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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에서 인류보편의 속성에 대한 낡은 물음을 제기하고 새로운 방식의 답을 구한다. 사실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라는 질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기되어 왔던 낡은 질문이다. 정답은 선하거나 악하거나 아니면 백지상태라는 3가지 선택지 안에 있을 뿐이다. 어떤 답을 선택하든지 자유지만 왜 그와 같은 답을 선택했는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해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의 시도가 가지는 매력은 주장의 선명함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구하는 접근방식의 설실함에 있다. 필자는 종교적 신념이나 철학적 분석이 아니라 실증적 사료에 입각한다. 한축으로는 현재 인간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인간본성에 대한 악한 이해를 논박하고, 또 다른 한축으로는 인간의 선한 본성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현실 속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지를 실증한다. 따라서 필자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최종적 주장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실증적 논거에 대한 반박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독자로서 나는 그의 주장에 최종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지점이 있긴 하지만 구체적 실증에 대한 반박은 쉽지 않았다. 이것은 어쩌면 실증의 어려움에 기인할 것이다.

 

먼저 필자는 현대 문명이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전제 위에 구축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홉스의 인간관에 기반을 둔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과 마키아벨리 정치학이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철학적 사상적 기반이다. 구체적 현실을 보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 팽배하고 부정적 뉴스가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다 많이 영향을 받는 부정편향에 빠져있고, 넘쳐나는 부정적 뉴스에 묻혀 가용성 편향에 경도되어 있다. 이런 비관적인 견해는 기독교 초기 원죄개념 속에서도 드러난다. 원죄개념은 종교개혁 뒤에도 존속하고, 신앙보다 이성을 우위에 두는 계몽주의 사상에 그대로 계승된다. 인간을 살인자의 후손으로 지칭한 프로이드나, 삶이란 하나의 전투라고 설파했던 헉슬리는 모두 스미드와 마키아벨리의 후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필자가 밝히는 현실을 지배하는 인간 본성은 악하다는 인식의 원인이자 결과다.

 

필자는 상식을 비집고 반박의 근거를 물색한다. 먼저 필자가 소환한 엠마 골드만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피력한 사상가들을 정신적 사기꾼이라 일갈한다. 엠마 골드만의 주장을 이어 인간 본성을 악하다고 규정한 실증적 연구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친숙하게 접해왔던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루시퍼 이펙트/이 실험은 인지부조화와 권력의 힘을 설명)’,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파괴적인 권위에 굴복하는 대중심리 테스트), 키티 제노비스의 사건(방관자 효과/1964, 키티 제노비스가 뉴욕 시의 자기 집 근처에서 다른 많은 주민들이 알아챌 수 있는 조건에서 강도에게 살해당한 사건)의 허구성에 대한 필자의 주장을 만난다. 이들 사건은 인간의 악마성을 논증하기 위한 사례들이지만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편파적으로 해석된 오류투성이 일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동시에 필자는 인간 본성의 선함이 드러난 사례들을 통해 본질적으로 인간 본성은 선함을 논증해 들어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정치 지도자의 필독서였던 구스타브 르봉의 [군중심리학]에 입각해 대중의 동요와 공동체의 붕괴를 촉발하기 위해 민간에 대한 무차별공습이 이루어지는데 공습의 결과는 대중들을 더 결속하게 하고 협력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독일에 의한 런던 대공습, 연합군에 의한 드레스덴 대공습, 그리고 미국에 의한 베트남 대공습은 이를 결정한 정치집단의 의도가 무참히 박살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소기의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위기에 처해 동요하고 광란에 빠지고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침착함을 잃지 않고 협력하고 의지했다. 위기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총 1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각각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주장하는 자들의 논거를 격파하거나 착한 본성을 드러내는 사례들로 구성되어있다. 그 각각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이 표출되는 과정을 그린 파리대왕은 아태섬에 표류한 실제 사건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실제로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은 협력하고 의지하고 희생했다. 인간은 호모퍼피로 인간의 생존력은 지능이나 근력이 아니라 친화성에서 나온다. 전쟁에서 다른 인간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공유지의 비극은 지식인의 상상이지 현실을 반영 하지 못한다. 방관자효과 이론과는 달리 현실은 재난에 처한 타인을 위해 서로 희생하는 역방관자 효과가 더 많다.

