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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피자를 먹고 830 마르샹디 만다라 호텔을 출발했다. 마을이 아침 추위에 얼어붙어 있는 시간, 멀리 산정은 눈부신 햇살로 깨어나고 있었다. 차메를 벗어나면서 아내와 그리고 다시 퍄상과 기념 사진을 찍고 눈 쌓인 침엽수 숲길로 접어 들었다. 눈다운 눈이 쌓여있는 지대로 접어드니 길을 걷는 느낌이 색다르다. 고개는 자꾸 아래로 향한다. 쌓인 눈을 보고,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깍아 만든 조랑말 길을 걸었다. 다시 숲을 만나니 '설국' '닥터지바고'의 장면들이 뜬금없이 기억났다. 숲 속에서 만난 눈은 마당이나 길에서 만나던 눈과 기억을 되살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달랐다. 그냥 이렇게 눈 덮인 숲 속을 하루 종일 헤매도 지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정대로라면 점심을 브라탕에서 먹고 오후 일찍 처음으로 3,000m이상 고산지대 마을인 피상에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여정이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기만 한다면 여행의 묘미는 반감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을 먹기로 한 브라탕에는 영업을 하고 있는 롯지가 하나도 없었다. 아니 마을에는 한 명의 주민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 폭설에 영업은 고사하고 자신이 먹을 양식을 조달 받는 것 조차 힘든 상황일 것이다. 겨울 한철 산을 내려와 배를 채우고 체온을 보전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고스란히 겨울을 나기에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겨울 동안 집을 떠나 목숨을 부지하는 일은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 없는 생존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겨울 비수기... 생존마저 쉽지 않은 주민들은 아이를 앞세우고 최소한의 살림만 챙겨 하산을 한다. 마을은 비고 혹 지나는 트레커만 마을에 인기척을 남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네팔리들이 떠난 자리에 왜 문명을 자랑하는 선진국(!)의 호사로운 트레커들이 발길을 디미는지...

 


브라탕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계획은 깨어지고 다시 길을 걸었다. 파샹은 하산중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선 다음 마을인 디쿠르 포카리에 문은 연 롯지가 하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브라탕에 도착할 때는 고프지도 않던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고, 괜히 조갑증이 들었지만 다행히 디쿠르 포카리까지 가는 길은 완만하고 그리 길지 않았다. 오후 1가 조금 넘어 디쿠르 포카리에 도착했다. 디쿠르 포카리에서 먹은 식사는 최악이었다. 식재료가 넉넉하지도 않았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트레커들에게 충분한 질의 음식을 서비스할 이유도 없었는가 보다. 달밧의 밥은 식은 밥을 다시 뎁힌 것이 분명해 보였고, 따라 나오는 찬들도 부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배가 고팠다는 사실이지만 결국 다시 길을 떠나는 즈음에 포터들이 롯지 주인에게 항의하는 사단이 났다. 거기다가 메뉴에다가 스티커로 붙여 올린 가격을 적어놓은 것도 문제가 되었다고, 먼저 출발한 우리에게 뒤에 출발해 다시 만난 트렉커들이 알려주었다. 어차피 한번 스쳐 지나가는 길인데 우리는 실망할 것도 서운한 것도 없었지만 늘상 다녀야 되는 포터들에겐 롯지의 그런 처사가 참기 어려웠나 보다.



불불레서부터 차메까지는 다른 동행 없이 우리부부만 걸었는데, 오늘 처음 차메에서 만난 트레커들과 동행이 되었다. 특수학교 선생님이신 학국인 여성분, 인도에서 왔다는 한국 청년, 제주에서 왔다는 한국 여학생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벗이 되었고, 차메의 롯지에서 만난 호주인과 이번 여정에서 제일 처음으로 만났던 독인인들도 그룹이 되어 조금은 위험해져 가는 눈길을 같이 걸었다. 혹시라도 시야에서 멀어지면 잘 오고 있는지 뒤돌아보게 되고, 앞서가다 쉬고 있을 때 도착하기라도 하면 서로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는 관계만으로도 여정의 피로가 줄고 낯설고 깊은 숲이 주는 무서움도 잊을 수 있었다.


디쿠르 포카리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후 3 30, 목적지인 피상에 도착했다. 드디어 처음으로 3,000m 고지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피상은 Upper Pisang Low Pisang으로 나누어져 있는 제법 큰 마을인데 동행 중 한 분만 Upper Pisang으로 올라가고 나머지 모두는 Low Pisang Tilicho Hotel에 짐을 풀었다. 듣기로는 오래 전부터 적기가 휘날리고 있었다는 겨울 피상은 인적마저 드물어 활기라곤 없었다. 멀리 Upper Pisang에서 내려다 보는 마을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일찍 짐을 푼 한국 청년은 Upper Pisang까지 산책을 다녀와서 전해주었다. 우리 부부는 추위에 쫒겨 가까운 마을 길만 잠깐 산책하고 돌아왔다. 내려다보는 마을 풍광이 아름답다고는 했지만 올려다보는 마을풍경 역시 너무나 아름다웠다.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풀이 돋고 아이들이 골목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계절이 오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생각하니 언제 다시 한번 더 오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바깥 추위를 듬뿍 안고 다이닝 룸으로 들어섰다. 롯지 주인은 다이닝 룸에 막 난로를 피우고 있었다. 차메서 부터 롯지에 난로를 피우기 시작했는데, 고도가 높아지는 그만치 추워지고 또 트레커의 밀도가 높아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다이닝 룸에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낯설진 않지만 아직은 서먹한 사람들과 하나의 난로를 사이에 두고 둘러 앉았다. 호주인 3, 독일인 3명 그리고 우리 부부를 포함한 한국인 5명이 둘러앉았다. 한국인 사이에는 벌써 서먹함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한 외국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호주인 3명은 부자 지간이라고 했다. 1995년에 왔던 트레킹의 기억을 아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장성한 두 아들과 함께 다시 안나푸르나를 찾았단다. 독인인은 두 형제와 아우의 아내 사이인데, 형은 이번이 9번째 네팔 여행이라고 했다. 동생과 제수씨는 첫 안나푸르나 여행인데 형의 권유로 동행하게 되었단다.


