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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신혼여행 가고 우리 부부는 舊婚旅行을 떠나다!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 아이 하나 낳아 기르며 산지 삼십 몇 년이 흘렀다. 그사이 아이는 자라 짝을 만나고 혼례를 치루니 우리 부부도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하노이 구혼여행길에 올랐다. 지난 고난의 기억을 지우는 행복한 여정을 기록에 남겨 노후를 대비해 본다.
 
2023년 4월 14일
휴가를 얻어 딸아이 결혼식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사실은 딸 결혼식보다 식 끝나고 떠날 울 부부 베트남 여행에 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서울 왔다. 용산역에서 마라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23서울화랑미술제”를 관람했다. 일만여점의 현란한 작품에 눈이 호사를 누렸지만 그림이 너무 많아 어떤 작품도 귀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2만원이라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방대한 아트페어 현장을 누볐지만 그래도 마음에 남는 유일한 작품은 [관훈갤러리]를 통해 출품한 아내 류준화의 작품이었다.

코엑스 나와 홍대로 달려오니 아내와 딸은 네일샵에 들어가고 나는 거리의 미아가 되었다. 아내가 홍대서 학위를 하고 내가 합정에서 친구들과 출판사를 하면서 합숙을 할 때 자주 들렀던 홍대거리를 혼자서 배회했다.

추억이 서린 홍대 거리를 걷고 고풍 찬연한 프랑스식 요리점에서 딸과 아내와 더불어 세 식구가 같이 비싼 저녁을 먹고 초저녁에 호텔에 들어와 곯아 떨어졌다. 새벽에 눈을 떠니 축의금 문자가 쌓였고 꼭 그만치 사정이 생겨 혼례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메시지가 쌓여 있다. 오히려 마음 쓰이게 한 내가 미안하다. 결혼식이란 게 참 걱정이 많다. 평생에 한번 치루는 대사니 시행착오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객이 너무 많을까봐 걱정이었는데 나중엔 너무 안오실까봐 걱정이다. 신랑신부에게 누가되지 않을까 사돈께 실례를 범하지 않을까 다 걱정이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데 다시 생각하니 그냥 되는대로 즐기면 되는 게 아닌가는 생각도 들었다.

4월 15일 혼례가 무사히 끝났다. ‘식’은 단순하고 단조로웠고 부모의 역할이라고는 하객맞이와 정해진 성혼선언문과 당부의 글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부모로서 별로 도와주지도 못했고, ‘식’보다 ‘실’을 중시하기에 아쉬운 것도 없었다.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결혼식이었지만 그래도 식이 끝나니 긴장이 풀리고 미리 세워둔 하노이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비로소 일기 작했다. 인근 까페에서 마지막 하객과의 담소가 끝나고 작별한 뒤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고, 살아갈 날을 점치며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인천공항 는 지하철로 달려갔다. 올림머리에 메이크업 그대로 딸사위보다 먼저 공항으로 떠나니 지인들이 놀리며 부부여행이 아니라 재혼여행으로 보인단다.

출국 때마다 자주 이용하는 인천공항 찜질방인 [스파온에어]에 누울 자리를 확보하고 몇 일간 먹지 못할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마땅히 할일도 없고 마음은 들떠 그냥 공항 청사를 할 일없이 걸었다. 공항은 나에게 알 수 해방감을 준다. 내안에 사는 내가 통제 불가능한 내가 숨을 죽이고 내가 통제 가능한 내가 기세를 얻는다. 나는 늘 길 위에서 행복하다. 자식가진 인간의 책무를 벗어던지고 나니 이제 좀 막 살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6일 새벽6시 출발하는 비엣젯을 타기위해 4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트램을 타고 승강장 까지 이동하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침식사를 해결할 곳은 유일하게 햄버거집 밖에 없었다. 그것도 주문의 선택지는 없고 오직 한 메뉴만 주문이 가능했다. 비싼 기내식 사먹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란 생각에 새벽부터 버거랑 찬 콜라로 배를 채웠다. 정시에 비엣젯에 올라 덜 잔 잠을 채우려 애쓰는 사이 착륙준비 멘트가 잠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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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훈갤러리에서 가져옮-

http://www.kwanhoongallery.com/bbs/board.php?bo_table=gal_02&wr_id=76

 

[관훈갤러리기획]류준화개인전

 

 



관훈갤러리기획

대지의 꽃 - 류준화 개인전


보라, 이 소녀들을 : 류준화의 소녀 월드, 소녀 미학

김영옥(이화여대, 이미지 비평가)

1. 동굴 우화, 그 이후: 소녀의 탄생

나는 주로 대중 잡지나 광고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내가 의도하는 이미지로 다시 만들어 내고 있다. 잡지나 광고 이미지에서 에로틱한 여성의 신체 일부를 새의 날개처럼 표현하기도 하고 물고기의 꼬리처럼 보이게도 하여 남성적 시선에 고정된 여성의 전형화된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의 독립적 욕망을 담아내고 있다. ... 하지만 쏟아지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자유롭기란 어렵다. 나는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조차 이미지 안에 머물러 있음을 동시에 ‘보여 주고자’ 한다.(강조: 필자)

여성의 욕망은 류준화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화두 중의 하나다. 비교적 작업 초기에 해당되는 <그녀의 침묵>(2001)전에 부친 위의 말은 <Spring>(2011)전에 이르기까지 이후 이어지는 그녀의 작업 모두에 대한 일종의 각주처럼 읽힐 수 있다. 국가주의-가부장제-자본주의가 통치해온 여성의 실존에 빗금처럼 그어져 있는 (그래서 그 상징계가 기획한 그 ‘여자’의 주체성을 실패로 이끄는) 자유의 욕망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 트랜스포머처럼 자신의 신체 일부를 새의 날개로 물고기의 꼬리로 변형시켜 이 상징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여성들. ‘이미지로 호명되면서 삶을 얻지만 또 그 이미지를 벗어나고픈 독립적 욕망, 그 경계지점’에 서 있던 초기의 작업세계가 돌파구로 찾은 것이 바로 소녀-새의 존재태다.



속삭임 mixed media on canvas 162x130cm 2011



류준화의 작업들은 그 초기에서부터 현재의 소녀 시리즈들에 이르기까지 ‘보기’를 둘러싼 다양한 철학ㆍ미학적 성찰들을 함께 불러들인다. 대중잡지나 광고 이미지에 등장하는 성애화된, 남성적 시각 주체의 쾌락의 대상인 여성 이미지, 그 이미지를 모방하고 싶으면서도 그 이미지에서 자유롭고 싶은 여성‘들’의 욕망, 이미지를 생산함으로써 여성들의 ‘자유’를 표현하고자 하는 류준화 여성 작가의 예술가적 욕망,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다양한 소녀 이미지들. 류준화가 생산해 낸 이미지들을 ‘보고 있는’ 관람객은 말하자면 이 모든 이미지들의 관계와 그것들의 추동력이거나 매개물인 욕망을 함께 보고 있다. 그렇다면 관람객의 이 ‘보기’는 어떻게 수행되는가? 명백하게 소녀로 ‘보이는’ 류준화의 ‘그림들’은 남성적 시각쾌락의 대상에서 자유롭고 싶은 여성들의 욕망을 어떤 ‘본질적 관점’에서 표상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표상은 (플라톤의 동굴우화에 따른다면 심지어 이중적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가? 플라톤의 동굴우화와 그를 잇는 서구 형이상학 전통을 비판적으로 거슬러 읽으면서 카자 실버만은 세계관객(world spectator)로서의 바라보기를 주창한다. 서구 형이상학은 감각적 현상 세계와 초감각적 관념 세계를, 즉 모습(appearance)과 존재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고 현상을 참 존재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 대항해 카자 실버만은 서로‘에게’ 나타남으로써 (즉, 보여짐으로써) ‘존재’하는 사물들의 세계를 강조한다. 우리가 삶을 꾸려나가는 ‘세상’은 바로 서로의 바라봄에 그 존재를 빚지고 있는 존재들의 실존적ㆍ현상학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라봄’이 세상 안에서 세상을 향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류준화의 소녀들은 다른 생명체들, 사물들을 ‘향해’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고/표현하고’ 있는 소녀들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미지 ‘재현’은 이미 현존하는 것들의 다시 드러냄으로서의 재-현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비로소 현존하게 하는 수행적 실천행위로서의 재현이다. 그렇게 해서 류준화는 ‘이미지로 호명됨으로써 존재하되, 동시에 그 호명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존재하고자 욕망하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늘 초감각적 관념 세계를 남성적 영역으로, 감각적 현상의 세계를 여성적 영역으로 간주해온 기존의 젠더화된 사유방식을 염두에 둘 때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류준화의 소녀는 누구인가? - 없거나 하나가 아닌 여성주체들

