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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뒤 쉬 펼치지 못했다.

바쁜 캠프 활동이 틈을 주지 않았기도 했지만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써 내려간 그의 글을 마주하기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랜전 기억을 소환했다.

함께 연루되었던 사건의 뒷정리를 위해

나의 상도동 단칸 신혼집에서 다른 동지들과 회합을 하고

골목길 너머로 사라지던 그의 뒷모습을 배웅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의 이름이 언론에 회자되고

그의 근황이 지인의 입을 통해 가끔 전해졌지만

지난간 시절 추억을 부러운 마음으로 떠 올렸을 뿐

우리는 아무 연락도 없이 오랜 세월

너무나 다른 각자의 삶을 살았다.

 

그가 청와대 수석이 되고 장관이 되었을 때는

유능한 일꾼으로 사법개혁의 임무를 완수하기를 고대했고

검찰마피아의 집중공격으로 온가족이 만신창이 되었을 때조차

그의 몫을 스스로 감당하고 언젠가 다시 일어설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민주시민의 한사람으로 서초동 촛불집회를 참가했고 멀리서 응원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얼마전 조선일보가 그의 딸의 실루엣을

성매매사건 기사에 갖다붙여

그와 가족을 능욕했다는 기사를 보고

같이 딸키우는 아빠의 마음에

그가 감당해야할 몫이 지나쳐 그를 삼켜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불길하고 절박한 마음에

힘내라는, 그리고 응원한다는 한마디 인사를 겨우 전한뒤

밀쳐 둔 [조국의 시간]을 펼쳐 들었다.

 

[조국의 시간]은 두명의 필자가 있다.

한명은 멸문지화를 당한 통한의 가장이다.

또 한명은 흔들림없이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는 냉철한 구도자다.

그래서 [조국의 시간]

통한의 울분을 담고 있으면서도 사실을 직시하고 평가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냉철함을 담고 있다.

 

[조국의 시간]은 문재인 정부아래 일어난

검찰쿠테타에 관한 보고서다.

수괴 윤석열과 그의 일당이 어떻게 조국을 매개로

검찰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음모를 획책하고

반란을 실행했는지 전 과정을 담고 있다.

 

[조국의 시간]은 과잉사법이 어떻게 한 인간을 무너뜨리고

어떻게 한 인간을 위선자로 상징화하고

어떻게 한 집안 전체를 파멸로 몰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반인륜적 사법과잉사례에 대한 보고서다,

 

[조국의 시간]은 검찰정치를 통해

어떻게 사법엘리트 독재가 실현되는지 보여주는

브라질 룰라의 경우와 비견되는

검찰 사법 스텔스 쿠테타보고서다.

 

그에 대한, 그리고 검찰의 시간에 대한 두 축의 평가가 있다.

진보적 인사의 입을 통한 도덕주의적 비판이 한축이다.

필자는 스스로 진보적 지식인으로 했던 말과 주장이 삶에서는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고

혜택받은 계층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서 또 혜택받은 계층에 속해있고

불평등의 문제나 부의 세습 문제에 둔감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강남좌파의 한계와 위선적 삶을 반성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듯 근대 형법의 최대 성과는 법과 도덕의 분리.

나는 설사 그가 받는 혐의가 모두 진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그에 대한 과잉처벌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그가 비난받는 강남좌파의 위선

좌파가 되고 싶은 강남의 열망으로 받아들인다.

세상 누구도 조국에게 성인군자가되라거나,

도덕적 완결을 요구할 수 없다.

도덕원리주의가 거악을 불러들이는 대한민국 정치판의 이상한 섭리에 나는 반대한다.

 

또 다른 한축으로 그가 수행한 검찰개혁의 적절성에 대한 입장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다.

 

나는 내내 [조국의 시간]을 읽으며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을 떠올렸다.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고도 남들보기엔 비루한 묵숨을 유지하지만

끝내 울분을 삼키고 역사적 과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마천의 결기가 그에게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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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라고, 참으면 복이온다고, 그리고 너가 가진 분노의 거의 대부분은 너 자신이 못난까닭에 생겨난 극히 사적인 정서적 장애의 산물이라고 우리는 세뇌되어왔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모든 사회악의 근원인 삼성이라는 재벌이 우리 사회의 모든 부를 독식해 들어가고, 물질적 부를 넘어 우리의 정신세계마저 잠식해 윤리와 가치의 측도마저 그들의 손에 움켜지는 꼴을 보고도 강건너 불구경하듯하고, 법정의가 아니라 검찰마피아집단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이중 삼중의 잣대로 조자룡이 헌칼쓰듯 국민을 향해 마음대로 사법권을 휘두르는 꼴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른다.

