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늦게 눈을 떴지만 어제와 다른 도시의 분위기가 창으로 전해졌다. 먼저 가까이 타멜거리를 울려대던 택시의 클락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도시의 하루를 준비하는 분주한 발길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군중들이 외침이 느리게 전해져 왔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짐을 싼뒤 카트만두에서의 마지막 반나절을 누리기 위해 방을 나섰다.

숙소 로비에 내려가니 오늘 카트만두는 총파업중이라고 했다. 모든 택시와 버스가 운행을 중단하니 평소보다 두어시간 서둘러 공항으로 향해라고 했다. 오후 3시 40분에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을 이륙, 한국시간 26일 새벽 1시에 인천에 도착예정이니 타멜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나갈려든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일단은 상황을 살피러 타멜거리를 나섰다. 지금가지 봐왔던 타멜거리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우릴 맞았다. 차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식당이며 선물가게며 조그만 구멍가게까지 문을 연곳이 단 한군데도 보이질 않았다. 간혹 릭샤라는 인력거가 지나가곤 했지만 타멜거리는 평소의 번잡함이 싹 가쉰 말쑥한 얼굴이었다. 타멜을 빠져나와 멀리 시위대의 구호가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잡았다. 대로로 나서자 무장경관들이 군데군데 나와있었고 멀리 한무리의 시위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냅다달려 시위대 근처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상황을 살폈지만 도대체 저들이 무슨 요구를 걸고 시위를 하는지 도무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두세 무리의 시위대가 여러방향에서 나와 사거리에서 집결해 더 큰 무리를 이뤄 타멜 외곽을 돌아 왕궁쪽으로 행진을 계속했다. 도로에는 간혹 군경을 싣을 트럭과 엠블란스가 싸이렌을 울리며 지나갈 뿐 거리는 차를 대신해 시위대와 시민이 차지하고 있었다. 차로부터 해방된 도로를 걸으니 이유를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나의 가슴에도 벅차올랐다. 시위대를 마냥 따라갈 수도 없었고, 오늘 카트만두의 상황을 살펴보고 택시나 버스없이 공항으로 나갈 방법도 알아볼 겸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의 스텝이 전한 이야기로는 오늘 시위가 석유값 폭등에 따라 생활이 어렵게 된 운전자 노조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있다고 했다. 네팔은 모든 노동자조직, 시민조직, 기타 단체들이 잘 조직되어 있는데 이번 이슈에 동조해 전국적인 총파업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오전 동안 카트만두 시내를 더 돌아다닐려고 했던 계획은 물건너갔고 어떻게 안전하게 공항으로 달려갈 것인가가 문제가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텝이야기로는 총파업은 일상적인 사건에 불과하고, 여행자들은 위해서는 별도의 셔틀버스가 운행되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타멜초크 지나 어제 방문했던 '꿈의 궁전'근처에 가면 타멜과 공항사이를 운행하는 임시 셔틀버스가 거의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는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걸어서라도 갈 수 있을 만치 넉넉한 시간을 두고 공항으로 갈 방법을 찾으려고 했는데 이외로 쉬운 해결책이 있어 안도했다. 그렇지만 교통수단이 없고, 모든 가게며 관공서 공원까지도 문을 닫은 카트만두 시내를 둘러 볼만한 흥도 나지 않았고 또 혹시나 하는 일말의 불안감 때문에 최대한 빨리 공항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셔틀버스가 정차한다는 타멜입구쪽으로 가니 벌써 여행자들이 배낭을 매고 끌고 불안한 표정으로 몰려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수십명의 무장경관들이 무료한 표정으로 거리를 지키고 있었고 멀리 시위대의 함성이 간간히 들려오기도 하는 타멜입구는 평소의 번잡함이 사라져 오히려 공기도 맑고 햇살도 투명해 더 평화롭게 느껴졌다. 일시에 외국인 여행객들이 몰려들어 조금 어수선해지기 시작할 무렵 [투어리스트 버스]가 도착했다. 한대의 버스가 떠난뒤 또 한참을 지난뒤 두번째 버스가 도착했을 때 우리부부도 잽싸게 줄을 서고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는 3명의 무장경관이 동승해 시위대가 점거한 거리를 살피며 버스를 호위했다. 버스는 시위대가 막아선 길을 피하기 위해선지 아니면 또 다른 호텔에서 외국인을 싣기위해선지 큰길을 피해 골목같은 우회로로 돌아 몇번을 정차해 승객을 더 싣은 뒤 공항에 도착했다.

