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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1일 사랑곳에서 두명의 남자는 짚차를 타고 나머지는 패러글라이드를 타고 일주일만에 포카라로 돌아왔다. 도착한 첫날 오후 재래시장과 가이드 라마가 다녔던 트리뷰반대학 포카라캠퍼스를 둘러보고, 12일 까훈마을을 찾아 기부행사를 하고 데비폭포, 마하데브동굴, 그리고 타쉬링 티벳탄 난민촌을 방문하고, 13일 카트만두로 복귀했다. 

사랑곳의 아침은 황홀했다. 롯지옆 계단을 따라 어둠을 가르는 움직임이 소란해지자 우리도 마음이 급해졌다. 가이드 라마의 재촉에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너나할 것없이 방을 나섰다. 단체 여행을 온 학생들 무리와 관광객들이 섞인 행열을 따라 500여m를 올라가자 Sarankot View Tower가 나왔다. 도착하자마자 어둠속에서 두런두런 들리는 목소리가 탄성으로 바뀌고 멀리 동녘이 밝아왔다. 한평생을 살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일출을 네팔에 온지 열흘만에 4번째  마주했다. 푼힐에서 맞은 첫 일출과는 달리 여전한 울릉거림 한켠에 아쉬움이 일었다. 레이크사이드에선들 마차푸차례가 보이질 않을리 없을뿐아니라 아직 한달반의 네팔여정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사랑곳에서 마주 보는 마차푸차례를 향해서 작별인사라도 올려야할 것 같았다.

이날은 세계3대 패러글라이딩 명소라는 사랑곳을 찾은 김에 패러글라이드를 타기로 되어있었다. 라마의 제안을 하늘을 마음껏 날아보고 싶었다는 김셈이 받았기때문이다. 6명의 일행중 나는 송선생과 함께 패러글라이드를 포기했다. 사실 고소공포를 이길 만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준비된 차에 오르니 금새 Sarangkot Paragliding Take off Point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기도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시간도 아니어서 인지 아직은 한산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멀리 포카라 전경을 바라보며 한참을 시간을 보낸뒤 파일럿이 도착하고 우리팀은 활공을 준비했다. 하늘을 날면서 페와호수와 포카라를, 그리고 멀리 안나푸르나 산군을 내려다보는 경험이 얼마나짜릿할지하는 기대에 활동을포기한 나조차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내 준비가끝나고 첫주자로 와이프가 날아올랐다. 잠시 달리다 땅에서 발이 떨어진뒤 계곡으로 처박히는듯 위태롭게 가라앉다가 갑자기 상승기류를 만난듯 하늘을 치고 올라갔다.  하늘을 빙글빙글 돌던 글라이드는 까마득한 높이로 올라가 하나의 점이 되었고, 이내 우리 일행과 다른 체험객까지 하나둘 활공을 시작하니 하늘은 새떼들이 몰려나는듯 멋진 장관이 연출되었다.

일행모두가 활공을 하고 송선생과 나는 라마와 함께 찦을 타고 포카라로 향했다. 호텔 Karuna에 도착하고 얼마되지 않아 패러글라이드로 포카라에 도착한 일행들이 무사히 착지를 하고 호텔로 들어섰다. 모두들 들떤 기분에 간단히 짐을 풀고 포카라의 여행자들의 거리인 레이크사이드로 몰려나갔다. 산에 들어간지 일주일 남짓 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두들 다시만난 도시가 반가웠다. 오랜만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생선요리를 먹고 세탁소에 빨래를 맡기고 라마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레이크사이드의 자유를 만끽하며 활보하고 라마의 안내로 재래시장을 거쳐 트리뷰반대학 포카라 캠퍼스를 둘러보고, 다시 포카라의 옛거리를 거쳐 레이크 사이드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한국식당에서 지난 여정을 같이한 가이드와 포터에게 한식을 대접하고 우리의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라마와 함께 포카라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Kahun마을로 향했다. 조그마한 기부행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첫 네팔여행 때 마주쳤던 길거리의 아이들과 트레킹 코스에 만난 가난한 아이들이 늘 눈에 밟혔고 여행내내 마음을 불편하게도 했다. 조금이라도 자책을 덜고자 이번 여행에서는 작은 기부를 하기로 했다. 여행을 같이 하는 동행 들이 십시일반하고 친구들이 여행경비에 보태라며 전해준 금액까지 합쳐 많지 않은 돈이지만 에이전시에 기부 방법을 물었고 작은 학교에 학용품을 기부하기로 약속했었다. '행사'를 원치 않았지만 가이드 라마는 자신이 속한 로타리 클럽을 통해 대대적인행사로 기획을해놓은상태였다. 참 곤혹스럽고 부담스런 자리지만 마지못해 참여를 결정했다.

