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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농민회는 2월 27일 봉화장날 봉화읍 농협 봉화군지부앞에서 집회를 시작해,
2월 29일 춘양장날에는 춘양농협앞에서,
그리고 오늘 3월 2일은 봉화군청앞에서 3차 집회를 열었다.

이번 집회는 지난 16년간 비료제조업체들의 담합으로 농가가 짊어져야했던 1조 6천억원을
그 부담자인 농민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1월 15일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따라
길게는 16년간 비료값 담합으로 취한 부당이익에 대해
828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그로인해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했던 농민에게는 아무런
배상책이 나오질 않고 있다.

이에 전국 농민회는 소송인단을 구성하여
농민들이 부당하게 부담해야했던 비료값을 돌려받기위한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이를 국민에게 알리고 더불어,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국 농업 농촌에 마지막 치명타가 될
한미 FTA에 반대하는 농민의 뜻을 결집하기 위해 집회를 열게 되었다.

또한 작년 이상기후로 인해 폐농되다시피한
농가들을 살리기 위한 대책을  경상북도 도지사에게 요구했지만 
고작 200억의 예산으로 한 농가당 200만을 연리 3%로로
1년간 융자해 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고 있다.
그것도 200만원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포함한 온갖 서류를 요구해
사실상 아무도 융자를 신청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봉화군 농민회는 피해금액을 800만원으로 현실화하고
상환기간을 연장하고, 서류도 간소화해
실제적으로 피해농가가 이 기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추가 요구안을
집회를 마무리하면서 봉화군과 경상북도에 제출했다.

우수도 지나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준비해야하는 시점에
바쁜 일손을 멈추고 집회를 여는 농민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치미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

춘양장날 집회에는 장을 보러 나오신 농민들께서
모두 쉰명이 넘게  농민소송인단에 가입원서를 내고 1만원이라는 참가비용을 
내 주시는 걸 보고 힘이났지만
우리 농민형제들이 늘상 밭이 아니라 이렇게 거리로 나서야되는
우리의 농촌 현실이 참으로 원통했다.

하지만 재벌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미끼로 던져지는 한국 농업, 한국 농촌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해 투쟁하시는 농민회 동지들의 
희생적이고 실천적인 삶이 있는한 아직 한국농촌에는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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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을 받아 슬픈 경우도 있다.
봉화군 농민회 명호면지회를 재구성하자마자 전농으로 부터 표창을 받았다.
농업이 기울고, 농민이 줄고 그리고 그보다도
더 빠르게 농민회가 와해되어 왔기 때문일까,
100여개 시군농민회 중 5개 농민회가 표창을 받았는데
그 중 봉화군은 면지회 구성이 사유였다.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이 결성되고 나서,
농촌 공동체를 지키고 농업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투쟁해 왔지만  
농업의 붕괴와 농촌 공동체의 와해를 막아내는데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희망을 꺽지 않았다.

면지회 구성조건인 5명이상의 회원으로
봉화군농민회 명호지회를 만들려고 했는데
구성이 되자마자 10명이상이 가입을 하고
다시 스무명가까이 조직이 불어나게 되었다.

정부와 농협의 지원을 받는 많은 농업인 단체들이 있지만
많은 농민들은 한국 농업과 농촌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가는 약사들이 약사회에 가입하고,
변호사는 변호사회에 가입하듯이
농민이면 당연하게 농민회에 가입하여
농민의 이해를 관철하고 농촌공동체와 농업을
지켜나갈 수 있을 날이 올것이라 믿는다.

그 길로 나아가는 선봉에 봉화군 농민회 명호지회 깃발이
항상 휘날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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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부터 농사를 지었으니 벌써 올해까지 꼭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고 적지 않은 변화도 있었지만
꼭 그때 15년전 내가 첫발은 디뎠던
비나리마을의 가을을 잊을 수 없다.

그 고즈넉한 가을 하늘아래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전경...
살다보면 사람일은 알수 없으니 내가 설혹 비나리마을을 떠나
또 다른 낮천 거리에 헤메게 될지라도
그 때 그 비나리마을의 풍광은
고스란히 나의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해 두해 농사를 지어 가면서
그 평화로운 풍경뒤에 감춰진 한국 농촌의 참담한 현실을
눈으로 몸으로 느껴갈 수 밖에 없었다.
말로서, 글로서 알고 있덨던 실상보다 춸씬더
참혹한 농촌의 실상은 그 어떤 처방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고,
한 때는 내 자식을 키우며 살아갈 터전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탈농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든 살아보겟다고 농사를 벌이고,
정부가 지원하는 이런 저런 마을사업을 벌이면서도 
그 어떤 것도 근본적인 처방이 될수가 없다는 점에
늘 목말라하면서 결
국 농촌, 농업의 문제는
농민이 주체적으로 나서  

해결할 수 밖에 없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농민회에 가입하고 농민동지들과 전망을 찾고
한국 농촌의 미래 비젼을 공유하고자 했지만
처음 몇년은 우선 내 농사기반이라도 닦고 나서 가입하자고
미루게 되었고,
다음 몇년은 이런저런 마을 사업에 정신이 팔려
미쳐 농민회 가입을 생각지도 못했고,

그리고 최근까지는 농민회의 이념적 지향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몇가지 점들과
지역농민회와의 연결의 어려움 때문에
가입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미뤘던 농민회 가입이 이뤄지고
지난 금요일에는 명호면에서 농민회가 소집한
자역 농업인대표자 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선 자리, 두려운 자리였지만
농민회의 뚝심과 지역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을 몸소 느낄수 있었고,
비록 조직이 쇠락했지만 여전히 농민들 사이에서는
농민회가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농민회 회원 개개인의 무한정한 헌신의 삶을 목도할 수 있었고,   
그동안 관변단체로 여겨 배제했던 농업경영인회 등도
농민회와 동반자로서
투쟁에 같이 나서는 모습을 확인하는 기쁨도 있었다.

나아가 지역 각종 농민단체의 조직원으로 활동하시는
지역 형님들 선배님들의

건강한 삶의 모습으로부터도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의 다른 농민단체 형님들께서도
지금은 와해된 봉화군 농민회 명호면 지회를 복원하는 과제를
맡기면서
도와주시겠다고 나서는데 고무되어
나는 연말까지 봉화군 농민회 명호면 지회를
복원하겠다는 공언을 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를 통해 10월 10일 경북도내 각 시군 농민단체와 마찬가지로
봉화군 농작물피해대책위원회에서도
버스 10대 이상을 동원하기로 하고, 

이에 명호면은 버스 한대를 맞춰 각 단체가 인원과 비용을 배정하여  
경북 도청앞으로 집결 [경북농민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의 했다.

농민회를 가입하자마자 벌써 몸이 바빠지게되었다.
아직 밭에 할일도 태산인데 내 주머니에서 비용을 갹출해 가면서
집회에 참가하게 되니 이게 무슨 망조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농사 15년 만에 농민회 가입을 통해
나의 삶이 또 다른 비약을 하게 된 것임을 확신하다.
나는 이제 진짜 농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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