치렁치렁 자라고 흐르고 날아다니는 머리카락으로 (특히 여성과 관련된) 상형문자를 형상화함으로써 기존의 가부장적 상징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기호계를 구성하는 문자도(文字圖)까지 포함해 류준화는 오랫동안 다양하게 소녀들의 형상화에 주력했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소녀 형상화가 드디어 어떤 ‘세계’ 즉 ‘소녀 우주’라 일컬을 수 있는 경지로까지 나아갔음을 확인한다.)



문자날개 mixed media on canvas 145.5x112cm 2012


소녀, 아니 ‘류준화의 소녀’는 누구인가? 그녀의 작업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도대체 소녀란 어떤 존재이며, 류준화의 소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여타의 소녀들과 어떻게 다른가? - 이런 질문으로 관객들은 류준화의 소녀 그림에 다가갈 것이다.

소녀는 일반적으로 아이와 여성의 사이 공간 (in-between), 문지방의 공간에 위치해 있는 존재다. 소녀가 불러일으키는 매혹과 두려움은 소녀의 이런 문지방적 성격에서 나온다. 소녀들은 급격한 사회 변동기에 아방가르드의 상징적 위치를 부여받는다. 한국사회에서 촛불집회 때 실제와 상징 양측에서 ‘촛불소녀’가 보여주었듯이 소녀성은 사이공간으로서 특히 급격한 사회변혁의 와중에서 성공과 희망, 실패와 불안의 투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장소로 기능한다.

한국사회의 현실 공간 속에서 소녀들은 남아선호 사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전통적인 위치에서부터 테크놀로지와 팬픽, 야오이, 코스프레 등 대중문화의 선진적ㆍ유희적 소비를 통한 하위문화 주체로, 그리고 가출과 원조교제의 위험한/위협받는 성적 주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소녀는 또한 성적 폭력에 가장 빈번히 노출되는 사회적 약자로서 지식인 남성들의 감성적/감상적 자기 반성이 투영되는 타자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 소녀들이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사회의 순수와 오염을 상징하는 이 기표로서의 소녀들은 현실에서 또한, 오형근의 ‘소녀 연기’ 사진들이 보여주고 있듯이, 무구와 유혹 사이에서 능수능란한 시이소 게임을 벌인다. 그렇다면 작가 자신에게 소녀는 누구인가?


대지의 꽃 mixed media on canvas 181x227cm 2012



나에게 소녀는 불안한 경계입니다. 뭔가 충돌하는 긴장된 지점이기도 하고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모호함이고 그러면서 알 수 없는 미래를 고집스럽게 확신하는 분열의 지점입니다. 그리고 소녀는 자신의 출구를 발견하게 되는 문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첫 자기 이해의 순간, 그 지점이 소녀 아닌 소녀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 생각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그 경계지점에서 소녀와 소녀의 감성이라는 게 생긴다고 본다. ... 자기를 알게 되고, 또 ‘자기를 알아가고 싶어 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지각하는 그 지점, 그게 바로 죽음의 경계를 넘어 이승으로 돌아오는 바리데기의 지점일 거라고 생각한다.

각각 2007년, 2012년에 행해진 이 설명들에서 소녀의 ‘경계적’ 존재성은 현상적 차원에서 점차 여성의 ‘자기 이해’에 대한 존재론적 원형 이미지로 움직인다. 정체성의 관점에서 볼 때 소녀는 이후에 전개될 삶의 모든 국면들을 품고 있는, 혹은 관통하고 있는 어떤 단단한 핵 같은 것이다. 여기서 나는 소수자 감수성이 뛰어난 소설을 쓰는 쓰시마 유코가 ‘남자’와 ‘소년’에 대해 한 말을 떠올린다. ‘남자는 부재한다. 남는 것은 남자 속에 계속 살아있는 소년이거나 아니면 사회적인 관념 그 자체일 뿐이다. 사회적인 관념으로 화하여 살고 있는 남자를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묘사하는 것은 헛수고라는 기분도 든다’고 그녀는 말한다. 소년이거나 사회적 관념 그 자체이거나, 둘 중의 하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소녀면서 여자로, 여자면서 소녀로 살 수 있다. 가부장적 언어체계 안에서 여성은 남성/성을 설명하기 위한 기호로 작동한다. 많은 여성주의 철학가들은 그래서 ‘여성에겐 성이 없다’고 말하거나(모니크 위티그), ‘여성주체는 없다. 만약 여성이 주체라면 주체는 하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뤼스 이리가레). 모든 담론이 남성중심의 의미경제 체계 안에 갇혀 있다면 그 안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그 어떤 주체적 위치성도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남자는 소년이거나 사회적 관념 그 자체일 뿐이지만, 여자는 소녀이면서 수많은 여자들로, 즉 하나가 아닌 주체로 존재한다. 류준화의 소녀는 그래서 현실적 연령을 가늠하기 어려운 몸과 표정을 간직하고 있다.



꽃구름 mixed media on canvas 112x145.5cm 2012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여자들로 존재하기까지, 그토록 슬프고 괴기어린 “초록날개”(2007)에서 “새”(2007)로 변신하기 시작해 그토록 단단하고 고요하게 생명을 창조하는 “물의 시간”(2009)에 이르기까지, 이번 전시가 보여주듯이 아예 거대한 꽃들의 대지가 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환희의 지경에 이르기까지, 류준화의 소녀들은 폭력과 희생, 분노를 숨기면서 드러내고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되었으므로), 드러내면서 숨겨왔다 (기존 재현 방식의 일의적ㆍ투사적 수용에 저항하기 위해). 그렇게 소녀를 소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즉 여성들을 ‘스스로 이해한 자기’로 살지 못하게 하는 폭력적 현실을 무대화했다.

본격적으로 여성/주의 그림을 그리기 전 대학시절에 작업한 그림들에서는 그 기괴함이 더 강하다. 구체적인 형상은 없는 추상화들인데도 그랬다. 내 안에 분노들이 많았던 것 같다. 사실 내 그림 속에는 엄마의 한들이 서려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추상적인 형상들 속에 내가 담고 싶은 그 분노의 내용들을 숨겼던 거다. 그 때도 역시 내 머리 속에는 늘 약자에 대한 생각이 있었고, 그 약자의 대변인으로서 항상 어린 아이를 담았던 것 같다 ... 추상적 형상 속에. 휠체어 탄 아이를 넘어뜨리는 어른같은.

휠체어 탄 아이를 넘어뜨리는 어른. 망설임 없이 작가의 입에서 나온, 그만큼 작가의 마음속 깊숙이 새겨져 있음에 틀림없는 (‘도가니’ 현상이 보여주듯 장애소녀에 대한 폭력은 사실 한국인 모두의 무/의식에 새겨져 있다.) 이 이미지는 인간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폭력의 어떤 원형적 이미지 같은 것이다. 그녀의 전 작업과정은 말하자면 폭력의 원형적 희생 이미지 소녀에서 죽음과 삶 전부를 껴안는 여성적 생성의 원형적 이미지 소녀로 변화해온 셈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과정은 제의적 아우라에 둘러싸여 있다.

