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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형이 연주하던 '로망스'와 '아람브라라궁전의 추억'을 듣고 클래식 기타에 처음 혹한 것이 1970년대 말, 고등학교시절이다. 그러니  벌써 30년을 휠씬 더 전에 기타와의 인연은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 그기타를 한번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이 그냥 기타를 가까이 두는 것에 만족하며,  언젠가는 꼭 기타를 배울 수 있겠지 하는 근거없는 희망만 간직한채 살아왔다. 그런데 딸애가 중학교를 다닐 때 이 때다 싶어 딸애에게 내가 배우지 못한 기타를  배울 것을 종용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 때 딸은 기타의 매력을 공감할 수 있었던지 한 일년 먼길을 버스를 타고 기타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그뒤 입시로 인해 오래동안 기타를 방치해둔 세월이 있긴 했지만 다시 대학에 진학하면서 기타써클에 가입하고 나름대로 기타를 즐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도 가끔 집에 내려와 기타를 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딸애가 참 사랑스럽다.

그렇다고 내자신 영영 기타 배우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2년전 봉화문화원에 클래식 기타반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큰 용기를 내어 등록을 했다. '쉰나이에 왠기타 초보?'하는 생각을 가지고 나간 문화원 기타반은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었다. 젊어서 부터 배우고 싶었던 기타를 이제사 배우게 되었다는 정년 퇴직하신 어르신은 물론이고 일흔이 넘은 할머니도 계셨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한테 어우려져 기타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나이도 실력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봉화문화원 기타반에서 방치되었던 꿈을 다시 실현할 수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기타반  선생님의 열정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살면서 많은 배움의 과정이 있었고  수많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그토록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가진 분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모처럼 용기를 내어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고 좋은 분들과 같이 기타를 배우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같이 합주곡을 연습하고 지역 사회의 작은 무대에 첫 공연을 할 때의 두근거림은 평생 잊혀질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올해 기타를 배운지 2년만에 처음으로 작은 음악회에서 독주곡을 연주하는 영광스런 기회를 가졌다. 비나리마을학교에서 있은 [재능기부단 정기공연]에서 [Mi Favorita]를 연주했다. 너무 긴장하다보니 악보를 놓쳐 헤메기도하고, 손이 땀에 젖어 코드를 제대로 잡지 못해 버벅거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자신이 평생 처음으로 독주곡을 연주했다는 기쁨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마음솟에는 많은 계획이 절로 생겨났다. 앞으로 1년동안 연주할 수 있을 만치 숙달하고 싶은 곡들이 벌써 정해졌다. [Serenta Espagnola], [Sons De La Campanellas]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난 뒤겠지만 언젠가 [Cavatina]도 꼭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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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를 시작하면서 많은 계획을 세웠고,

또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계획들은 까마득히 잊어 버리기도했고

또 어떤 다짐들은 뻔히 알면서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해가 다 가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켜내었던 한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봉화문화원 기타강좌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피치못한 사정으로 3번의 결석을 하기는 했지만

어떤 업무, 어떤 잡사보다 앞서

기타교실 참가를 최우선적으로 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끝내 자켜내고야 말았습니다.

 

충분한 연습도 못하고 어떤 때는 다음 수업까지

일주일내내 기타를 가방안에서 꺼내보지도 않은 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타 수업에는 꼭 참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고,

또 수업시간에나마 기타연습에 몰입하기도 했습니다.

몇일전 봉화문화원에서 이렇게 한해동안 배운

각종 강좌의 수강생들이 모여

문화학교 수료식겸 학예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참 뜻깊고 행복한 자리였습니다.

이자리에서 누군가 인사말 중에

'악기를 배우는 일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내년부터 저와 같이 기타교실에 나가기로 한 한 친구말씀이

고단한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는 대견스런 자신에게

기타를 연주해 주고 싶어서 기타를 배우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참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올 한해 기타와 더불어 많은 좋은 분들은 만나고

기타 선율 속에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어설픈 실력으로나마

3번이나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그 3번의 연주를 올 한해 거뜬히 잘 보낸

저 자신에게 헌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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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초 봉화문화원 기타교실에 수강 등록을 하고
그동안 딱 한번 밖에 빠진 것 말고는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강좌에 참여해 왔다.