 

하지만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600만 명을 학살한 가스실을 만들고 가장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 폭력적 문명을 동반하는가는 물음을 제기하고 이에 답한다. 그가 제사하는 답은 권력이 부패하는 과정인 후천적 반사회화공감의 역설을 제기한다. 특히 공감은 혈통, 영토 등 근친성을 공유하는 집단 간 내부 결속과 동시에 외부에 대한 배타성을 가져온다. 배타성은 타자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 하는 폭력성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사피엔스]의 필자 유발 하라리와 브레흐만이 대척한다. 하라리는 인간이 가진 상상의 공동체가 인간의 유대와 결속 공감을 통한 문명의 창조를 낳았다고 본다면, 브레흐만은 그 상상의 공동체가 동시에 인간을 가장 잔인한 동물로 만드는 함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섬뜩하고 기발하고 향후 논의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주장은 명료하고 직선적이라 따라가기가 쉽다보니 분량에 비해 드물게 잘 익히는 책이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쉬 그의 결론에 동의하기가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반복하는 플라시보 효과와 시노보 효과를 대비해 펼친 주장은 논증이 아니라 도덕적 제안으로 들린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 실현되는 것처럼 인간본성이 선하다고 이해하는 순간 인간본성은 선하게 귀결된다는 것은 논증이 아니라 희망사항이고 교리에 가깝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현실속의 악을 줄이고 선을 증진하기 위한 대응은 논리적 연관이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와 같은 필자의 입장은 지구온난화문제에 대한 입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며 비관적인 주장을 펼치면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정말 지구가 종말을 맞을지도 모르니 인간의 회복탄력성을 믿고 낙관적으로 대응하자는 것은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희망사항의 피력으로 들릴 뿐이다.

 

하지만 한권의 책으로 가치를 따진다면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인류 문명이 가진 비극의 지점들을 짚고 희망을 만들기 위한 지식인의 모범적인 노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족을 달자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성찰과 모색은 이 시대 가장 필요한 지식인의 책무이고 이에 충실한 필자는 기본소득제의 선구자를 자청하고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필자의 다음 책은 아마도 기본소득제에 관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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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전환/The Future Of Everything

-마우로 기옌

[축은 전환]은 미래 사회에 대한 신묘한 통찰이나 예언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니다. 거칠게 보면 이미 대중 매체들이 다루고 있는 일반적인 미래 예측을 정리해 놓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책은 먼 미래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단지 10년 후에 닥칠 우리 사회의 ’단기적‘ 변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축의 전환]은 예측 가능한 단기적인 미래를 통찰하고 그 변화에 수반될 우리의 가장 현실적인 대응이 무엇일까 모색하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상상 보다는 추론이, 기대 보다는 분석에 기반한 직관이 이 책의 논지를 이끄는 힘이다. 대부분의 미래 예측이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하지‘ 라는 막막한 여운만을 남긴다면 이 책 [축의 전환]은 거시적 정책부터 개인의 미시적 행동까지 구체적인 삶의 대비책을 암시하는 측면을 강하게 견지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Future of Everything]이다. ”모든 것의 미래는 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크게 8갈래로 나누고 그 각각의 주제에 걸 맞는 통찰을 이어간다. 서문에서 필자가 밝혔듯이 코로나라는 변수는 이미 진행되고 있던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고, 블록체인을 비롯한 신기술의 신속한 도입, 인구 고령화의 급격한 심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의 지속적인 상승, 신흥 산업국의 폭발적 성장 등 급속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한국은 가속화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필자가 치하하듯 우리는 이미 변화의 물결을 올라타고 그 물결을 이끄는 가장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선도 국가의 면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미래는 불확실하기에 낙관적 태도와 임기응변의 순발력을 견지하는 것은 늘 우리의 몫이다. 이를 위해 필자 마우로 기옌의 인도에 따라 변화의 물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마우로 기옌은 우리가 직면한 변화의 갈래를 1) 출산율의 변화, 2) 노년세대의 재발견, 3) 새로운 중산층의 출현, 4) 여성주도 세상의 도래, 5) 도시의 재발견, 6) 신기술의 확산, 7) 탈소유 경제의 확산, 8) 새로운 화폐의 도입 등 8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 각각의 주제에 대한 통찰을 위해 필자는 ’수평적 사고라는 도구를 먼저 요구한다. ’수평적 사고에드워드 드 보노가 제안한 개념으로 ’기존의 주어진 상황에 집착하지 않고 상황자체를 바꾸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질문을 다시 구성하여 문제를 측면에서 공략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 의미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한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데 있다는 문장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필자는 사태에 대응하는 인간의 능력을 결정하는 데 있어 수평적 사고의 중요성을 얼마나 높이 부여하는지 책의 말미에 ’’ 수평적 사고의 세부적 원칙까지 정리하고 있다.

