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일본재발견>의 저자 이우광은 삼성경제 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본연구팀장이다. 저자는 인본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일본에 대해 더 알고싶은 것들 대부분에 대해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분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한 블로거의 리뷰를 보고 책의 구입을 결정했다.

내가 가진 일본과의 인연은 4일간의 짧은 여행 한번과 와이프의 일본인 친구 두분의 이틀간의 우리집 체류, 그리고 몇편의 소설과 만화영화로 만난 것이 전부다. 사실 일본은 올해초 큐슈의 농촌마을사업에 대한 연수를 다녀오게 되면서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된 나라다. 그전에는 일본에 대해 거의 무관심했다. 일본은 나에게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양 착각속에 방치된 나라였다. 그런 일본이 한번의 여행을 계기로 갑자기 나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짧은 여행으로 받은  일본에 대한 인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일본은 친절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이 있는 깨끗한 나라' 였다. 이후 일본은 지속적인 나의 관심국가가 되었고, 올 가을이면 두번째 일본여행도 떠나볼 계획이다. 
   

이 책 <일본재발견>은 일본의 문화, 일본인의 삶 전반을 다루고 있는 일본 안내서는 아니다. 전문 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인 필자가 보다 대중적인 필치로 일본경제, 나아가 경제적 측면의 일본문화와 일본 사회에대한 나름의 이해를 피력한 책일  뿐이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항상 '경제'적 라이블로서  먼저 다가오고, 다음으로 우리 자신의 문화적 거울이랄까, 우리를 들여다보고 비교해보고 분석해 보는데 준거가 되는 나라로 받아들여지는 성격이 강하다. 다시말해 일본은 한국인의 의식속에서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 비교대상, 경쟁대상인 것이다. 거기다가 일본과 한국은  이십세기초 수십년에 걸쳐 병탄이라는 특수한 악연이 있는 관계로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고, 공평무사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운 역사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대한 판단은 항상 과소와 과대의 양극단에서 표출된다. 따라서 필자는 과소평가와 과대평가사이에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일본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고자 한다. 물론 경제, 경영적 관점에서 바라다본 일본이라는 한계와 특징을 동시에 드러내지만 필자는 한국인의 의식속에 굴절된 일본의 상을 바로잡고자 시도한다. 물론 그 시도는 일정정도 성공하고 또 일정정도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장으로 구성된 이책의 첫장은 일본의 사회 문화적 트랜드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다. 이미 유행어가 되어버린 '오타쿠'나 '더블싱글', '하류', '초식남', '미니멀 라이프' 등에 대한 소개와 분석을 통해 현재 일본이 처해있는 객관적인 문화적, 정신적 상황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필자는 이들 유행어를 통해 일본의 현상황에 대한 이해의 문을 열고 곧장 일본의 경제를 파고 든다. 이책의 나머지 4개 장은 모두 경제를 주제로 한다. 이들 4개의 장은 '일본의 CEO', '일본의 경쟁력', '경제전략', '국가 시스템'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그와같은 주제를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막연한 경쟁의식을 기반으로 서술하고 있다. '어떻게 일본으로 부터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회피하여 일본을 이길 것인가?'가 이 책을 집필한 필자의 유일한 관심사로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일본은 일본전문가에게조차 객관적 대상일수가 없었나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아니라 하나의 나라로 일본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일본과 한국은 좋은 이웃이자 협력상대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책의 내용은 일본의 경제를 근간으로 하지만  경제 지표를 통계수치로 제시하고, 분석적으로 들여다보는 난해한 작업을 담고 있지 않다. 이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다. 다시말해 이 책은 경제를 통해 일본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화화된 경제를 소제로 삼고있어 경제 문외한이자 일본 초보자인 나같은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다. 