되돌아보면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초등학교시절부터 우리는 복종하는 법만 배웠고, '학교가서 선생님 말씀 잘들어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세뇌되어 왔다. 숙제를 안해서, 청소를 못해서, 지각을 해서 그것도 아니면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손바닥을 맞고, 빰을 맞고, 간혹가다간 발길질에 차이면서까지 우리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군대라는 조직속에서 부정과 불의, 그리고 폭력과 야만에 순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길러졌다.

그렇게 공적으로 분노할줄 모르게 길들여진 우리는 분노를 오직 사적인 관계에 국한 해서 폭발시켜왔다. 권위적이고 관료화된 정부를 향해서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동사무소 창구의 말단 직원을 향해 폭언을 하고,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속수무책 당하면서도 미어터지는 지하철 구내에서 가방을 치고 지나가는 어린학생에게 분개한다. 부조리한 세상의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짓눌려 살면서도 내면에 샇여가는 분노를 미쳐 스스로 확인하고 표출하지 못한채 엉뚱한 사적 공간에서 불현듯 터져나오는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맨날 사고를 치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이자 정치가인 스테판 에셀은 세상을 향해 외친다. "분노하라!"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인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프랑스에도 분노할 일이 아직 남아 있는가보네?"라고 중얼거리며!

필자 스테판 에셀은 레지스탕스활동 과정에서 수립하고 국민적 동의를 획득한 프랑스사회가 추구해나갈 미래상과 가치가 금력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되어 왜곡되고, 국제 정치가 아직 정의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고 있진 않은 현실에 대해 분노할 것을 청년들에게 독려하고 비폭력 봉기에 나설 것을 선동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만 이 책이 200만부이상 팔렸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프랑스는 이 책이 불필요한 사회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분노하라]를 구입한 사람들은 이미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런 부정의에 대한 저항에 나설 것을 동의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프랑스는 대독전쟁이 종결되자 바로 민족반역자를 단호히 처단하고, 레지스탕스활동 성과를 토대로 국가지표를 수립한 나라가 아닌가. 그에 반해 대한민국은 친일반역자에 의해 오히려 독립운동가가 처단되고 오직 그들의 영속적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국가의 정체성이 수립되고 국가의 미래상이 논의되어 온 나라다. 그래서 이 책 [분노하라]는 바로 한국 사회를 위한 책이다.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이 땅의 청년들이 우리사회에 충만한 좌절과 고통, 분노의 진원을 되돌아보고 사적 분노를 넘어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고 정의로운 봉기에 나설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마련하길 빈다.

이 땅의 청년들은 취업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등록금 하나만은 '선진화'된 대한민국의 대학에 분노해야한다. 이 땅의 교육자는 사회적 낙오자를 양산하고, 인간성마저 파괴하면서도 오직 경쟁제일주의 성적 제일주의로 일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에 정면으로 맞서 저항해야한다. 어디 그 뿐인가. 이땅엔 왜 그리 분노할 일이 많은지... 소수의 재벌 집안이 국부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세습하는 현실, 국민적 동의없이 국토를 도륙내는 사대강죽이기사업이 버젓이 진행되는 현실, 언론 지식인이 보편적 이익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언론마피아의 조직보호를 위해 부역하는 현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복지 정책 요구가 '거지건성'으로 비하되는 현실... 우리는 모든 부조리에 분노한다.