나이만 들고 실력은 없는 늦깍이 수강생이 될까봐 몇번을 망설이다가
수강등록을 했지만 다행히 연령대도 다양하고
기타 실력도 특별한 수강생이 아무도 없어
그나마 난 잘 치는 축에 들어 우쭐해해도 좋을 정도 였다.


수강생은 무려 45명이 등록을 했고 매주 서른명 정도가 수업에 참가하는데
평생 처음으로 기타를 잡으신다는 한갑이 넘은 어르신도 계시고,
2~30년전 학창시절에 잠시 기타를 두드려보다가 이제 아이들 다 키워 놓고기타를 다시 배워보겠다고 오신 아주머니들도 계셨다.
물론 엄마등쌀에 할 수 없이 기타를 들고 와서는
수업시간 내내 장난만 치다가 돌아가는 개구장이
초등학교아이들까지 있었지만
그래도 기타를, 기타음악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인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기타수업을 네댓달 참가하다보니
이제 기타를 사랑하는 수강생들 대부분과도 친하게되었고
주초가 되면 벌써부터 수요일 저녁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기타를 새로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봉화문화원의 제안으로 그중에서 조금 실력이 나은 사람들로
합주단을 꾸려 
봉화은어축제의 부속행사인
지역문화한마당에 참가 하기로 했다.

수업시간의 절반이상을 연주회 연습으로 채우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따로 연습을 해서 오기도 했는데,
처음 합주 때는 도저히 무대에 올라갈 것 같지 않아 절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주 두주 시간이 쌓이면서 몰라보게 실력이 늘고
합주의 재미를 알아가게 되었다.
조금씩 다른 스타일은 둘째고
박자도 제각각이고 멜로디도 매번 놓치고 틀리고 하면서도
그래도 같이 어울려 한곡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재미는 
좁은 연습실의 더위를 잊게하기에 충분했다.


연주 전 마지막 주에는 단원들이 모여 따로 연습도 하고,
공연 당일에는 오후내내 연습과 리허설로 땀을 흘린 뒤에
드디어 봉화 내성천변 야외 무대에 올랐다.
연주곡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뉴질랜드 음악을 편곡한 '연가'와

기타음악중 가장 유명한 '로망스'를 편곡한 "Rumb Flamenka"
그리고 가요 "개구장이"를 준비했지만
행사진행 문제로 두곡만 연주를 했다.
수백명의 관중이 올려다보고,
화려한 조명속에서 강사님을 포함한 9명의 연주단원들은
모두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막상 연주가 시작되자 긴장을 풀고
연주 자체에 몰입하여 즐기는 모습이었다.

연주중에 상황을 살핀답시고
단원들의 모습을 둘러보다 내가 칠 멜로디를 놓치기도 하고
메뚜긴지 큰 모기지 알수 없지만
곤충으로 짐작되는 놈이 내 목덜미에 앉아
연주내내 왔다갔다 신경을 거슬리게했지만
연주가 끝나고 관중들의 큰 박수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끝없는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봉화문화원에서 지원해준 "출연료"를 들고
봉화읍의 유일한 까페인 '물향기'에서 뒤풀이를 했다.
맥주를 한잔 나누면서 그동안 못나눈 사적인 이야기들도 주고받고
기타에 대한 사랑도 고백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밤이 깊어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음 두가지는 마음에 담고 뒷풀이를 파했다.
연말에 봉화 문화원 학예발표회 때는
적당한 곡을 골라 수강생 모두가 같이 연주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봉화에도 '기타동호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겠다.
잘 치기는 포기했지만 그냥 즐기기를 원하는
기타음악 애호가들의 모임을 일생 같이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이 그만치 더 알찰 것이라 느껴진다.