첩첩산중 두메산골에 살던 어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에는 늘 폭력에 희생당하는 여자들이 등장했다. 어머니들이 모여 앉아 나누던 이야기도, 실제 삶도 그랬다. 어머니 주변에, 내 주변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던 여자들이 많았다. ... 그때 어머니는 촛불 켜놓고 공양을 드리며 신들을 모셨다. 신들을 모시던 어머니의 행위는 내게 익숙했다.




검은 땅 mixed media on canvas 130x194cm 2012


작가가 들려주는 이 어머니의 이야기는 물론 그녀의 ‘사적인’ 어머니의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을 겪고, 유교가부장제의 혹독한 조건 속에서 묵묵히 삶을 책임지던 당시 어머니들의 보편적 이야기다. 촛불을 켜고 정한 물을 떠놓고 기도를 드리는 것은 험난한 삶을 견디는 일상적 제의였다. 류준화의 소녀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약간의 으스스한 유령적 느낌과 어떤 구원적 영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은 이렇듯 한국사회 어머니‘들’의 제의적 행위성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 유년기에 나의 어머니도 늘 신들을 모셨다.) 그녀에게 가장 강력한 영감을 준 어머니‘들’의 제의행위는 그녀의 작업에 등장하는 소녀들에게 이중적 존재성을 부여한다. 즉 여기서 소녀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장소를 다녀온 바리데기처럼 만신이면서 동시에 그 만신이 생명을 구원하는 소녀-여성들이다. 그녀의 소녀에게서는 제의를 관장하는 만신과 제의에 자신의 삶을 (혹은 그 삶의 구원을) 의탁하는 여성들이 함께 숨 쉬고 있다. 한을 씻어 내리기 위해 신들을 향해 밝힌 ‘어머니 만신들’의 촛불은 류준화의 그림에서 소녀를 비롯해 모든 존재들이 몸담고 있는 투명하고 성스러운 물로 계속 빛나고 있다.

이렇듯 류준화의 소녀 그림들은 예술이 한편에서는 아직 종교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연에서 분리되지 않았던 시기의 예술-자연-종교의 관계를 환기시킨다. 그러나 그녀의 이미지가 상상계로서의 설화적 세계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한은 “실현되지 않은 욕망들”이다. 류준화가 불러낸 이 소녀들은 실현되지 않은 바로 그 욕망들을 품고 귀환하는 여성들이다. “출항”(2009)이라는 그림을 보자. 배 위에 노를 잡고 있는 한 소녀가 있다. 뺨은 상기되어 있고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린다. 당차고 늠름한 자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소녀는 떠나는 게 아니라 이제 막 도착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경우 류준화의 소녀들에게서 ‘출항’은 이렇듯 떠남과 귀환의 이중적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귀환으로서의 떠남, 떠남으로서의 귀환. 떠남과 귀환의 이 겹침은 의미심장하고 매우 실존/주의적이다. 이 겹침은 설화의 세계와 역사적 현장의 겹침이고, 원형적 이미지를 개별적 ‘사건’으로서의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겹침이다. 지워지고 침묵된 욕망으로 피흘리던 소녀들이 차례로 불림을 받아 ‘지금 여기’ 역사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3. 이주의 시대, 소녀-이방인의 환대

이동 중의 사람들 ...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하고 기억하고 싶기도 하고 지워버리고 싶기도 한 경계 위에 서있는 자의 감성을 표현하고 싶은 거였습니다.

소녀와 새에 관한 오래된 전설이 하나 있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전승되던 아주 슬프고 잔혹한, 그러나 전율과 매혹으로 빛나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러 먼 길을 떠나야 했다. 그 길은 너무 멀어서 소녀는 날개가 필요했고, 소녀를 등에 태우고 강과 들판 위를 나는 새는 굶주린 배를 채울 고기가 필요했다. 소녀는 새에게 자신의 팔과 다리를 떼어 주며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류준화의 “발 없는 새” 소녀 그림이 있다. 그 그림 속에서 소녀는 발 없는 새를 오른 팔로 안고 있다. 그녀의 허리께에 착 붙어있는 그 새는, 소녀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소녀의 욕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발 없는 새와 날개 없는 소녀가 만나면 새는 발이 생기고 소녀는 날개가 생긴다. 소녀-새가 탄생한다.


날개 mixed media on canvas 72x91cm 2012


이 그림을 두고 작가는 인터뷰에서, 계속 날기만 해야 하는, 발이 없어 쉴 수 없는 새를 한 소녀가 쉬게 해 주는 것처럼 자신의 그림들이 이동 중에 있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불균등 발전 때문에,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좇아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 중이다. 근대 이래로 이주는 일국의 차원에서, 지구적 차원에서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기술, 통신, 초국적 자본, 미디어 등이 촉발하는 당대의 이주는 더 이상 비서구에서 서구로의 일방향이 아니라, 아시아 내에서, 혹은 비서구와 서구 간의 쌍방향으로 진행되면서 특히 이방인과의 삶에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류준화의 “발 없는 새”는 모든 이동하는 이들, 이방인들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여기서 “하나가 아닌 주체들”로서의 소녀는 성별을 벗어나 아무 곳에도 정착할 수 없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모든 곳에 정착할 수 있는 이방인들의 정체성으로 확장된다. 사람마다 소녀-새를 바라보고 교감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시대적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발 없는 새’의 비행을 이방인과 환대의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촉구한다. 인류학적 관찰이 증명하듯이, 그리고 데리다가 역설하듯이 모든 이방인은 환대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손님을 맞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의 이 환대권에 응답해야 할 책무를 지닌다. 이 응답은 손님과 적의 바로 그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방인을 손님으로 인정하고 환대하는 것, 이것은 개인과 국가의 차원 모두에서 당대가 요구하는 가장 급진적인 정치학의 하나가 될 것이다.


4. 끝나지 않은 에필로그: 봄의 제전, 소녀 월드

우주인의 관점으로 이 지구를 봤을 때 나는 물이 제일 신비롭다고 생각한다. 물처럼 신기한 게 없는 거다. 생긴 모양도 너무 특이하고. 잡혀지긴 하는데 잡히지 않고 경계가 없고 그러면서 투명하고 ... 마실 수도 있고. 또 그 안에 모든 영양분이 다 들어있고 ...

너무나 성스러운, 너무나 흔한, 누구에게나 흘러드는, 누구에게나 세례를 베푸는 물. 이 물의 감흥이 나를 키웠다.

류준화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물의 성스러움에 감염되어 있다. 이 감염의 결과는 ‘덩어리’로 등장하는 소녀들이다. 이전에도 여러 소녀들이 물속을 유영하거나 여행하는 그림들이 있었지만, 지금 거침없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솟아나고 있는 이 소녀들처럼 이렇게 무리지어 나타난 적은 없다. “대지의 꽃”, “봄의 소리”, “달의 정원”, “검은 땅” 등등 - 그렇다. 광대하게 펼쳐지는 “봄의 제전”이다. 이 작업들은 물의 성스러움과 생성의 황홀에 전율한다. 여전히 소녀들의 몸에서는 크고 작은 날개가 솟고, 꽃들은 피흘리며 만개한다. 소녀는 어머니와 딸로 증식하고 개와 사슴이 소녀의 곁을 지킨다. 소녀들은 오체투지를 하고 기도를 올리며 애도에 잠긴다. 사막을 횡단하는 중인가? 소녀의 곁에 선인장들도 무성하다. 그리고 엉키고 설킨 덩어리로 나타나는 소녀들. 이 소녀들은 더 이상 예전의 설화적ㆍ알레고리적 소녀-여성의 모습을 띠고 있지 않다. 머리카락이나 표정에 있어 현실세계의 구체적인 개별 얼굴들을 하고 있다. 이 변화는 봉화에 내려와 살면서 류준화가 경험한 ‘자연세계’의 우주적 생성과 무관하지 않다.