이 시간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은 전국에서 모인 희망버스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 희망버스는 정당한 분노를 통해 희망을 만든다. 버스가득 분노가 넘치지만 분노버스가 아니라 희망버스인 이유는 그 분노가 정당하고 정의롭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테판에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가 쓴 수십쪽에 불과한 이 글이 뭐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글은 그가 살아온 삶의 진실성에서 우러난 '진실'을 담고 있기때문에 감동을 준다. 이 땅의 대학생들의 손에 이 책 한권씩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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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2011년 발행, 21세기북스)를 읽고

요즘 조국 교수가 인기가 많다.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으면서 거기다가 '개념'까지 있는 인물이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 하여튼 섹시한 진보 인사의 한명인 조국은 그 뛰어난 상품성으로 인해 앞으로도 한참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의 한마디 한 동작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표적이 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이번 붐은 조국이 낸 [진보집권플랜]과 바로 이 책 [조국,대한민국에 고한다]가 촉발한 듯하지만 그보다는 이명박의 폭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세력화 되고 있지 못한 무능한 진보세력의 현 정치구도에서 대중의 열망이 만들어 낸 측면이 많아보인다. 다시 말해 조국에 대한 인기는 일정정도 대중들이 선호하는 인물, 학벌, 개인적 자질 등등에 기반하고 있는게 사실 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현 정치적 지형이 대안적 진보, 다시말해 '성찰하는 진보' 인사를 요청하고 있기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해 혹은 오해를 가지고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를 읽고나서 솔직히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다. 은연중에 나는 그의 책을 통해 무슨 대단한 신체제에 대한 마스터 플랜이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미래상을 제시하고 그를 구현하기위한 정교한 로드맵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벌써 25년은 된 것 같은데 지금은 까마득히 잊혀졌지만 '사회구성체 논쟁'류의 책이나 당시의 이런저런 정치서적을 통해 늘 단언적이고 명료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교시'를 제공받았던 기억이 난다. 적은 분명하고 적을 물리치고 새롭게 건설될 사회상은 명료했다. 다시 말해 그 시대에는 모든 정치 서적이 사회 변혁의 '전략과 전술'을 담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사실 그와같은 실천이론의 한계가 진보세력의 답보상태를 지속시키는데 일정정도 기여한 측면이 있고, 여하한 이유에서건 정체된 진보의 이론, 조직, 실천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조국이 말하는 성찰하는 진보의 요구로 나타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때 그 청년들은 세월을 겪고 현실은 훨씬 더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와같은 입장에서 조국은 명료한 시대규정과 체제분석, 그리고 전략 전술을 내어놓지 않고 훨씬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사회의 진보, 우리사회의 진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 진보적 상식 혹은 합리적 상식을 각각의 세력 혹은 분야를 향해 직언한다.

먼저 조국은 MB가 이상사회의 모델로 삼고 있는 두바이와 싱가포르의 허상을 지적함으로써 현정부의 국정철학의 부재 혹은 그 시대적 낙후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어서 한국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을 향해 쓴소리를 내어 놓는다. 그의 발언은 시민의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반성을 요청하기도하고 법률가의 눈에 비친 부정의한 법현실을 질타하고 올바른 법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의 한사람으로 나는 그의 자본에 대한 고언에 이 책의 핵심이 놓여있여야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에 대한 규정, 체제모색적 이해없이 현 시대는 극복될 수 없음을 필자 역시 인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 부분 역시 충분하지 않은 내용때문에 적잖은 실망을 느꼈다.

사실 이책은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거나, 정치적 입장을 정리해 놓은 글이 아니다. 좀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단속적으로 언론에 게제한 것을 모아놓은 이 책은 참 쉽게 읽힌다. 하지만 책을 덮고 전체를 아우르는 이해를 도모하기엔 좀 어려움이 따른다. 부분은 다 공감하고 수용하면서도 책을 덮고 그려보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세상의 상은 그렇게 투명하게 다가오질 않기때문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필자 조국의 다음 저술은, 물론 극단적인 나 개인적 기대에 불과하지만. 좀더 확실한 우리사회의 비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글로 채워졌으면 한다.

물론 독자의 한사람이 갖는 주제넘는 기대와는 별도로 이책은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공이 인정하는 가치 기반을 높이는 작업에 일정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보수와 진보의 대결을 훨씬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야하며, 정정당당한 이념적, 정책적 대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한 룰의 만들고 그 수준을 높이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의 보수세력은 합리적 보수세력에 기생하는 극우 파시스트세력을 스스로 떨쳐내가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진보 개혁은 시대정신을 읽고 대중의 열망을 반영하는 진보적 정책, 대안 체제의 발굴에 보다 유능해져야할 것이다.

