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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은 신과 인간, 삶과 죽음,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존재다. 그들은 신의 권능을 빌어 권세를 얻고 간혹 세상을 호령하기도 하지만, 주로 세상의 권능이 비켜선 곳에 없는듯 숨어살면서 5,00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5,000년 동안 무당은 시대에 따라 사회적 대우를 달리 받았지만 세상의 처분과 무관하게 항상 세상의 시시콜콜한 잡사에 관여해 왔다. 서구적 합리성이 우리사회를 지배한 현대에 들어와 그들의 사회적 존재감은 현격히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존재가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주류사회의 제도화된 종교를 통해 세상 속에 공인된 지위와 부, 권능을 인정받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종교상인'들과는 달리 제도권밖에 축출되어 음지에 숨어 살면서도 한번도 세상과의 끈을 놓친 적이 없다.  무당은 그들을 축출한 지배권력마저 존재의 실존적 한계와 탐욕의 괴리 속에서 그들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 잘났다는 정치인들 조차 선거철이 되면 바리바리 돈보따리를 싸들고 그들 '무당'의 권능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기 때문이다.
   

있지만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왔던 '무당'이 다큐멘타리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창재 감독은 만신 이해경을 통해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합리와 광기의 사이에서 무당이 되어가는 법과 살아가는 법을 드러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합리의 영역에서 축출된 무속의 세계를 다시 합리와 광기의 사이에 걸쳐놓는다. 그럼으로써 이창재는  합리성의 단독지배로 만신창이되고 신성이 제거된 현대인의 삶을 구원하고자 하는지 모른다.

[사이에서]는 '인희'라는 20대 중후반의 여성이 무병을 앓다 무당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을 전편을 통해 추적한다. 왜, 어떤 사람이, 어떻게 무당이 되는가? 그렇게 운명이든, 팔자든 무당이 된 사람들은 이세상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세상과 관계하는가? 감독의 시선은 주류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편향적일지 모른다. 카메라의 눈은 제3자적 입장을 견지하는 엑션을 취하지만, 관객은 금새 만신 이해경의 눈에서 감독의 눈길을 읽고 만다. 감독은 철두철미하게 카메라 앵글에 잡힌 바로 그 사람의 눈으로 다시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그 지점에서 공감과 연민이 피어나고, 관객인 나도 감독의 눈과 만신이해경의 눈으로 [사이에서]에 몰입해버린다.

관객의 관점을 훔친 다큐멘타리는 성공작일 것이다. 그점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남는 의문은 부정할 수 없다. [사이에서]는 탈아가 단순히 이상심리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지, 합리성의 지배영역 바같에 있는 초자연적 광기가 있는 것인지, 제도권 종교와 달리 체계도 경전도 교리도 없는 무속이 우리 삶속에 5,000년의 역사를 끈질기게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다 말해주지 않는다. 이점 신성은 부정하지 않지만, 종교는 인정하지 못하고, 무속의 존재가치가 부당하게 폄화되는 현실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스스로 무속의 권능을  인정할 수 없는 나 스스로의  인식이 갖는 한계가 야기하는 의문인 것이 분명할 것이다.  
아뭏튼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의 삶, 우리의 의식속에 감춰진 샤머니즘을 드러냄으로써 최소한 '무당'이라고 불리는 우리사회의 한 부류의 소수자의 삶을 양지로 끌어내어 그들 삶의 고유한 가치를 만천하에 공포한 [사이에서]는 명작 다큐멘타리임엔 틀림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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