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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6년 6월 4일 09시_13시

코스 : 외씨버선길 8코스중 춘양역-씨라리골 구간

참가인원 : 28명

이른 봄 강풍 덕택에 봄농번기가 길어진 탓일까,

예년 같으면 한시름 놓았을 계절이지만

아직 봉화 농민들은 바쁘기만 하다.

하지만 약속이기도 하고, 굳이 약속이 아니라고해도

농사일은 끝이없기에

평생 일만하다 죽을 마음이라면 몰라도

먼저 쉬고 보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옛 어르신들이 들으면 '이놈' 정신차리라고 난리가 날 일이지만

적어도 나는 일만하다 죽을 생각이 없다.

그래서 전지가위도 내려놓고

약대도 놓고 토요일 아침 집을 나섰다.

9시 집결 시간이 다가오자 춘양역전은

한사람 두사람 아는 얼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출발시간이 되고 보니

막 도착하겠다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29분!

한분이 가족만 내려놓고

도착지에서 다시 만나기로하고 볼일을 보러 떠나시는 바람에

28명의 농부가, 봉화사람이 그리고  낯선 도시민이 함께 길을 걸었다.

 

적어도 봉화농부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고개길 넘으면 마을을 열어주는 아름들이 느티나무가 있고,

늙고 뒤틀린 감나무가 대문을 지키는 몇채의 농가가 있다.

언덕길 돌면 산이 있고

비탈진 밭에 고추며 고구마며 호박이 자라는

내가 매일 일구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작업복에 경운기를 타고 만나는 산하와

등산화에 배낭을 매고 만나는 산하는

같지만 결코 같을 수가 없었다.

 

일로만 환산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신비함으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소소한 뭍 자연의 조각들 생명들이

친근한 눈길로 나를 맞이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역시 사람이다.

봉화에 사는 좋은 사람은 다 모였다고 하면

서운할 분들 많겠지만

오늘 하루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이 웃고 떠들고

물과 김밥을 나누던 28명의 동반자들은

모두 같은 깨달음을 구하는 도반이었고

같은 세상을 꿈꾸는 동지들이었다.

그래서 그냥 좋았다.

보다 풍성한 다음 길을 위한 간단한 평가조차도 사족이 되어버릴 만치

그냥 행복한 느낌 그대로 푹 젖어있을 수 있어 좋았다.

 

다음달 첫째 토요일

임기소수력발전소에서 명호까지

낙동강변길을 다시 걷는다.

꿈을 나누고 정을 나누고

무엇보다 느낌을 나눌 많은 분들이 같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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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째 봉화군 등 4개 시군이 공동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외씨버선길]의 봉화구간 스토리 자원조사 일을 하고있다. 건성으로 지나치거나 찾아갔던 춘양면의 88번 도로를 따라 길 양쪽으로 형성된 촌락을 중심으로 설화나 민화, 혹은 기타 문화예술자원 그리고 자연 경관 자원등을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외씨버선길 봉화구간만의 색을 찾기위해 고심하고 있다. 스토리 자원이 될만한 아이템의 단순 수집작업은 그럭저럭 진행하고 있는데 그렇게 수집된 아이템을 정리하고 선별하여 길의 테마를 드러내줄 수 있는 스토리로 묶어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그저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는 재미에 이 일을 맡긴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기에는 여러가지로 역부족인게 사실이다. 짧은 기간, 작은 보수 그리고 더 짧은 식견!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일은 이미 맡았고 하여튼 진행되고 있으니 그냥 쭈욱 나가는 수밖에...

그래도 이 일이 주는 즐거움은 많다.  무심히 지나치던 차창밖의 작은 풍경들속으로 직접 걸어들어가 뜨겁게 만나는 기쁨. 인근에 살면서도 삶의 체바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생각만 있고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기쁨, 또 존재의 아름다움과 삶의 깊이를 전해주는 찰나의 느낌들과의 해후...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까지 작업 진행과정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성과는 무엇보다 영화감독 김기덕의 고향마을을 알게되고, 그의 생가터를 찾아가 다시 한번 그의 영화를, 그리고 산골아이에서 국제적인 영화감독으로 입신한 한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본 것이 아닐까싶다.