이날의 행복을 안겨준 봉화문화원과
영주소리누리 음악학원 조선화 선생님,
그리고 같이 배우는 즐거움을 알게해준
수강생 모두에게 나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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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다시 시작한 기타에 빠진지  벌써 서너달이나 지났다. 

봉화문화원에서 기타반을 개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대책없이 먹은 나이가 민망해 망설이다가
불쑥 등록을 하고 수강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번 두번 수업이 진행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기타 배우는 재미에 빠져버렸다.
휴일도 따로 없이 오직 먹고 사는 일에 일주일 내내 쫒기다
기타수업이 있는 수요일만은 그래도
아침부터 다른 날과는 다른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작은 설레임으로  시작한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하고
오후 6시 30분이면 봉화문화원에 도착한다.
미리 나와 연습하시는 수강생도 계시고,
수업이 시작한 뒤 늦게 수업에 합류하는 사람도 계시지만
하나같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기타수업에 참가하시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다행히 45명가량의 수강생중에 나와 비슷한 연배가 몇분 계시고
이미 정년퇴직을 하셨거나, 예순이 다 되어 가는 분도 계시다보니
나는 쉰의 나이에 기타수업만 가면 당당히 소년이 된다.

봉화문화원 기타교실에 참가하는 수강생 모두는 거의 나와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기타를 배우는 일을 얼마나 즐거워하시는지,
기타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얼마나 고마워하시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기타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바로 알수가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배우시는지,
얼마나 깊이 몰입해서 기타의 선율에 빠져드시는지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수강생들의 열의가 얼마나 대단한지 벌써 8월에 있을 봉화은어축제에
봉화문화원기타교실 수강생들로 구성된 기타합주반이
축제 부속행사에 참가해 기타연주를 하기로  결정까지했다.
누구 한분 반대하시는 분없이 흔쾌히 
연주에 참가하시겠다고 승락하시는 걸 보고 놀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수요일 저녁이면 기타를 처음 배우는 소년의 설레임으로
2시간 30분동안 기타  수업에 몰입를 한다.
학창시절에 잠시잠깐이나마 공부에 몰입한 이후 참으로 드물게
무엇인가에 몰입해서 그 재미에 빠져본다.
나는  세상사가 아무리 복잡하다고해도
그시간만은 참으로 단순한 감각으로 세상을 느낀다.
먹고사는 일이 아무리 고달프다고해도
꼭 그 시간만은 나는 마냥 평화로운 마음으로,
순진무구한 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기타반에서 어제는 늦은 스승의날 파티를 열었다. 
그동안 수강생 모임을 꾸리겠다고 나서는 분도 없었고
수강생 상호간은 물론 수강생과 강사분간에 인간적 유대가 소홀했는데
늦게나마 모임이 꾸려지고 수강생들끼리 자발적으로
작은 돈을 거두어 강사선생님께 드릴 작은 선물도 준비하고
처음으로 수강생 상호간에 인사도 나눌 피티를 열게 된 것이다. 

어설픈 자리지만 준비가 늘 부족한 수강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강사님께 감사의 뜻을 전한뒤,
수강생 한분한분의 자기 소개와 질문을 이어가며
봉화문화원에 웃음이 넘치는 즐거운 파티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급기야는 조선화 강사님의 기타연주를 청해
작은 파티를 풍성하게 마무리했다.

조선화 강사님은 영주시 하망동에서 소리누리라는 음악학원을
부군과 함께 운영하고 계시단다.
음악학원이 번창하길, 아니 우리사회에 음악이 넘쳐나고,
음악을 배우는 재미를 누릴 수 있을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사회로 거듭나길 빈다. 

요즘 나는 봉화문화원 기타교실에서 기타를 배우는  재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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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부터 봉화 문화원 기타교실을 수강중이다.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 저녁6시30분부터 2시간의 강습이다.

