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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9일 (토) 사불산 걷기

사불산은 이번 달 산행이 결정되고서야 처음 알게 된 산이다. 인테넷을 이용해 찾아보니 사불산은 문경시 동북쪽의 단양과 접해있는 공덕산(912m)을 칭하며, 공덕산에 속한 작은 봉우리에 4면에 불상을 양각한 사불암이라는 바위가 있다고해서 그렇게도 불린다고 했다.
이날의 일정은 사불산 등정후 대승사를 둘러보고 절에서 봉양을 하든지 아니면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헤어지기로 되어 있었다. 좋은 분들과 산길이나 걸으며 봄볕이나 싣컷 쐬고 말았을 사실은 좀 민밋한 일정이었는데, 문경시 엄원식 학예사님의 안내로 예상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주차장에서 부터 시작해 등반일정 내내 같이하시며 산과 절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를 전해주시고, 윤필암과 대승사에 미리 연락을 넣어 분에 넘치는 대접까지 융숭하게 받게되었다. 봄 풍경을 마음에 담고, 엄학예사님의 배려로 텅빈 머리에 역사 문화적 지식을 가득 전해 받은 것도  부족해 두손 가득 선물보따리까지 들고 산을 내려오니 인연들이 모두 한없이 고맙고  염치없기도 했지만 조금 과장하면 혹시 "운수좋으날" 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불안하기조차 했다^^*
  
산행 시간을 착각하는 바람에 아침부터 정신없이 달려 일행과 합류한 것이 9시 40분 전후, 윤필암아래 주차장에서 미리 도착한 일행과 엄원식 학예사님이 비석앞에서 비석의 유래와 대승사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고 계셨다. 일행을 기다리게 해 한없이 죄송스러워지만 마른 산을 씻어 내리는 봄바람에 이내 나는 산에 빠져들고 일행들과 함께 대승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대승사는 신라 진평왕때  창건되었다고하는데 이후 몇번의 화재가 있었고 가까이는 1956년 대화재로 인해 명부전과 극락전만 남고 거의 소실되었다고 했다. 이후 중건이 진행되어오고 있으며, 근년에들어 템플스테이에 필요한 건축물까지 신축하는 바람에 절의 풍광이 조금은 산란하고 어수선해보였다. 그점이 봅시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절에 사는 사람의 뜻을 무시하고, 절을 보러오는 사람의 뜻만 주장할 수는 없는 이치아닌가. 

주지스님께 양해를 구하고 예불중인 대웅전에 들어가 보물 575호인 [목각아미타여래입상]을 보고, 엄학예사님의 배려로 사찰내의 이런저런 문화유산에 얽힌 재미있고 유익한 설명을 들었다. 대웅전앞 대승선원에 걸린 2개의 편액에 씌인 "地湧雙蓮(지용쌍연)"  "天降四佛(천강사불)" 이라는 두 구절이 대승사의 창건설화를 대신한다고 했다. 절을 창건한 지용이 죽고 연꽃 2송이 피었고, 사불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경내의 이런저런 문화유산에 덧붙여 경내를 어슬렁 거리는 하얀 진돗개의 사연까지 듣고 나서 경내를 벗어나 윤필암으로 향했다. 절에서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가파를 경사가 이어지는 난코스가 이어졌다. 일행들은 겉옷을 벗어 들기 시작했지만 목적지인 사불암에 그리 어렵지 않게 도착했다.  사불암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사불암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취하고 또 봄볕과 보바람에 취해 한참을 쉬다가 올라온 길을 되짚어 윤필암으로 향했다.  
 
윤필암은 작은 건물 한두채로 이루어진 그런 암자가 아니라 일반 사찰보다도 작지 않은 규모였다. 더군다나 전국에서 사찰음식으로 제일로 유명한 곳이기도하고 윤필암의 다실은 엄학예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역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실중 하나로 손꼽힌단다. 학예사의 배려로 그런 다실에서 마일스님을 뵙고 절에서 손수 준비한 떡과 차를 나누었다. 차를 나누며 스님의 삶과 속세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어떻게 같고 도 어떻게 다른지 많은 생각을 했다. 마일스님의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표정이 한 사람의 삶이 가진 행과 불행의 무게를 되돌아보게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실을 나서 점심 공양 약속시간이 지난 대승사로 다시 행했다. 공양실에는 상이 차려져 있었다. 막 다실에서 떡과 차로 배로 채운 뒤였지만 사찰음식의 맑고 깊은 맛에 취해 한끼니의 식사가 주는 행복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공양을 마치고 엄학예사를 따라 주지스님이신 철산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일행 모두 절에서 운영하는 '대승요'에서 구운 다기세트를 한아름 씩 선물로 받고 다시 삶의 터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복원공사중인 근암서원을 들러보는 것으로  이날 모임을 마무리했다.

