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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을 받아 슬픈 경우도 있다.
봉화군 농민회 명호면지회를 재구성하자마자 전농으로 부터 표창을 받았다.
농업이 기울고, 농민이 줄고 그리고 그보다도
더 빠르게 농민회가 와해되어 왔기 때문일까,
100여개 시군농민회 중 5개 농민회가 표창을 받았는데
그 중 봉화군은 면지회 구성이 사유였다.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이 결성되고 나서,
농촌 공동체를 지키고 농업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투쟁해 왔지만  
농업의 붕괴와 농촌 공동체의 와해를 막아내는데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희망을 꺽지 않았다.

면지회 구성조건인 5명이상의 회원으로
봉화군농민회 명호지회를 만들려고 했는데
구성이 되자마자 10명이상이 가입을 하고
다시 스무명가까이 조직이 불어나게 되었다.

정부와 농협의 지원을 받는 많은 농업인 단체들이 있지만
많은 농민들은 한국 농업과 농촌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가는 약사들이 약사회에 가입하고,
변호사는 변호사회에 가입하듯이
농민이면 당연하게 농민회에 가입하여
농민의 이해를 관철하고 농촌공동체와 농업을
지켜나갈 수 있을 날이 올것이라 믿는다.

그 길로 나아가는 선봉에 봉화군 농민회 명호지회 깃발이
항상 휘날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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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년 10월10일 있은 경북농민대회를 다녀왔습니다.


올해 농산물이 비싸다고
농민이 돈을 벌고 부자가 된듯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 내내 이어진 장마로 농사비를 배로 늘고
수확은 반으로 줄었는데
그나마 다행스럽게
그네들이 신봉하는 시장원리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오른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오른 농산물 가격마저 못마땅한 현정권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이명박정권은  1%를 위한 경제 정책을 통해
국가 경제를 파탄내고 
급기야 물가폭등을 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마하고자 농산물 가격 상승이
 전체 물가 상승을 주도한양
여론몰이 끝에
돼지고기 수입에 항공료까지 보조해 주며

망국적 농산물 수입을 자행해 그나마 올랐던 농산물 가격마저
바닥으로 끌어내렸습니다.

흉년에 농산물 가격마저 없는 농촌은
연말에 닥칠 농자금 상환에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고,
농자재 외상값에 농자금 이자 그리고 아이들 등록금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바로 이를 때 정책적 구제에 나서야할 국가는 침묵하고 있고,
농민이 사회의 일원임을 애써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농민들은 경북도청으로 달려가
'재난지구'지정 등을 통한 지원을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고,  
농민의 사회적 기여도에 맞는 공정한(!) 정책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멀찌기 물대포를 세워놓고 로봇같은 무장 경찰로 애워싸고
우리의 목소리를 짓눌렀습니다.

늘 그렇듯 우리는 우리가 뜻을 같이하고 
없는 주머니 털어 버스 대절해서
같이 고함이라도 지를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며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경북농민대회에 참여하고나서
절망하지 않고, 오히러 즐거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같이한 이웃형님이 있고, 형수님이 있고,
아우가 있고 어르신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늘 지는 싸움을 해도 농민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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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끝나면 '이놈에 농사 다시는 안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웃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긴 겨울 휴식을 보내고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다가오면 너도 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작하는게 농사입니다. 농사가 업이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지만 농사가 가지는 묘한 중독성도 무시 못할 이유인 것 같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린다는 것의 의미는 경제 활동으로만 이해한 투자라는 개념과 조금은 다릅니다.
농부가 뿌리는 고추씨는 수확후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투자와는 다른, 안될 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숙명성 같은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항상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숙명처럼 돈 안되는 농사를 지어야되는 이웃 어르신의 삶이 솔직히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저 자신이 농사가 업이고 그래서 똑같이 가을이면 '이놈에 농사 때려치운다'고 떠들고 다니다가 이렇게 입춘이 지나고 집앞 개울에 얼음이 녹아 물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추 종자를 뭘로 할지, 농사 일정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스스로 선택한 삶에 대한 괜한 집착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농사를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농사를 통한 비젼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질 못합니다. 어떤 분들은 농촌공동체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폐해를 줄이거나 치유해줄 새로운 대안공동체로 받아들이고 귀농켐페인을 사회운동차원에서 수행하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생명을 다루는 농업이 가진 특성에  몰입해 자연파괴적이고 반생명적인 현대 산업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획으로 농업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연 농업을 넘어 도시농업으로 까지 농업의 영역을 확대하기도 하고, 농업의 산업 경쟁력보다는 경제적 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자연적 사회적 순기능에 촛점을 맞춰 농업을 이해합니다. 

생태주의자를 넘어 농업근분주의자에 가까운 분들의 많은 주장이 충분이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지만 평균적인 욕망을 가진 저같은 보통사람이 실천을 하기에는 어려운, 그래서 그런 분들을 존경을 하되 감히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냥 농사 짓는 일이 다른 직업에 비해 속박이 적고 자유스러울 뿐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이라서 선택한 것뿐입니다. 
사실 농업에 대한 수많은 가치부여는 어제 오늘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야'라고 하기도 하고 현대에 들어서는 '농업의 발전 정도는 선진국이 되는 척도'라는 등의 농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참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누구는 정치적 수사로 그런 좋은 말들을 들먹였지만, 또 어떤 분들은 진정으로 건실한 농업이 번성하고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담아 그럴 말씀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말들이 농업을 경시하는 세력이나 최소한 도시민을 향해 주장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경제적 문화적 소외로 고통받는 농민에 대한 위무용 립서비스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농민 스스로 그런 말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지 비소할 따름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농업, 자연과 환경에 순응하는 농업, 인간의 보다 고양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를 제공하는 농업, 인간을 지속가능한 삶으로 인도하는  농업... 사실 농업은 이 모든 위대한 가치를 포괄하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농업에 종사하는 저 자신의 삶에 대해 뿌듯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런 이데올로기만으로 농민을 농업에 묶어두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당하게 나는 농민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회적 보상체계가 만들어 지고,가업으로 자식에게 농업을 물려줄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마련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농민의 삶이 그런 가치있는 삶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2010년 봄, 14해째 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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