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일주일째 봉화군 등 4개 시군이 공동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외씨버선길]의 봉화구간 스토리 자원조사 일을 하고있다. 건성으로 지나치거나 찾아갔던 춘양면의 88번 도로를 따라 길 양쪽으로 형성된 촌락을 중심으로 설화나 민화, 혹은 기타 문화예술자원 그리고 자연 경관 자원등을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외씨버선길 봉화구간만의 색을 찾기위해 고심하고 있다. 스토리 자원이 될만한 아이템의 단순 수집작업은 그럭저럭 진행하고 있는데 그렇게 수집된 아이템을 정리하고 선별하여 길의 테마를 드러내줄 수 있는 스토리로 묶어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그저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는 재미에 이 일을 맡긴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기에는 여러가지로 역부족인게 사실이다. 짧은 기간, 작은 보수 그리고 더 짧은 식견!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일은 이미 맡았고 하여튼 진행되고 있으니 그냥 쭈욱 나가는 수밖에...

그래도 이 일이 주는 즐거움은 많다.  무심히 지나치던 차창밖의 작은 풍경들속으로 직접 걸어들어가 뜨겁게 만나는 기쁨. 인근에 살면서도 삶의 체바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생각만 있고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기쁨, 또 존재의 아름다움과 삶의 깊이를 전해주는 찰나의 느낌들과의 해후...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까지 작업 진행과정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성과는 무엇보다 영화감독 김기덕의 고향마을을 알게되고, 그의 생가터를 찾아가 다시 한번 그의 영화를, 그리고 산골아이에서 국제적인 영화감독으로 입신한 한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본 것이 아닐까싶다.

사실 김기덕 감독의 생가터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처와 그의 영화에 대해 그리고 최근 뉴스에 전해진 그의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새로 개설될 걷기길의 스토리자원 발굴 작업 중에 만난 그 였기에 나의 사고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을 낳은 산골마을만의 특별한 감수성 체험'어쩌고 저쩌고 하는 프로그램이나 '한국의 가장 영화의 한 장면같은 길' 혹은 '가장 영화찍기 좋은 길' 뭐 그딴 망상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뭏튼 한달여전 김기덕 김독이 후배들에게 배반당해 폐인이 다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고, 그리고 그 몇일뒤 다시 그 뉴스가 순전히 오보라는 기사 역시도 보았다. 개인의 삶을 무책임하고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는 기자들의 천박함에  놀아나고 싶지 않아서 가볍게 무시해 버린 기사였지만 김기덕의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계시고, 돌아가신 김기덕 감독의 부친과 친구되신다는 박세윤(84세) 할아버지가 그의 근황을 물어 올 때는 괜히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덕이 요즘도 영화찍나, 우째 지내는고? 참 대단한 상도 많이 탓제.... 뭐가카더라 그...'라고 말씀하실 때는 나도 모르게 '뭐 국제적인 영화상을 다안 받았니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이니더. 요즘도 열심히 영화 찍지예.' 라고 김기덕 감독을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기라도한 것처럼, 그의 삶을 두둔하고 지켜줘야한다는 듯이 대답하고 말았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 대부분을 본 처와 거의 보지 않은 나의 대화는 진전될 수 없었지만 마초적 감성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대한 통찰력과 미적 깊이가 있어 매력적인 영화감독이라는 처의 평에 머리를 끄덕거리며 다시 그의 영화를 보도록 하겠다고 마음먹어 보기도 하고, 그의 영화가 진실을 직시케 함으로써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여  높은 예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하는 면도 그렇고 학벌도 돈도 따라서 인맥도 없이 예술적 열정 하나로 영화감독으로서 최고의 반열에 오른 그의 삶이 가진 굴곡이 어쩌면 비빌 구석이라곤 한군데도 없이 우리 사회의 병폐의 근원이 되는 모든 금기들을 건드렸던  고 노무현대통령의 삶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나누면서 하루의 과업을 마무리 했다.

2004년 고향을 방문해 송이축제장에서 펜 싸인회도 하고 고향후배를 위한 강연도 했었다는 그는 몇몇 고향 분들에게 '자신'을 고향을 위해서라면 이용해도 좋다고 까지 말씀하셨다고하는데 그를 맞은 봉화는 그의 크기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도로변의 쌈지 공원을 '김기덕공원'으로 만들자던 젊은 지역 일꾼의 제안 마저 지역사회가 무시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걸 보면 참 씁쓸하기조차 하다.  
 
오직 그의 앞날에 큰 예술적 성취가 있기를 그리고 불온한 세상의 섭리에 맞서 그만의 멋진 세계를 구축해 내고 그러면서도 내내 행복한 한 개인의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기를 빈다. 

* 김기덕 감독의 고향집터를 알려주고 약도까지 그려주신 춘양목송이마을 곽진희 관리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김기덕 감독이 태어나고 초등학교까지 다녔던 봉화군 춘먕면 서벽리 마을 입구

김기덕 감독의 생가터를 가르켜주는 박세윤 할아버지.
 

김기덕 감독의 고향집은 헐리고 그 터는 사과나무가 심겨져있다.

김기덕 감독의 부친과 친구였다는 박세윤 할아버지와 기념사진 한컷!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