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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경제의 가치를 지역문화가 주도하자.

- '경제'를 극복한, '경제'를 압도하는 문화가 꽃피는 지역사회를 꿈꾼다 -

지역 문제의 근원은 '빈곤'일까? 절대적 빈곤의 문제가 '상대적 빈곤'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 빈곤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지역의 문제를 경제적 소외, 경제적 박탈감이 중심이고, 문화적 소외나 교육, 의료의 결핍은 경제적 소외의 결과물로만 이해해도 좋을까? 지역 문제를 지역경제 활성화의 문제로 환원하고, 지역 문화를 지역 경제 활성화의 보조수단 쯤으로 바라다보아도 좋을까? 지역의 정치인은 중앙정부의 보조금을 얼마나 가져올 수 있는가에 따라 정치적 운명을 달리해야하고, 지역주민은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언제라도 떠나도 좋은 곳으로 지역사회를 바라다본다. 이런 경제 일원론의 시대에 지역이란 무엇이며, 지역문화는 어떤 가치에 토대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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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홍대 앞 서교지하보도에서 지역주민과 인디문화 아티스트들이 인디문화 활성화 및 지역문화 공간의 대안 "서교지하보도 매립"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외부인이 바라보는 ‘지역’과 지역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지역민에게 이해되는 ‘지역’은 다르다. 외부인에게 ‘지역’은 과거를 추억하는 장소이거나,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과정에서 경쟁력을 잃고 밀려난 성장의 주변부, 시대의 잔존물로 연민의 대상이거나 질주하는 한국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거추장스런 걸림돌일지도 모른다.
 
지역민에게는 삶의 터전인 ‘지역’이 외부인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지역사회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이 일자리를 따라 잠깐 머물게 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지역’과, 누대에 걸쳐 살면서 조상의 묘와 그 흔적을 고스란히 보전하며 살아가는 터줏대감이 느끼는 고향으로서의 ‘지역’의 의미는 하늘과 땅차이일 것이다.
 
지역을 단순히 지리적 경계로 받아들인다면 그 경계는 불확실하다. 지역은 지리적 경계를 바탕으로 하지만, 또한 지리적 경계를 넘는 문화적 정체성에 토대한다. 하지만 그 문화적 정체성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난제는 문제의 근원을 모두 경제로 돌림으로서 실종되어 버렸다. 근원적 사고가 사라진 자리에는 천박한 물질주의가 자란다.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지역문화와 문화관련 사업이 논의되고 추진되는 현실은, 삶이 없는 문화와 문화 없는 문화상품화를 초래했다. 문화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지역문화를 일구는 전부가 되고, 문화예산은 건설토목예산의 경계에서 그 특성을 잃어버린다.  
   
지역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와 같은 경제 환원주의다. 경제일원론으로 바라다본 한국 사회 문제의 해법은, 오직 경제성장, 결국 성장제일주의이다. 그것이 교육의 장에서는 성적 지상주의, 학벌주의가 팽배하고, 권력과 돈의 독식구조가 안착되면서 개인의 삶은 질곡에 빠지고 소시민적 행복조차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개인의 삶을 이끄는 가치나 덕목은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돈과 돈을 위한 지위를 추구하는 현상이 차지했다. 돈으로 가늠되는 ‘성공’이라는 결과는 모든 비도덕적, 반사회적 과정을 정당화한다. 이 모든 현상을 경쟁사회의 당연한 귀결로, 성장통의 부수적 문제로 치부하는 순간 ‘위대한 서울민국’이 탄생했다. 사람과 돈, 권력의 서울 집중은 세종시 논란에서 보이듯 이미 고착화 단계에 들어갔다. 지역의 균형발전이란 화두는 서울, 경기의 지가하락과 이에 따른 경기하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이 문제의 이해당사자라고 간주되는 이 지역에 사는 인구가 국민의 절반을 넘는 상황에서 합리적 토론과 합의를 통한 세종시의 존속과 지역 균형발전은 불가능하다.
 
비나리마을에서 가진 소외지역 어린이를 위한 거리 연극 공연을 마친 뒤 뒤풀이 자리에서 볼리비아의 연극인은 물었다.
"이 아이들이 소외계층인가요?"
가난한 볼리비아 연극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두메산골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누린다. 사실 한국은 세계 수위의 경제대국이고, 1인당 국민소득 면에서도 구미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유국가다. 몇 번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비록 많은 개인의 삶이 파탄 나고 단란한 가정이 파괴되었지만, 이를 잘 극복해서 모범적으로 성장의 도정에 북귀했다. 언론은 그런 경제지표상의 성과를 대서특필하고, 지표상의 경제 성과와 괴리된 개인의 힘겹고 불안한 삶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화려한 경제지표 뒤에서 국민 대다수는 경제적 결핍에 허덕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 모든 현실은 경제가 나아진다고, 국민소득이 3만 불 시대에 도달한다고 해결된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부의 불균등을 해소하고, 복지정책을 강화함으로써 문제의 많은 부분이 해결되겠지만, 경제가 모든 가치, 모든 삶의 지향들을 몰아내어 생긴 상처의 치유는 경제로부터 삶의 자율성을 확보함으로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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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의 지배로부터 다양한 가치를 지키는 문화는 지역사회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지역은 경제적으로, 중앙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공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제라는 단일가치의 지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싹이 자라는 땅이다. “지역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1)이다.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만들어가는 것은 획일화된 경제만능주의의 지배구조를 밝히는 과정이고, 경제만능주의가 낳은 국토의 기형적 발전으로 추락한 지역과 마주하는 작업이다. 지역의 위상과 마주하는 순간 지역의 정체성은 반 지배, 반 경제, 반중앙의 인식위에서 세워질 대안문화, 대안가치에 자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역의 정체성은 지역 자치, 지역문화자치로 꽃피고, 탈 경제의 가치를 지역문화로 확산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역문화란 지역에서 사는 일이며 지역민의 일상 속에서 만들어 가는 일"2)이다. 지역 문화는 정치적 구호가 대신할 수도 깃발 몇 개를 세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한 삶의 과정에서 파생한 가치와 지역민의 삶이 뒤엉킨 그 언저리 어디쯤에서 꽃피는 것이 바로 문화일 뿐이다. 그래서 문화운동은 정치운동과는 등치될 수 없는 고유영역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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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역문화 만들기는 지역 만들기가 기초이며, 지역 만들기는 사람 만들기가 필수조건이다.3) 결국 사람 사는 마을 만들기가 지역문화 만들기의 기본인 것이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주민의 삶과 문화를 일치시키고 가치와 문화를 융합시키는 작업, 공동체의 정체성을 세우고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 공동체의 역사를 기록하고 공동체의 문화를 복원 혹은 새롭게 창조하는 일, 마을의 존재 가치를 확산하는 도농 간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것 등, 세계의 중심이 지역공동체, 나아가 마을에 있음을 확실히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와 같은 작업을 통해 지역이 사람 사는 공간, 삶과 문화, 역사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거듭난다면 탈 경제의 새로운 가치를 탐색하고 실험하고 실현하는 기반으로서의 마을 공동체가 새 시대를 이끌 가치의 생산기지이자 전파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은 지역을 죽였지만, 지역은 서울을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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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동규 등 저,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가는 지역창조』, 다움, p. 4.
 2) 정찬용, 천승룡, 문충선 공저,『송산마을 속으로 들어가다』, 희망제작소, p.5.
 3) 위의 책, p.5, p.141.

송성일 | 2009-11-25  경북 북부권 문화정보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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