자연에는 끊임없는 반복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자리에 똑같은 풀이 나고 ... 그러나 그러면서 조금씩 자기의 씨앗을 번식시킨다. 자연을 계속 접하다보면 여자의 몸과 닮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더라.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여자의 시간이 자연의 시간과 마찬가지라는 거다. 신비롭고 영적이다. 우주적이다. 꽃망울이 알아서 터지면서 씨앗을 흩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긴 겨울동안 또 다른 생명을 키우기 위해서 시간을 축적하는...

류준화는 화가다. 화가는 색과 형태의 스케일에 민감하다. 광대한 스케일에 대한 욕망은 예술가적 추동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모든 스펙타클이 드 기보르가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지적한 이데올로기적 문제점들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문화정치, 문화전쟁의 시대에 주류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 문화산업과 결탁해 무차별하게 확대시키는 스펙타클한 문화생산품들, 행사들에 대항해 반문화적(counter-culture) 행동으로 기획되는 스펙타클도 있다.

저렇게 소녀들이 군상으로 나오면 그 소녀들이 품는 기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거다. 소녀들의 그 기들이 자연이 내뿜고 있는 생명의 기운들을 보여줄 거라 생각한 거다.

이처럼 화가 류준화는 문화산업이 만들어내는 ‘소녀 시대’와는 다른 소녀 세계를 꿈꾸고 있다. 이 소녀 세계가 펼쳐 보이는 봄의 축제는 ‘봄의 제전’이 거대하고 풍요로운 봄의 생성을 위해 어떻게 소녀들을 희생제물로 바쳤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꽃의 한가운데를 파먹는 새들의 모습이나, 늘 피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꽃들, 발 없는 새 - 이 모든 형상들을 품고 있는 제전이고 황홀이다. 여기서 소녀들과 사물들은 서로에게 ‘나타남’으로써 ‘존재’하는 세계 내적 존재인 세계 관객‘들’로서 세계 관객‘들’인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다. 우주적 경이를 품었으되 초월이나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생명들로서.
(중략)


'보라, 이 소녀들을: 류준화의 소녀 월드, 소녀 미학 중에서..




장 소 : 관훈갤러리 1, 2F

일 시 : 2012. 11. 14 -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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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정신없는 하루를 시작했다.

11월14일 여릴 예정인 아내의 개인전에  앞서  헥사곤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선의 한권으로 작품집을 내게 되었다.

그 책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촬영이 안된 작품 몇점을 차에 싣고

서초동 포토리스트로 향했다.

이런 저런 일정 때문에 아침 9시에 약속을 잡아 놓고 5시 반에 집을 나섰다.

원주를 지나갈 때나 되어 아침 안개가 가쉬고

쾌청한 하늘이 하루의 즐거운 여정을 예정케 했지만 갈길은 멀고 할일도 많았다.

난생 처음으로 시속 170km까지 밟아가며 도착한 서울은 진입단계에서 정체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서둔 덕분인지 포토리스트에 도착후

아침 식사까지 하고나서야 사장님이 출근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시간은 예정대로 끝나고 다시 을지로에 있는 헥사곤으로 향했다.

큰 사무실에 일인 출판사업자들이 곽들어찬 말로만 듣던 그런 사무실 분위기는 열기에 가득했지만 왠지 좀 서글픈  느낌이다.

내가 만약 을지로 인쇄골목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이런 사무실에서 일인 출판 편집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도서출판 헥사곤 대표님과 아내 류준화의 재미없고 긴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차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협의를 끝낸 아내를 싣고 한전아트센타에서 시작한 [Woman + Body 전] 2차 전시가 열리는 전남 광주의 광주 문화재단 미디어큐브로 향했다. 막임없이 달리느 고속도로를 스쳐 낯익지만 다른 느낌의 산천을 두눈 가득담다보니 어느새 광주다.

혁명의 도시 광주는 근 10년 만이다. 10여년 전쯤 장성군의 한 산꼴짜기 마을의 작은 미술관 개관식에 초대 받아 갔던 길이었을 것이다. 오는 길에 광주를 들러 광주민중항쟁중에 산화하신 민주 영령을 기리기 위해 어린 딸아이와 참배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광주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광주는 여전히 낯선 도시지만

아직 거리거리마다 민중의 함성이 남아 있는 듯 

가슴을 들떠게 했다.

오픈 시간에 임박해 광주문화재단 미디어큐브에 도착했다.

한전아트센타전 때 처음 뵈었던 큐레이트 탁혜성님을 다시 뵙고 이내

낯익은 한국 여성 문화계의 인사이지 아내의 동료들과 조우했다.

박영숙 선생님, 윤석남선생님, 정정엽 선생님이 반가이 맞아 주셨고,

늘 이런 자리에 함께하시는 시인 김혜순선생님도 같이 하고 계셨다.

 

오픈은 늘 설레이면서 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이날 오픈은

조금 정도가 심했다. 계속되는 인사말이 이어지고

작가들은 조금씩 지쳐가는 듯했다.

그사이 나는 전시장을 살피며

한국 여성미술의 정점과 조우하는 호사를 누렸다.

미국작가와 한국작가가 '여성'과 '몸'을 테마로 모인 전시를 호기롭게 기획한

큐레이트 탁혜성씨의 노력이 덧보이는 전시였지만

주제의식이 뚜렷하지 않다는 나의 주제 넘는 지적에

아내는 그래도 한국 미술풍토에서

이렇게라도 페미니즘미술이 한자리에 모일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다고 받아쳤다.

 

아뭏튼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을 만나고

또 광주 변두리의 한 한옥마을에서

먼길을 달려온 작가분들과 따뜻한 저녁시간과 밤을 함께하고

얇은 잠을 자고 아침을 같이 나누고서야 봉화로 향했다.

일박이일의 긴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미술과 작가의 삶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삶에 대해,

그리고 아내 류준화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깊어가는 가을 산천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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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성폭행, 성추행 관련 뉴스가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많은 여성작가에 의해 월경과 임신 그리고 여성의 욕망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몸에 대한 다양한 작품이 표현되어 왔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부터 AIDS나 성형과 같은 주제까지 결합하며 몸에 대한 새로운 담론들이 등장하고 표현되어 왔지만 여전히 여성의 몸이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 읽혀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여성 + 몸이라는 큰 타이틀 아래 1)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여성의 몸, 2) 변신- 성형, 트랜스젠더, 바디아트, 위장과 변이 등을 포함한 변형된 신체, 3) 여성작가의 시각으로 보는 남성의 몸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기획되었습니다.

여성의 시각에서 인체를 바라보고 인체를 통해 사람을 그리고 세상을 재해석하는 작업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작가의 시각으로 보는 남성의 몸은 전통적인 남성 이미지뿐만 아니라 외부 시각에 예민해진 변화된 현대남성들의 모습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남/녀의 구분이나 대립적 시각보다는 제3의 경계 혹은 해석에 주목하였습니다. 또한, 소통과 화해라는 화두가 대세인 요즘 개인으로 활동하던 여성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또 거리와 문화적 차이가 있는 지역의 작가들을 모아 인체라는 주제를 통해 다름과 차이점보다는 다양성과 그 다양성의 시각이 모여서 만드는 조화와 공존의 힘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께 함으로 얻어지는 부차적인 이익- 여성작가들의 네트워크화, 여성작가의 전시 기회 확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여성작가들에 대한 평가 기회 제공- 에도 주목하였습니다. 미 전역에 걸쳐 30개가 넘는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WCA와의 연합 전은 70년대 초반부터 활동해 온 그들의 역사와 노하우를 배우고 네트워크를 확장함으로써 서로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 큐레이터 탁혜성



<후원>

한전아트센터, 광주문화재단, Women’s Caucus for Art

<전시일정 및 장소>

한전아트센터 KEPCO Gallery; 2012년 10월 13일(토)-10월 19일(금)

오프닝 2010년 10월 13일(토) 오후 4시

광주문화재단 내 미디어큐브338; 2012년 10월 23일(화) ~ 11월 6일(화)

오프닝 2010년 10월 23일 화요일 5시

<참여 작가>

한국측 참여작가 : 권민경, 김미루,김민형, 김은주, 김주연, 난다, 류준화, 박영숙, 변현수, 유현경, 윤석남, 윤성희, 이림, 이자연,이주리, 정정엽, 주하영