 

시내를 벗어나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한참을 빙빙돌라 도착한  Kahun Community Primary School은 전교생 61명에 수명의 교사, 그리고 작은 규모의  초라한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낡은 건물은 여기저기 보수가 필요했고, 가구며 기자재는 초라하기 이를데 없었다. 고작 문구류와 책가방 몇십개 가지고 와서 도움을 준다는 것이 낯부끄러운 일이지만 로타리클럽과 학교측에서는 너무 성대한 준비로 우리를 맞았다. 방학중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생과 학부모가 등교를 하고 지역 유지라는 분들이 행사를 이끌었다. 라마의 통역에 힘입어 한국어로 인사말을 전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지만 끝내 부끄러운 마음은 가쉬지 않았다. 기부를 통한 기쁨보다는 많이 돕지못한 아쉬움이 더 컸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덜컥 한가지 약속을 해 버렸다. 어린 여학생 한명이 얼굴에 여러갈래로 찟어져 꿔맨 흉터가 남아있었고 사연을 들어보니 어릴 때 호랑이에게 물린 상처라고 했다. 얼떨결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 아이를 한국에 초대해 상처를 치료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겠다고 말해버렸다.

기부행사를 마치고 레이크사이드로 돌아온 우리는 촘롱에서 상행길을 택해 혼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온 A선생을 맞이했다. 서로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이 남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은채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포옹하며 화해했다. 지독한 감기에 몸살까지 걸려 힘겨워하는 A선생을 호텔에 남겨두고 나머지 일행은 모두 오후 내내 데비폭포, 마하데브 동굴, 타쉬링 티벳탄 난민촌 등을 버스와 도보로 돌아다니며 포카라에서 보내는 마지막 하루를 즐겼다. 데비폭포까지 간선길을 걸을 때 나는 문득 우리가 포카라의 이방인이 아니라 어쩌면 오래전부터 살아왔고 포카라의 골목 골목에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주민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길과 집, 친절하고 익숙한 표정을 가진 사람과 놓아 먹이는 순한 강아지들, 그리고 거리에 날리는 쓰레기들까지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보냈던 지난 시절의 완벽한 기억을 현실에 재생해 놓은 듯한 착각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오후 페와호수로 돌아와 부메랑 레스토랑에서 벤치에 누워 얇은 오수를 즐기며 차를 마셨다. 인생에 다시 없을 호사를 누리며 포카라에서 보내는 남은 시간을 아쉬워했다.  

https://www.rotaractnepal.org/project/detail?id=1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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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9일 란드룩을 출발하여  담푸스에서 걸음을 멈추고, 1월10일 안나푸르나를 벗어나 멀리 포카라가 내려다보이는 사랑곳에서 짐을 풀었다.

란드룩에서 보낸 반나절은 참 값졌다. 걸음을 시작한뒤 첫 휴식이었고 전체 여정의 절반이 지나는 시점에서 한 호흡을 쉬며 남은 여정을 준비하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예정되었던 일행과의 작별에 이어 작은 분란뒤에 예정에 없던 작별마저 있은 뒤라 분위기 쇄신차원에서라도 뭔가 마디가 필요하기도 했다. 지누단다에서 란드룩까지 이르는 길은 모디콜라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뉴브릿지마을을 만나 모디콜라를 건너고 다시 계곡을 따라 걸으며 서서히 오르막을 올라 강건너 간드룩이  마주보이는 높이에 이르러 자리잡은 마을이었다. 같은 고도의 마을이지만 상행길에 만난 간드룩은 산마을이자 트레커들을 위한 마을같은 느낌이었다면 하행길에 만난 란드룩은 그냥 산록 농촌마을로 다가왔다. 안나푸르나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농촌마을에서 하루를 쉬고 본격적으로 하행길로 접어드는날 우리는뒤돌아 안나푸르나를 바라다보고 등을 돌려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찍었다.

란드룩 이후의 길은 편안했다. 완만했지만 그래도 내리막길을 따라 안나푸르나를 등지고 걷고 또 걸었다. 하산한다기 보다는 수평의 길을 걷는 느낌은 담푸스까지 이어졌다. 상승하는 삶은 이미 지나갔고 그리고 하강하기엔 뭔가 억울하지만 그래도 이제 수평적인 삶마저 끝나간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되는 우리는 우리 삶을 닮은 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가 걷는 한걸음 한걸음마다 안나푸르나는 멀어져가고 그만치 고도가 줄었다. 고도가 즐어드는 만치 초록빛은 늘어가고 우리는 네팔리 농부들이 가꾸어 놓은 이쁜 밭두렁길은 걸었다. 늘 논밭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논밭을 가꾸어 놓은 농부의 삶은 고달프다. 농부로 사는 내가 한국에서 그렇듯 네팔의 농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농부는 수도자이고 농사는 수행인지도 모른다. 금전적 보상이 충분이 주어지지 않지만 피땀을 흘려가며 뭍생명의 먹을 거리를 만들고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니 세상의 모든 농부가 성자가 아니면 누가 성자일 수 있겠는가. 나는 자격있는 트레커로 네팔리 농부가 가꾸어 놓은 아름다운 밭두렁길을 기쁜 마음으로 걸었다.   

