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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여행기는 긴 사랑의 이야기다.

못다한 청춘의 사랑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 그녀의 여행기는

애닲은 연가가 되어 나를 만났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여행기는  

한 여자의 지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의 흔적을  털고  더 깊어지고 넓어져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녀의 여행기는 여전히 연가다.

그녀의 사랑은 여행을 통해, 그 여정에서 만난 숯한 인연을 통해

여자의 남자에 대한 사랑,

남자의 여자에 대한 사랑을 넘어

성정체성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에 이르고

마침내 세상 사람 모두와 생명 가진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에 다다랐다.

 

처음 만난 김남희의 소녀적 감수성이

삶에 지친 나에게 잃어가는 삶의 신비와 꿈,

가벼워진 추억과 무뎌진 그리움을 되살리는 마법으로 다가왔다면

어느새 그녀의 소녀적 감수성은 진부함과 유치함으로  퇴락하며

나에게서 멀어져 갔었다.

 

다시 고마운 인연으로 김남희의 '[외로운이 외로움에게]를 만났다.

늘 길위에 살고싶지만 세상의 연에 발목잡힌 나약한 한 인간에게

다시 떠나는 자의, 길 떠날 수 있는 자의 용기와  꿈,

그리고 길떠난 자 만이 마주할 수 있는 내밀한 존재의 외로움고 그리움을 담고

이 책은 다가왔다.

 

여행이 '소비'인 시대에 여행이 사치가 아니라 숙명인 사람,

여행이 곧 삶이자 구도인 사람을 만나

여행의 설레임을 회복하는 일은 기분좋은 일이다.

"한때는  꽃을 사모하였으나 이제는 잎들이 더 가슴에 사무"치는 

김남희의  여행에세이 [외로움이 외로움에게]가

바로 여행의 꿈을 회복시켜주는 그런 책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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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규슈 방문 때 일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두번째 규슈방문때 일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본 여행이라고 해봤자 두번의 규슈 여행이 전부지만, 난 벌써 일본 마니아가 되었고 일본여행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여행정보서를 벗어나 김남희의 [일본의 걷고싶은 길] 2편 규슈/시코쿠 편을 먼저 읽고, 추가로 1편 홋가이도/혼슈편을 구입해 손에 쥐었다.

몇편의 여행서를 읽어 나가다 보니 어느순간 내가 여행서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해 보게되었다. 먼저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여행 계획이 있거나 최소한 머지않은 미래에 여행을 갈 수 있을 것 같거나 최소한 가고싶은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여행서를 읽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여행을 갈 것 같지 않은 지역에 대한 여행서라도 어떤 대리 경험이나 대리 만족을 위해 여행서를 읽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여행서는 하도 낡아서 여행정보서로서의 의미도 없고 대리경험을 줄 것 같지도 않지만 읽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는 여행서가 여행서의 한계 넘어 인간 삶의 이해를 깊이하는 역사적 안목이나, 철학적 지혜를 담고 있는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나에게 김남희의 책[일본의 걷고싶은길 1편 홋카이도 혼슈]는 어떤 책일까?  나는 가까운 미래에 혼슈를, 구체적으로는 오사카와 교토 그리고 도쿄를 여행하고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한 그 열망을 1년이상 유예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임박한 여행 목적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위해서 읽지는 않았다. 한달쯤 뒤에 이 책에서 다룬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지금 나에게 혼슈와 홋카이도는 구체적인 여행정보가 필요한 곳은 아니다. 그러면 나는 이책을 여행의 간접경험을 얻거나 삶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깊이하기 위해 읽었던 것일까? 일정정도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꼭 그렇다고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바로 이점에서 나는 [일본의 걷고싶은길 1편 홋카이도 혼슈]에 몰입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김남희의 글을 몇편 읽었고, 그리고 서가에는 앞으로 읽기 위해 미리 구입해둔 [유럽의 걷고 싶은 길]과 [소심하고..... 산티아고]가 꽂혀있다. 나름 김남희 마니아를 자처하지만 솔직히 이젠 조금 식상해지기 시작하는 면이 있다. 김남희의 소녀적 감수성이 주는 편안함과 따스함에 반했지만 그녀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깊이를 더해가는 삶을 이해하는 통찰력이라든지 세상을 바라다보는 인식의 폭같은 것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속좁은 독자의 투덜거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지만 나는 적어도 여행서를 읽는 재미는 최소한 세상을 바라다 보고 이해하는 안목을 넑히는데 있다고 본다.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지금 여행설 ㄹ 한가롭게 읽고 잇을 처지가 아니라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던 여행서가 철학서가 되어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점에서 김남희가 옳은 것은 분명하다.