미국측 참여작가 : Ann Rowles, Brenda Oelbaum,Chanel Govreau, C.M. Judge and Paula Rendino Zaents, Elaine Alibrandi,Jessica Burke, Krista Jiannacopoulos, Karen Purdy,Laurie Edison, Lee Lee,Mary Shisler, Pamela Flynn, Patricia Tinajero, Priscilla Otani, Sandra Mueller,Sheri Klein, Sherri Cornett, Tracy Brown, Trix R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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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형상회화 2012

2012_0509 ▶ 2012_0529

초대일시 / 2012_0509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공성훈_김성남_김정욱_김지원 김진열_류준화_신학철_안창홍_이문주 이샛별_이세현_이흥덕_정복수_최경선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한국현대형상회화』 2012 展에 부쳐 ● 회화는 작가의 의식과 감성이 체화되어 드러내는 표현이자 기록이다. 기침과 같은 생리적 발산이기도, 침을 뱉는 것과 같은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형상회화'는 이런 회화적 생태를 보다 더 구체화 시킨다. 대상에 대한 단순한 재현·표현·서술의 형식을 넘어 세계와 직면하고 있는 작가적 의식과 태도를 간단없이 표명하고 발언한다. 그래서 각종 레토릭으로 드러낸 다양한 형상과, 그 형상을 구성하는 질료나 프로세스의 긴장감이 발현하는 '형상성'은 지극히 개인적이되 문화적이고, 문화적이되 정치적이고, 정치적이되 다시 개별적인 순환의 역장을 형성한다. 바로 여기에 '형상회화'가 갖는 자기진술성과 정치사회적 전언으로서의 열린 해석학적 메시지가 있다.

 

회화가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시대현실과 인간존재의 길항관계에 대한 성찰의 바탕에서, 회화적 개념과 형식을 적극적으로 갱신하려는 형상회화의 현재진행형은 앞으로도 한국현대미술의 너비와 깊이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 한국현대형상회화 운영위원회

Vol.20120509m | 한국현대형상회화 2012展

 

 

류준화//  012/캔버스에 석회, 아크릭 콘테/145.5cm*145.5cm

 

류준화/선인장꽃/2012캔버스에 석회, 아크릭 콘테/145.5cm*14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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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팔자가 있다고?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

류준화의 작품 [경계에 피는 꽃]이 5월5일 문을 연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걸렸다. 

그러고보니 이 작품은 다른 어떤 공간도 아닌

바로 그 공간을 위해 그려진 작품같다.

시간적 선후를 뛰어넘는 어떤 연이 있었을까?

내가 작가라면 2012년에 열릴 공간을 위해

2007년에 미리 그렸다고 우기고 싶다.

[경계에 피는 꽃]은 먼저 태어났지만 애시당초

미래에 올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위한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2007년 학고재에서 연 개인전 [소녀야화]에 출품한 작품이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그림을  보고 갖고 싶었다는 분이 계셨다.

그분은 가정에 걸기에는 걸맞지 않은 그림 크기때문에 고민하시다가

때맞춰 개관하게 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자신의 이름으로 이 그림을 기증하시게 되었다.

그 분은 작가로 부터 그림을 사는 행위를 통해 그림을 한번 가지게 되었지만,

다시 의미있는 공간에 그림을 기증함으로써 사적인 소유를 넘어 공적인 공간에서

진정한 그림의 주인이 되었다.

 

경계에 피는 [꽃]은 꽃이면서 피다.

선지피 뚝뚝 흘러 마른 자국에 피어난 꽃이다.

아직 아물지 못한 칼자국에서 뚝뚝 흘러나오는 핏덩어리다.

붉은 물감이 흘러 마르고,

다시 겹겹히 칠해져 이루어진 얼룩이 꽃이 되었다. 

 

붉은 꽃이 만발한 호수, 피빛 꽃밭을 헤치고 

무명치마저고리 조선의 소녀는 조각배를 저어 나온다.

소녀가 입은 무명치마저고리는 단정하지만

붉은 꽃은 모두 소녀가 흘린 핏자국이다.

피빛 하늘은 그녀가 겪은 공포와 고통,

그녀가 토한 신음과 울음,

그녀가 가슴에 품은 한과 울분이다. 

 

그녀가 감내해야했던 지옥의 시간은

조국의 독립을 통해 끝나지 않았고,

그녀가 입은 깊은 상처는

선진조국 건설을 통해 치유되지 못했다.

야만의 역사는 그녀의 피를 원했지만,

모두가 야만의 역사가 끝났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때

세상은 그녀를 잊었다.

 

하지만 이제 소녀는 담대한 표정으로 경계를 넘는다.

눈물자욱조차 없는  말쑥한 얼굴로

그녀는 손수 노를 저어 경계밖으로 나오고 있다.

아직 세상은 그녀를 두려워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향해 항변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단지 세상이 자신과 함께 이 시대의 경계를 넘어

평화의 땅으로 나아가기를

꿈꿀뿐이다.

 

 

 

경계에 피는 꽃 / 류준화 / 면천에 석회 아크릭 채색, 콘테 / 162*130cm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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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아내 류준화가 "인생이여 고마워요"展에 참여하고,
이 전시와 관련해 남편인 나와 지인인 안상학 시인이 작가 관련 글을 쓴 관계로
3명이 대전까지 전시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동행하게 되었다.

봉화를 출발하는 날 아침은 새벽부터 분주를 떨어야 했다.
산골에 살다보면  한번 도시로 나가는 일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게 된다. 
집을 비우기 위한 준비도 만만치 않지만
그동안 밀쳐 두었던 온갖 잡사를 다 처치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택배 보낼 농산물 두 박스부터 포장을 하고, 
가는 길에 안동 장모님한테 들러 드릴 김치와 감자를 챙기고,

3일동안 굶어 죽지 않도록 초롱이 사료도 듬뿍 주고,
화목 보일러도 둘러보고, 그리고 혹시 어디 문이 열려 있지나 않은지, 
동파위험은 없는지 살펴야하는 곳도 여러 곳이다.
또 하필 이날 농협 농자금 배당을 위한 마을 회의란다.
앞집 형님에게 달려가 여유가 된다면 최대한 많이
배정을 좀 해줍시사 부탁을 드리고,
대전 전시 오픈에 참가한뒤
다음 날 명절 때 가지 못한 고향 진해에 들를 계획이다보니

따로 챙겨야하는 짐들도 챙겼다.

다행히 서둔 탓에 출발은 늦지않게 할 수 있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농협에서 전화가 왔는데 오늘이 조합원 대학생 자녀에게 주는
장학금 100만원의 신청 마감일이란다.

마을에 다른 신청자가 있어 올해 타는 걸 포기했는데 
지역에 학생이 줄어 여분이 생겼다고 급히 신청하란다. 
고맙게도 소소한 일까지 챙겨주신 지소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여유도 없이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면사무소를 들러 아이 학자금 관련해서 서류를 떼고
다시 그것을 들고 농협에 가서 처리를 하는데 이게 순탄하질 않다. 
필요한 서류가 늘어나고 결국 서울있는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등록금 고지서를 보내라고 농협 팩스번호를 알려주는 것으로 일단 농협 일은 마무리했다.
그리고 우체국에 들러 택배를 발송하고
영주로 내달렸다.

영주에서는 아내의 은행 일이 기다리고 있다.
불필요해진 통장과 카드를 해지하고 
카드로 자동결제되던 보험 등의 결제 계좌를 옮기는 일인데
급하진 않지만 집 나온 김에 처리해 버릴 요랑이었다.

은행일이 끝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안상학 시인을 만나기 위해
안동으로 내달리면서야 카드 해지를 깜빡했다는 사실이 생각났지만
어쩔 수 없다.