그런데 쉽고 가벼운 책의 한계인지 '삼성경제연구소적 편향' 때문인지 모르지만 필자의 일본 이해에 나타나는 몇가지 편향이 눈에 거슬린다. 먼저 '경쟁'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입장은 경제나 기업을 모르는 나같은 독자가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모험을 시도하지 않고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현상유지적인 조화를 도모하는 입장'을 나타내는 '요코나라비의식'에 대한 비판이  현 자본주의 사회의 보상체계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미국식 CEO제도에 대한 선망으로 귀결되는 것이 바로 그와같은 필자의 인식의 한계를 나타낸다. 다시말해  "일본 CEO는 미국같은 충분한 보상이 없어 현상유지적이고 모혐을 회피한다'는 필자의 견해는 공감할 수 없다. 필자의  경쟁력 절대주의는 위험하다.  삼성이 재산과 경영권의 세습에 골몰하고, 노조에 대한 원시적 탄압을 자행하면서도 나름의 경쟁력'은 가질 수 있다면, 높은 경쟁력 하나로 모든 악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일본 경제의 비효율성이 삼성이 임원에 대한 성공보수를 수십억씩 주는 그런 제도와 문화가 없어서라면 차라리 비효율이 더 낮지않을까? 기업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한 임원의 성공보수 수십억은 노조를 탄압하고 탈법을 자행하는 비 윤리적 기업관행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경쟁력절대주의' 사고의 한계는 쉽게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경제의 사회성, 경제의 정치성에 대한 고려없이 너무 경쟁에만 매몰되어 있다. 노예제도가 '경쟁력'이 있다고 정당화되고 다시 도입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JAL의 부도, 토요타자동차의 위기, 소니의 정체 등을 바로 이해하고 이를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화두인  '잃어버린 10년'으로 나타나는  일본사회전반의 위기를 이해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적, 논리적 연관성에 대한 일목요연한 이해는 제공되고 있지 않다. 각각의 사실이 나열되어 있을 뿐 경제에 투영된 일본의 전체상을 제시하는데 이 책은 성공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책을 덮으면서도 나 스스로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와같은 이책의 나열식 서술이 가지는 한계때문이다. 이책은 입체적 분석과 종합의 과정을 통해 현제 일본의 전체상을 제시하는데 일정정도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일본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일본사회의 근간이 되는 '신뢰'의 문화, 그리고 최근의 사회적 소비의 증가와, 사회적 기부, 사회적 참여의 증가 등 침체에 빠진 일본이라는 상과 어울리지 않는 많은 현상과 최소 벌이와 소비를 지향하면서도 사회적 기부에 아낌이 없는 신세대의  미니멀라이프 스타일은 가히 오늘의 일본이 과연 위기인가를 의심케 할만치 일본 사회의 긍정성과 건강성을 드러내 보여준다.
어쩌면 일본은 침체에 빠진 것이 아니고 '정상화'된 것이 아닐까? 경제만능주의, 개발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그 어수선함이 '역동성'으로 미화되는 시대가 가고 나면 우리도 어쩌면 '맥'이 빠진것 같은 사회, 외향적 성취보다 내면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내가 일본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 몇가지를 정리해 본다. 먼저 예의바르고 도덕적인 개인과 군국주의적 정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겠다, 두번째 서양의 문물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나라면서도 기독교의 침탈로부터 신도와 불교를 지켜낸 일본만의 정신구조가 무엇인지 알고싶다. 세번째 철저한 안전의식, 장인정신에 대한 신봉, 사회의 도덕적 투명성 등에도 불구하고 지금 초래되고 있는 일본경제의 침체는 어디에 기인하는 걸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응형
반응형
4박5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리고
드디어 마지막날이 밝았다.
전날 저녁 난생 처음으로 일본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저녁늦게 까지 호첼객실에서 2차 술자리를 한 탓으로
몸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일본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다 즐겁고 값지게 보내야된다는
기대때문인지 아니면 의무감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직 문을 열지도 않은 
식당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곧이어 몇몇 외국인이 줄을 서고 뒤이어 우리 일행들이 한명 두명 내려왔다.
아침부페를 간단히 들도 곧바로 우리 일행은 새벽 청과물 도매시장으로 향했다. 

