 차로 나누어 타고 출발을 하고, 봉화자활센타에서는 아예 관광버스를 전세내어 50여명의 자활사업 참여자를 이끌고 영양으로 향했다. 


평일 오전에 열린 강연은 예상했던대로 참여가 저조해 봉화에서 간 사람들이 영양 주민들보다 휠씬 많은 것 같았다. 원래의 강연장소는 영양군청의 비협조로 우리손 산촌유학센타로 정해졌다가 봉화자활센타의 단체 참여로 영양성당으로 급히 변경되었다.  갑작스런 강연 장소변경에 따른 이유도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경북 북부지역사회의 정치적 낙후성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았다.  박원순 같은 시민운동가에 대한 관의 시대착오적인 대우도 그렇고 지역주민의 대책없는 보수적 편향, 극우적 정치성향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어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지역공동체활동을 하는 우리 지역사회의 낮은 주체적역량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9시30분에 시작하는 강연에 늦지않기위해 8시에 비나리마을을 출발했다.  918번 지방도를 따라 봄농사준비로 기지개를 펴는 영양의 봄 언덕을 1시간여 달려 영양읍에 도착했다. 역시 남루한 농촌의 소도읍인 영양읍을 가로질러 강연이 열린 영양성당에 도착했다.  참 오랜만에 성당경내에 들어선 때문인지 카토릭신자였던 어린시절의 추억도 떠오르고, 또 종교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사회에서 종교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가톨릭교회의 물량적 성장과 보수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영양군내에서 이런 일에 장소를 제공해줄 기관이나 단체가 성당밖에 없다는 사실이 고맙기도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대중강연이 다 그렇겠지만 강연의 내용은 평이하고 단순했다. 박원순씨 자신의 삶의 역정을 보여주며 어떻게 살것인가, 어떤 가치에 기반한 삶을 살것인가는 말씀을 이어나갔고, 그리고 '커뮤니티 비지니스'의 여러 성공사례를 들어 우리 농촌사회도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미래를 맞이하자는 내용의 강연을 이어갔다. 편안하고 친근한 화법,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 박원순같은 대중활동가만이 갖는 자질이 부러웠다. 


한시간정도의 강연을 이어 질의 응답시간을 한시간 정도 가졌다. 중1아이의 어머니께서 아이 교육에 대한 질문도 하고, 희망제작소와 지역주민의 구체적인 연대와 결합방식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방앗간'을 운영하는 명호의 나무아빠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박원순씨의 생각도 묻다보니 11시조금넘어 강연은 끝이났다.


강연을 끝나고 성당 마당엘 나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단체별로 박원순님과 기념사진을 찍고 성당을 나섰다. 일터로 바삐 돌아와야할 형편이었지만 주체측에서 식당을 예약한 탓에 원하지 않는 8,000원 짜리 비빔밥을 억지로 먹고 오후일과를 위해 명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 강연에서 박원순님한테 하고싶었지만 주제와의 관련성때문에 하지 못한 질문을 생각해봤다. 박원순씨는 전 정부시절 정부비판에 날을 세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극단적인 반환경 반인권 반민주 반노동 정권인 MB정권하에서 오히려 비판의 빈도가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혹시 최근 골몰하고 있는 '사회디자인'과 '정치'를 분리하여, 사회디자인의 고유 영역에 몰두하고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는 회의를 갖고 있는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 '희망제작소의 무상 인턴사원' 논란 뉴스를 접했다. 많은 논란거리가 있지만 나는 자식이 대학졸업후에도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받아가며 인턴사원을 한다는 것에 대해 정서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결국 '희망제작소'같은 비영리 사회단체에 인턴사원이 되기위해선 생활비 걱정이없는 부자집 자식이 되어야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때문이다. 비록 사기업과 다른 비영리사회단체일 지라도 자원봉사자와는 다른 인턴 사원에게 하루 5000원의 식비가 아니라 기본적인 생활비, 교통비, 용돈 정도는 주는것이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의지조차 지나치면 독선의 길로 빠지기쉽고, 내적 확신에 충만하다보면 타인의 작은 삶들을 보지못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는게 아닐까 쉽다.  
  
책으로만 접했던 박원순변호사를 가까이서 접하고 농촌에서 희망만들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는 시간을 가진 날, 나는 또 숱한 고민을 덤으로 안고 일터로 돌아왔다. 언제나 출발점에 머물러 있는 마을 사업도 그렇고 마을사업을 진행 하는 과정에서 갖는 나의 역할에 대한 진전없는 생각들도 꼬리를 물었다.

그래도 아직 일한 밭이 있고, 같이할 젊은 친구들이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겠지?
또 삽이나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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