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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베푼 기억이 거의 없다. 세상살이가 제각각인 시대를 탓하며 어느 누구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고 살아가지만,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일까... 참 많이도 세상 신세를 지고 살고 있다. 보답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고마움의 마음도 전하지 않은 채 그냥 주니깐 받는 몰염치에도 불구하고 착하고 너그럽고 마음 넉넉한 분들과의 인연이 늘 이어지니 바로 그분들은 물론이고 하늘에도 감사를 드려야할 것 같다.

어제는 마을 한가운데 공사장에 예취기를 들고 날품팔이를 갔다. 건물과 주차장 등이 들어 설 1,500여평의 밭에 풀을 베는 작업중에 택배사에서 전화가 왔다. 택배가 올만한게 없는데 뭔지 궁금했는데 예취기를 끄고 받아든 택배는 다름아닌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같은 농번기가 되면 일고싶은 책은 한권두권 사 모으는데 별로 읽지는 못한다. 그러다보니 읽어야 될 책들이 밀린 숙제 처럼 계속 쌓여간다.  그래도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겨울 농한기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로 박스를 뜯고 책을 꺼냈다.  얼마전 국정원의 불법사찰로 고통받았던 박원순 변호사의 [마을이 학교다]와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그리고 구도완의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사실 내게 필요한 책이면서도 또 너무 낯익어 돈을 주고 사기에는 좀 망설여지던 책들이다. 아마 익숙한 것들을 저평가하는 비합리적 습성때문일 것이지만 나는 교훈적이거나  정서적인 내용을 담을 책들을 잘 사지 않게 된다. 아마도 책이 가르키는 데로 살 자신이 없고, 또 책은 풋풋한 삶의 향기보다 뭐 대단한 진리라도 담고 있어야된다는 강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주문한 적이 없었지만 내손에 들린 책을 한참들여다 보며 도대체 누가 보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런저런 지인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포장 박스를 이리지러 다시 살폈다. 결국 인터넷 서점에서 직접 보낸 책이다보니 주문자 이름이 나와있었다. 책을 선물로 보내주신 분을 확인하고선 고맙고 기쁜 마음 한편으로 부담스럽고 죄송스런 마음이 일어났다. 왜 그분은 내게 이런 책들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니 선물이 아니라 어떤 임무를 부여받은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비나리 마을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산지 벌써 십수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작목반을 만들고 없애고, 가입하고 탈퇴하고, 팜스태이사업, 녹색체험마을 사업, 정보화마을 사업, 마을종합개발사업도 추진하고 그리고 마을 공부방과 청량산문화연구회 등 이런 저런 임의 단체를 만들거나 가입한 것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마을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마을로 되어가길 그리고 영원히 사람 사는 마을로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도한 것들이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다. 내용없이 액션만 큰 셈이다. 사람은 쉬 지쳐가고  성과는 더디 타나는게 마을사업의 이치기도 하고 또 나 자신의 무능력과 불성실 때문이기도 하다. 참 멀리 온것 같지만 되돌아 보면 그자리다.  

책을 보내주신 을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나를 독려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
"힘내세요. 아직 포기할 땐 아닙니다." 
사실 맞는 말이다. 마을은 쉬 변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깊이 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을은 학교다.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을은 오래 익은 술처럼 깊은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보물창고다. 그래서 마을에서 '희망' 만날 수 있다.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그분'께 고마운 마을을 전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기분좋은 선물인 책을 보내주신 그 분은 젊지만 가진 것 별로 없어 보이는  경북의 한 작은 지자체의 말단 공무원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도정에서 늘 가까이에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다짐하고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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