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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휘어 감는 낙동강 따라 걷는 길-명호에서 청량산입구까지 

일시 : 2016년 8월 13일 오전 9시~ 12시 30분

코스 : 명호면 낙동강 시발점 공원 - 고계다리-비나리거리-선유교-관창리 입구-북곡리입구-청량산도립공원상업지구

참가자 : 28명


명호면 소재지에서 낙동강은 시작된다. 

정확히 말해 춘양쪽에서 흘러오는 운곡천과 석포 소천을 지나오는 

명호천이 만나 비로서 하천법상 낙동강이라 불리는 지점이 

명호면 소재의 낙동강 시발점 공원이다. 

이날은 바로 낙동강 시발점공원에서 시작하여 청량산도립공원까지

약 10km를 3시간여에 걸쳐 걸었다.



올해는 유난히도 덥다고들 하지만

하필 이날은 올 여름 치고도 더위의 절정을 기록했다.

걷기 시작하면서 땀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서쪽으로 산을 끼고 돌아 오전내 그늘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무너지고

코스 곳곳이 때약볕에 노출되어 있었고 

늦게 걸음을 시작한 덕에 시간이 지날 수록 그늘은 줄고

햇살을 더 뜨거워졌다.



팥죽같이 땀을 흘리는 일행들에게

괜히 눈치가 보일 만치 힘겨운 걸음이었다.

하지만 서울서 오셨다는 봉봉조합원 가족인

건이라는 아이의 씩씩한 발걸음은 

지친 어른의 발걺음을 재촉했고 힘든 내색을 감추게 했다.

사실 이날 걸음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추억이 되었다.


이 힘든 계절을 걸었으니 앞으로

맞은 가을의 걷기가 벌써 기다려지고

어떤 난이도의 길도 거뜬히 걸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덤으로 얻었다. 


이날 코스를 굳이 평가하자면 

전반적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았고 

군데군데 코스를 알리는 안내문이 없거나 불확실해 불편함이 있었다.

또 사람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까닥에 

인적이 드물어 풀이 너무 자라 길을 개척해야만하는 곳도 한두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잘 관리만되면 걷기에 좋은 길이 될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강을 따라 걸으며 청량산이 주는 풍광을 두눈에 가득 담을 수 있어 좋았고

조금만 일찍 출발하면 오전에 청량산 산그늘이 코스 전반에 드리우는 점도 

여름 트래킹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봉화주민은 물론 아무런 사적 인연이 없는 영주나 인근 도시, 

멀리는 서울에서 오신 분들과도 단지 같은 길을 걷는 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동질감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던 이날 트래킹을 마치고 나니 

벌써 9월의 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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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을 맞아 각 가정의 김장담그기는 물론
각종 단체가 주관하는 이웃돕기 김장담그기 행사가 한창이다.
이에 맞춰 봉화군 농민회는 지난 11월 6일부터 8일까지 
화원들이 재배한 배추와 각종 양념을 모아
500여포기의 [사랑의 김장]을 담았다.
이날 행사는 가진 것이라고는 농사일에 이골이 난 몸과 
직접 키운 농산물밖에 없는 농민회회원이
지역공동체의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었다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특히 이번행사에 올해 새롭게 조직을 복원한
봉화군 농민회 명호지회 회원들이 참가해
지역 사회에 뜻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다.
땅을 일궈 살아가는 농민의 생명사랑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몸소 실천하는
농민회 회원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이번의 작은 활동속에서 지역주민 모두는
앞으로 살아갈 우리 지역사회의
아름다운 미래상을 꿈꿔볼 수 있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을 지켜나가는 일은
농민형제가 먼저 서로 돕고 이웃을 보살피며
마을공동체의 온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만나서 즐겁고 행복한 농민회,
형제같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농민회,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농민회,
무엇보다 가정의 화목을 이끌고
우리아이들을 올바르게 자라가는 데
도움이 되는 농민회를 만들어나가자는
농민회 명호지회 회원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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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밭두렁공부방 학부모회의가 있었다.

그동안 밭두렁공부방은 명호면민회관을 빌려

명호 어린이들의 방과후 휴식과 보호, 학습 등을 진행해 왔는데

급작스럽게 공부방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비워줘야할 형편이 되어버렸다.

명호면에 '어린이 집'이 들어오면서 지금 공부방으로 사용중인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기로 했기때문이다.