다과를 내어주신 윤필암 마일스님, 다기를 선물해주신 대승산 주지 철산스님, 풍부한 하루 여정을 준비해 주신 문경시 학예연구사 엄원식님, 그리고 이날 즐겁고 행복한 산행의 인연을 만들어주신 이기자님을 비롯한 일행 모두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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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지인들과 함께 겨울 청량산을 올랐다.
아침 9시, 인적이라곤 없는 청량산 입구에서 만나
눈길을 헤치고 응진전 까지만 올랐다가
청량사 지현스님을 뵙고 차 한잔 얻어 마시고 하산을 했다.
이번 산행에서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사시사철 아름다운 청량산은
그래도 겨울산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신록으로 우거진 성하의 청량산보다  
잎은 다 비우고 흰눈으로 정화된 겨울청량산 풍경이
더욱더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다.
청량산 눈덮일 산길을 걸으며 겨울의 깊이에 빠져들다가
어느새 저 산넘어 어디쯤 오고있을 봄을 맞을 꿈에 가슴 부푼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반가운 분들과 함께한
긴 여운과 깊은 서정을 남긴 즐거운 산행이었다.

겨울이 끝나가는 날,
아름다웠던 겨울 청량산 풍경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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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째 봉화군 등 4개 시군이 공동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외씨버선길]의 봉화구간 스토리 자원조사 일을 하고있다. 건성으로 지나치거나 찾아갔던 춘양면의 88번 도로를 따라 길 양쪽으로 형성된 촌락을 중심으로 설화나 민화, 혹은 기타 문화예술자원 그리고 자연 경관 자원등을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외씨버선길 봉화구간만의 색을 찾기위해 고심하고 있다. 스토리 자원이 될만한 아이템의 단순 수집작업은 그럭저럭 진행하고 있는데 그렇게 수집된 아이템을 정리하고 선별하여 길의 테마를 드러내줄 수 있는 스토리로 묶어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그저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는 재미에 이 일을 맡긴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기에는 여러가지로 역부족인게 사실이다. 짧은 기간, 작은 보수 그리고 더 짧은 식견!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일은 이미 맡았고 하여튼 진행되고 있으니 그냥 쭈욱 나가는 수밖에...

그래도 이 일이 주는 즐거움은 많다.  무심히 지나치던 차창밖의 작은 풍경들속으로 직접 걸어들어가 뜨겁게 만나는 기쁨. 인근에 살면서도 삶의 체바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생각만 있고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기쁨, 또 존재의 아름다움과 삶의 깊이를 전해주는 찰나의 느낌들과의 해후...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까지 작업 진행과정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성과는 무엇보다 영화감독 김기덕의 고향마을을 알게되고, 그의 생가터를 찾아가 다시 한번 그의 영화를, 그리고 산골아이에서 국제적인 영화감독으로 입신한 한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본 것이 아닐까싶다.

사실 김기덕 감독의 생가터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처와 그의 영화에 대해 그리고 최근 뉴스에 전해진 그의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새로 개설될 걷기길의 스토리자원 발굴 작업 중에 만난 그 였기에 나의 사고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을 낳은 산골마을만의 특별한 감수성 체험'어쩌고 저쩌고 하는 프로그램이나 '한국의 가장 영화의 한 장면같은 길' 혹은 '가장 영화찍기 좋은 길' 뭐 그딴 망상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뭏튼 한달여전 김기덕 김독이 후배들에게 배반당해 폐인이 다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고, 그리고 그 몇일뒤 다시 그 뉴스가 순전히 오보라는 기사 역시도 보았다. 개인의 삶을 무책임하고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는 기자들의 천박함에  놀아나고 싶지 않아서 가볍게 무시해 버린 기사였지만 김기덕의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계시고, 돌아가신 김기덕 감독의 부친과 친구되신다는 박세윤(84세) 할아버지가 그의 근황을 물어 올 때는 괜히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덕이 요즘도 영화찍나, 우째 지내는고? 참 대단한 상도 많이 탓제.... 뭐가카더라 그...'라고 말씀하실 때는 나도 모르게 '뭐 국제적인 영화상을 다안 받았니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이니더. 요즘도 열심히 영화 찍지예.' 라고 김기덕 감독을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기라도한 것처럼, 그의 삶을 두둔하고 지켜줘야한다는 듯이 대답하고 말았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 대부분을 본 처와 거의 보지 않은 나의 대화는 진전될 수 없었지만 마초적 감성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대한 통찰력과 미적 깊이가 있어 매력적인 영화감독이라는 처의 평에 머리를 끄덕거리며 다시 그의 영화를 보도록 하겠다고 마음먹어 보기도 하고, 그의 영화가 진실을 직시케 함으로써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여  높은 예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하는 면도 그렇고 학벌도 돈도 따라서 인맥도 없이 예술적 열정 하나로 영화감독으로서 최고의 반열에 오른 그의 삶이 가진 굴곡이 어쩌면 비빌 구석이라곤 한군데도 없이 우리 사회의 병폐의 근원이 되는 모든 금기들을 건드렸던  고 노무현대통령의 삶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나누면서 하루의 과업을 마무리 했다.