기타는 나에게 청춘의 다하지 못한 목마름의 상징이다.
한번도 제대로 쳐 본적이 없었기에 기타는 오히려 더 애절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런 기타를 쉰의 나이에 다시 배우기로 했다.
사실 10대 이후로 로망스나 겨우 칠줄 알다가 더 이상 나아지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평생을 한달에 두어번 기타를 들었다 놨다 해 온게 고작이다.
그러다보니 그나마 옛 실력도 온데 간데 없이 다 사라지고
오직 기타에 대한 그리움만 잔뜩 쌓이게 되었다.

그 갈망을 딸애에게 전가한 때문인지 딸애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클래식 기타 동호회에 빠져 전공공부보다 써클 활동에 더 열심인것 같다.
한번씩 딸애가 집에 내려와 기타를 치면 
나의 기타에 대한 갈망을 더 깊어졌다.
영화 [ONCE]의 주제가 "Falling Slowly"의 선율은 연주하는 
딸애가 이쁘고 대견스럽지만 마음한구석에 셈도 나고
기타에 대한 절실한 갈망도 깊어만 갔다. 
거기다가,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다시 기타를 배워보겠다고 거짓 다짐만 해왔는데
그렇게 갈망한 여유는 나의 삶에서는 영영 생길 것 같지 않다는 확신마저 들었고,
그러는 와중에 봉화 문화원에서 기타교실을 진행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실 무진장 쑥스럽고 도대체 어떤 부류의 수강생일까 걱정도 되었지만
지난 3월2일 케이스도 없는 떼묻은 기타를 들고 봉화문화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모든 걱정은 다 근거없는 것이었다.
일단 수강생은 나이나 직업면에서 다양하기 이를데 없었다.
초딩부터 50대의 아저씨까지, 나같은 농사꾼에서 공무원
그리고 학교 선생님도 기타를 배우고자 한 자리에 모였다. 
남녀 노소가 어우려져 같이 기타를 배우는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풍경속에 같이 들어가 이제 경우 계이름을 익히려드는
40~50대 아저씨 아줌마들과 같이 기타의 울림속에 잠겨드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삶의 기쁨, 살아있음의 희열을 준다.

사실 쉰살이 되어 계이름을 익히기 시작하는 수강생들이 언제 로망스라도 칠까,
그리고 평생 아람브라 궁전을 쳐 보기나 할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마 다 아니라도 좋을 것 같다.
그냥 배우는 것 자체가 주는 기쁨 만으로도
나도 그렇고 그분들도 그렇고 다 충분히 보상을 받은 것이니깐!

내 삶 속으로 다시 들어온 기타가 내 삶의 끝까지 동행하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를 천지신명께 빈다.
 





기타배우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인연을 제공해 주신
봉화문화원 강영선 사무국장님과 기타교실의 강사이신 조선화님께 감사드립니다.

* 수업시간 : 매주 수요일 오후 6시30분부터 약 2시간
*  현재 수강생 약 35명 / 학기당 2만5천원의 수강료
*  문의처 : 봉화문화원 054-673-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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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지난 한해 봉화문화원 미술교실을 맡아 강의를 해왔는데
 [봉화문화]의 청탁을 받고 그 아름다운 시간을 정리한 글입니다.


아름다운 시간들

-류준화

긴장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미술 반 첫 수업이 벌써 일 년 전이 되었다.

작년 초, 그해는 개인전이 잡혀 있는 터라 다른 스케줄은 뒤로 하고 그림에만 올인 해볼 거라고 나름 일 년의 계획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미술 강좌 하나 맡아 달라고 하시면서 ‘바쁘면 더 열심히 살면 되지요. 바쁠수록 더 많은 일을 한답니다.’ 그러시는 문화원 사무국장님의 전화 한 통화에 일 년 계획을 다시 세웠던 기억이 난다.

막상 수업을 하기로 하고 나니 바빠진 일정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수업해할 지가 오히려 더 고민되었다. 무작위 다수를 향한 오픈된 미술수업은 처음이여서 어떤 분들이 강좌신청을 할지도 파악 되지 않았고 대상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 년 과정의 미술 강좌를 꾸린다는 게 덜컥 겁이 나기도 했었다.