사실 김기덕 감독의 생가터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처와 그의 영화에 대해 그리고 최근 뉴스에 전해진 그의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새로 개설될 걷기길의 스토리자원 발굴 작업 중에 만난 그 였기에 나의 사고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을 낳은 산골마을만의 특별한 감수성 체험'어쩌고 저쩌고 하는 프로그램이나 '한국의 가장 영화의 한 장면같은 길' 혹은 '가장 영화찍기 좋은 길' 뭐 그딴 망상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뭏튼 한달여전 김기덕 김독이 후배들에게 배반당해 폐인이 다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고, 그리고 그 몇일뒤 다시 그 뉴스가 순전히 오보라는 기사 역시도 보았다. 개인의 삶을 무책임하고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는 기자들의 천박함에  놀아나고 싶지 않아서 가볍게 무시해 버린 기사였지만 김기덕의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계시고, 돌아가신 김기덕 감독의 부친과 친구되신다는 박세윤(84세) 할아버지가 그의 근황을 물어 올 때는 괜히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덕이 요즘도 영화찍나, 우째 지내는고? 참 대단한 상도 많이 탓제.... 뭐가카더라 그...'라고 말씀하실 때는 나도 모르게 '뭐 국제적인 영화상을 다안 받았니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이니더. 요즘도 열심히 영화 찍지예.' 라고 김기덕 감독을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기라도한 것처럼, 그의 삶을 두둔하고 지켜줘야한다는 듯이 대답하고 말았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 대부분을 본 처와 거의 보지 않은 나의 대화는 진전될 수 없었지만 마초적 감성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대한 통찰력과 미적 깊이가 있어 매력적인 영화감독이라는 처의 평에 머리를 끄덕거리며 다시 그의 영화를 보도록 하겠다고 마음먹어 보기도 하고, 그의 영화가 진실을 직시케 함으로써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여  높은 예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하는 면도 그렇고 학벌도 돈도 따라서 인맥도 없이 예술적 열정 하나로 영화감독으로서 최고의 반열에 오른 그의 삶이 가진 굴곡이 어쩌면 비빌 구석이라곤 한군데도 없이 우리 사회의 병폐의 근원이 되는 모든 금기들을 건드렸던  고 노무현대통령의 삶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나누면서 하루의 과업을 마무리 했다.

2004년 고향을 방문해 송이축제장에서 펜 싸인회도 하고 고향후배를 위한 강연도 했었다는 그는 몇몇 고향 분들에게 '자신'을 고향을 위해서라면 이용해도 좋다고 까지 말씀하셨다고하는데 그를 맞은 봉화는 그의 크기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도로변의 쌈지 공원을 '김기덕공원'으로 만들자던 젊은 지역 일꾼의 제안 마저 지역사회가 무시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걸 보면 참 씁쓸하기조차 하다.  
 
오직 그의 앞날에 큰 예술적 성취가 있기를 그리고 불온한 세상의 섭리에 맞서 그만의 멋진 세계를 구축해 내고 그러면서도 내내 행복한 한 개인의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기를 빈다. 

* 김기덕 감독의 고향집터를 알려주고 약도까지 그려주신 춘양목송이마을 곽진희 관리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김기덕 감독이 태어나고 초등학교까지 다녔던 봉화군 춘먕면 서벽리 마을 입구

김기덕 감독의 생가터를 가르켜주는 박세윤 할아버지.
 

김기덕 감독의 고향집은 헐리고 그 터는 사과나무가 심겨져있다.

김기덕 감독의 부친과 친구였다는 박세윤 할아버지와 기념사진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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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 봉화구간-만산고택에서 도심리까지 : 1차 답사

'걷기 길'이 붐이다. 그러다 보니 봉화군에서도 여러구간이 만들어졌거나 준비 중에 있고 그중 하나가 '외씨버선길'이다. '외씨버선길'은 청송군, 영양군, 봉화군, 그리고 영월군이 지자체 연합사업의 하나로 추진중인데, 일부 사업이 진척되어 올 3월이면 몇몇 부분 구간이 문을 연다고 한다. 이 4개 시군에 걸쳐있는 이길의 이름 [외씨버선길]은 조지훈의 시 '승무'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길의 구간에는 김주영, 이문열 등 여러 문학적 자원이 산재해 있고, 특히 이 길의 이름을 만들게 된 데는 조지훈의 고향이 영양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씨버선은 오이씨같이 날렵한 선의 아름다움을 지닌 버선을 말하는데, 외씨버선의 아름다움과 걷기길의 테마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일단 '4색 루트 외씨버선길'이라는 좀더 의미가 확대된 명칭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4색은 4개군을 칭하기도 하고 문학적 '思索'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저런 인연으로 외씨버선길 봉화구간의 하나인 만산고택~도심리 17km 구간의 스토리자원조사 용역을 대행하게 되었다. 농한기에 밥벌이 겸, 그렇지 않아도 운동삼아 나름대로 '마을길 걷기'를 간간히 진행해 오고 있는 터에 고마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게 되었다. 사전 협의와 '계획서' 작성을 마치고 지난 1월 8일 이번에 조사를 맡게된 구간의 출발점인 [만산고택]에 관계자 분과 자리를 가졌다. 봉화문화원 강연선 사무국장님, 만산고택의 강백기 선생님과 함께 이번 외씨버선길 문화자원 조사에 대한 취지를 나누고 몇가지 실무적인 일을 논의한뒤 길을 나섰다.