필자가 제시하는 ’’ 수평적 사고의 핵심 원칙은 멀리 보기,, 다양한 길 모색하기,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막다른 상황 피하기,, 불확실한 상황에서 낙관적으로 접근하기, 역경을 두려워않기, 흐름을 놓치지 않기 등 7가지이다. 언듯 보기에도 지나칠 만치 평범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요구받던 태도다. 수평적 사고라 이름 붙이기 전에도 늘 요구되는 덕목에 다름 아닌 것에 놀랄 정도다. 그러나 현실의 변화를 바로 읽고 적절하게 응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추상적 원칙, 지고한 원리가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덕목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진위는 필자가 각각의 주제를 ’수평적사고‘라는 도구로 다루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판명날 것이다.

첫 번째 주제는 출생률이다. 향후 10년의 미래를 점치는 데 있어 가장 핵심 키워드는 ’낮은 출생률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유든 현실은 벌써 연애, 섹스, 결혼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가 넘쳐난다. 주택 가격 상승 등 불확실한 미래든 부양의무에 대한 거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경제적 요인이 핵심적이긴 하나 어쨌든 연애와 결혼은 본질적인 행복의 구성 요건이 아니라고 여기는 새로운 세대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60년대 가임여성은 7명의 자녀를 두었다. 1979년에는 3, 한가구 한 자녀 정책 이후 출생률이 도시는 1명 농촌은 1.5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출생률 저하가 중국 정부의 한 자녀 정책의 산물이 아니라고 본다. 영향이 없진 않았지만 새로운 세대는 벌써 자녀를 자신의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2015년에 중국 한자녀 정책은 폐기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다. 중국 한자녀 정책의 수혜자가 다름 아닌 미국의 중산층이라는 사실이다. 중국 한자녀 가족은 노후의 삶을 위해 저축을 늘였고, 저축으로 축적된 자본은 미국 채권에 투자되고, 결국 가족 구성의 변화에 따라 늘어난 중국의 저축률은 미국인의 소비 확충으로 귀결되었다. 돈과 정보의 교류가 자유로운 세상은 이렇게 얽히고설켜 복잡계를 이루고 있어 그 진상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아프리카의 베이비 붐은 세계적 인구 이동과 산업 재편에 있어 핵심 인자로 부상했다. 출생률 변동에 따른 대륙간, 국가간, 세대 간 인구 이동은 사회변화를 추동한다. 이민자에 대한 인지적 편향을 극복하고 사회의 필요와 욕구에 맞춰 인구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가 한 사회의 유빌 발전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한 사회의 개방성이 그 사회의 역동성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 것이다.