트리뷰반 공항은 삼엄한 경비속에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1층 로비에 들어가기 위해서 먼저 여권을 검사하고, 1층에서 발권뒤 탑승구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트 앞에서 또 무장경관이 여권과 항공권을 검사했다. 1층로비에서 안나푸르나 라운드 때 차메에서 만났던 학생 커플을 반갑게 만나 같이 햄버거로 아침을 떼웠지만 공항청사안에는 제대로된 식당도 매점도 없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공항에 도착하는 바람에 서너시간을 공항 청사안에서 지내야만 했다. 청사안은 일반적인 국제공항에 비해 좁고 빈약해서 별다른 놀거리가 없었다. 시골의 버스터미날 수준의 조그만한 매점에서 사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맛없는 햄버거가 거의 전부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발권을 하고 승강구가 있는 청사 2층으로 올라갔다. 조금 더 큰 매점과 레스토랑 그리고 선물을 살 수 있는 가게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돈을 쓸 일이 없었다. 쓰고 남은 네팔돈을 기부받는 함이 2개 있었는데 한개는 적십자가 그려져 있었고 또 한개는 무종교를 표방한 기부함이었다. '신없는 성덕'을 꿈꾸는 나는 무종교를 표방한 함에 남은 네팔 돈을 넣었다. 공항에서 만난 한국인 모녀여행객으로부터 여행사에서 제공한 도시락을 얻어 먹고 청사안을 수십바퀴를 돈 뒤에나 비행기에 올라 한국으로 향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카트만두 상공으로 솟아오르자 멀리 우리가 걸었던 안나푸르나와 함께 에레레스트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마음을 흔들었다. 살아생전에 꼭 하고 싶었던 어떤 일을 끝낸것 같은 성취감이 아니라 안나푸르나에서 보낸 시간과 그 시간속에서 보낸 나의 삶을 놓아두고 떠나는 아쉬움이 밀물같이 몰려왔다. 멀리 사라져가는 히말라야 산맥을 바라다보며 살아온 날에 대한 고마움과 살아갈 날에 대한 희망을 되새기며 얇은 잠에 빠져들었다.

반응형
반응형


 

여러번 잠이 깼다. 새벽 일찍 서둘러야하는데 혹시라도 늦잠을 잘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 포카라에서 마지막 보내는 밤이 많이 아쉽기도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서둘러 짐을 쌌다. 호텔비 아까워 핫샤워를 하고 6시에 로비에 내려가 다이닝 룸에 앉았다. 곧바로 아침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짧은 네팔 여행 경험상 예약을 해도 시간이 되기 전에 미리 좌석을 차지하고 있어야 제시간에 음식이 나왔기 때문에 오늘은 미리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6시 30분이 넘어서야 음식이 나왔다. 먹는둥 마는둥 허겁지겁 허기를 속이고 체크아웃을 하고 투어리스트 버스파크로 뛰다시피 걷기 시작했다. 택시비 200루피 아끼려고 새벽부터 강행군을 한 것은 아니지만 중간에 택시를 잡으려니 택시도 없고 또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7시까지 꼭 도착해야 된다던 매표소 직원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무거운 배낭에도 아랑곳 없이 땀이 나도록 뛰어 정각 7시에 버스 파크에 도착했다. 

버스파크에는 벌써 사람들이 붐비고 대형 버스들이 10여대 줄줄이 서있는데 그중에 우리가 탈 BABA버스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버스들 대부분은 겉으로 봐서 멀쩡해 보였고, 일부만 로컬버스처럼 지붕에 짐을 싣고 사람이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었다. BABA라는 국영 회사의 투어리스트 버스는 원래 여행객 전용버스로 포카라에서 카트만두까지 운행하는  최고 비싼 버스였다. 1일당 18불에 물과 점심이 제공되는  바바버스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투어리스트보다 네팔리 승객이 훨씬 많았다. 어떤 자료에서는 15불짜리 민간 투어리스트 버스가 훨씬 써비스가 좋다고 되어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네팔 정부를 더 믿고 싶었다.

