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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역에 도착하니 닌빈행 3시반 기차를 30분 전부터 탑승이 가능했다. 기차가 출발하자 오징어 땅콩 있어요를 외치며 지나가던 지금은 잊혀진 풍경이 재현되고 시골아줌마들의 수다와 지친 아이들의 울음소리, 숨죽인 서양인 여행가족의 낯설은 속삼임과 시끌벅적한 중국인 무리의 알 수 없는 유쾌한 대화 속에 녹아들었다. 거친 진동 속에서 나는 현실감을 잃어갔다. 문득 고개를 드니 끊없이 이어질듯 계속된던 풍경 끝에 닌빈 역에 도착했다.

급히 예약한 숙소는 손님도 주인도 없었고 익스큐즈미를 수십번 외친 끝에 주인 할머니를 만났다. 오너를 불러 주겠다며 할머니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고 달려온 오너는 전혀 준비 안 된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에어컨을 켜고 방이 식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저녁을 해결하러 숙소를 너왔다. 주택가 골목을 잠시 걷다 들어선 선술집은 동네 청년들의 아지트로 보였지만 좋은 식당을 골라 찾아갈 만치 여력이 없어 그냥 들어섰다. 구글 번역기로 한바탕 법석을 한뒤 볶음면과 두부구이 그리고 볶음밥을 받고 베트남 와서 기본이 된 한 끼 한 맥주로 하루를 접었다.

 

2023년 4월 22일

긴 여정이 끝나는 닌빈의 하루를 즐기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새벽 6시에 숙소를 나와 그랩을 불러 항무아에 도착하고 날이 더워지기 전에 봉우리를 올랐다. 입장료 10만동에 의아했지만 입구에서 정상까지 가꾸고 다듬은 정성이 충분했고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항무아는 마땅히 대접받아야할 명소였다. 항무아는 차라리 사진 몇장으로 모든 언어를 대신할 수 있는 곳이었다. 표현할 말을 잃고 마냥 풍경속에 녹아들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이미 인간세계가 아니라 곧 신선이 학을 타고 나올법한 선계에 다름아니었다. 새벽부터 많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다양한 국적의 커플들이 함께 등산길에 동반했고 모든 인종이 공통의 진리를 찾아 순례의 길에 만난 도반같이 반갑고 정겨웠다.

하산뒤 간단한 요기를 하고 택시를 불러 짱안으로 달려갔다. 역시 명성대로 짱안은 인파로 북적였고 인당 25만동의 입장료를 요구했다. 또 한번 비싼 입장료에 입을 삐죽거렸지만 짱안 역시 명성과 입장료에 값하는 명소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수백대의 쪽배와 몰려오는 손님을 싣고 선착장을 떠나가는 무리진 배들이 연출하는 풍경이 가히 일품이었다. 힘차게 노를 저어 선계를 향해 달려가는 수십대의 쪽배가 그려내는 풍경 속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갔다.

30분 맛만보고 끝난줄 알았던 뱃놀이는 두시간 넘어 이어졌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몇개의 동굴을 지나고 적절히 쉬어가는 사원이 있어 지루하지 않게 두시간이 지났다. 모두가 하나의 풍경 속에 스며들어 각자의 생각에 골몰한 채 물위를 흘러갔다. 같은 풍광속에서 누구는 먹고 사는 문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또 누구는 지친 영육을 치유하고 있었고 또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구애 중이었고 또 누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꿈을 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짱안 뱃놀이가 끝나고 하노이행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3시간 반이나 남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닌빈시내의 명소 기린사를 향해 달려갔다. 갓 세운 호수위에 불교 조형물이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물가의 풍경 속에 자리한 까페가 마음에 들었다. 사원을 둘러보고 까페에 들러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커피향속에서 페북을 만지며 땀을 식히고 다시 힘을 내어 거리로 나왔다.

숙소를 들러 짐을 챙기고 역에 도착하니 우리가 거의 선발주자였다. 지인에게 톡을 보내 하노이서 만나 같이 저녁을 먹을 약속을 정하고 출국 시간과 한국 도착시간을 확인하고 인천에서 나주까지 교통편을 알아보고 예약하다보니 하노이행기차가 도착했다. 세상의 축소판같은 번잡한 하노이행 기차칸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베트남 여행의 느낌을 반추할 수 있게 해 줄 것만 같았다. 친근하고 즐거운 여정이 끝나고 하노이에서 만난 지인과 비싼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노이바이공항까지 환송을 받고 대합실에 들어섰다. 남은 시간 뼈속까지 베트남 여행의 느낌이 스며들길 기대하며 공항을 주유하며 남은 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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