2004년 고향을 방문해 송이축제장에서 펜 싸인회도 하고 고향후배를 위한 강연도 했었다는 그는 몇몇 고향 분들에게 '자신'을 고향을 위해서라면 이용해도 좋다고 까지 말씀하셨다고하는데 그를 맞은 봉화는 그의 크기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도로변의 쌈지 공원을 '김기덕공원'으로 만들자던 젊은 지역 일꾼의 제안 마저 지역사회가 무시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걸 보면 참 씁쓸하기조차 하다.  
 
오직 그의 앞날에 큰 예술적 성취가 있기를 그리고 불온한 세상의 섭리에 맞서 그만의 멋진 세계를 구축해 내고 그러면서도 내내 행복한 한 개인의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기를 빈다. 

* 김기덕 감독의 고향집터를 알려주고 약도까지 그려주신 춘양목송이마을 곽진희 관리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김기덕 감독이 태어나고 초등학교까지 다녔던 봉화군 춘먕면 서벽리 마을 입구

김기덕 감독의 생가터를 가르켜주는 박세윤 할아버지.
 

김기덕 감독의 고향집은 헐리고 그 터는 사과나무가 심겨져있다.

김기덕 감독의 부친과 친구였다는 박세윤 할아버지와 기념사진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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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 봉화구간-만산고택에서 도심리까지 : 1차 답사

'걷기 길'이 붐이다. 그러다 보니 봉화군에서도 여러구간이 만들어졌거나 준비 중에 있고 그중 하나가 '외씨버선길'이다. '외씨버선길'은 청송군, 영양군, 봉화군, 그리고 영월군이 지자체 연합사업의 하나로 추진중인데, 일부 사업이 진척되어 올 3월이면 몇몇 부분 구간이 문을 연다고 한다. 이 4개 시군에 걸쳐있는 이길의 이름 [외씨버선길]은 조지훈의 시 '승무'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길의 구간에는 김주영, 이문열 등 여러 문학적 자원이 산재해 있고, 특히 이 길의 이름을 만들게 된 데는 조지훈의 고향이 영양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씨버선은 오이씨같이 날렵한 선의 아름다움을 지닌 버선을 말하는데, 외씨버선의 아름다움과 걷기길의 테마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일단 '4색 루트 외씨버선길'이라는 좀더 의미가 확대된 명칭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4색은 4개군을 칭하기도 하고 문학적 '思索'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저런 인연으로 외씨버선길 봉화구간의 하나인 만산고택~도심리 17km 구간의 스토리자원조사 용역을 대행하게 되었다. 농한기에 밥벌이 겸, 그렇지 않아도 운동삼아 나름대로 '마을길 걷기'를 간간히 진행해 오고 있는 터에 고마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게 되었다. 사전 협의와 '계획서' 작성을 마치고 지난 1월 8일 이번에 조사를 맡게된 구간의 출발점인 [만산고택]에 관계자 분과 자리를 가졌다. 봉화문화원 강연선 사무국장님, 만산고택의 강백기 선생님과 함께 이번 외씨버선길 문화자원 조사에 대한 취지를 나누고 몇가지 실무적인 일을 논의한뒤 길을 나섰다.

내가 맡은 일은 1월 한달 동안 춘양읍에서 도심리를 잇는 17km구간에 산재해 있는 스토리자원 조사가 전부다. 구간의 조정이나, 테마 선정 같은 것은 [외씨버선길]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전문가집단으로 구성된 사업단에서 수행해야 할 일이고, 나의 과업은 단지 길의 테마, 길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다양한 스토리 자원에 대한 수집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참 쉽고 간단한 일인것 같다. 우선은 500만원의 예산으로 3명의 인력이 한달간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를 수행하는 것만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사실 스토리 자원을 조사하는데 있어, 보다 더 큰틀인 [4색 루트 외씨버선길]의 주 테마와 4개시군 구간 각각의 테마-색이 어떻게 사전 논의되고 모색되었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기 때문에 작업과정이 참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했ㄷ. 하지만, 그 구간 내에 모을 수 있는 스토리 자원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모으는 방법밖에는 없는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날 걸음은 앞으로 진행될 조사에 앞서 길전체의 '색'을 먼저 느껴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세부적 자원조사는 앞으로 계속 걷는 과정에서 수행되어야하고 우선은 이 길의 '느낌', 이길의 '가치', 이 길의 '정신'이 무엇일까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산고택을 나와 의양리의 태고정, 낙청당, 권진사댁을 둘러보고 춘양중학교 교정에 있는 서동리3층석탑, 서원촌 등을 거쳐 산길을 통해 새터로 가는 방법과 운곡천을 따라 나있는 88번지방도를 따라 걷는 방법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일단 운곡천을 따라 걷는 길을 택했다. 운곡천을 따라 농로를 걷기도하고, 농로가 끊어지면 다시 도로로 나와 걷기도 하면서 일행들과 길의 느낌을 나누기도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새 구간의 중간지점인 애당리의 '봉화도예연구소'에 도착한 것이 오후 2시. 도예연구소의 반현호 소장님의 환대를 받고 국화차를 나누다보니 짧은 해가 운곡천 계곡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백두대간 넘어 기울기 시작하고, 더 이상 진행하기에는 혹독한 추위에 이날 과업은 그 지점에서 마치기로 했다. 도예연구소에서 작업중인 봉화 바래미마을 김종구 선배를 만나 차를 얻어타고 만산고택으로 돌아와 이 날 일과를 마무리했다.