내가 맡은 일은 1월 한달 동안 춘양읍에서 도심리를 잇는 17km구간에 산재해 있는 스토리자원 조사가 전부다. 구간의 조정이나, 테마 선정 같은 것은 [외씨버선길]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전문가집단으로 구성된 사업단에서 수행해야 할 일이고, 나의 과업은 단지 길의 테마, 길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다양한 스토리 자원에 대한 수집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참 쉽고 간단한 일인것 같다. 우선은 500만원의 예산으로 3명의 인력이 한달간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를 수행하는 것만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사실 스토리 자원을 조사하는데 있어, 보다 더 큰틀인 [4색 루트 외씨버선길]의 주 테마와 4개시군 구간 각각의 테마-색이 어떻게 사전 논의되고 모색되었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기 때문에 작업과정이 참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했ㄷ. 하지만, 그 구간 내에 모을 수 있는 스토리 자원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모으는 방법밖에는 없는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날 걸음은 앞으로 진행될 조사에 앞서 길전체의 '색'을 먼저 느껴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세부적 자원조사는 앞으로 계속 걷는 과정에서 수행되어야하고 우선은 이 길의 '느낌', 이길의 '가치', 이 길의 '정신'이 무엇일까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산고택을 나와 의양리의 태고정, 낙청당, 권진사댁을 둘러보고 춘양중학교 교정에 있는 서동리3층석탑, 서원촌 등을 거쳐 산길을 통해 새터로 가는 방법과 운곡천을 따라 나있는 88번지방도를 따라 걷는 방법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일단 운곡천을 따라 걷는 길을 택했다. 운곡천을 따라 농로를 걷기도하고, 농로가 끊어지면 다시 도로로 나와 걷기도 하면서 일행들과 길의 느낌을 나누기도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새 구간의 중간지점인 애당리의 '봉화도예연구소'에 도착한 것이 오후 2시. 도예연구소의 반현호 소장님의 환대를 받고 국화차를 나누다보니 짧은 해가 운곡천 계곡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백두대간 넘어 기울기 시작하고, 더 이상 진행하기에는 혹독한 추위에 이날 과업은 그 지점에서 마치기로 했다. 도예연구소에서 작업중인 봉화 바래미마을 김종구 선배를 만나 차를 얻어타고 만산고택으로 돌아와 이 날 일과를 마무리했다.

이날 걸은 길은 총 9km로 이전에 도로를 차로 달리기만 했던 구간이다. 서벽리에 있는 [춘양목 송이 정보화마을' 관계자인 고마운 분들과의 인연 덕분에 몇년 전부터 일년에 몇번씩은 차로 다녀왔던 길이기 때문에 길을 걸어 나서기전에 사실 일정한 부정적 선입견이 있었다. 이 구간이 걷기길로서 적합할까, 뭐가 볼만한 게 있고, 무슨 문화자원이 얼마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차로 달리기만 하던 길을 처음 걸어보면서 그런 나의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걷기를 통해  길의 '느낌'을 새롭게 얻는 기쁨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은 무시했던 사람한테서 새로운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되고 진정한 친구가  되는 기쁨같은 것과 같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수산과 각화산 자락들이 어우려져 이루는 계곡을 따라 운곡천이 흐르고, 그 천을 따라 형성된 농지와 마을 그리고 길을 따라 멀리 태백산 준령을 바라다 보면서 걷는 기쁨은 참으로 컸다. 간간히 전해주는 강백기 선생님의 역사문화적 지식과 강영선선생님의 길에 임하는 지혜는 이날 그 길을 걷는 기쁨을 더욱 깊게 했다.   

* 동행자 : 4명
* 11시 만산고택 출발, 오후 2시 애당리 '봉화도예연구소'도착 
* 총  9km / 소요시간  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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