두 번째 주제는 노년세대의 재발견이다. 역시 인구구성의 문제로 세대구성의 변화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통찰한다. 10년 안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세대는 60세 이상의 노령인구다, 따라서 2030년이 다가오면서 ’젊음‘과 ’나이 듦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가 사라지고 세대 간의 역할 관계도 바뀔 것이다. 현재 미국의 부 80%이상을 차지한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소비자 집단인 이른바 실버세대다. 노년세대에 대한 재평가와 역할 부여 없이 세상을 이해하기에 불가능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각 세대의 모습은 고정관념일 뿐이고 2030년이 되면 더 이상 세대간 고정 역할이 무력화되고 ’나이‘의 예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인생설계가 이루어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실버세대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은 시대의 변화를 읽는 핵심 키워드의 하나가 될 것이다.

세 번째의 키워드는 중산층이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적 번영은 수억 명의 중산층을 배출할 것이다. 아프리카 등 신흥 공업국 역시 엄청난 수의 중산층을 배출할 것이다. 하나의 문제는 지구가 더많은 중산층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미국에서 재사용이 가능한 폐기물의 3분의 1은 해외로 수출된다. 중국이 절반정도 가져갔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중국역시 두터운 중산층이 소비를 통해 배출하는 폐기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낙관적이다. 새로운 기술과 소비패턴의 변화를 통해 극복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기존 선진국의 불평등 심화와 중산층의 위기를 들고 있다. 루이스 D 브랜다이스가 말했듯 불평등의 심화는 민주주의의 위기마저 초래한다. “우리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아니면 소수가 이 땅의 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에 이를 수 도 있다. 그렇지만 그 둘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필자는 중산층을 구축하기 위한 두 가지 시도를 소개한다. 포드는 191414일 전체 직원의 일급을 한꺼번에 2배 인상하여 하루 5달러 임금 지급을 결정했다. 이를 통해 미국사회에 거대한 중산층 형성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미국의 위대함은 자동차 산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획득했다. 2018102일 아마존은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를 발표했다. 이는 연방정부 최저임금의 2배에 해당한다. 이런 시도는 자본 측에 의해 시도된 미국 중산층 육성을 위한 사례다. 불평등 해소는 사회의 존속과 직결된 문제로 이념적 좌표를 떠나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밀턴 프리드먼은 1962[자본주의와 자유]에서 마이너스 소득세를 제안한다. 2016년 일론 머스크는 ’기본소득제‘의 출현을 예측한다. ”자동화 때문에 기본소득제나 그와 비슷한 정책을 실행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했다. 20182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미국인의 찬반 비율은 엇비슷하다.(p.147) 1982년부터 알래스카 주민들은 원유 사업 수익으로 조성된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통해 매년 배당금을 받는다. 2018년의 배당금 규모는 1600달러 정도였다.

포드, 아마존, 프리드먼, 일론 머스크의 고민은 일맥상통한다. 즉 중산층의 육성이다.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한 필수적 기반이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불붙고 있는 기본소득제 관련된 논쟁이 어떤 결론을 맺든지 2030년을 맞이하는 준비물에는 중산층 육성을 위한 근본적 대책이 빠질 수 없다.