이날 걸은 길은 총 9km로 이전에 도로를 차로 달리기만 했던 구간이다. 서벽리에 있는 [춘양목 송이 정보화마을' 관계자인 고마운 분들과의 인연 덕분에 몇년 전부터 일년에 몇번씩은 차로 다녀왔던 길이기 때문에 길을 걸어 나서기전에 사실 일정한 부정적 선입견이 있었다. 이 구간이 걷기길로서 적합할까, 뭐가 볼만한 게 있고, 무슨 문화자원이 얼마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차로 달리기만 하던 길을 처음 걸어보면서 그런 나의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걷기를 통해  길의 '느낌'을 새롭게 얻는 기쁨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은 무시했던 사람한테서 새로운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되고 진정한 친구가  되는 기쁨같은 것과 같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수산과 각화산 자락들이 어우려져 이루는 계곡을 따라 운곡천이 흐르고, 그 천을 따라 형성된 농지와 마을 그리고 길을 따라 멀리 태백산 준령을 바라다 보면서 걷는 기쁨은 참으로 컸다. 간간히 전해주는 강백기 선생님의 역사문화적 지식과 강영선선생님의 길에 임하는 지혜는 이날 그 길을 걷는 기쁨을 더욱 깊게 했다.   

* 동행자 : 4명
* 11시 만산고택 출발, 오후 2시 애당리 '봉화도예연구소'도착 
* 총  9km / 소요시간  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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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는날, 강건너 거무실을 걸었습니다.

늦은 아침, 살을 에는 추위가 한낮의 햇살에 누그러들자

간단한 간식을 챙기고 아내와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이런저런 핑게로 오랫동안 떠나지못한 마을길 순례를

이번은 사전 계획도 없이 갑자기 나서게 되었습니다.

 

거무실은  비나리마을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입니다.

비나리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쪽으로 오백미터만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초방산 가는 길이 나오는데, 바로 그 반대편 강건너

보일듯 말듯 골짜기에 숨어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몇년전에야 겨우 전기가 들어가면서 언론도 타고,

그 덕분에 외부에 알려지게된 거무실은

직선거리로 따진다면 국도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마을앞은 낙동강으로 막히고 마을뒷길은 청량산의 한자락인

문명산에 가로막혀, 차로는 당연히 접급할 수도 없고

걸어서도 접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세상에 숨겨진 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비나리마을에서 출발해서 옷갓재를 지나 고계다리를 건너고,

고계리 마을을 관통하다 오른쪽으로 틀어 산길을 접어듭니다.

고계리를 지나 30분쯤 산길을 오르다보면

정상쪽으로 난 가파른 비포장길과 오른쪽 강쪽으로 나있는

오솔길로 나누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가파른 산길에는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차바퀴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산이 깊어질수록 그 길마저 사라집니다.

매서운 추위가 살을 애는 한겨울에도 등에 땀이 흐를 만치 걷다보면

그 길의 끝에서 민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세상이 싫어서 이렇게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가 싶기도하고, 어쩌면 옛 고향집을 꾸며

간혹 들러서 쉬어가는 집같기도했지만

아무리 불러봐도 사람은 나오지 않고 빈마당엔 겨울 바람만 가득했습니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강쪽으로 갈라진 오솔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첩첩산중이지만 그래도 가는 길목마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가쉰 폐가들을 만날 수 있고,

잘 손질된 잔디가 덮인 무덤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대신해 객을 반깁니다.

 

풀숲을 더듬어 없는 길을 만들어 30분쯤 더 걷다보면

이제는 포기하고 돌아서야지 하고 마음먹기 시작할 즈음

오랜동안 그리도 가 보고싶었던 거무실 아랫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옛날에 살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는 두어집이 남아 동네를 지키지만

가파른 산능선에 심겨진 대추나무와

겨울 찬바람에 마른 고추댓궁이 겨울 햇살을 받으며 천연덕스럽게 지난 여름 받았을

따뜻한 사람의 손길을 이야기해 줍니다.