또 한편으로는 미술의 경험유무와 상관없이 넘쳐나는 시각문화의 홍수 속에서 미술을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 미술이 어떻게 다가가야 되는지, 개개인의 미적 감성을 어떻게 발현시킬 수 있는지를 몸의 총체적 감각 안에서 새로운 소통과 체험들로 변화된 시각문화에 접근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고도 싶었다. 물론 이런 수업은 보다 체계적이고 훈련된 수업준비가 많이 요구되는 것이라 생각으로만 그쳤지만 미술교육을 고민하는 입장에선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이긴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술이 누구에게라도 주눅 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오래된 습관처럼 우리의 미술수업은 늘 기능중심의 수업이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사물과 똑 같게 표현되어지는 것이 기준이었고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을 구분 짓기만 하는 전혀 창의적이지도 미적이지도 않는 수업이었다. 아마 그래서 그림에 재주가 없는 아이로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대다수의 어른들은 학교를 떠남과 동시에 미술과는 벽을 쌓게 되었고 자신의 미감을 절대 발설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것이 지금까지 보아 온 내 주변의 대다수 어른들이 미술을 대하는 태도였다. 몸의 세포 수만큼이나 다양한 감각의 층을 우리의 미술교육은 묘사력 하나로 정리해 버렸다.  

미술은 자유로움이고 자기를 표현하는 도구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어떤 창작품이든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미술로 놀고 미술로 표현하고 삶과 함께 일상 속에서 미술은 즐겨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적어도 나의 수업의 목표는 미술로 인해 주눅 들게 했던 벽을 허무는 것이길 원했고, 두려움을 없애고 나를 즐길 줄 아는 시간이 되길 원했다.

나의 예상대로 수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 이후 거의 미술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셨다. 우리도 잘 그릴 수 있을까요? 라고 첫 수업시간에 내게 물었다.

그렇게 첫 수업에서 보였던 두려움은 몇 번의 수업 후 금방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그녀들을 억압했던 두려움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시켰다. 난 벽을 허물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던 열망들이 곧 열정이 되었고 오히려 내가 학생들의 열정을 따라가기 바빴다.

너무나 즐겁고 신나게 수업을 하느라 학생들 개개인에게 미술이 무엇인지 미술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녀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감성들을 끄집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해내는 것에 자유로웠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손끝에서 나오는 희열들을 맘껏 즐기고 있었고 의도대로 그려지든 그렇지 않든 자기 몸의 모든 감각들이 한곳에 집중되는 쾌를 느끼고 있었다. 잠재되어 있던 오감들이 팽창되어 한껏 부풀어 오른 열정으로 충만했고 나는 살짝 건드리기만 했을 뿐인데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았다.

초등학생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까지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이 모인 미술수업은 나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오히려 내가 미술을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을 배우는 중이였다. 미술반 강의실 앞을 지나가던 누군가는 미술반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고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핀잔 아닌 질투를 보이기도 했었는데 그 유쾌함이 좋았다. 같은 그림을 반복 또 반복하며 최상의 것을 만들려는 노력과 자신의 감성을 계속 유지하려는 의지와 함께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과도 같은 긴 일 년의 수업과정을 끝내고 그간의 결과물들을 모아 소박하지만 커다란 울림이 있는 전시회를 가졌다.

우리도 잘 그릴 수 있을까요? 라고 첫 수업시간에 했던 질문을 아무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잘 그렸다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 버린 지도 모른다. 이미 모두들 아름다운 시간들이 무엇인지 알아 버렸고 함께했던 아름다운 시간들이 그림들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은 씨앗을 뿌린 기분이었다. 불과 일 년 만에 너무나 훌륭한 작품들을 쏟아 놓으니 다음의 전시가 기대된다. 작은 씨앗 속에 큰 나무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행복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누구도 주눅 들게 하지 않는다는 나의 교육목표는 이룬 듯하다.

201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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