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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단편 소설선을 통해 그 사회의 문학, 나아가 문화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를 읽기 시작하면서 그와 같은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마주하고 서반어 문화권에 대한 일천한 지식에 기반한 막연한 동경과 이국 취향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감히 단편소설선” 한권을 통해 라틴의 역사 문화 그리고 문학을 통째로 맛보고 싶었다. 그것이 6권으로 이루어진 [창비 세계문학전집]중 제일 먼저 이 책을 고르게 한 유일한 이유다.

솔직히 나는 <미션>이라는 영화와 마르게스의 [백년동안의 고독] 그리고 미국에 예속된 군사 독재 정권의 폭정과  빅토르 하라의 음악 외에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따라서 이 책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가 담고 있는 10나라의 작가가 쓴 19편의 작품은 애당초 주제나 사조상의 분류를 통한 맥락적 이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각 작품의 역사적 배경이나 문학사적 이해 역시 나의 몫이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를 통해 한편 한편의 단편, 한명 한명의 작가를 날 것 그대로 마주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라틴문학에 대해 무지한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역자 김현균은 책의 앞뒤에 실린 <책을 엮으며>  <해설_지역주의와 세계주의, 이중의 유혹>을 통해 충분한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조차 없었다면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무려 19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이 책을 통해 나는 사실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덧붙여 각 작품의 작가에 대한 간략한 안내와 게제 작품에 대한 짤막한 해설, 각 작품의 끝에 <더 읽을거리>라는 안내글이 붙여져 있다. 이는 어찌 보면 이 책에 게제된 19명의 작가와 그의 대표 단편소설을 아우를 수 있는 식견을 갖춘 독자가 그리 흔지 않을 것이라는 역자의 판단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치 역자는 작품 선정에 고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라틴 문학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소심한 마음에 역자의 해설을 먼저 읽고 작품을 읽어 나가다 보니, 나의 책 읽기는 시대와 국경을 뛰어 넘는 각 작품을 나름대로 교차하는 몇가지 주/객관적 기준을 통해 분류하거나 서로 상반된 주제나 사조의 작품을 대조 비교하는 과정으로 나아갔다. 물론 여성주의, 혹은 환상적 리얼리즘 등과 같이 이미 주어진 분류에 따라 동일한 작품 군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이 아우르는 시대적, 지리적, 문화적 폭이 너무나 넓다보니 나의 노력은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차라리 라틴 문학 세계의 깊고 넓은 세계를 날것으로 직면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에 실린 작품을 읽어 보면, 그와 같은 라틴아메리카 문화적 이종교배와 이로 인해 산출된 다양한 양상의 정신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 세계에는 현대물질문명으로 인해 붕괴되는 목가적 삶을 그린 레오뽈도 알사스의 <안녕 꼬르데라>로 부터, 선진 문물이나 이국에 대해 경도된 취향을 주제로 한 루벤 다리오의 <중국여제의 죽음>이 있다. 또한 인간의 헛된 욕망과 악마성을 몽환적으로 그려낸 오사리오 끼로가의 <목 잘린 암탉>이 있는가 하면, 시간의 가역성을, 절대 시간의 공존성- 흘러가는 일직선의 시간이 아니라 공존하는 시간의 존재방식-을 묘사한 알레호 까르뻰띠에르의 <씨앗으로 돌아가는 여행> 이 있다. 하층민의 고통을 폐병으로 죽어가는 아이의 입을 통해 담담하게 묘사한 혜수스 페르난데스 산또스의 <까까머리>가 있는가 하면, 현대 문명으로 제거된  존재 세계의 신비성을 '마술적 사실주의'를 통해 회복시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거대한 날개가 달린 상늙은이>가 있다. 그뿐이 아니라 역자가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적 변방이라고 했던 여성적 감수성과 여성적 상상력을 '마술적 사실주의'를 통해 회복시켜주는 마리아 루이사 봄발 의 <나무>는 후안 까롤로스 오네띠의 <환영해, >과 또 다른 세계로 대척해 있다. <환영해, >은 밥과 로베르또로 분열된 자아가 시간에 의해 소모되어가는 인간 실존의 무력화를 통해 꿈도 희망도 없는 패배자로 자아를 확인하고 그 과정을 통해 화자와 동시에 화해하는 인간을 보여주지만, 가부장적 권위로부터 독립된 자아 찾기에 성공한 봄발의 <나무>의 여주인공 브리히다처럼 꿈에 부풀어 있지 않다. 홀리오 꼬르다사르의 <드러누운 밤>에서 죽음은 현실과 몽환 사이에 스며들어 그 둘을 분리 불가능하게 섞어 버리는 동시에 두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진리로 죽음의 승리를 보여준다면, 후안 룰포의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에서 죽음은 멕시코의 현실에서 갖는 죽음의 현실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폭력과 증오, 살인과 보복, 공포와 죄의식이 의식의 저변에서 지배하는 비극적인 존재방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에 실린 19편의 작품을 분류하거나 특정 사조로 가려내는 작업의 고통을 통해 그만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가 풍부하고, 짧은 문학사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성취라는 면에서 어떤 문화권보다도 압도적인 문학적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닺게 된다.  이 책은 그 풍부한 정치적, 철학적 스펙트럼상에 존재하는 작품들을 뭉텅그려 라틴문학 이런 것이다라는 모범 답안을 내놓지는 않는다단지 이 책을 엮고 옮긴 이는 이들 다양한 작품들의 저변에 흐르는 어떤 공통적 기반을 독자가 느껴 불수 있기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책을 통해 이해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풍속성을 기반으로해 민중적 삶의 현실을 이야기 하거나, 서구라는 식민 모국과의 관계에서 갖는 선망과 자기질시, 거역과 자기 긍정의 복잡한 알고리즘을 다 포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라틴 문학에는 구체적 현실속에서 모순적 현실에 저항하는 인간 군상이 있는가 하면, 몽환적 세계로 물러나 현실의 문제를 해소하는 인간 군상 역시 존재한다. 따라서 극도로 혼란스럽고, 양립불가능한 정신세계가 공존하는 라틴아메리카 정신문화의 저변에는 항상 '몽환적 의식'이 있어 이 극단들을 이어주는 것이 아닐까싶기도 한다. 사실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환상적 사실주의>가 그 지역성을 대표하는 개념인지, 아니면 다양한 사조의 하나를 뜻하는 지 나는 모른다. 단지 이책을 통해 이해한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세계는 하나의 사조가 아닌 지역문학의 특성으로 "환상 혹은 몽환"이라고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환상적 사실주의'라는 것이 바로 서구 문명의 정복이 라틴 아메리카인의 정신세계에  초래한 원초적 폭력성과 죄의식을 제어하고  치유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이식된 정복자의 문명과 학살당한 인디오의 문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되었을 양립 불가능한 것의 통합을 가능하도록 하는데 환상과 몽환이 요구되었을 곳이기 때문이다. 이 환상과 몽환이 바로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적 저변을 흐르는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자리잡고, 그 기반위에 양립부가능해 보이는 다양한 이념과 사조, 주제와 양식의 문학이 꽃 필 수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는 그와 같은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데 일정정도 성공한 책으로 보인다. 덤으로 애초에 이 책을 쥐면서 가졌던 라틴아메리카 문화, 정신 세계를 통채로 맛보고 싶었던 나의 욕구는 충족되었지만, 금새 더 큰 갈증으로 자라 나를 다음 독서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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