 

두어채의 폐가와 사람사는 흔적이 있는 또다른 두어채의 집이 전부인 마을에는

인기척이라곤 찾아볼수 없고

낯선 객을 반기는 강아지 한마리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명산자락이 모은 빗물이 지나는 거무실 계곡은

도연명이 찾던 무릉도원이 꼭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치

선계를 닮아있습니다.

큰물에 씻긴 집채만한 바위로 이루어진 거무실계곡은

언제 다시한번 꼭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찾고 싶습니다.

계곡을 이루는 바위위에 작은 상을 차리고 오늘은 만나지 못했던

거무실 사람들과 잔을 비우며 물소리와 함께

거무실 사는 이야기라도 듣고싶습니다.

 

한해를 보내야하는 즈음,

거무실을 걷기는 큰 행복을 주었습니다.

* 비나리마을에서 거무실까지 왕복 10km // 일부구간 난코스

* 소요시간 4시간

* 거무실마을 도착후 낙동강을 따라 북상, 고계 다리에서 강을 건널 수 있지만 비나리마을 앞 구간에서 강변을 따라 지나기에 어려운 코스가 있다.

* 고계리에 차를 세워두고 걷기를 시작하면 넉넉잡아 3시간이면 거무실 마을 걷기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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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봄을 알리는 징후가 우후준순처럼 솟아나는 날, 비나리마을의 새 주민이 된 와우네, 산이네, 그리고 저희 부부가 함께 운곡천을 걸었습니다. 삼동 가는 국도 다리 밑에 자리한 명호정미소 앞에서 먼저 온 가족이 행여나 늦게 도착할 도반을 기다렸습니다. 출발예정시간인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 같이하기로 했지만 오지 않는 분들께 확인 전화를 하고 운곡천변 길을 따라 걸음을 시작했습니다..

 

국도가 지나는 콘크리트 다리 밑을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운곡천은 원시의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반깁니다. 두어 사람이 같이 걸을 수 있을 폭의 흙길과 큰물이 나도 다 받아줄 것 같은 펑퍼짐한 물길이 나란히 기대어 흐릅니다. 장난스런 물길이 만들었을 모래밭에 갈대가 자라고, 길과 산이 만나는 언덕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지난 세월 갖가지 물굽이를 지켜봤을 굽은 소나무 두어 그루가 길을 따라 흐르는 물길을 들여다봅니다. 강바닥에 누워있는 형형색색의 해맑은 자갈들이 아침햇살에 뒤척이고, 밤새 숨죽였을 강물이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합니다. 물길을 산을 피해 강을 열었지만 무거운 몸을 피하지 못한 바위는 오랜 세월 물길에 씻겨 새 얼굴을 얻었습니다. 무심코 지나는 발길을 동행의 외치는 소리에 멈췄습니다." 스크림이다!" 물살은 세월과 공동 작업으로 뭉크의 스크림을 창조했습니다. 아니면 뭉크가 '스크림'을 그리기 전에 언제 이 바위 곁을 지나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상에 어떤 예술도 자연 앞에 초라합니다.