공부방이나 어린이집이나 똑같이 명호면민을 위한

육아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소중한 사업들인데

어떻게 하다보니 공간문제로 이 두 사업이 충돌을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사업 추진 결정과정에서 충분히 공부방의 의견을

수렴 하는 노력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충분한 논의와 대책마련없이 사업이 추진되면서

공부방이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민간이 자율적으로 하고 있는 공부방을 가볍게 여기고

전경련의 지원과 군의 예산으로 하는사업에만 올인하는 

관료적이고 성과주의적 관의 모습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정을 알게 된 몇몇 주민들이

다양한 채녈을 통해 공부방사업을 위한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고

중단기적인 문제해결 방안까지 마련되게 되었다.

장기대책으로는 2013년까지 명호초등학교와 교섭하여

마을종합개발사업 예산으로 아동센타겸 실내체육관을

짓도록 추진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아직까지 변수가 많지만 지연민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준비해 나가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은 명호면의 협조를 구해 면장 사택을

공사기간중 사용할 수 있도록 추진해 보기로 했고,

그리고 면민회관 1층을 어린이집으로 리모델링 하듯

군청에 별도의 예산을 요구해 2층을 공부방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는 지역의원을 비롯해

많은 지역일꾼들이 참석해 나름대로 위의 결정사항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결의할 수 있었다.

모처럼 밭두렁공부방 학부모 회의에

학부모도 아닌 사람이지만 참석하여

지역민의 현안을 같이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어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공부방을 위해 늘 애써온 봉화자활후견센타,

그리고 학부모여러분들의 노고가 우리 지역을 더 아름답고

사람살만한 마을로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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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는날, 강건너 거무실을 걸었습니다.

늦은 아침, 살을 에는 추위가 한낮의 햇살에 누그러들자

간단한 간식을 챙기고 아내와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이런저런 핑게로 오랫동안 떠나지못한 마을길 순례를

이번은 사전 계획도 없이 갑자기 나서게 되었습니다.

 

거무실은  비나리마을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입니다.

비나리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쪽으로 오백미터만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초방산 가는 길이 나오는데, 바로 그 반대편 강건너

보일듯 말듯 골짜기에 숨어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몇년전에야 겨우 전기가 들어가면서 언론도 타고,

그 덕분에 외부에 알려지게된 거무실은

직선거리로 따진다면 국도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마을앞은 낙동강으로 막히고 마을뒷길은 청량산의 한자락인

문명산에 가로막혀, 차로는 당연히 접급할 수도 없고

걸어서도 접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세상에 숨겨진 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비나리마을에서 출발해서 옷갓재를 지나 고계다리를 건너고,

고계리 마을을 관통하다 오른쪽으로 틀어 산길을 접어듭니다.

고계리를 지나 30분쯤 산길을 오르다보면

정상쪽으로 난 가파른 비포장길과 오른쪽 강쪽으로 나있는

오솔길로 나누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가파른 산길에는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차바퀴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산이 깊어질수록 그 길마저 사라집니다.

매서운 추위가 살을 애는 한겨울에도 등에 땀이 흐를 만치 걷다보면

그 길의 끝에서 민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세상이 싫어서 이렇게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가 싶기도하고, 어쩌면 옛 고향집을 꾸며

간혹 들러서 쉬어가는 집같기도했지만

아무리 불러봐도 사람은 나오지 않고 빈마당엔 겨울 바람만 가득했습니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강쪽으로 갈라진 오솔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첩첩산중이지만 그래도 가는 길목마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가쉰 폐가들을 만날 수 있고,

잘 손질된 잔디가 덮인 무덤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대신해 객을 반깁니다.

 

풀숲을 더듬어 없는 길을 만들어 30분쯤 더 걷다보면

이제는 포기하고 돌아서야지 하고 마음먹기 시작할 즈음

오랜동안 그리도 가 보고싶었던 거무실 아랫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옛날에 살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는 두어집이 남아 동네를 지키지만

가파른 산능선에 심겨진 대추나무와

겨울 찬바람에 마른 고추댓궁이 겨울 햇살을 받으며 천연덕스럽게 지난 여름 받았을

따뜻한 사람의 손길을 이야기해 줍니다.

