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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라고 불리는 한 인간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한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다.
피해자가 너무나 안스러운 어린 여학생인데다가
,
피의자의 행각이 하도 기괴망측하여
사회적 관심도가 큰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


하지만 정도를 넘는 신문
, 방송의 보도와,
대중의 반응은 충분히 그럴 만한 한계를 넘어
집단광기로 변질되고 있다
.
 
피의자의 인권을 말하는 순간 집단 린치가 이어지고,
사형제에 대한 반대의견은 밭붙일 틈이 없다.
피의자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마저
샅샅히 발굴하여 대서특필하는가 하면
,
지배세력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한명숙 재판이나
MB의 독도 양해 발언등은 지면에서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온통 국민적 관심사가 김길태 사건하나로 모아지는 듯하다.

사실 어찌 이 사건을 접하는 국민치고
분개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김길태 관련 기사를 읽을 수가 없다.
자식 가진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도저히 이 사건을 마주하기 조차 무섭기 때문이기도 하고
,
현장 중계하듯 그 세세한 묘사를 마다 않는
속물적 신문 기자의 잔인성에 스름끼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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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이유리양 이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덕포여자중학교 교실에 초등학교를 함께 다니고 같은 반이 된 한 여학생이 갔다 놓은 백합이 쓸쓸한 모습으로 주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전의 연쇄살인범인 강호순 등에 이어
범죄자에 대한 또 하나의 잔혹 복수극이
언론의 진두지휘와 대중의 추종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
나는 사실 걱정스럽다.
보수언론이 불지피고 부채질하는 대중의 분노가
정의
, , 인간애에 근거한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노 뒤에 우리는 어떤 조치로
그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려고 했는지
,
그런 흉악 범죄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구제하고 보살피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잔혹 범죄의 피의자는 재판을 통해 유죄가 입증되면
종신형을 통해 사회적으로 영구히 격리하면 된다

이제 더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범죄를 막기위한 사회적 처방이다
.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그런 괴물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우리 자신은 그와 같은 괴물을 잉태한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역할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그와 같은
괴물
어떻게 제어하고 개조해서
참혹한 범죄의 주인공이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할 것인지,
최소한 그 괴물로 부터
어떻게 우리 삶의 안정성을 지켜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

사실 우리 사회에 김길태는 단 한명 뿐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 만연한 물질주의
, 팽배한 탐욕, 무한 경쟁과 좌절
그로 인한 사회적 적대감

이 모든 것이 반사회적
, 광적 잔인성을 갖춘 괴물의 탄생을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에 너무나 충분하기 때문이다
.
오늘
는 묵묵히 길을 가지만
내일
괴물이 될 수 있는 인간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고,
벌써 합법과 관행의 탈을 쓰고
그에 못지않은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또 다른 버전의
괴물들이
버젖이 사회적 지위와 부를 누리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이미 포획한 괴물에 돌을 던짐으로서
나의 결백함을 확인할 게 아니라,
어려서 부터 상처받고 좌절하고, 고립되어
'괴물'로 자라는 우리 사회의 '김길태'가
자라나는 것을 막기위한 작은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또 다른 버전의 괴물들이 발붙일 수 없도록
사회적 투명성을 높이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의 평가 분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에서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세상 모든 부모의 딸이된
이양의 영전에 마음의 국화꽃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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