각자의 여행 동기는 다르겠지만 롯지의 난로가에 앉아 있는 서양인 트레커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책을 들었다는 것! 독인인 세분도 책을 읽고 있었지만 호주인 부자는 조금 색달랐다. 호주인 아버지는 톨스토이의 [안나카네리나]를 읽고 있었다. 두꺼운 책인데, 바로 그 책을 15여년 전 네팔 여행 때 들고 다니며 읽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확인이라도 하시듯 호주인 아버지는 책갈피에서 그때 받았던 영수증 하나를 찾아내어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엄마에게 내보일 때보다도 더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 뒤에 지난 세월 동안 쌓았을, 인생의 애환을 얼마나 많이 감추고 있을까? 그의 아내는 어떤 사람이고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왜 동행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세월 동안 그는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또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그 세월을 되돌아 보는 그의 마음에는 어떤 서정이 물들고 있을까? 모든 게 궁금했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큰아들은 [Empire: How Britain Made the Modern World]를 읽고 있었다. 제목만 들어도 골치가 찌근거리는 책을 트레킹의 동반자로 선택한 그의 취향이 유별나 보였다. 여행 때는 평소에 읽히지 않던 두꺼운 책을 들고 떠나라는 누군가의 조언이 생각났다. 그땐 그냥 우스개 소리로만 여겼는데 진짜 그는 그런 신조를 받드는 사람을 만난 셈이었다. 그리고 아우는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 좋았다.


난로가에 둘러앉아 모두 책을 읽고 있는 사이 이번 여정에 같이했다 티망에서 버린 [바가바드 기타]를 아쉬워 하며 나는 대책 없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나의 상념은 종횡무진 흐트러지고, 의식의 시간조차 무너졌다. 모든 기억의 직선과 곡선이 자신의 고도를 잃고 엉켜버렸다. 오직 책과 연관된 기억의 타래만이 끝없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공부에 완전히 흥을 잃고 밤새 읽던 책들, 결국 학교생활을 접고 방구석에 처박혀 읽어대던 책들, 그리고 정말 책을 읽어야 했던 대학시절 나태한 생활 속에서 간간히 잡았던 책들이 기억나면서 그 책들을 통해 접한 세상의 이야기들, 그 책을 통해 만들어나갔던 내 인생의 꿈들, 삶의 의미들을 반추했다.


책을 좋아하던 소년 시절, 책이 열었던 새로운 세계에 매혹되었고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어른의 눈으로 꼭 다시 읽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세월에 침식된 기억은 다시 읽고 싶었던 책들의 목록마저 깡그리 잊어 버렸다. 누구나 한번쯤 읽고 던져버렸을 [이방인]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고 있는 사람과 마주앉아 나는 그 책을 읽던 소년의 눈에 세상을 다시 둘러본다. 이제는 책과 거리가 먼 삶을 살면서 세상에는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는 핑계를 얻었다. 하지만 책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 조차 행하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늘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인식의 목마름은 회피할 수 없었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들고 있는 책을 보면서 나는 내 삶을 끌어가는 가치들을 되돌아보고 나의 사는 방식, 나의 세상에 대한 처신을 뒤돌아본다.



여행은 익숙한 것들과의 작별이란다, 물론 한시적이지만!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 자신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벗어나 멀리 있는 를 바라다 보고 싶었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시간 속에서 남은 상처, 편견, 편향, 나쁜 기억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여행기간 동안만이라도 나 자신을 놓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시간 자유로운가 스스로 묻는다. 낯선 길, 낯선 마을,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의 취향과 다른 음식을 먹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대화를 나누지만 잠시 잠깐 잊혀지는 익숙한 일상은 늘 나의 뇌리를 따라다닌다. 그나마 한정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다시 나의 익술한 삶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 준 환희의 기억을 가진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 집 떠나온지 9, 안나푸르나를 걷기 시작한지 6일이다. 이제 서서히 안나푸르나의 모든 것에 익숙해 지고 있다.


호사로운 여정이다. 포터 퍄상의 극진한 서비스와 걷고, 먹고, 놀고, 자는 하루의 일과가 길을 따라 이어진다. 벌써 6일째. 아직 이번 여행에 주어진 시간은 많다. 이제 쉰! 아직 네 인생에 주어진 시간도 많다. 이번 여행의 기회를 준 모든 사람, 모든 운명에 감사한다. 그리고 응당 세상을 향해 그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이지만, 우선은 나의 여정이 나의 아내, 나의 포터 그리고 숱하게 만난 트레커와 내가 거쳐 지나간 모든 마을, 모든 롯지의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 작은 기쁨, 한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는 같은 생명으로서의 연대감, 연민 같은 것이 남았으면 좋겠다. 관광객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나뒹구는 맥주 캔, 과자봉지, 담배꽁초, 그리고 무시당했다는 불쾌감, 욕망의 자극, 부러움이나 열등감, 시기심... 그런 나쁜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를 네팔리의 신, 티벳탄의 신들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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