 

두어채의 폐가와 사람사는 흔적이 있는 또다른 두어채의 집이 전부인 마을에는

인기척이라곤 찾아볼수 없고

낯선 객을 반기는 강아지 한마리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명산자락이 모은 빗물이 지나는 거무실 계곡은

도연명이 찾던 무릉도원이 꼭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치

선계를 닮아있습니다.

큰물에 씻긴 집채만한 바위로 이루어진 거무실계곡은

언제 다시한번 꼭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찾고 싶습니다.

계곡을 이루는 바위위에 작은 상을 차리고 오늘은 만나지 못했던

거무실 사람들과 잔을 비우며 물소리와 함께

거무실 사는 이야기라도 듣고싶습니다.

 

한해를 보내야하는 즈음,

거무실을 걷기는 큰 행복을 주었습니다.

* 비나리마을에서 거무실까지 왕복 10km // 일부구간 난코스

* 소요시간 4시간

* 거무실마을 도착후 낙동강을 따라 북상, 고계 다리에서 강을 건널 수 있지만 비나리마을 앞 구간에서 강변을 따라 지나기에 어려운 코스가 있다.

* 고계리에 차를 세워두고 걷기를 시작하면 넉넉잡아 3시간이면 거무실 마을 걷기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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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가 내렸던 지난 토요일 저녁, 경북 봉화군 명호면 소재지 면사무소 건너 편 농협경제사무소 마당에서 작은 규모지만 큰 의미가 있는 [밭두렁공부방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하루종일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이번 음악회를 준비해 온 밭두렁 공부방 학부모들께선 행사가 비로 무산될까 하루종일 걱정해야했습니다. 무대는 어쩔 수 없이 천막으로 덮었고, 관객석도 비를 피할 수 있는 농협 물류창고옆 상하차 작업장에 마련했습니다. 리허설중인 오후 내내 내리던 비가 다행히 행사가 시작되면서 기적같이 그치고 마당 가득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채우며 작은 음악회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회는 먼저 봉화주민인 청초이순섭 화백의 개막 퍼포먼스로 시작되었습니다. 청초님께서 대형 광목에 큰 붓으로 용을 그리고  '이나리강에 용나다'라는 글귀를 쓰주셨습니다. 이나리강은 명호 아이들이 뛰어놀고 자라나는 삶의 터전입니다. 그 강에서 이 아이들 하나하나가 바로 '용'으로 자라나길 기원하는  청초 이순섭선생의 마음을 표현한 글귀였습니다. '용'이 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고 출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가꾸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명의 인간으로 자라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농촌에 살고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라고 주눅즐지 않고  당당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기원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은 글귀입니다.



이어서 [나무피리 요술피리]라는 음악공원을 가꾸고 계신 이웃 법전면의 조성용선생님께서 직접 만든 악기를 소개도 하고 연주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연주체험도 하는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날 행사의 백미인 밭두렁공부방아이들의 태권체조와 노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산골이 좋아 비나리에 정착한지 일년도 되지않는 전직 태권도 도장 관장님이 지도한  공부방아이들의 이날 공연은 태궈도를 배우기 시작한지  한달여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치 씩씩하고 멋있었습니다. 이어서 공부방을 직접 운영하시는 4분의 선생님께서 그동안 지도로 준비한 노래  '과수원길'과 '꼬부랑할머니'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너무나 이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이날 작은 음악회의 초정가수는 이지상과 손병휘님입니다.  두분은 주로 거리와 광장에서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호흡을 같이하며 노래를 해 오신 '민중가수'입니다. 두분다 4집까지 앨범도 내고, 이지상님은 성공회대학교 경임교수로도 재직중이십니다. 작은 경비에도 마다않고 농촌마을의 작은 공연을 찾아주신 이지상님은 이번 공연을 기획한 이웃의 친구십니다. 그 인연에 얹혀 우리 마을과 관계가 맺어진 두분과 지속적인 연대가 이어질 수 있었으면 참좋겠습니다.

저녁 9시가 넘어 공연이 끝나고 뒷정리가 시작되면서 공연자를 모시고 먼저 뒷풀이장소로 안내를 했습니다. 늦은 저녁식사와 술을 나누며 가진 뒷풀이 시간을 통해 공연자 여러분들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었고 특히나 이지상님과 손병휘님의 소탈하고 호쾌한 기상에 인간적으로 매료되었습니다. 다음날까지 이러진 개인적인 뒷풀이까지 주말 이틀이 작은 음악회로 가득찼습니다. 