두달일정의 이번 여정에서 친구들과의 첫 트래킹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우리는 안나푸르나품을 떠나 포카라로 되돌아간다. 영원히 잊지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일행과의 여정이 하루하루 줄어들자 나의 뇌리에는 지금 이 순간을 지속시킬 묘안이 떠올랐다. 가이드 라마를 통해 얻어들은 정보지만 네팔 산골에 조그마한 학교 하나를 짓는데 3천만원이면 되고, 교사 월급이 1인당 10만원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도반들이 작당하고, 뜻을 같이하는 분들을 모아 힘을 합친다면 네팔에 작고 초라할 망정 학교 하나 정도를 운영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교를 중심으로 친구들이 인연을 엮고 그 학교에서 남은 삶을 살아도 되겠다는 막연한 기대도 생겨났다. 한 평생을 살면서 일정기간 자신의 삶의 한부분이라도 누군가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는 삶이 될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좋은 인연들과 작당하는 재미까지 있으니 더더욱 기쁜 일일 것이다. 현실화하기에는 더 많이 고려해야할 것들이 있겠지만 일단은 내 마음속에 수많은 꿈들중의 하나로 소중히 모셔두기로 했다.

담푸스는 아늑했다. 골목길 가득 친구들의 고함소리가 번지고, 옆집 누렁이 짓는 소리에 엄마가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까지 들릴것 같이 유년의 한때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히 아름답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저녁 무렵 수학여행을 온듯한 수십명의 학생들이 들이닥치지 않았다면 편하고 조용한 잠자리가 되었을터인데 밤새 학생들의 조잘거림과 동네 가득 울리는 개짓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밤의 소란은 아침 해와 함께 사라졌지만 어쩌면 산을 나와 도시가 가까워지는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생기였느지도 모르겠다.

잠을설친 새벽일찍 롯지를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던 전망대를 올랐다. 아직 공사가 덜된 전망대를 오르자 지나온 안나푸르나 산군이 한눈에 들어왔다. 담푸스전망대에서 바라다 보는 안나푸르나는 푼힐에서 보던 풍경과는 또다른 멋을 보였다. 푼힐에서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가까이 느껴졌던 산과 달리  산에서는 한발짝 멀어졌지만 마을 넘어로 보이는 산은 보다 현실적이었다. 아쉬움을 달래고 돌아온 롯지는 정적이 흘렀다.  밤새 떠들던  학생들은 잠을 자는지 벌써 길을 떠났는지  알 수없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롯지를 나왔다. 담푸스를 벗어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시 오르막길이더니 금새 내리막길로 접어들었고 한시간여만에 포카라-바글룽 하이웨이를 만났다. 

걸으러 왔다는 사람이 차 못탄지 몇일이나 되었다고 차를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대기하고있던 마이크로버스에 오르자 차는 바글룽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차는 더 오래 타고 싶은 내 마음을 아랑곳없이 이내 사랑곳 입구에 도착했고, 우리를 내려주고는 제 갈 길을 떠나갔다. 노점에서 밀감과 포도를 사들고 라마가 가리키는 길을 접어드니 우리를 맞는 길은 한창 공사중인 찻길로 흙먼지가 앞을 가렸다. 차라도 한대 지나칠 때면 숨을 쉬기 조차 힘들만치 먼지가 날리는 도로를 따라 사랑곳으로 향했다. 포카라를 떠나 트레킹을 시작한 뒤 최악의 길을 만나 힘든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도시와 산의 중간쯤에 있는 네팔리의 삶속을 걷는 경험은 즐거웠다.

 

Lake View Lodge Sarangkot에 짐을 풀고 멀리 내려다 보이는 페와호수와 포카라의 풍경을 만끽하며 네팔여정의 첫 트레킹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제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할 우리 부부와는 달리 곧 여정을 접고 귀국해야하는 친구들은 아쉬움이 많은 것 같았다. 산을 통해 느낀 몸과 다스린 마음은 비로소 도시를 만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이번 트레킹을 어떻게 느끼고 정리해서 기억의 한켠을 채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번 트레킹을 통해 모두의 얼굴은 더 밝아지고 목소리의 생기가 더 높아졌다. 옥상에 빨래를 걸어 바람을 맞히니 우리는 롱다가 된 빨래와함께 포카라와 페와호수, 그리고 사랑곳의 전망좋은 롯지를 더욱 풍요롭게하는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어둠이 롯지를 삼키니 멀리 포카라의 야경이 선명히 살아났다. 이제 우리는 안나푸르나의 대자연을 떠나 도시가 가까워졌음을  느껴야했다. 아랫배가 살짝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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