운곡천을 걷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 매력에 빠져들고 어느 순간 운곡천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름 모를 물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너는 왜 이 길을 걷는지 물새가 묻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쫒아 세상의 온갖 편리를 다 누리고 그것도 부족해 또 원시의 자연마저 누리려드는 인간의 욕심은 끝간 데가 없습니다. 원시적 생태 그대로 놓아두기에 뭐가 그리 아까운지 꼭 사람의 손길을 보태 [생태공원]이라 이름지어야하고, 더 끔찍하게는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하나로 청정한 산하를 인간 욕망의 배설물인 갖가지 폐기물의 매립장으로 이용합니다. 한 때 강을 따라 사람이 살았고, 지금은 그 흔적만 길로 남아 드물게 찾는 사람을 반기고 있지만 이 아름다운 운곡천에 언제 개발의 삽질이 시작될까 두렵습니다. 물살이 강을 열고 강을 따라 사람이 들어오면서 길이 생기고,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문명의 편리가 부르는 도시로 사람들은 떠나갔지만 언제 다시 사람들은 포클레인을 앞세우고 이곳 운곡천을 점령해 들어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운곡천 산업폐기물 처리장 설치 시도를 명호면 지역주민들이 함께 저지할 수 있었지만, 자본의 힘은 강하고, 그 생명을 끈질겨 언제 다시 개발의 기치아래 물밀듯 운곡천을 점령해 들어올 지 알 수 없습니다.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마주친 민가가 명호양어장입니다. 출입을 삼가라는 팻말을 남겨놓고 외출중인 주인에게 전화를 걸고, 주인 없는 집 마당을 가로 질러 운곡천 길을 이어갑니다. 주인없는 집 마당 한편의 물웅덩이에는 맑은 하늘이 가득 담기고, 온갖 모양의 구름들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다녀갑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의 터전도 만나게 되지만 운곡천을 따라 걷다보면 강을 따라 사람들이 살았던 옛 흔적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가시고,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해 쓰러져 가는 폐가가 낯선 사람들을 반깁니다. 잡초가 무성한 마당 한구석에 아직도 남아있는 살림살이의 흔적들이 기울어 가는 저 집 기둥이 반듯이 지붕을 이고, 그 아래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한 지난 한때의 살가운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저 지붕아래 아기 울음소리 가득하고, 어머니가 끓이는 된장국 냄새가 석양지는 하늘로 피어오르는 시간, 멀리 온종일 밭을 갈다 돌아오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농토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운곡천이 지나는 이 좁은 골에 그분들은 어떻게 가족을 먹이고 살아갔을까 궁금했는데, 천에서 머지않은 곳에 금광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몇몇 폐가가 작은 동네를 이루다 시피 흩어져 있고 산같이 막아선 자갈 더미는 모두 한 때 이곳이 금을 쫒아 들어온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한 시절, 한 가족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을 항아리들이 폐가의 한 켠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가고 빈 항아리만 나뒹구는 폐가의 마당에도 봄 햇살을 가득합니다. 그 언젠가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을 위한 밥을, 소수의 사람에게 부를 가져다주었을 금광의 흔적이 이렇게 완연한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몇 년 전 폐광의 침출수로 운곡천이 중금속오염으로 몸살을 앓자 많은 예산을 들여 침출수 방지 처리를 했다고 합니다. 아직 폐광의 흔적을 지우기에는 세월의 경륜이 부족한지 폐광 근처에는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돌을 갈고 금을 모았을 무쇠덩어리 기계가 다 삭아 자취를 감출 만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맑은 생명수가 흐르는 운곡천을 상상해 봅니다.

강길을 걷기 시작한지 두어 시간 만에 사미정 계곡근처까지 당도를 했습니다. 사미정 계곡 첫 집이 보이는 바위위에서 아침 일찍 서둘러 싸온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강과 산이 너무 가까이 만나 길이 끓어진 곳에서 어렵고 위험한 곳을 피해 겨우 강을 건넜습니다. 여차하면 아직은 차가운 강물에 풍덩 빠져 버릴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강 건너기는 이날 하루 걷기의 최고 이벤트였습니다. 다시 강은 길을 되찾고 우리의 걸음은 빨라졌습니다. 잠시 강길을 벗어나 아스팔트 포장을 따라 언덕을 오르고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멀지않은 '나무피리요술피리'농원엘 들렀습니다. 불시에 들이닥친 우리는 주인장이신 조성용 김연희 부부를 만나 맛난 차를 얻어 마시고 지역문화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이들 부부의 '음악정원 만들기'계획에 대해 듣고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머지않아 '음악정원'의 풀을 뜯을 염소 한 마리가 사람들의 발길이 붐빌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나무피리 요술피리' 음악정원을 떠나 다하지 못한 운곡천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사미정을 지나 사미정계곡 입구에서 국도변버스정류장에 도착해보니 오후 4시 40여분, 농사일에 바쁜 어르신께 차 시간을 여쭈어 보니 5시 15분경 버스가 오긴 하는데 우리가 돌아가야 할 명호로 가는 차인지는 알 수 없답니다. 오늘 하루 지난 시간을 음미하며 담소를 나누며 서서히 땀이 식고 한기를 느끼기 시작할 무렵 버스가 도착했지만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인 춘양으로 돌아나가는 차랍니다. 결국 농사일에 바쁜 이웃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또 한대 오고 다행히 명호를 간다기에 무조건 올라탔습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다시 전화를 했지만 부지런한 이웃 청년은 벌써 차를 몰고 사미정 계곡입구 근처까지 오고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운곡천 강길 걷기로 보낸 하루는 삶의 애틋함과 자연의 숭고함을 나누고 이웃의 정마저 담뿍 느낄 수 있었던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산을 비켜 강이 생기고 세월을 겪으며 강줄기를 넓혀왔을 운곡천을 따라 봄바람 맞으며 정겨운 분들과 같이 걸을 행복한 봄날의 하루는 오랜 동안 저의 기억에 남아 그리움으로 익어갈 것입니다.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등반 후 청량산이나 명호면 소재지 인근에 있는 민박집에서 1박 후 명호면 도천리 삼동다리 밑에서 운곡천 걷기 시작, 운곡천을 따라 3~4시간 약 15km를 걸으면 사미정에 도착, 명호에 승용차를 두고 걷기에 나선 경우 35번 국도를 따라 약 4시간 15km에 이르는 삼동 고갯길을 지나 출발지로 돌아온다.