이번에 가진 [밭두렁공부방 작은 음악회]는 특별합니다. 먼저 300만원 가량의 적은 예산으로 진행한 마을 음악회 입니다. 그리고 그돈 마저 주민과 후원인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마련하였습니다.  대구에서 치과를 운영하면서 단지 우리 마을이 좋아 자주 걸음하시는 지인한분이 100만원의 거금을 쾌척했지만 나먼지는 많게는 10만원 작게는 2~3만원의 후원으로 음악회가 열릴 수있었습니다. 공부방의 운영주체가 봉화자활후견기관이긴하지만 이 기관으로부터도 물질적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오직 학부모의 정성과 노력으로 아름다운 음악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가수를 초정하기도 했지만 지역의 어린이와 지역 예술인의 공연을 기본 프로그램으로 채웠습니다. 이 음악회를 기획한 것도 마을주민이고, 행사 진행자도 마을주민의 한사람이었습니다. 면사사무소에서 음료수를 지원받기도 했지만 그것이 관공서로부터 받은 지원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민중가수인 이지상님과 손병휘님이 단지 농촌마을주민의 자력으로 여는 음악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소한의 경비만 받고 출현했습니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 지역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활력을 되찾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제일좋았습니다. 학부모와 청년들이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의자를 나르고, 관객을 안내하고, 음료수와 떡을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지역의 작은 행사 하나하나가 지역의 생기를 북돋고 지역주민에게 자긍심과 애향심을 불러일으키고 지역 사회에 대한 사랑과 애착을 키워나간다면 우리 지역사회의 미래는 밝기만합니다. 작은 음악회를 통해 지역주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사하신 관계자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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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은 쉬 끝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지만 찾아오는 절기는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5월5일 단오입니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다는 단오는 멀리 마한 시절부터 파종을 끝내고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며 음주가무를 즐기던 풍습에서 기원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마을 비나리는 단오라고해서 별다른 풍습이 남아있는게 없습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단오날은 돈을 모아서라도 나들이를 가십니다. 그런데 마을분들이 어디 놀러가시게 되면 꼭 울진 바닷가로 나가십니다.


산속마을에 살다보니 항상 바다가 보고싶으신가 봅니다..
가까이에 소백산도 있고, 주왕산도 있고 태백산도 있지만
산은 다 마다하고 몇년전부터 매년 두어번은 놀러갔었을 울진을 고집하십니다.
바다도 싣컷보시고, 무엇보다 산골사람에게는 귀한 진미인 생선회를 드십니다. 
저도 두어해 따라나섰지만 관광버스에 오르자마자 술을 권하고 가무(!)를 요구하시는 놀이문화에 결국 적응을 못하고 지금은 가능하면 설설 피하고 맙니다^^*


오늘 아침  나들이에 나서시는 동네분들의 분주한 발걸음에 잠을 깨고
사람의 발길이 더물어져 정적이 감도는 마을에 남아 늦은 농사일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 열흘전부터 고향 진해에서 올라와 농사일을 돕고 있는 동생과 고추밭골에 풀을 뽑고는 다시 풀이 나지 못하도록 비닐로 멀칭을 하는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작업중에 동생의 한마디에 오늘 오후 일정을 바꾸었습니다.
'형집에 와서 일만하고 낚시도 같이 한번 못하고 가야되네.'라고 하는 동생 말에
콩밭 멀칭 작업을 뒤로 미루고 마을앞 낙동강에 낚시를 가기로 마을먹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낚시를 한대씩 들고 강으로 나갔습니다.
꺽지낚시를 즐기는 동생의 조언과 도움으로 작년에 이어 평생에 두번째로 꺽지 낚시에 나섰습니다. 꺽지 낚시는 '루어낚시'의 일종으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물과 산과 하늘을 바라다보고 상념에 빠질 수 있는 그런 낚시가 아니었습니다.
끊이없이 낚시를 던지고 줄을 감고, 또 던지고 다시 감고... 그리고 입질이 없으면 강을 따라 장소를 옮겨가며 낚시를 해야되는 부지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낚시였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동생을 따라 꺽지 낚시를 갔다가 스피너라고 하는 낚시 바늘과 가짜미끼가 달려있는 뭉치만 서너개 잃어버리고 꺽지는 한마리도 구경도 못했습니다.