안동에서는 안시인과 대전으로 떠나기 전에
장모님한테 들러 감자와 김치를 전해드리기로 했는데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안시인이 미리 주문까지 해둔 식당에 들러
안동국시를 한그릇씩 하고 나니
감자며 김치는 안시인 몫으로 내려놓고 
바로 대전으로 향해야만할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대전으로 달리는 내내 안시인과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길 나누다보니
예정보다 자꾸 시간이 늦어져 조금은 초조했지만
그래도 운전이 전혀 지루하질 않다.
아내 덕에 안시인을 알고 지낸지 10년이 넘었는데

처음으로 한 차를 같이 타고 객지로 여행을 하게 된 셈이다.

몇번을 길을 잘못들어 지체한 뒤에 급히 도착한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타는
보기 드문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참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전에 대전 농산물검사소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시립미술관 창작센타 이름으로 미술관의 별관처럼 사용하는 건물이란다.

대전시립미술관 송미경 큐레이터가 기획한
[인생이여 고마워요]전은 
작품과 작가의 삶을 동시에 대중에게 내보이는
보통의 전시와는 다른 특별한 전시였다. 
주로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살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모색하는 작가들인 
류준화, 이진경, 박석신 등 5명의 작가가 작품을 걸고,
또 각각의 작가마다 2명의 지인들이 작가에 대한 글을 쓰고 
그것을 '잡지' 형태의 책으로 묶었단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집어든 도록이 참 재미있다.

기획의 특수성 때문인지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한 작가마다 동행한 지인들만해도 적지가 않았고 
그럭저럭 관객도 많아 보였다.
특히나 성광명 작가와 동행한 지리산학교 중심의 인사들이 엄청났다.
전시장을 제대로 둘러 보기도 전에  
얼떨결에 대전 MBC에서 나온 리포터와 인터뷰를 하고는
송미경 선생님,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그리고 다른 작가의 동행인인 박남준 시인 등과도 인사도 나누다 보니 
전시 오픈 행사를 알렸다.

송미경선생님의 사회로 대전시의회의장의 인사,
그리고 대전시립미술관 관장님이 외유중이어서
김준기 선생님의 환영사로 이어지다가
5명의 작가, 그리고 안상학을 비롯한 시인들의 인사로
식이 끝나고 간단하지 않은 오픈 음식을 먹고는 바로
저녁식사 자리로 옮겼다.

저녁을 먹고 나서 하루밤 신세를 지기로 한
참여작가 정순자님의 소여공방으로 향했다.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방을
막무가내 휘저으며 서른명이 넘는 전시관계자분과 그 지인들이 엉켜
밤이 늦도록 술과 노래, 환담을 나누며 
하루 낮을 정리하고 하루 밤을 향유했다.
좋은 분들 많이 만나 즐겁고,
농사꾼인 나의 일상과 사뭇 다른 세상속에서 보내게 되어
무척이나 환상적이었던 하루였다.  

전시 타이틀인 [인생이여 고마워요]는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가 노래로 불러 더 유명해진
시인이자 가수였던 비올레타 파라가 쓰고 부른 노래란다.
비올레타 파라는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자살하는 그 순간조차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고마워했는지 궁금하다.
삶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 순간 그녀 자신의 주어진 삶을 스스로
마무리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생이여 고마워요]전은 역설적 의미가 아니라 직설적으로
인생의 고마움을 체득하고 작업에 그 고마움을 녹여내는 작가를 모아
그들의 고마운 삶과 그 삶을 담은 작품을 동시에 전시하는 
특별한 기획전이다.
  
이 전시를 기획한 대전시립미술관 송미경 학예사님, 김준기 학예연구실장님, 
작가의 작업장 까지 전국을 누비며 사진을 찍어주신 김완모 사진작가님,
그리고 아내에게 글을 주고 전시 타이틀을 적어준
안상학시인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개 요

전시기간 : 2012. 2.24~5.20(87 일)

전시장소 : 창작센터 전시실

전시내용 : 5작가 30(회화, 공예, 설치, 영상, 사진, )

참여예상작가 : 류준화(서양화, 경북봉화), 박석신(한국화, 대전),

성광명(공예, 경남하동), 이진경(서양화, 경기 파주)

정순자(공예, 충남 공주)

추진계획

진정성을 품고 있는 작가들의 삶이 담겨 있는 전시 개최

- 휴먼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 본성의 한 단면인 위로와 위안을 제공코자 함.

작가의 삶에 주목,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형 전시로 연출

- 작품을 통한 작가적 접근 방식에서 작가의 삶을 통한 작품에의 접근방법으로, 예술에 대한 새로운 소통구조를 제시코자 함.

일반인에게 친밀성과 동질성이 만나는 지점을 제공

- 다소 난해한 현대미술의 관람에서 벗어나 누구나 자신의 삶의 한 부분과 맞다는 지점이 제공되는 리얼리티 전시를 개최코자 함.

특이사항

전시구성

- 삶의 이야기와 모습들, 작품들을 함께 전시한다.

- 이번 전시에 수록 된 작가글들을 전시장에 배치한다.

이번 전시는 평론가의 글이 아니라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지인들의 작가관련 글을 싣는다.

- 성광명작가 (신희지(잡지 <차와 문화> 기자), 이원규(시인, 지리산 거주), 박남준(시인, 지리산 거주)

- 류준화작가 (송성일(농부, 남편, 봉화거주), 안상학(시인, 안동거주)

- 정순자작가 (김정홍(소설가, 서울거주), 이기웅(한의사, 논산거주)

- 박석신작가 (최서연(방송작가, 서울거주), 송인걸(기자, 대전거주)

전시기간 중 이벤트 행사

- 성광명과 지리산 사람들

공지영의 책 <지리산의 행복학교>에 나오는 버들치 시인, 낙장불입시인, RPM 여사등이 함께하여 지리산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며, 자체 결성된 동네밴드의 공연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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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남편은 누구인가


나는 화가 류준화의 남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화가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부러워한다. 멋진 화가가 아내이니 얼마나 좋겠냐며. 그런데 아내의 전시장에 가서 만나는 화가라는 직업을 알고, 그림을 아는 친구들은 애처로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며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고생 많다.”

화가인 아내는 늘 자신과 자신이 그리는 그림의 정체성을 묻는다. 화가의 남편인 나도 마찬가지다.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동정의 대상인 나의 정확한 아이덴디티는 무엇일까 늘 묻고 또 묻는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화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정체성이 화가의 남편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 당한다. 아니 화가 남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는 스스로 찾아내고 성취해 나가는 요소보다는 외적으로 부과된 자격 조건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좋게 말해 화가의 남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일정한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화가의 남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화가를 꾀어 아내로 삼는가 하는 천박한 문제가 아니라, 화가의 남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을 갖추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요건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화가의 남편은 힘이 세야 한다. 캔버스 틀을 짜고 천을 씌우는 작업에서부터 그림을 포장하고, 들고 나르는 일은 육체적 힘(체력)을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더 중요하게는 아내의 작업 전 과정 -창작과 홍보 마케팅까지-을 서포터 할 수 있는 경제적 힘(재력)과 컬렉터를 조직하고 인맥을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힘(권력)을 필요로 한다. 덜 중요하게는 아내의 그림은 제일 먼저 보아야하는 비평가의 입장에서 작업의 방향을 조언하거나 그것이 안 되면 최소한 다 그려놓은 아내의 그림에 아우라를 부여해 주고 멋진 이론적 포장을 할 만한 지적인 능력(지력)과 감성적 능력까지도 요구된다. 뭔 말인가 하면, 아내는 그림을 그리지만 화가의 남편은 아내의 그림이 미술시장을 포함한 사회적 인정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후원군의 역할을 해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가 류준화는 참 복이 없다. 재력과 권력은 물론이고 감성적 능력과 지적 능력도 갖추지 못한 무지렁뱅이 농부를 남편으로 맞았으니 말이다. 한번 씩 한숨을 쉬며 아내는 말한다. ‘야, 우리 둘 중에 하나라도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던지, 안정적인 벌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장면에서 가만히 있을 화가의 남편이 아니다. “그래 말이야. 너라도 좀 잘 벌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는 한숨을 쉬며 골백번 더 리피트 된 에필로그로 대화를 마무리 한다.