아사쿠라농산물도매시장은 인구 120만 도시인 후쿠오카에 있는 다섯개의 농산물 도매시장 중 하나라고 했다. 규모나 시설로 봐서는 사실 이웃 안동농산물 도매시장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이었다 시장은 노천에 지붕만 씌운 시설에 불과했고 경매시스템도 현대식 전자경매가 아니라 재래의 방식 그대로 였다.
하지만 우리 공판장과 다른 모습도 확인할 수 잇었다. 우리나라 공판장에 가면 주변에 농산물 포장재로부터 폐농산물 까지 주변에 쓰레기가 늘려 있는데, 아사쿠라도매시장 바닥 어디에도 한개의 쓰레기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깨끗했다.  그리고 출하된 농산물의 상태는 그대로 슈퍼 진열대에 올려놓을 수 있는 완벽한 선별과 세척 그리고 소량포장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일행중 몇몇분이 '뭐, 일본도 별거아니네.'라고 하시면서도 농산물의 선별포장 상태에 대해서만은 감탄을 아끼지 않으셨다.  사실 고급스런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오직 정성으로 완벽한 선별포장을 한 일본사람의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4박5일 여행내내 일본사람이 소리를 지르거나 씨끄럽게 떠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곳 농산물 도매시장에 와서야 처음으로 일본사람이 고함을 지르고 떠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참 다른 일본인과 한국인^^*) 


아사쿠라 농산물 도매시장을 나와 하카타 포트타워로 향했다.
부산에서 카멜리아호라는 여객선을 타면 도착한다는 하카타항이 내려다 보이는
별로 멋지거나 화려하지 않은 하카타 포트타워를 잠시 들러 사진을 찍고,
곧바로 태재부(다이자이후) 천만궁으로 향했다.
후쿠오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다이자이후 시에 있는 신사인 천만궁은 9세기무렵 살았던 스가하라 미치스네라는 사람을 학문의 신으로 받들고 있는데, 입시철이 되면 시험을 잘보게 해달라고 비는 참배객들로 엄청나게 붐빈다고 했다. 인근 학교에서 아예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참배를 오기도 할 정도라고 했다. 우리가 찾았던 그날도 적지않은 학생들이 소원종이(?)를 사서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나무에 매달거나 신사에 헌금을 내고 복을 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쉬운 연수가 마무리되고 김해를 향한 비행기에 오르고 부터 뇌리에 떠나지 않는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짧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일본의 모든 것은 고사하고 일본의 농촌과 농업에 대해서 만이라도 일정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참 좋았을 것이지만 사실 모든 것이 겉핡기에 불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인과 인본 문화에 대한 이해, 일본 농업 농촌에 대한 이해는 뒷날의 과제로 남겨두고 이번 연수를 통해 얻었던 다양한 문제 의식만은 정확히 기록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도 일행과 계속 주고받은 생각들이지만 어떤 분들은 이번 여행을 통해 일본의 '침체'를 절감했다고도 하고, 일본농촌정책은 실패작이라는 판단도 많은 분들이 공유했다. 사실 일본여행중에 호텔 TV를 통해 JAL의 부도 소식을 접했고, 귀국해서도 도요타 사태라든지, 일본의 유명 백화점의 연쇄부도 소식 등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끊이질 않았다. 현제 일본이 막다뜨린 침체의 문제는 일본의 관료주의가 근원이라는 판단듣도 있었고,  부의 불균등한 분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피력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사실 선진대국인 일본거리의 소박함(초라함?), 낡은 호텔이나 관광시설, 거리를 메운 소형차들, 작고 초라한 주택, 화려하지 않은 일본인의 옷차림 등등 일본을 세계2위의 선진국으로 알고 선망해오던 시골분들이 이런 일본을 직접접하고는 실망과 우리 나라의 경제수준에대한 자긍심을 일정가지는 것이 당연해 보이면서도 한편 나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나는 과연 일본은 침체되었는가?라는 판단이 가장 어렵다. 일본의 관료주의, 가난한 개인과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분배의 문제,  지향을 잃어버린 국가나 개인의 정체성의 문제, 불완전고용상태를 초래한 비정규직의 보편화와 고착화된계층 구조로 인한 활력의 상실 등등의 문제는 분명 일본사회가 처한 현실을 나타낼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런 일본의 현실이 침체인지 안정화인지 면밀한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사회적 지향을 가진 활력이 넘치는 사회가(일제시대 일본의 모습) 정상적인 사회인지 아니면 일상의 소소한 삶속으로 천착해 들어가는 지금의 일본인의 삶이 정상적인 모습인지 판단하는 것이 그리 쉬운 건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오직 경제성장에 목을 매고 전사회가 매진하는 지금의 거의 광적인 모습이 비정상적인 상태이고,우리 사회역시도 10~20년 내에 지금의 일본의 '침체'된 모습을 띌 것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나치게 활력이 넘치는 사회가 싫다. 일본인같이 경제적으로 소박한 삶을 누리면서 내면의 가치를 천착하고 셰계와 삶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심화하는 그런 삶의 자세가 보다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는 생각을 포기할 수 없다.