오늘도 대단한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강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래도 왠지 작년과는 다른 예감이 들었습니다. 호기롭게 동생한테 '오늘 내가 꺽지를 먼저 잡을 것 같다' 고 큰소리마저 쳤습니다. 두어개의 스피너를 잃어버리고 서너번 장소를 옮긴 뒤에 낚시를 시작한지 거의 1시간만에 오늘의 첫 꺽지를 건졌습니다. 이 놈은 오늘 낚시의 첫 꺽지이기도 하지만 저 일생의 첫 꺽지이기도 합니다. 


다시 30여분 뒤 드디어 동생 낚시대에 대물 한마리가 걸렸습니다.
억지로 줄을 감고 물밖으로 건져 올린 고기는 역시 꺽지지만 아까의 꺽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물이었습니다. 너무 신이나 연신 사진기를 들이대고 오늘 하루 더 이상의 낚시는 필요가 없게 되어 낚시를 접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낚시는 하는 다른 낚시꾼에게 다가가서 괜히 물어보지도 않은 오늘 작항을 자랑하고 대물 꺽지를 바구니에서 건져올려 구경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를 찾아 오늘 잡은 대물 꺽지의 길이를 재어보았습니다.
무려 27.5cm!


동생이 찾아본 바로는 국내 꺽지 낚시 최고 기록이 31.5cm라고 하니 오늘 잡은 꺽지가 얼마나 큰놈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민물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그런 큰 꺽지는 일생에 몇번 잡기가 힘들 정도라니 오늘 하루 농사일을 뒤로 미루고 낚시를 나섰던 보람이 있었습니다.

망중한이라고 바쁜 중에 억지로 만든 오늘 오후의 여유는 또다시 몇달이 지나야 볼 수 있는 동생과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흐르는 물, 파란 하늘, 그리고 산... 그 속에서 동생과 보낸 오늘 하루 오후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저를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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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봄을 알리는 징후가 우후준순처럼 솟아나는 날, 비나리마을의 새 주민이 된 와우네, 산이네, 그리고 저희 부부가 함께 운곡천을 걸었습니다. 삼동 가는 국도 다리 밑에 자리한 명호정미소 앞에서 먼저 온 가족이 행여나 늦게 도착할 도반을 기다렸습니다. 출발예정시간인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 같이하기로 했지만 오지 않는 분들께 확인 전화를 하고 운곡천변 길을 따라 걸음을 시작했습니다..

 

국도가 지나는 콘크리트 다리 밑을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운곡천은 원시의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반깁니다. 두어 사람이 같이 걸을 수 있을 폭의 흙길과 큰물이 나도 다 받아줄 것 같은 펑퍼짐한 물길이 나란히 기대어 흐릅니다. 장난스런 물길이 만들었을 모래밭에 갈대가 자라고, 길과 산이 만나는 언덕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지난 세월 갖가지 물굽이를 지켜봤을 굽은 소나무 두어 그루가 길을 따라 흐르는 물길을 들여다봅니다. 강바닥에 누워있는 형형색색의 해맑은 자갈들이 아침햇살에 뒤척이고, 밤새 숨죽였을 강물이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합니다. 물길을 산을 피해 강을 열었지만 무거운 몸을 피하지 못한 바위는 오랜 세월 물길에 씻겨 새 얼굴을 얻었습니다. 무심코 지나는 발길을 동행의 외치는 소리에 멈췄습니다." 스크림이다!" 물살은 세월과 공동 작업으로 뭉크의 스크림을 창조했습니다. 아니면 뭉크가 '스크림'을 그리기 전에 언제 이 바위 곁을 지나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상에 어떤 예술도 자연 앞에 초라합니다.

