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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읽어도 좋은 책이 있다. 여행서, 수필, 가벼운 소설이나 시집 그리고 수상록 등이 그 범주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꼭 읽을 이유가 있어야 하는 책들이 있다. 나에게는 대부분의 전문서적이나 묵직한 인문학 서적, 혹은 사회과학 서적들이 그런 책들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선택은 실수에 가까웠다.

여행이 불가능한 시절에 막연한 동남아일주 60일여행을 계획하다가 내가 아는 동남아가 너무나 피상적이기에 여행유투브나 여행안내서를 넘어 동남아의 삶 전체를 개략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책이 필요로 했다. 신간 소개 정도지만 몇몇 책들에 관한 소개글을 읽고 나름 비교해서 선택한 책이 바로 윤진표가 쓴 [현대 동남아의 이해].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라오스, 브루나이, 싱가포르, 필리핀, 캄보디아, 그리고 최근 군부 쿠테타와 이에 저항하는 시민에 대한 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미얀마를 포함한 아세안 10개국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돕기 위한 책이다. 그렇다고 여행안내서 같은 일목요연한 나열식 주제 서술이 아니라 먼저 총체적 관점에서 동남아의 역사와 사회문화, 지리환경에 대한 정리를 전반부에 담고, 비교정치학적 관점에서 각국의 경제와 정치, 국제외교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를 후반부에 정리해 놓았다. 큰 시야에서 먼저 동남아시아에 대한 선이해를 돕고 그 바탕위에 각국에 대한 정치, 경제, 외교적 이해를 서술하다보니 일국주의적 눈에 갇히지 않고 전체적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일국에 대한 이해를 유기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장점을 담고 있었다.

책의 핵심 내용은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필자는 동남아의 지리적 환경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3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1) 벼농사 중심의 농경 문화 발달, 2) 해상 무역의 중요성 부각, 3) 북에서 남으로의 역사전개가 그것이다. 역사시대 구분을 보면 15세기 포르투칼의 말라카 점령전까지를 전통시대로, 이후 1945년 태평양전쟁 종식까지를 식민시대로, 그리고 1945년 이후 현재까지를 독립시대로 나누고 있다. 대표적인 역사적 특징으로는 고립성과 유동성이 양립하여 중앙집권적 피라미드형 지배구조 형성이 불가능했고 국가의 중앙이 문화적 유대를 통해 주변을 통제하는 느슨하고 유동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만다라적 구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전통시대 동남아 세계 형성에 있어 인도의 역할은 지대해 동남아의 인도화를 이루었고 중국은 1000년을 지배한 베트남에 한정해 유교와 대승불교를 전래했는데, 인도의 경우는 평화로운 접촉을 통한 교류를 , 중국의 경우 직접적인 침공을 통한 전래로 특징짓고 있다.

식민시대는 1511년 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부터 시작되는데, 1945년 태평양전쟁 종식까지 복잡하고, 혼동스런 식민지배 과정이 진행되었고 그 흔적은 동남아 사회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와와 말레이시아의 인위적인 구분이나 라오스의 탄생같은 임의적 국경선의 획정, 의도적으로 분리 통치를 위해 종족간 분쟁을 조장한 식민에 동조한 소수민족과 피지배 다수민족의 갈등(오힝아족 학살 사건초래 등)구조의 잔존, 효율적인 식민지배를 위해 도입된 억압적인 중앙집권적 관료주의의 등 많은 부정적인 식민지배의 영향을 제시하고 있다.

동남아 사회의 몇가지 문화적 특징 중 첫째로 촌락공동체적 생황양식의 지속을 들고 있다. 촌락공동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강하고 상부상조, 협의의 전통이 살아있고 통치계층과 대중간의 후원수혜적 추종주의라 불리는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태국의 국명 ‘THAI-LAND’자유의 땅을 의미하며 위계질서가 존재하되 개인주의적 자유가 혼합된 특징을 드러낸다. 또한 사회적 서열에 매우 민감하여 귀족 관료와 평민, 부자와 빈자사이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 동남아 사회의 특징으로 兩邊/모계사회의 전통을 들고 있다. 상속에 양계를 다 고려하고 남녀 상호의존적이고 평등한 관계가 형성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 번째 특징으로 이름의 성이 없던 사회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는 가문과 혈통에 집착하지 않고 조상에 대한 제사가 없다. 지금의 성은 식민지배세력이 지배편의를 위해 부여한 것에 불과 하다고 한다.