조국같은 분이 그와같은 상식의 전도사로,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매개하고, 진보적 가치에 대한 합당한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는 공정한 경쟁을 도모하는 거간꾼으로 나선것에 경의를 표한다. 이 책 한권이 그와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데 얼마만한 효과를 발휘하게 될런지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사회의 정치적 상식의 격을 높이는데에 일정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아뭏튼 필자 조국이 건강한 좌파지식인, 한국의 노옴 촘스키로 지속적으로 활동해 나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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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10년만에 민주개혁세력이 보수우파의 극력한 저항과 진보세력의 협공속에 몰락하고 박정희를 닮은 짝퉁 개발독재자 MB가 대통령이 된지 3년이 흘렀다. 그동안 진보좌파세력과 합리적 중도보수에 가까운 민주개혁세력은 상상도 할수 없었던 우리사회의 정치적 퇴행을 목도하면서 한편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한편으로는 시대적 과제를 읽고 그 과제를 수행할 세력을 묶는 연대의 정치를 갈망해왔다. 지난 6.2지방선거의 실험적 연대는 새로운 정치적 지평을 열 가능성을 확인하는 장이 되었고, 일부 세력들 간에 보다 심화된 실질적 연대의 틀을 모색하게 만들었다. 

그 즈음에 이 책 [진보집권플랜]이 나왔다. 부재가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인 이 책은 인터넷 진보언론의 신화를 창조한 오연호가 우리시대 진보적 지식인의 대명사가 된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를 여러 달에 걸쳐 만나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진보세력이 다시 집권을 할수 있을까라는 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아젠다를 놓고 대담을 나눈 결과물이다. 진보세력의 집권플랜을 논하는 책이다고 해서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사실 [진보집권플랜]은 의외로 가벼운 책이다. 사전 질문지를 제시하고 심도깊은 이론적 입장을 정리해서 답변하는 식의 대담이 아니라 오다가다 시간나는 데로 가볍게 까페에서 커피 한잔을 나누며 담소를 즐기며 조국이 가진 평상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저자 오연호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은 정밀한 이론적 논쟁이 아니라 진보세력의 집권을 위한 대중적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는 것을 출판의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덧붙여 필자는 진보교수 조국을 통해 진보세력의 집권전략을 공론화하는 것과 더불어 조국 교수 개인의 정치적 무게를 달아보고 현실 정치의 장에 론칭해 보는 것을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독자의 한 사람으로 필자의 집필 목적이 얼마나 달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선은 이 책이 진보개혁세력간의 연대없이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다 넓게 인식시켜나가는데 일정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담의 내용 대부분은 한국내 진보세력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그리고 공감하지 않는다면 같이할 수 없을 정도의 기본적인 공통의 인식 토대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진보세력은 정치적 인물의 풀이 협소한 것으로 알려져있고, 그나마도 정치의 영역과 시민사회운동의 영역이 나누어져 일정정도 서로 금기시하는 풍토에서 '정치적 인물'의 선택지를 늘이고 미리미리 키워나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한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책임에 분명해 보인다 .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담의 과정이 소위 '강남좌파'간의 공감대와  우애를 넘어 시대적 과제를 중심으로한 보편적 시대의식 같은 것을 찾아보고, 그것을 진보세력 사이에 연대를 위한 공통된 기반으로 제시하는 과정 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의 시대적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진보담론은 공허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 책이 진보 세력의 집권전략을 창출하기 위한 논의를 공론화하는 이상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점이다. 다시말해 이 책은 희망사항을 설파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플랜'이 없다. 또한 조국 교수가 아니라 정치인 조국을 드러내기위한 필자의 노력이 조금은 부족해보인다. 필자 개인의 정서적 공감대를 넘어 '정치인 조국'의 상품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전 서울대 총장 출신의 몇몇 정치인의 경우 오랫동안 뜸을 들이며 입질이나 하는 기회주의적인 처신끝에 정치의 장에서 퇴출되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그들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아온 조국교수는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과정도 그들과는 분명다를 것이라 생각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차별성을 갖는 지성인, 그리고 진보적 지도자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한다면... '식의 구태연한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이 국면을 치고 나가는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지도자 조국'을 보고싶다.

그리고 진보집권플랜이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분들에게 이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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