하여튼 이책을 통해 레분토와 북알프스 다테야마 여행의 꿈을 가질 수 있게된 점, 필자에게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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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를 통해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알게되었다.
"살다보면 그런 날이 온다. 다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고, 가던 길을 그냥 가기에는 왠지 억울한 순간.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나이’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그런 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2010935451&code=900306
경향신문 연재글에서 우연히 만난 김남희의 이 문장에 매료되어 까미노를 알게되고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카미노 관련 책과 자료를 모으며 언젠가는 꼭 길을 떠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까미노는 시들해져버리고 나는 다시 시코쿠길에 필이 꽂히기 시작했다.

올초 평생 처음 떠난  일본 여행을 전후해 일본 관련 책들을 보고, 일본에 매료되었고 시코쿠 길을 알게 되었다. 시코쿠길은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 고보 다이시의 순례길을 따라 일본을 이루는 4개 섬중 제일 작은 시코쿠 섬 둘레의 88개 사찰을 도는 1200km의 길이다. 그 길은 고보 다이시의 깨달음을 함께하는 엄숙한 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단지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나누며 일본의 삶과 문화를 깊이 느끼고 배우고 즐기기에 너무나 좋은 도보여행길일 뿐이다. 그래서 다시 시코쿠 길은 나의 3번째 일본 여행길 목록에 올려졌고, 그리고 다음달 계획잡아놓은 결혼 20주년 규슈가족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책 [일본의 걷고싶은길2-규슈, 시코쿠 편]을 읽게 되었다. 


이책은 규슈와 오키나와 그리고 시코쿠 섬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규슈의 유후인과 부속섬인 야쿠시마, 오이타현의 유후인, 오키나와 본섬과 부속섬인 이시카기섬, 이리오모테섬 그리고 이 책의 3분지2를 채우고 있는 시코쿠 순례길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이 책은 기본적인 여행 안내 정보를 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순전히 여행 안내서는 아니다. 김남희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지만 정보는 덤일뿐이고 책은 줄기는 작가의 사색의 흔적이고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간의 소통과 교감의 기록이다.


이 책의 첫장을 채우고 있는 야쿠시마는 규슈 남단에 부속되어있고 울릉도의 3배정도 되는 크기의 섬이란다. 일년 내내 비가내리고 원시 열대림이 덮여있는 이 섬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원령공주]의 배경이기도 하다. 물이끼가 바위를 덮고, 수백년 된 삼나무가 울창해 그 숲속 어디엔가  숲을 지키는 정령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섬이다. 그 섬을 걷고 도 걸어 수령이 7,200여년이 되었다는 삼나무 조몬스기를 만나러 가는 길은 필자 김남희가 정념 삶을 과정 속에서 내칠 수 없었던 근본적인 물음, 인간과 우주, 삶과 죽음의 신비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길인듯 하고, 긴 여정끝에 만난 조몬스기는 필자 김남희에게 말없이 세상의 진리를 전해  줄 것 같다. 최소한 야쿠시마를 걸다보면 육식화된 몸, 동물적인 정신이 숲의 정기에 씻겨 초식화된 몸으로 식물적인 정신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김남희를 통해 내 생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의 목록에 야쿠시마를 올려본다.

필자의 두번째 발길은 오이타 현의 유후인으로 향한다. 유후인은 유휴가케산으로로 둘러쳐진 조그마한 마을이다. 온천이 있고, 조그마한 가게들이 빼꼭히 들어찬 거리가 있고, 작은 미술관과 민예점들이 늘어선 관광지다. 유후인은 1970년대에 와서 '기획된' 관광마을이란다. 하지만 '관광마을'의 어감이 주는 인공적 혹은 조잡한 이미지가 필자를 통해 유후인의 역사를 들어보면 확 사라진다. 대규모 개발과 보전의 갈림길에서 주민자치기구를 결성하여 보전의 길을 선택하고, 단순한 보전을 넘어 마을이 존속할 수 있는 생활기반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주민들의 삶과 같이 해 왔던 지역 문화를 이용하여, 최소한의 단장을 통해 오늘날 일본인이 살아 생전에 가장 가고싶어 하는 마을로 거듭나게 했단다. 껍데기만 보고 다소 실망스러웠던 유후인을 필자를 통해 다시 느껴 볼 수 있게 된 점이 너무 고맙다.



필자의 발길은 오끼나와와 이시가키섬 등을 거쳐 시코쿠에 이른다. 이책의 2/3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시코쿠 길은 책의 분량만치 오랜 역사를 가진 순례길이다.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양축의 하나인 불교의 순례길이자 수백년동안 민중의 삶속에 녹아 든 풍습과 문화를 낳은 시코쿠 순례길은 어쩌면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걷기 길인지도 모른다. 그 길을 따라 김남희는 이 길을 만든 당사자인 고보 다이시의 가르침이 아니라 시코쿠 순례길이 만든 길가 주민들의 인정과 삶을 대하는 태도로 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까고 있는 것 같다. 이 길을 걷고 나면 사람에 의해 받은 상처가 치유되고, 사사로운 원과 한이 보편적인 인류애로 승화될 것 같은 희망을 준다. 나도 언젠가 오헨로상이 되어 시코쿠 길위에서 상처 받은 다른 사람들과 포옹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 김남희가 고맙다.