“아이고 내 팔자야!”

사실 화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화려한 전시장에서 축하를 받고 카메라의 조명세례를 잠시잠깐 받기도 하지만 전시장에 그림을 내 걸고 전시회라는 것을 가지기까지 밤낮 들인 공을 보상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미쳐 인생을 건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이름붙이고 칭송하거나 외경하기까지 한다. 나의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그림 그리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 어쩔 수 없이 화가로 살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다. 무엇이 화가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금전적 보상, 작가로서의 명예, 예술적 성취감……. 하지만 내가 보고 겪은 바에 따르면 예술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 그래서 아내와 내가 유일하게 동의하는 한 가지 입장이 있다.

“예술은 병이다.”

아내는 전시 계획이 잡히고 나면 갑자기 변신 한다. 우리 집 불쌍한 강아지인 초롱이를 산책 시키고 밥 주는 일에 소홀해 지는 것은 이해해 줄 수도 있지만, 세상만사 다 흥미를 잃고 한 지붕아래 살아가는 남편의 존재도 잊어버린 사람 같이 행동한다. 사적인 약속들을 잊어버리는 일은 사소한 변화에 불과 하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따끈한 밥과 국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자신의 식사를 거르기조차 한다. 전시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면 아내는 평소에 무던하던 모습을 완전히 잃고 한숨이 늘고, 깊은 잠조차 자지 못하고 뒤척거리기 일쑤고, 근거 없고 대책 없는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간혹 캔버스를 더 이상 물감으로 채우지 못하고 방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아내는 한없이 날카로워지기고 하고 이내 또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화가의 남편은 예술이라는 병을 잃고 있는 환자를 보살피는 간병인이면서, 동시에 같은 병을 나누어 앓아야하는 만신이나 박수 같은 사람이다. 이 시점에서 화가의 남편은 자신만의 고유할 자질을 백분 발휘해야한다. 화가인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도록 재롱을 떨고, 힘 빠진 손에 붓을 다시 쥘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고, 세상은 그림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고, 설사 당신이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당신의 존재가치는 조금도 손상 받지 않는 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당신이 비록 화가지만 예술은 당신 삶의 일부분일 뿐이고, 인생의 의미는 ‘예술’보다도 더 풍부하고 심원한 것임을 피력한다. 아내는 나의 천박한 사설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게 티격태격 거리다 보면 저절로 슬럼프에 빠졌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의욕을 회복하고 필력이 살아나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으로 진입해 있다.

나는 잠시 망상에 빠져 자신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흐뭇해 하기도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되돌아보면 사실 나 자신이 화가의 남편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평생을 일관되게 그냥 화가의 ‘머슴’으로 남아있길 원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직 몸으로 때우는 역할 밖에 할 재간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최고의 남편조차 화가인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죽어가는 의뢰인을 위해 사력을 다해 굿을 하던 무당도 결국 그 의뢰인의 죽음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오롯이 자신의 몫으로 남아있는 화가인 아내의 고뇌가 때론 가혹해보이기도 하고, 나누어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짐을 넘겨받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화가 자신만의 몫 앞에서 나는 좌절하기도 한다.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올해로 벌써 22년을 맞았다.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그 세월이 흘렀지만 되돌아보면 아내에게는 지긋지긋한 세월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아내에게 월급봉투라는 걸 구경시켜주지도 못했다. 당연히 살림살이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그림만 그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재력, 권력, 지력을 동원한 지원은 고사하고 오히려 방해꾼으로 이날 평생 살아온 셈이다. 그뿐만 아니다. 괜한 호기에 귀농이랍시고 산골로 이사를 온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한 산골마을에서 농사짓는 남편과 살면서 그림이나 그리는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예술도 사회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다보니, 산골살이가 화가에게 주는 치명적인 불이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산골에서 그림을 그리지만 결국 도시로, 서울로 그림을 들고 나가야한다. ‘운송비’는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대중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차단한다. 그림 운송도 보통문제가 아니지만 동료 작가를 만나고 화단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화단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것도 못난이 짓이지만 그렇다고 담을 쌓다시피 하는 것도 화가의 바람직한 처신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화가의 남편인 내 탓이다.

사람의 인연이 참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낯선 남녀가 만나 이렇게 부부의 연을 맺어 20년을 넘어 함께 산다는 것은 우주의 많은 신비들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와 같은 연이 화가의 예술적 성취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해도 위대한 ‘작품’은 가혹한 ‘삶’, 초라한 ‘존재’를 초극하는 지점에서 성취된다는 일념으로 쉼 없이 정진하시길 빈다. 남편으로서, 그리고 한명의 관람객으로서, 그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고 지금껏 이룩한 당신의 예술적 성취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인생이여 고마워요>展 도록 원고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타 전시실
전시기간 : 2012.2.24~5.20

참여작가 : 류준화, 이진경, 정순자, 성광명, 박석신
도록필진 : 안상학, 박남준, 송성일, 최서연,신희지 등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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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개인전은 1~2년에 한번씩 있는 일이지만, 매번 개인전이 있을 때마다 똑같은 설레임과 긴장이 있을 것 같다. 화가의 남편인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포장하고, 나르고, 그리고 전시관련한 이런저런 뒤치닥거리를 하긴 하지만 그 역할에 비해 가지는 설레임은 훨씬 더 크다.


2009년11월인가 가나아트 미루에서 개인전을 연지 거의 1년 6개월만에 이번에는 사간동과 인사동 사이에 있는 조그만 신생화랑 갤러리비원에서 개인전을 열게되었다. 급히 전기 계획이 잡혔지만 다행히 갤러리의 규모가 작고, 작업 컨셉이 준비된 것이 있어 전시가 가능했다. 총 9점의 작품을 싣고 사진 촬영을 위해 서울 나들이를 하고, 다시 봉화로 싣고 왔다가 일주일 뒤 전시에 맞춰 갤러리로 싣어 나르고, 그리고 다시 오픈 파티가 있은 어제 서울행을 해야만 했다.


갤러리비원은 규모는 작지만  사람이 붐비는 Y자 거리의 모퉁이에 있고, 갤러리 앞 마당은 나무와 벤치가 있는 제법 넉넉한 공간까지 있어 알찬 전시공간을 갖춘 갤러리다. 듣기로는 주로 30대 젊은 작가의 기획전을 열어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40대 후반 작가를 초대했다고 한다. 일단 젊은 작가의 대열에 같이 끼게된 것만으로도 기분좋은 일일것 같다. 
 


어제 아침 일찍 출발을 할 예정이었지만 출발 직전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서 연락이 와서 작품을 반입할 일이 생겨버렸다. 모든 준비는 끝났고 몸만가면 될 산황에서 갑자기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승용차에서 트럭으로 짐을 옮겨 싣고, 미술은행에 넣은 그림을 찾아 포장을 풀고 자료용 사진을 찍고, 다시 재포장을 해서 트럭에 싣고 정오를 넘겨서야 집을 나섰다.
  