동남아의 경제는 국가간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오랜 낙후를 딛고 1990년대부터 자본의 세계화와 정치의 민주화의 새로운 도정에 들어선다고 본다. 하지만 외자의존형 성장전략은 한계를 드러내고, 정치엘리트와 피지배 계층의 후원수헤적 관계에 기반한 정치 권력은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 막고 있다고 진단한다. 동남아를 휩쓴 외환위기나 빈발하는 군사쿠테타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모범을 보여주는 싱가포르 같은 경우 만해도 언론의 자유측면에서 세계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의 의도보다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동남아의 많은 국가는 민주주의의 정체로 인해 수많은 긍적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불확실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를 권력자의 사적 업무로 취급하거나 정치권력을 사유재산과 같이 이해하는 베버식으로 표현하면 가산제주의(Patrimionialism)가 만연한 현실은 빠른 시간내에 바뀔 것 같지 않고, 경제는 민주주의의 진전없이 일정한 수준이상의 발전을 할수 없기에 동남아의 미래는 여전히 안개속에 있는 것같다.

외교적 측면에서 동남아시아는 1967년 방콕에서 창설된 아세안을 중심으로 놓고 이해 하고 있다. 아세안은 창설이후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9년 캄보디아가 최종적으로 가입함으로써 동남아시아 10개국 전부가 참여하게 되어 초기의 반공산주의 지역동맹적 성격을 벗고 동남아 역내 국가간 협력 단위를 완성하게 된다. 아세안이 추구하는 공동체는 유럽연합같은 초국가적 단위가 아니라 국가간 협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분명히 성격지워 지고 따라서 집단방위나 군사동맹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는 동남아를 한국의 블루오션으로 보고, 주변 4강에 매몰된 인식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한다. 상호 방문객 수나, 이주노동자와 유학생의 교류, 결혼이민과 무역액의 규모, 한류 및 한국내 동남아 문화의 확산 등의 현상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외교적 위상을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미래 전망이 4대강국의 바운드리 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펼쳐지기 위해서 동남아와의 선린외교가 핵심적임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은 세일즈 외교라는 중상주의적 입장에서 탈피하여 진정성을 가질 때 만이 실현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요약하다보니 맥락이 흩어지고 말았지만, 이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두어가지 어원이 재미있어 기록해 본다. Asia라는 명칭의 어원이 재미있다. 알렉산드의 고향인 마테도니아어로 유럽 넘어 동쪽, 즉 지금의 소아시아지역을 아주 넓은 땅, ‘Asuva’라고 불렀고 이것이 아시아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p.14) 필리핀이라는 국명은 6세기 식민종주국 스페인 국왕인 필립2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국명이 식민 종주국의 국왕이름에서 왔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책을 받아 쥐고 읽어 나가기 시작할 때, 여행을 위해 찾아 나섰고 여행서를 넘는 이해를 얻고 싶어 선택한 [현대동남아의 이해]는 그런 나의 목적에 부합하는 책이 아니라 느껴졌다. 책의 분량도 무려 500쪽이 넘었다. 그런 면에서 실패한 선택이었지만 학술연구서 같이 무겁고 전문적인 책은 물론 아니었다. 시작은 그랬지만 끝은 달랐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나의 애초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책으로 다가왔지만, 힘겹게 다 읽고 나니 큰 강을 건넌 듯 성취감이 뒤따랐고 전체로서의 동남아에 대해 조망할 수 있는 눈을 얻은 듯 든든해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반 여행서를 뛰어넘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책으로 동남아를 전체로서 이해하자는 나의 목적은 그럭저럭 달성된 셈이다,

아세안 10개국중 몇일전 군사쿠테타가 발발하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미얀마를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로잉자족에 대한 학살에 이은 미얀마 민중에 대한 군부의 학살을 보면서 학살은 민족이나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야만과 문명, 평화와 폭력의 문제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언어, 민족, 종교, 이념적으로 다면적 복합사회인 아세안의 영원한 평화와 번영을 빈다. 많은 독자에게 이 책이 동남아시아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와 나의 그런 바램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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