시코쿠와 규수 지역의 대표적 걷기길에 대한 김남희의 여행기인 이책은 일본의 도시에 국한된 시야를 가진 사람들에겐 일본 이해의 폭을 일본의 농촌, 일본의 자연까지 넓힐 수 있도록 안내할 것 같다. 그리고 김남희가 길을 걷는 내내  '친절한 일본인과 뻔뻔한 일본정부'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문제에 봉착했다고 한다. 나 역시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일본의 매혹적인 문화가 어떻게 평생을 가져왔던 일본에 대한 선입견과 조화를 이루거나 그 선입견을 수정해 나갈 지 아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김남희의 발길을 따라 일본의 자연, 일본인의 삶을 날 것 그대로 속속들이 만나다 보면 추악한 국가권력과 분리된 일본의 매력을 갈등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일본의걷고 싶은 길]을 만나 다시 한번 더 일본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한달 앞으로 다가온 규슈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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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인 강제에 의한 이주도 아니고
일로 인한 출장도 아니고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유랑도 아닌
오직 내적인 힘에 밀려 집을 떠나
낯선 거리를 떠도는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몇일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관광박람회에 참가해서
봉화은어축제를 홍보하는 은어만들기 체험을 진행하는 중에
행사진행본부에서 하는 방송소리를 들었다.

3층 메인 무대에서 도보여행가 김남희 씨를 초청하여
[유럽배낭여행]에 대한 강연회를 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은어마을기 체험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와이프에게 체험장은 맡겨두고 급히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행사장 한쪽 켠에 놓인 무대위에서
검정 옷을 입은 조그만 여자 한명이 마이크를 두손으로 쥐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이라는 표현 하나로 
나를 사로잡았던 김남희씨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내 스스로 만들어낸 조작된 이미지인지 알 수 없지만
검은 옷 때문일까? 왠지 수녀같다는 느낌과
아둥바둥 살아가는 현실의 장에서 왠지 비켜선 사람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강연은 진행되고 있었고,
관중석에는 30~40대 여성분들을 중심으로
의외로 나이드신 어르신들까지
남여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붐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적지 않은 관객들을 향해 
김남희씨는 '여행'이란 무엇인지.
여행은 어떻게 준비하고 떠나고, 정리해야하는지
나름의 삶속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깨달음을 전해주고 있었다.
열심히 받아적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을 표시하는
아주머니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에모준비도 없이 급히 강연회에 참가했지만
김남희씨의 강연중에 몇몇 구절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메아리로 남아있다.

'여행은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은 성의 바깥으로 나가는것'이라며
누군가를 인용해 정리한 여행에 대한 규정은 참으로 공감되었다. 
또한 여행중인 사람의 배낭을 열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단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기 때문이란다.
 
강연의 중반을 넘기면서
김남희가 걸었던 유럽의 여행길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여행의 후일담을 진행하는 걸 보고
행사장이 걱정이 되어 강연회장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여행에 대한 생각들은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행은 자신이 쌓은 성 바같으로 나가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
새로운 타인들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인류의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게 한단다. 
그리고 끝으로 좋은 여행이 되기위해서는
준비하는 여행, 공부하는 여행, 그리고 공정여행이어야 한단다.
특히 공정여행에 대해서는 긴 설명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여행이 여행지의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지,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피해를 줄지 생각하는 여행이 되어야 한단다.

세계 도처를 가도 꼭 있는 3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중국음식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이 관광객이란다.
일본의 관광은 이미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
나만의 여행을 떠나는 단계로 접어들었단다.

그런데 3번째는 무엇일까?
무척 굼금했지만 
세계 어디에나 있는 3가지 중의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얼굴이 화끈거리고 참혹한 기분이 드는
내용이었다. 바로 한국인 기독교 선교사란다.

수세기전 유럽의 선교사들이 군사적, 산업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지적,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신을 강요하던 선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꼭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그와 같은 큰 잘못을 
한국 사람들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나라 저나라에 나가,
당시의 종교가 틀리고 당신의 신을 대신해 예수를 믿어라 외치는
한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 문화, 그들의 신과 종교를 존중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속에서 맺는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 관계 맺음의 대상으로 타국사람들을 바라다보는
협소한 시각은 인류의 평화를 해치는 
불의의 씨앗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김남희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의 소유자라는 느낌이다.

여하튼 글로만 만날 수 이었던 여행가 김남희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2010년 대구경북 관광박람회는
이래저래 참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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