네 번째 문제는 점증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되어 있다. 필자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2030년에는 여성이 세계를 지배할까?‘ 현재 미국에서는 정식으로 결혼한 남녀보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들이 더 많이 가정을 이루며 살며 자녀들을 양육한다.(p.156) 2030년이 되면 미국 남녀의 약 3분의 1이상이 아이 없이 은퇴한다.(p.165) 이런 변화의 저변에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상승이 있다. 어쩌면 그런 변화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상승으로 귀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2030년이 되면 부의 소유, 정치권력, 사회적 결정권의 소유 등과 관련해 여성의 지위의 극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물론 필자가 2030년에 완벽한 양성평등이 도래할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성이 얻은 사회적 지위는 권력 구조의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낮은 출생률과 노령화, 산업의 변화 등을 미루어 볼 때 여성의 역할이 충분히 발현되는 사회로 변화될 것은 보고 있다. 2030년에도 여성이 세상을 지배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동을 읽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다섯 번째 주제는 도시의 성장과 변화다. 2030년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성장과 변화의 최전선엔 도시가 있다. 도시지역은 전세계 토지의 1퍼센트를 점유하지만 전체 인구의 55퍼센트가 산다. 도시는 전 세계 에너지 생산량의 75%를 소비하며, 탄소가스 배출량은 전체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2017년에는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가 29곳이었다. 2030년이 되면 그 수가 43곳으로 늘고, 그중 14갠 도시는 인구가 2,0002,000만 명이 넘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성장은 2030년 세계의 또 다른 특징인 불평등을 악화시킨다.(p.196) 환경적 재앙도 빠질 수 없다. 물은 지표면의 3분의 2를 덮고 있지만 그중 97.5퍼센트는 마실 수 없다. 인간에게 남은 물은 2.5퍼센트뿐이데 그중에서도 70퍼센트 이상은 빙하 만년설, 영구동토층 등이어서 사용할 수 없다. 남은 30퍼센트 정도가 지하수고 1퍼센트 미만이 강과 호수 습지 그리고 저수지 등에 있다. 전세계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물의 70%가 농업용수이고 20퍼센트가 산업용수다. 그리고 10퍼센트가 가정용수다. 필자는 공급의 한계를 수직농업 등 물의 합리적 이용으로 극복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능성은 평범함의 위력, 부드러운 개입을 지칭하는 신조어인 넛지가 도시와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타진한다. 마우로 기옌은 도시가 역동적인 전문가 계층을 한자리에 모으거나 길러내는 데 필요한 것들을 3T3T 개념으로 요약한다. 바로 인재 talent, 관용tolerance, 기술 technolory 이다.

이 지점에서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과학기술이라는 여섯 번째 주제로 넘어간다. 사용한 뒤 물로 씻어낼 수 있도록 흙으로 구워 만든 최초의 변기는 기원전 1700년경 크레타섬 크노소스 궁전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변기의 발명은 어떻게 인류 문명의 변화 발전에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하는 일은 흥미롭다. 하지만 불균등 발전의 결과 특정 기술의 혁신은 낙후된 다른 문화와 중첩된다.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과 남아시아 전역에서 기본적인 위생 시설에 대한 투자가 점점 줄어든데 반해 이동통신 시설에 대한 투자는 크게 증가했다. 인도의 하위 20퍼센트에 속하는 가정에서 화장실보다 휴태전화가 3배나 더 많다.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에 따라 곧 인류는 특이점의 도래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예언이 난무한다. 빅데이터와 관련된 윤리적, 도덕적 갈등도 제기된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기계장치로 하여금 인간의 생명을 순식간에, 그것도 인간이 실시간으로 통제하기 않고 자동으로 결정하게 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올 긍정적 변화 못지않게 혼탁한 전망도 난무한다. 이것들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일까? 기술변화의 결과를 추적하는 것보다, 기술의 변화가 가져올 인구통계학적, 사회적 흐름과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어떤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가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결제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아프리카다. 후진국과 낙후한 지역들이 종종 미래를 향한 최고의 전망을 제공하는 반면, 우리가 선진국 혹은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지역들은 기존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사로잡혀 과거와 결별하지 못한다. 사실 기술적 혁신은 거대한 인구통계학적 혹은 경제적 흐름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

7번째 주제는 소유가 없는 세상에 대한 통찰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소비, 공유경제와 임시직 경제가 주도할 것이라 예측한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다. 200710월 에어비앤비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공유경제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협력적 소비와 자산 공유는 전례가 없던 일이 아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인류 역사의 90퍼센트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인간은 사유재산 없이 생존했고 오히려 더 번성했다. 미국의 밀레니엄 세대는 자동차를 갖는 일뿐만 아니라 운전면허 취득까지 꺼려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1983년만 해도 20~24세 미국인중 92퍼센트가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2015년에는 77퍼센트로 줄어들었다.