가벼운 걷기로 마무리하실 분은 사미정 계곡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거나, 숙박지의 차량 지원을 받아 명호로 돌아온다.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기에 나선 분은 명호에서 사미정까지 걸은 뒤, 다시 춘양까지 2시간 약 10km를 걸어가 춘양면 소재지를 둘러보고 만산고택이나 민박집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태백으로 이어지는 외씨버선길 걷기에 나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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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공지한 6번째마을 걷기 코스를 거무실, 초방사 코스에서

급히 운곡천 코스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최근 봄비로 낙동강 물이 불어 걸어서 거무실에서

초방사쪽으로 강을 건너기도 어렵게 되었고

무엇보다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오려다 저지된

운곡천을 다시 걸으며 운곡천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그 아름다움을 지켜야만한다는 의지도 북돋을겸

긴급히 마을걷기 코스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가해 비록 바쁜 봄날의 하루지만,

만사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고 즐거운 봄날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 일  시 : 4월 11일/일요일 오전 10시

- 출  발 : 삼동다리밑 명호정미소 인근

* 코  스 : 삼동다리밑에서 출발 운곡천을 따라 사미정까지 갑니다.

           가는 길 중간에 운곡천 산페장 예정부지였던 곳을 방문해

           생명의 보고인 운곡천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세우겠다던 계획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생각인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편도로 총 12~14km이고 사미정에서 국도로 삼동고계를 넘어 명호로 돌아오면

           총 30여km가 됩니다.

           사미정에서 아이들은 차량으로 돌아가고, 오른들중 더 걸을 사람만

           국도로 삼동고계 넘어 명호로 돌아옵니다.

 

- 준비물 : 약간의 음료와 점심/준비가 힘드신 분은 몸만오셔도 좋습니다.

           준비를 하시는 분은 당연히 좀더 여류있는 양을 준비하셔야겠죠.

 

[봉화오지마을 걷기]는 봉화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좀더 잘 알고 사랑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형식도 강제도 없이 오직 자발적인 의사만으로

아이에서 어른, 장애인이나 노인분까지 누구라도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참가하시는 분들의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일정, 코스 등

모든 것을 협력적으로 조정 가능합니다.

또한 봉화 지역이 아닌 타지역, 특히 도시에 사시는 분께서

함께 하신다면 더욱 반갑게 맞이할 것입니다.

참가인원이 적어 걷기가

불발되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단, 비가 올 경우 자연 연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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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번째 만리산길 걷기를 마지막으로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을걷기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새 봄을 맞아 올해 다시 마을걷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제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아이들 손마저 빌려야 된다는 농번기이지만
그만치 마을길을 걷는 우리의 발걸음도 소중하기에
과감히 바쁜 일도 뒤로하고 길을 나설 생각입니다.

이번코스는 반나절 코스로 각자 점심을 먹고
간단한 간식과 목을 축일 물만 가지고 길을 떠납니다.

총 걷는 거리는 10km정도지만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는 난코스라서
그렇게 만만하지많은 않을것 같습니다.



항상 국도를 달리며 강건너 거무실이 궁금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세상이 다 바뀌어도 바뀔거 같지 않은 거무실에
몇년전 전기가 들어오고
동시에 전기가 없이 살던 마을이라는 기사가 언론에 났지만
접근하기가 워낙 불편해서 그런지
아직 거무실은 태고의 마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마을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편함에 기대어
주관적 희망을 투사하는 저 자신의 이기심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거무실의 지금 모습 그대로 언제까지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았지만 미리 공지합니다.
 
= 일정
  2010년 4월 11일 오후1시 출발 / 비가 오면 1주 연기됩니다.

= 코스 및 기타 안내
오후 1시 비나리마을입구에서 출발 - 고계 다리를 건너 - 고계리 공마를 지나 거무실까지 걷고 -  거무실을 지나 강을 건너 - 초방산으로 향합니다. - 초방산마을을 들러 - 갈골 을 통해 하산하여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 갈골 민경동 댁에서 징코민토종닭 백숙을 먹고 비나리 입구가지 민사장 차를 이용해 이동한뒤 해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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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이런저런 사정으로 여러번 연기되었던

5번째 마을 걷기를 떠났습니다.

급히 결정해 공지한 탓도 있고, 여러가지로 바쁜 일들도 겹쳐

모처럼 조촐하게 길을 나섰습니다.

저희 부부와 김종미,정재우씨 부부는 호젓한 걸음을 떠났습니다.

 

갈골 민가네 농장에 차를 세워두고

갈골을 따라 약 3~4킬로미터를 걷다가

왼쪽 임도를 접어들고, 임도를 따라 향적사까지 약 6.5킬로미터,

향적사에서 구우전 마을까지 2km정도, 다시 강가 마을입구까지

6km... 이럭저럭 약 20km의 길을 걸었습니다.

 

갈골 계곡의 아름다움도 좋았지만

만리산 임도를 따라 첩첩산중을 걷는 재미도 대단했습니다.