봉화에서 신갈까지는 순탄한 길이었지만, 신갈부터 서울 쪽으로 차가 밀리다보니 그림 사진을 찍은 서초IC에서 차를 내릴 때는 벌써 4시가 넘었다. 단골 스투디오인 '포토리스트 강남점'을 들러 일을 마치고 다시 한남대교 쪽으로 방향을 잡으려 했지만 진입로가 공사로 인해 차단되어 있었다. 유턴을 어렵게 하고 부산방행으로 차를 올렸다가 양제IC에서 차를 내려 다시 유턴을 한남대교쪽으로 차를 올릴 수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길에 오픈 시간을 다가오고 자못 긴장된 시간이었지만 5시 30분경에 인사동에 도착해서 미술은행에 들어갈 그림의 액자를 부탁하고 갤러리 비원에는 6시를 10여분 남긴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가 도착하기 진전에 갤러리 앞에서 텔랜트 소지섭과 한효주가 무슨 드라마를 찍고, 한효주는 갤러리를 들어와 그림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싸인을 남기고 갔다고했다. 조금 일찍 도착했으면 한효주랑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조금 아쉬웠지만 남아있는 싸인으로 만족해야지^^*


갤러리에 도착했을 때보니 만신 이해경선생님과 문하생 2분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었다. 급히 인사를 나누고 차를 주차시킨뒤 갤러리로 돌아와 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많은 분들이 와 주셨지만 귀한 시간내어주신 김정헌선생님과 박명학님, 송이님, 장경호선생님, 박영숙 선생님, 윤석남선생님, 김혜승 전여성사전시관 관장님, 김혜순시인 그리고 새사연의 김점식이사님, 그리고 제주 까멜리아힐에서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노석미 님과 그의 일당여러분이 너무나 반가웠다.
개인전을 여는 재미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게 많은 분들을 오랜만에 뵐 수 있었다. 10여년만인가 이웃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계신 박불똥선생님과 네오룩 최금수 대표, 대전시립미술관 김준기학예실장님, 학고제 김지연 큐레이터 그리고 류준화의 영원한 동지분들이신 정정엽, 제미란, 하인선 님등 입김 멤버님들, 아내와 나의 옛친구들...

갤러리가 좁아 갤러리 앞 길가 벤치에 나와 앉아 계신 분들 사이를 오가며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고 와인을 나르고 뒷풀이 장소를 안내 하다보니 날이 저물었다. 8시가 다 되어서야 뒷풀이 장소에 도착해서 드디어 긴장을 풀수 있었다.


10시에 자리를 파하고 옛친구부부들과 함께 커피를 한잔 나누면서 취기를 가라앉히고, 자정이 되어서야 차에 오르고 봉화로 향했다. 졸음과 싸우며 까까스레 집에 도착해보니 새벽 4시... 이렇게 또 한번의 아내의 개인전을 열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좋은 일에도 늘 아쉬움이 남는다. 항상 이런저런 행사때마다 달려와서는 같이해주고 도와주는 풍기의 강석문, 박형진 작가부부를 맥주한잔 대접못하고 보내버렸다. 정신없는 와중에 강석문. 박형진 부부와 노석미씨등 까멜리아힐로 인연맺은 작가님들에게 아무 신경도 못쓰드려 너무 미안하다. 나중에 밥이라도 한끼 대접드려야겠다.  

그리고 이번 초대를 해 주신 갤러리비원 이정연대표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류준화展

 

6월3일_6월25일까지
11am - 6pm / 월요일 휴관

서울시 종로구 화동 127-3

T +82 (0)2 732 1273
F +82 (0) 2 732 1274

gallerybeone@naver.com
gallerybeone@gmail.com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출구
윤보선생가 방향으로 직진

버스
종로경촬서 또는 안국역 하차
윤보선 생가 방향으로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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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류준화展 / RYUJUNHWA / 柳俊華 / painting 2011_0603 ▶ 2011_0625 / 일요일 휴관

류준화_봄의제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콘테, 석회_181.8×227.3cm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003g | 류준화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60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비원Gallery b'ONE서울 종로구 화동 127-3번지Tel. +82.2.732.1273www.gallerybeone.kr

태양을 머금고 대지와 접신한 소녀의 판타지● 류준화 내러티브의 핵심은 여성과 생명이다. 그는 소녀와 물 이미지로 여성의 몸과 생명의 근원을 이야기한다. 소녀의 이미지는 몽환의 세계를 떠도는 아바타이자 현실의 억압을 비켜서기 위한 환상이다. 여성성을 대변하는 아바타로서의 소녀 이미지는 류준화 내러티브를 풀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장치이다. 그는 자신의 회화 속에 소녀를 등장시킴으로써 여하한 풍경이나 상황 속에 놓인 캐릭터로 하여금 나지막한 목소리로 생명의 메시지를 말하게 하다. 물은 매우 근원적인 물질형식이다. 그러나 물은 그 자체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물은 다른 존재를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곤 한다. 류준화의 물 그림이 꼭 그렇다. 물 속에 있거나 물 위에 떠 있는 다른 존재들로 인해 생명의 근원인 물의 실재가 드러난다. 요컨대 소녀와 물은 여성과 생명, 나아가 인간과 자연을 향한 류준화 이야기의 뿌리이다.

류준화_식물소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콘테, 석회_91×72.7cm
류준화_봄의소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콘테, 석회_91×72.7cm

류준화 스타일은 은근하면서도 단호하고, 얇고 투명하면서도 두께가 있다. 그의 도상 하나하나에는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낸 형태와 색채의 단아함이 배어 있다. 그는 붓질은 물론이고 흘리기와 긁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번짐과 뭉침, 번들거림과 겹침 등 특유의 색감과 질감을 만들어낸다.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다양한 변주의 과정을 거쳐 왔는데, 특히 근작에 이르러 독창성과 고유성의 정점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고유의 캐릭터를 구축해서 몇 년간의 변주 과정을 거치면서도 자기복제의 위험성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것은 류준화 스타일이 구축해온 단단한 회화성 때문이다. 그의 그림 속 낱개 이미지들은 비교적 심플한 형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복잡한 색감과 질감을 드러낸다. 하나하나의 형상 속에는 매우 꼼꼼하고 섬세한 손길이 묻어 있다. 여러 차례 색을 올려 단아하고 깊은 화면을 만들어내는 그의 진지한 노동은 스타일의 독창성을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류준화_빛을모으다_캔버스에 아크릭채색, 콘테, 석회_72.7×91cm

근작을 통해서 류준화는 소녀와 물을 중심으로 이야기 틀을 만들어 기존의 흐름에 또 하나의 요소를 더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소녀는 물과 더불어 대지를 만난다. 씨앗을 품어주고 길러내는 대지 또한 생명의 근원이다. 그것은 물질로서의 흙이 아니라 개념으로서의 땅이다. 마치 물이 강이나 바다로서 현현하는 것처럼 대지나 산맥의 모습으로 나타난 흙을 존재는 생명의 서사를 생성하는 또 하나의 모티프이다.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물과 흙은 매우 빈번하게 은유적 수사로 등장하곤 한다. 류준화는 물과 흙, 강과 대지를 통해서 여성성과 생명의 서사를 더욱 공고히 한다. 그는 산맥과 머리카락, 피와 꽃 등을 중의적 수사로 얽어놓았다. 흩날리는 소녀의 머리카락이 산맥이 되어 흐른다. 선홍빛으로 번져나간 피가 붉은 꽃으로 활짝 핀다. 그는 이처럼 중의적 수사를 채택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생명성에 관해 보다 풍부한 이야기를 펼친다.

류준화_대지의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콘테, 석회_91×116.7cm
류준화_낮과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콘테, 석회_145×145cm

대지에 엎드려 잠든 소녀에게 붉은 피는 꽃이 되어 몸을 타고 흐른다. 새를 안고 있는 소녀의 어깨에 붉은 꽃 한 송이가 함께 있다. 꽃을 입은 소녀는 새를 들고 있다. 천상과 지상의 메신저인 새를 든 소녀는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빛을 주는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소녀'이다. 대지를 안고 잠든 몽환적인 소녀의 얼굴에는 어머니 대지와 만나는 순간의 고결함이 담겨있다. 창백한 소녀의 얼굴은 검은 머리카락과 교차하고 소녀와 대지를 꿰뚫는 눈부신 태양이 생명을 이야기한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화면 구성은 류준화의 그림을 판타지의 일환으로 읽게 하는 주요 장치이다. 인간과 대자연의 존재를 얽어놓은 그의 화면에는 가시적인 세계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는 환상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태양을 머금고 대지와 접신한 소녀의 판타지. 이것이 우리의 삶을 한 꺼풀 더 깊고 두텁게 읽어내는 류준화 내러티브의 현재이다. ■ 김준기

Vol.20110607g | 류준화展 / RYUJUNHWA / 柳俊華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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