7시간 가까이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말이 고속도로지 거의 내가 사는 봉화의 군도보다 못한 포장 상태에 소와 염소, 개와 오토바이가 수시로 길을 막고 군데군데 포장이 부서져 비포장길이나 진배없는 산길을 꼬불꼬불 달렸다. 그래도 버스비 값어치를 하는지 급가속이나 급제동, 위험한 추월없이 편안한 운전을 하는 기사덕에 마음 편안해서 좋았다. 출발한지 1시간 조금 지나 한 휴계소에 들러 잠시 쉬다가 다시 달려 11시 30분 정도에 한가로운 마르샹디 강가의 한 레스토랑에 서 맛있고 충분한 점심을 먹었다.  2시가 넘어 버스는 S자 오르막 길을 한참 오른 뒤에 카트만두 검문소를 통과했다.

그때부터 모든 게 카트만두다워졌다. 도로는 먼지와 쓰레기 투성이고 거기다가 교통체증까지 겹쳐졌다.  도시 외꽉의 굴뚝들은 거의 대부분 붉은 벽돌을 굽는 공장들로 보였는데 굴뚝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이국스러움을 더했다. 막히는 길을 힘겹게 비집고 버스는 타멜근처의 투어리스트 버스파크에 도착했다. 버스를 내리자 마자 처음 포카라에 도착했을 때 처럼 택시와 호텔 삐끼들이 몰려와 혼줄을 빼어 놓았다. 그러나 한번 당하지 두번 당할 수는 없는 일, 냉정하게 바로 여기가 목적지고 예약해 놓은 호텔이 있다고 시치미를 떼고 유유히 타멜거리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타멜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메고 두세번을 묻고, 다시 타멜거리에서 예정했던 네팔짱이라는 숙소를 찾기 위해 또 한참을 거리를 헤메고 너댓번은 더 물어야했다. 먼저 기준지점인 타멜쵸크를 찾고 근무중인 경찰과 군인들의 길안내로 가까스레 네팔짱에 도착했다.

룸 챠지가 하루 350루피 한국돈으로 5000원인 셈인데, 싼 만치 시설은 형편없었다. 그래도 다른 호텔을 찾아 나서기에는 피곤하기도 했고 남은 경비도 조금 불안하기도 해서 그냥 짐을 풀었다. 다시 거리로 나와 릭샤와 택시, 네팔리와 외국인 여행객들로 붐비는 카트만두의 중심 타멜거리를 헤메기 시작했다. 여행사와 장비가게, 환전소, 호테르 식당, 각종 기념품 선물가게가 줄줄이 들어선 타멜거리는 그야말로 여행객의 해방구 같은 그런 분위기 였다. 여행객에게 필요한 모든 물품과 서비스가 있고, 모든 것이 여행객에게 맞춰져 있는 거리,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의 절반은 여행객이고 모두가 여행객을 통해 먹고사는 거리, 여행객의 요구가 곧 법이 되는 거리가 타멜이었다.  릭샤를 끄시는 한분이 우리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릭샤를 타라고 끊질기게 요구하자 멀리서 경찰이 다가와 바로 제지했다.

타멜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우리 포터 파샹이 근무한다는 J.Vill을 찾아 나서는 일이었다. 하지만 허탕을 쳤다. 지도를 보고, 네팔리들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J.Vill은 쉬 찾을 수 없었다. 작은 여행사기도 했지만 워낙 길이 복잡해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 3일이나 일정이 남은 상태라 선물을 구입하기도 이른것 같아 이 가게 저가게를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다가 저녁을 맞았다. 저녁은 'Food Bazar'라는 팝송이 흐르고 네팔의 젊은이들이 찾는 듯한 '현대적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 탄도리'라고 하는 장작으로 구운 닭고기와 맥주을 마시고 카트만두에 들어온 첫날의 하루를 접었다. 이밤 모든 생명가진 것들의 평온을 빌며  네팔짱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