앞으로 공부하고픈 몇가지 주제나 소제를 정리하는 것으로 이번 여정의 기록을 마무리하고 싶다.
1. 일본은 주체성이 강한 나라인가 아닌가?
일본인은 서양지향적인 모습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기독교식의 결혼식이 대표적일 것이다.  사실 일본은 타 종교에 대해 아주 개방적이다. 신도나 불교, 유교가 아주 자연스럽게 융합해 있고, 기독교같은 타종교에 대해서도 훨씬 개방적이다.  하지만 일본인은 우리보다 기독교의 역사가 깊으면서도 기독교 신자가 전국민의 1%도 되지 않는다. 한국은 조선의 붕괴와 함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 유교를 내팽겨치고 서양의 사상. 특히 기독교에 바져들었다. 사실 겉은 따라가도 정신만은 놓지 않는 일본이 더 주체적인 나라가 아닌가?

2. 일본의 농촌 정책은 성공적인가?
오래전부터 한국의 몇몇 교수등 전문가 집단은 일본의 정책을 그대로 뱃겨온 사례가 너무나 많다. 사실 별거아니지만 정보를 먼저 접했다는 것 하나로 뭐 대단한 성공사례인양 소개하고, 그리고 그 사례가 우리 농촌을 구원하는 비책이라도 되는 양 피력해 온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농촌의 현실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 먼저 농산물 자급률이 우리보다 훨씬 못하다.(한국 약 30% 전후, 일본 약 20%전후) 사실  일본 농촌 공동체의 붕괴는 한국보다 훨씬 덜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적인 농촌정책때문이아니라 한국과는 다른 지방 중소도시의 활력대문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서울만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아름의 지방 도시들이 자생력을 가지고 번영하고 있다. 그와같은 지방 도시를 둘러싼 일본 농촌은 인근 도시와의 교류와 소통속에서 농촌사회의 유지 발전을 꾀할 수가 있었다. 이는 일본 농업인의 많은 비율이 투잡, 쓰리잡이라는 사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농민은 농한기에 인근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서울 경기만 있고 지방은 다 죽었기 대문이다. 한국 농민은 아예 농촌을 떠날 수 밖에 없다.

3. 일본 농촌 사업은 주민자치역량에 기반하는가, 고도화된 행정서비스에 의존하는가? 그린투어리즘이 침체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잇는가?
연수중에 방문했던 많은 사업단위들에서 사실 주민의 모습을 별로 볼 수 없었다. 우키하마을, 오쿠니마을은 아예 공무원이 마을 사업을 주관하는 듯이 보였고, 전체적으로는 그린투어리즘에 기반한 도농교류를 통해 많은 농민이 생업기반을 가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린투어리즘이 활성화된 곳에서 마저 전체 농가의 1%미만만이 도농교류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린투어리즘을 한국 농촌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대단한 비책인양 여기는 정책입안자들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것같다. 그렇다고 다른 대책은 없지만 그린투어리즘에 대한 과대 평가는 조심해야할 것 같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