소유를 넘어 공유로 나가는 길에 우버는 상징적이다. ’우버하다는 타동사 uberize가 탄생했다. 이동통신 기술을 통해 산업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직접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상품과 용역을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 우버하다의 정의다. 공유경제를 상징하는 한축으로 에어비엔비가 있다. 은행에 집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리는 대신 집을 이용해 생활비를 버는 노년이 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구세대 중산층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최상위 1퍼센트가 나어지 99퍼센트보다 더 부자인 불평등의 증가는 세금 문제와 관련해서 사유재산의 권리를 어는 정도까지 보호해 주어야 하느냐는 중요한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들은 공유경제에 참여함으로써 이런 상황에 대응하려한다. 공유경제는 결국 필요한 걸 모두 소유하기에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현실과 집과 자동차 같은 자산을 새롭고 협력적이면 집단적으로 사용하는 일에 대한 선호도가 합쳐지면서 촉발되었다.

공유경제는 임시직 경제의 토대가 되었다. 임시적 경제는 정치에 또 다른 방향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일자리 공유, 클라우드 펀딩, 크라우드 소싱 등 새로운 경제의 가능성을 확산한다. 일부 공유지의 비극을 예를 들며 디지털 공유경제의 가능성을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1) 공유경제는 천연자원의 부족을 해소하고 2)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삶에 가치를 더해주며 소위 말하는 3) 공유지의 비극은 사실이 아니라고 논박하고 있다.

마지막, 여덜번째 주제로 새로운 화폐의 시대를 예견한다. 새로운 화폐는 다양한 암호화폐다. 2030년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폐 중 일부를 정부 당국이 아닌 기업이나 심지어 개인용 컴퓨터가 발행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한다. 새로 도입되는 암호화폐의 특징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기반해 발행과 유통에 중앙 정부의 권위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화폐가 관료주의와 결별하는 셈이다. 2030년이 되면 국가가 독점 발행하는 화폐들은 과거에 국가가 독점했던 항공사와 전력회사 혹은 통신 회사들이 그러했듯 영향력이 약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나카모토 사토시에 의해 20081031일 탄생한 비트코인은 개인과 개인이 거래하는 개념의 전자화폐를 통해 중간에 어떤 금융기관도 거치지 않고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직접 온라인 결제를 하도록 해주는 혁명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그 기술적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의 가장 혁신적인 잠재력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기술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통제력 일부를 중앙의 지배층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나눠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필자는 기존의 현금을 대체할 뿐인 전자화폐를 평가절하한다. 그는 암호화폐가 돈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꾸고 우리의 삶 자체를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과 지평을 열 수 있을 때 의미 있는 변화로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블록체인이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정보의 분산을 통한 권력의 탈집중화를 가져오고, 사회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제고하는데 기여토록 할 때 진정한 의미를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요약과 정리에 비약이 많아 단절적으로 보이지만 위의 8가지 주제는 단독의 이슈가 아니라 지정학적, 인구통계학적, 기술적 요인이 상호 결합되고 중첩되어 나타나는 사회의 변화를 분류한 것이다. 사실은 혁명적 변화를 추동하는 한 덩어리의 역동적인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다. 이를 통해 총체적으로 사태를 이해하고 수평적 사고를 통해 응전하는 필자의 식견이 놀라울 따름이다.

옥에도 티가 있듯 [축의 미래]에서 독자의 한사람으로 느끼는 뒷맛이 있다. 마우로 기옌은 세계의 변화를 너무 기술적 변화에 편중해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심화된 불평등으로 구매력이 떨어진 시민의 생존전략으로 공유 경제를 이해하는 듯 한 면은 불평등 구조에 정면으로 맞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나약한 존재로 인간군상을 전제한 것으로 느껴졌다. 특히 수평적 사고나, 럿지의 경유 ’생활의 지혜혹은 방편적 도구이지 과학적 방법론이나 사회적 실천을 이끄는 철학으로 받아들이기엔 뭔가 뒷맛이 남는다. 하여튼 마우로 기옌은 현실주의자이고 그만치 보수적 세계관의 소유자로 보이고, 그런 입장에서 단기 10년의 미래를 예측한 [축의 전환]은 책값과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임은 분명하다. 미래를 설계하고 지금을 현명하게 살고 싶어 하는 젊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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