운곡천을 걷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 매력에 빠져들고 어느 순간 운곡천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름 모를 물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너는 왜 이 길을 걷는지 물새가 묻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쫒아 세상의 온갖 편리를 다 누리고 그것도 부족해 또 원시의 자연마저 누리려드는 인간의 욕심은 끝간 데가 없습니다. 원시적 생태 그대로 놓아두기에 뭐가 그리 아까운지 꼭 사람의 손길을 보태 [생태공원]이라 이름지어야하고, 더 끔찍하게는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하나로 청정한 산하를 인간 욕망의 배설물인 갖가지 폐기물의 매립장으로 이용합니다. 한 때 강을 따라 사람이 살았고, 지금은 그 흔적만 길로 남아 드물게 찾는 사람을 반기고 있지만 이 아름다운 운곡천에 언제 개발의 삽질이 시작될까 두렵습니다. 물살이 강을 열고 강을 따라 사람이 들어오면서 길이 생기고,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문명의 편리가 부르는 도시로 사람들은 떠나갔지만 언제 다시 사람들은 포클레인을 앞세우고 이곳 운곡천을 점령해 들어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운곡천 산업폐기물 처리장 설치 시도를 명호면 지역주민들이 함께 저지할 수 있었지만, 자본의 힘은 강하고, 그 생명을 끈질겨 언제 다시 개발의 기치아래 물밀듯 운곡천을 점령해 들어올 지 알 수 없습니다.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마주친 민가가 명호양어장입니다. 출입을 삼가라는 팻말을 남겨놓고 외출중인 주인에게 전화를 걸고, 주인 없는 집 마당을 가로 질러 운곡천 길을 이어갑니다. 주인없는 집 마당 한편의 물웅덩이에는 맑은 하늘이 가득 담기고, 온갖 모양의 구름들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다녀갑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의 터전도 만나게 되지만 운곡천을 따라 걷다보면 강을 따라 사람들이 살았던 옛 흔적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가시고,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해 쓰러져 가는 폐가가 낯선 사람들을 반깁니다. 잡초가 무성한 마당 한구석에 아직도 남아있는 살림살이의 흔적들이 기울어 가는 저 집 기둥이 반듯이 지붕을 이고, 그 아래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한 지난 한때의 살가운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저 지붕아래 아기 울음소리 가득하고, 어머니가 끓이는 된장국 냄새가 석양지는 하늘로 피어오르는 시간, 멀리 온종일 밭을 갈다 돌아오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농토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운곡천이 지나는 이 좁은 골에 그분들은 어떻게 가족을 먹이고 살아갔을까 궁금했는데, 천에서 머지않은 곳에 금광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몇몇 폐가가 작은 동네를 이루다 시피 흩어져 있고 산같이 막아선 자갈 더미는 모두 한 때 이곳이 금을 쫒아 들어온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한 시절, 한 가족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을 항아리들이 폐가의 한 켠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가고 빈 항아리만 나뒹구는 폐가의 마당에도 봄 햇살을 가득합니다. 그 언젠가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을 위한 밥을, 소수의 사람에게 부를 가져다주었을 금광의 흔적이 이렇게 완연한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몇 년 전 폐광의 침출수로 운곡천이 중금속오염으로 몸살을 앓자 많은 예산을 들여 침출수 방지 처리를 했다고 합니다. 아직 폐광의 흔적을 지우기에는 세월의 경륜이 부족한지 폐광 근처에는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돌을 갈고 금을 모았을 무쇠덩어리 기계가 다 삭아 자취를 감출 만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맑은 생명수가 흐르는 운곡천을 상상해 봅니다.