이번 걷기는 아이들이 동행하지 않아

신나게 거의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코스를 완주했습니다.

향적사 언덕에 놓여진 평상에 앉아 준비해간 김밤을 먹고,

만리산구우전 마을의 터줏대감 금동윤씨네를 찾아

사과 쥬스를 얻어마시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골 민경동농가에 도착

봉화 명호의 명물 징코민 토종닭을 먹었습니다.

 

닭을 먹을 때쯤 이날 걷기에는 참가하지 못한 한걸음님,

대구 손선생부부, 솔비아빠, 그리고 자신이 주인인지 손님인지도 모르고

같이 먹고 웃고 즐기다가 이상하게 돈을 받을 때만 주인인걸 기억해내는

민경동님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같이 하지 못했지만 연락주신 명호 이재현선생님,

군청 전광섭아찌께도 감사드립니다.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 있고,

그 길을 걷는 감동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는 저는 행복합니다^^*

 

 

 

 

 

 

 

 

 

 

 

 

 

 

 

 

 

 

<0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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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봉화 오지마을 걷기가 있습니다.

이번코스는 갈골입구에서 갈골을 따라 걷다가

만리산임도를 접어들어 만리산과 향적사 그리고

전설을 품고있는 늘못과 구우전을 걷습니다.

사정이 되면 만리산 자락의 구우전 마을을 형성하게된

역사의 흔적을 찾을 예정입니다.

60년대 남북한 대결시절 울진삼척 지구의 독농가를 모아

이곳 만리산 자락에 강제 이주시켰답니다.

이주민들은 정부 보급으로 받은 시멘트 블록으로

새 삶의 터전을 세우고 거친 산자락을 일구어

오늘날 탑푸르트 상을 받는 등

전국의 명품사과로 이름높은 아름다운 만리산 사과과수원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 거친 삶의 흔적을 사진에 담고 그 역사의 온기를

직접 느끼는 기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이번 코스중에 지나가게될 늘못은

주민들의 말씀에 따르면

한라산 백록담처럼 화산 분화구에 의한 호수라고 합니다.

이 늘못은 오랜 전설이 전해 오는데...

옛날 만리산의 봉성쪽 아랫마을은 재법 들이 넓어

많은 집이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지어야 할 만치

넉넉한 마을이었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머슴과 주인 마님이 눈이 맞아

도망가는 집이 한집두집 계속 늘어나 온 마을이

난리가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고승이 지나가다가

만리산 정상에 늘못에 물이 차서(욕망이 차서?)

부인들이 머슴과 도망가는 것이니

마을주민이 나서서 늘못 둑을 무너뜨려

물을 빼버리면 그런일이 사라질 거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날을 잡아 야밤에 

늘못에 올라와 둑을 뭉개버렸답니다.

그뒤 더이상 그런일이 없었다고 전해져 옵니다.

더 상세한 것은 이날 주민분을 만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코스는 상당히 깁니다. 비교적 평탄한 길로 20km정도니깐

성인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참가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코스중간에 합루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날 걷기를 마치고 갈곡 민경동 농가에서 징코민 토종닭 백숙을 먹을

생각입니다.

따라서 민가네 농장의 도움을 받아 임도 입구까지 차로 이동하고,

만리산 구우밭에서 아이들 먼저 차로 민가네 농장에 가서

뛰어놀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만리산 임도 약 5km를 걷고 황적사와 늘못만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일시 : 5월 17일(일요일) 오전 10시

- 코스 :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 갈골입구에서 출발 만리산 임도를 거쳐 향적사,

         구우전거쳐 갈골 민가네 농장(도합 최장 20km)

- 출발 : 갈골입구

* 어린이가 동행하시는 분은 11시 갈골 만리산 임도입구에서 합류 가능하며,

         코스를 완주하지 않고 향적사에서 돌아 오셔도 좋습니다.

- 준비물 : 약간의 음료와 점심 / 징코민 토종닭 먹을 돈 1인당 1만원

 

- 공지 : 마을 걷기 5번째를 마치고 민가네 농장에서 징코민토종닭 백숙을 먹을 예정입니다.

        

 

 

[봉화오지마을 걷기]는 봉화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좀더 잘 알고 사랑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형식도 강제도 없이 오직 자발적인 의사만으로

아이에서 어른, 장애인이나 노인분까지 누구라도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참가하시는 분들의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일정, 코스 등

모든 것을 협력적으로 조정 가능합니다.

또한 봉화 지역이 아닌 타지역, 특히 도시에 사시는 분께서

함께하신다면 더욱 반갑게 맞이할 것입니다.

마을걷기는 비만 오지않으면 참가인원에 관계없이 무조건 길을 떠납니다.

비록 농번기이긴 하나 농사만큼 우리 건강을 아끼고

우리 마을을 배우는 마음도 중요하기에

마을걷기를 멈추지 않기로 했습니다.

많은 참가 있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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