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라고 불리는 한 인간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한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다.
피해자가 너무나 안스러운 어린 여학생인데다가,
피의자의 행각이 하도 기괴망측하여
사회적 관심도가 큰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도를 넘는 신문, 방송의 보도와,
대중의 반응은 충분히 그럴 만한 한계를 넘어
집단광기로 변질되고 있다.
피의자의 ‘인권’을 말하는 순간 집단 린치가 이어지고,
‘사형제’에 대한 반대의견은 밭붙일 틈이 없다.
‘피의자’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마저
샅샅히 발굴하여 대서특필하는가 하면,
지배세력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한명숙 재판’이나
‘MB의 독도 양해 발언’ 등은 지면에서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온통 국민적 관심사가 ‘김길태 사건’ 하나로 모아지는 듯하다.
사실 어찌 이 사건을 접하는 국민치고
분개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김길태 관련 기사를 읽을 수가 없다.
자식 가진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도저히 이 사건을 마주하기 조차 무섭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장 중계하듯 그 세세한 묘사를 마다 않는
속물적 신문 기자의 잔인성에 스름끼치기 때문이다.
이전의 연쇄살인범인 강호순 등에 이어
범죄자에 대한 또 하나의 잔혹 복수극이
언론의 진두지휘와 대중의 추종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나는 사실 걱정스럽다.
보수언론이 불지피고 부채질하는 대중의 분노가
정의, 선, 인간애에 근거한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노 뒤에 우리는 어떤 조치로
그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려고 했는지,
그런 흉악 범죄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구제하고 보살피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잔혹 범죄의 피의자는 재판을 통해 유죄가 입증되면
종신형을 통해 사회적으로 영구히 격리하면 된다.
이제 더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범죄를 막기위한 사회적 처방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그런 괴물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우리 자신은 그와 같은 괴물을 잉태한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역할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그와 같은 ‘괴물’을
어떻게 제어하고 개조해서
참혹한 범죄의 주인공이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할 것인지,
최소한 그 ‘괴물’로 부터
어떻게 우리 삶의 안정성을 지켜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 ‘김길태’는 단 한명 뿐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 만연한 물질주의, 팽배한 탐욕, 무한 경쟁과 좌절
그로 인한 사회적 적대감…
이 모든 것이 반사회적, 광적 잔인성을 갖춘 ‘괴물’의 탄생을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에 너무나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늘 ‘그’는 묵묵히 길을 가지만
내일 ‘괴물’이 될 수 있는 인간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고,
벌써 합법과 관행의 탈을 쓰고
그에 못지않은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또 다른 버전의 ‘괴물’들이
버젖이 사회적 지위와 부를 누리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이미 포획한 괴물에 돌을 던짐으로서
나의 결백함을 확인할 게 아니라,
어려서 부터 상처받고 좌절하고, 고립되어
'괴물'로 자라는 우리 사회의 '김길태'가
자라나는 것을 막기위한 작은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또 다른 버전의 괴물들이 발붙일 수 없도록
사회적 투명성을 높이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의 평가 분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에서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세상 모든 부모의 딸이된
이양의 영전에 마음의 국화꽃을 바칩니다.
'시시비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삽으로 만든 주차장 - 나의 삽질과 이명박의 삽질 (0) | 2010.04.22 |
---|---|
운곡천 산업폐기물매립장 설치를 저지하다!! (0) | 2010.04.08 |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 천암함 사건 대응, 국민은 기가 차다 (4) | 2010.04.03 |
운곡천 산업폐기물처리장 설치 반대투쟁 집회가 열렸습니다. (0) | 2010.03.31 |
청정 명호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왠말이냐? (4) | 2010.03.31 |
운곡천 산폐장 설치반대투쟁 결의문 (0) | 2010.03.31 |
운곡천 산폐장 반대투쟁 집회를 준비하며 (0) | 2010.03.31 |
운곡천산업폐기물매립장 설치 반대 투쟁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0) | 2010.03.27 |
낙동강 상류 운곡천에 폐석면 매립장을 설치한답니다! (10) | 2010.03.24 |
'국격 높이기'는 저품격 정치인의 입을 봉하는 데서 시작한다. (2) | 2010.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