강길을 걷기 시작한지 두어 시간 만에 사미정 계곡근처까지 당도를 했습니다. 사미정 계곡 첫 집이 보이는 바위위에서 아침 일찍 서둘러 싸온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강과 산이 너무 가까이 만나 길이 끓어진 곳에서 어렵고 위험한 곳을 피해 겨우 강을 건넜습니다. 여차하면 아직은 차가운 강물에 풍덩 빠져 버릴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강 건너기는 이날 하루 걷기의 최고 이벤트였습니다. 다시 강은 길을 되찾고 우리의 걸음은 빨라졌습니다. 잠시 강길을 벗어나 아스팔트 포장을 따라 언덕을 오르고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멀지않은 '나무피리요술피리'농원엘 들렀습니다. 불시에 들이닥친 우리는 주인장이신 조성용 김연희 부부를 만나 맛난 차를 얻어 마시고 지역문화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이들 부부의 '음악정원 만들기'계획에 대해 듣고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머지않아 '음악정원'의 풀을 뜯을 염소 한 마리가 사람들의 발길이 붐빌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나무피리 요술피리' 음악정원을 떠나 다하지 못한 운곡천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사미정을 지나 사미정계곡 입구에서 국도변버스정류장에 도착해보니 오후 4시 40여분, 농사일에 바쁜 어르신께 차 시간을 여쭈어 보니 5시 15분경 버스가 오긴 하는데 우리가 돌아가야 할 명호로 가는 차인지는 알 수 없답니다. 오늘 하루 지난 시간을 음미하며 담소를 나누며 서서히 땀이 식고 한기를 느끼기 시작할 무렵 버스가 도착했지만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인 춘양으로 돌아나가는 차랍니다. 결국 농사일에 바쁜 이웃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또 한대 오고 다행히 명호를 간다기에 무조건 올라탔습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다시 전화를 했지만 부지런한 이웃 청년은 벌써 차를 몰고 사미정 계곡입구 근처까지 오고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운곡천 강길 걷기로 보낸 하루는 삶의 애틋함과 자연의 숭고함을 나누고 이웃의 정마저 담뿍 느낄 수 있었던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산을 비켜 강이 생기고 세월을 겪으며 강줄기를 넓혀왔을 운곡천을 따라 봄바람 맞으며 정겨운 분들과 같이 걸을 행복한 봄날의 하루는 오랜 동안 저의 기억에 남아 그리움으로 익어갈 것입니다.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등반 후 청량산이나 명호면 소재지 인근에 있는 민박집에서 1박 후 명호면 도천리 삼동다리 밑에서 운곡천 걷기 시작, 운곡천을 따라 3~4시간 약 15km를 걸으면 사미정에 도착, 명호에 승용차를 두고 걷기에 나선 경우 35번 국도를 따라 약 4시간 15km에 이르는 삼동 고갯길을 지나 출발지로 돌아온다.

가벼운 걷기로 마무리하실 분은 사미정 계곡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거나, 숙박지의 차량 지원을 받아 명호로 돌아온다.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기에 나선 분은 명호에서 사미정까지 걸은 뒤, 다시 춘양까지 2시간 약 10km를 걸어가 춘양면 소재지를 둘러보고 만산고택이나 민박집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태백으로 이어지는 외씨버선길 걷기에 나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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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면민의 단합된 의지로 우리의 젖줄 운곡천을 지켜내었습니다.

아직 최종단계에서 반려된 것이 아니지만

해당 지자체인 봉화군에서 반려의견을 제출했고,

이에 따라 대구지방환경청도 지자체의 의견을 존중하여

반려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완전히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일부 주민을 편가르고 회유하여

생명의 강 운곡천에 폐기물매립장 설치를 획책할지

두눈 부릅뜨고 감시해야만 합니다.

이번 투쟁은 선거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터져나와

의외로 쉽게 승리를 한지도 모릅니다.

지자체나 군의회, 도의회 할 것없이 누구도 지역민의 분노를 사는

운곡천 폐기물매립장 설치를 묵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폐기물 회사 측은 그런 선거철의 어수선함을 노려 매립장 설치를 시도했다가

의외의 주민 반발에 한발 물러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민이 찬성할 경우'라는 제한된 여지를 열어두고 반려된 이번 사업계획서는

언제라도 새로운 불씨로 살아날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치 주민의 깨어있는 의식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승리는 운곡천 산업폐기물매립장 저지 투쟁위원회에 참여하신

각 단체와 주민개개인의 의지와 헌신의 결과입니다.

또한 이번 투쟁은 명호면민의 저력과 생태환경에 대한 애착,

나아가 속깊은 애향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값진 투쟁이었습니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각 기사에 댓글이라도 달아. 기사를 써주신 기자님들께

우리 지역현안을 알려주심에 고마운 뜻을 표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봉화 명호면 폐기물매립장 백지화 전망 <경북일보> 4월8일기사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482728&news_area=040&news_divide=&news_local=&effect=&page=

"봉화 육봉은어 서식지 오염될라"
명호면 주민들, 폐기물 처리장 건설 추진에 강력 반발 <경북일보> 4월1일기사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481666&news_area=040

봉화 대형폐기물 매립장 건립 백지화 <영남일보> 4월7일기사

http://www.yeongnam.com/yeongnam/html/yeongnamdaily/society/article.shtml?id=20100407.010120754220001

청정지역에 봉화 명호면에 웬 폐기물 매립장? <매일신문>3월30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3439&yy=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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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봉화군 명호면 면사무소옆 광장에서
명호면민이 다 모여 운곡천 산업쳬기물처리장
설치 반대투쟁 집회를 열었습니다.
살다보니 집회도 참석을 다 해본다는 분부터
사람모인 곳이면 어디든지 얼굴을 내미는
지방선거 예비입후보자들까지
모두 한뜻으로 '결사반대!"를 외치며 명호면민의
산폐장 설치 반대 의지를 만천하에 떨쳤습니다.

30여년전 농민회 집회에 참석해보셨다는 어르신 몇분을 빼고는
평생 데모라고는 한번도 참여하거나 본적도 없는 주민이 대부분이었지만
오늘 집회의 열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빗줄기가 이어지고 바람까지 부는 춥고 어설픈 날이었지만
집회예정 시간 2시간 전부터
명호면 조기축구회나 방범대, 자율소방대 청년회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명호의 건각인 청년회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미리 맞춰 둔  플앵카드를 걸고 천막을 치고
비옷과 머리띠 등 집회용품을 준비했습니다.

처음에 광장은 비바람만 가득하고 사람의 발길이 드물었지만
집회 예정 시간인  오후 2시가 다가오자
광장이 비좁을 만치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집회는 명호면 이장단협의 정광용회장님의 경과보고에 이어
강순성 위원장님의 대회사에 이어 명호주민의 자유발언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유발언에는 먼저 명호면 전이장단협의회 회장이신 김낙현님의 감동적인 발언과
윤길학 비나리마을 주민, 봉화농업 경영인회연합회장 안순구님의 발언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 모두 가슴에 맺힌 분노를 전체 주민과 뜨겁게 나누며 우리의 투쟁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이어서 명호청량조기회 신주용회장님의 결의문 낭독이 이어지고,
명호면 자율방법대장이신 금동윤회장님의 구호제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호 풍물패의 공연으로 오늘의 집회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집회를 통해 많은 것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운곡천 산업폐기장 설치에 대한 명호면 주민의 피끓는 분노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명호면에는 깨어있는 주민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명호면의 청년들이 얼마나  지역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봉사정신과 책임감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집회를 준비하신 강순성위원장님, 이태봉 사무국장님,
부회장단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비가 오는 중에도 집회장을 지키며 끝까지
운곡천 산업폐기물 매립장 설치 반대 투쟁의지를
모아주신 명호주민여러분이 계신한
우리는 기필코 저지에 성공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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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2시에 봉화군 명호면 면사무소옆 광장에서
신업폐기물매립장 설치 반대투쟁 결의대회가 있습니다.
그 투쟁 집회를 준비하면서 과연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쉽지 않은 싸움입니다.
많은 경우, 주민을 대상으로 갖가지 방법으로 개별 설득하고
주민을 갈라 주민간의 싸움으로 변질시켜
주민들이 스스로 지쳐 떨어져 나가게 하는
개발론자들의 악랄한 수법은 현실에서 더 잘 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싸움을 준비하는데 그들은 벌써
지역 주민들을 일대일로 만나
설득작업을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난개발을 반대하는 대부분 주민은 생업에 쫒겨 시간도 부족하고,
집회다 선전전이다 하면 쫒아다니기엔 금전적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돈을 쥐고 관청의 지원으로 받으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개발지상주의자들의 계략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인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온 국토를 파괴하는 4대강사업이 대표적인 경우이듯이
그들이 막무가내 포크레인을 온국토에 들이밀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그런 무지막지가 통하는 것은 또한 우리 국민의 물질지향적이고
개발지상주의적 인식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봉화군 명호면 운곡천 지역의  방폐장 설치 반대투쟁은 결코 비관하지 않습니다.
최근들어 우리사회에 워낙 황당한 일이 많긴하지만
명호면의 많은 주민들이 보이는 반응은 똑같습니다.
"설마 낙동강 상류인 운곡천에 산업페기물 매립장을 허가해 줄려고?" 
그만치 특별한 환경주의자나 환경운동가가 아닌 사람에게도
이 사업은 이해가 되지 않는 사업이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명호지역은 젊고 올곧은 가치를 지향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누구보다도 앞장서 우리지역의 환경을 지키고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는 일에 솔선수범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이런 싸움을 하게되면
싸움에져도 문제고, 싸움에 이겨도 그 휴유증이
지역의 인심을 가르고,
주민간의 불신과 증오를 키우기도 합니다.
사실 이점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피해갈 수 있는 싸움이 아니기때문에
우리는 산업폐기물매립장으로부터
생명의 젖줄인 운곡천을 비켜내고야 말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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