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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궁지에 몰린 MB의 국면전환용 독도방문쇼가 한일간 독도를 둘러 싼  영토분쟁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 동안 일본은 지속적으로 노이즈 마켓팅을 통해 독도영유권 분쟁을 국제적 이슈로 제기해 왔고, 이번 '뼛속까지 친일'인 MB의 독도방문쇼는 그런 일본의 술수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일간의 독도 영유권 논쟁이 어딜로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단시일내에 개인적 채무관계 처럼 깨끗하게 정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독도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이고, 한국은 지금까지 처럼 역사적 '사실'을 내걸고 실효적 지배상태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외교적, 경제적 카드를 넘어 군사적 충돌이라는 극단적 카드조차 제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할 수도 없다. 앞으로 전개될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의 상황전개는 전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국내 정치적 지형의 변화에 따라 좌우될 것이고, 여기서 우려스러운 것은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공히 일고있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여론과 이에 편승한 극우 정치세력들의 준동이다.  


최근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지금까지 독도분쟁은 일본 극우 세력과 한국 극우세력의 공생 기반으로 활용되어 왔다. 연일 보수언론들은 자극적  기사를 통해 극우적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고, 가장 친일적인 보수세력들이 독도분쟁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애국자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독도분쟁의 씨앗은 바로 박정희 정권이 뿌려놓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미국의 주선으로 일본 자본을 빌어 산업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독도를 일본에 볼모로 제공하였다. 독도가 한국땅임을 드러내는 숱한 역사적 자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의  법정에 당당하게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천박한 한국 보수 언론은 독도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국민적 감정에 불을 붙여 극단적 국면으로 내몰고 있다. '전쟁' 운운하는 광기를 보이며 인터넷 언론을 온통 극단적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다. 여기에 편승한 대중들 역시 지금 당장이라도 일본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일본의 추악했던 전쟁 범죄 관련 사진 자료등을 퍼나르며 전의를 붙태우고 있다. 

하지만 평화의 적은 '일본'이 아니라 '전쟁'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한국과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저지른 야만적 전쟁범죄는 '일본인'의 야만성이 아니라, 바로 '전쟁'의 야만성을 드러낼 뿐이다. 일본의 패망과 러시아군의 진주에 따른 철수 과정에서 다시 일본인 여성이 전쟁의 제물이 되어야했다. 한국전쟁 전후의 역사 과정에서 우익세력에 의한 좌익가족에 대한 학살은 일본군의 만행을 그대로 따랐음을 우리는 잘 안다. 제주에서 지리산에서 그리고 전국각처에서 자행된 집단 강간과 살육은 입에 담기도 두려울 정도다.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에 용병으로 투입된 '따이한'이 자행한 베트남인에 대한 야만은 일본군이 저지른 한국인에 대한 것과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독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화다. 아니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영토분쟁을 우리가 바라는대로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도 바로 평화가 아닐까싶다. 일본의 한국 침략과 지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죄는 독도가 한국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나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한일 평화주의자가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의 이니셔티브를 쥐게 된다면 그와같은 평화적이고 이상적인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독도는 이미 법리가 아니라 도리, 역사적 정의의 문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마도는 우리땅' 혹은 '만주고토회복운동' 운운하는 한국의 극우세력과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극우세력은 반평화 동맹세력이다. 한국의 가장 친일적인 보수집단과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졌어야할 일본의 전쟁범죄 당사자들이 독도 영유권 논쟁의 이니셔티부를 쥐고 애국자 행세를 하는 현실을 저지하고 한일의 평화주의자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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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4일 유후인을 떠나 후쿠오카의 엑셀도큐하카다호텔에 짐을 풀고,
텐진거리와 캐널시티 등 도심을 둘러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다음날 일찍 텐진역에서 기차로 한시간 거리인 운하의 도시 야나가와로 향했다.
나카야마 미호가 출연했던 [도코맑음]이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했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야나가와 수로이야기]로 알려진 야나가와는  
최근 MB표 운하를 선전한는데 이용되면서 한국인에게 더욱 친숙해진 곳이다.


이번 규슈여행에서 야나가와 코스를 선택한 것은
도시를 실핏줄처럼 잇는 수로를 따라 가와쿠다리라는 뱃놀이를 즐기며
가족이라는 인연의 고마움을 다시 생각하면서
결혼 생활 20년이라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기위해서 였다.
또한 아직도 개발광풍이 몰아치고
개발만능이라는 야만이 지배하는 나라에 살다보니
개발과 환경,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구현한
아름다운 도시의 한 전형을 보고싶고 또 걷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MB의 야만적 토건주의를 옹호하기위해 이용했다는 야나가와 운하는
환경재앙적 개발주의와 극단적으로 다른 환경 친화적 개발의 산표본이었다.
야나가와 운하가 생기게 된 배경부터가 4대강사업과는 극단적으로 판이했다. 
한때 도시를 가르는 물길이 쓸모가 없어지고 오염되어 흉물이 되어가자 
시당국은 수로를 콘크리트 관으로 다 대체하고
묻어버리는 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하려 했다고 한다.
이때 야나가와의 한 말단 공무원이 이 계획을 반대하고 나서서
손수 혼자서 도랑을 치우고, 물길을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시민들이 호응하면서 개발계획은 철회되고 쓸모가 없어진 운하가
야나가와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서서히 바뀌어 나가게 되었다.
오늘날 물의 도시 야나가와를 상징하는 운하는 
바로 그와같은 반개발주의 시민운동의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야나가와는 상징적인 친환경적 도시로 부각되면서
년 100만명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고 한다.


텐진역에서 가와쿠다리 티킷을 산뒤, 기차를 타고 한시간을 달린 뒤 야나가와 역에 내려섰다. 조그만 시골 기차역같은 한산함과 소박함이 묻어나는 역사를 벗어나오자 가와쿠다리를 안내하는 안내원이 10분뒤에 셔틀버스기 온다며 대기실로 안내했다. 조그마한 대기실은 훈기가 넘쳤지만 야나가와 안내 팜플릿 몇 종류와 야나가와를 홍보하는 영상을 내보내는 TV가 전부인 소박한 공간이었다. 젊은 한국인 커플 한쌍과 관광객이 아니라 바같 추위를 피해 들어온듯한 일본 노인 한분이 전부인 탓에 자그마한 대기실도 조금은 허전해 보였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셔틀버스가 도착했고, 셔틀 버스에 오른지 5분도만에 드디어 가와쿠다리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나루터에는 같은 모양의 작은 배들이 나란이 늘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쌀쌀한 날씨와 이른 시간때문인지 한산하기만 했다. 주변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다가, 얼마 기다리지 않아 아이와 함께 나온 일본인 가족과 한국인 커플 그리고 우리 가족해서 8명이 한 배를 탔다. 신발을 벗고 배에 오르자 작은 배는 한사람 한사람이 탈때마다 좌우로 크게 흔들려 금방이라도 뒤집어 질듯했다. 배의 중간에는 일본식 난방탁자인 코타츠가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코다츠에 발을 넣었다. 이내  할아버지 사공이 삿대를 젓자 배는 수로를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야나가와를 물의 도시, 운하의 도시라고 하지만 야나가와의 운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운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친환경적인 작은 수로에 불과했다. 이들 수로들은 집과 집을 잇고, 길과 길을 이으며 야나가와 항구까지 이어지는 작은 뱃길이면서 동시에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랑이기도 했다. 수로를 따라 늘어진 나무와 숲,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작은 집들의 아기자기한 정원들, 그리고 그 수로가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라 오리들 자신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라는 사실을 시위하는 오리떼 가족... 배는 물위를 흐르듯 나아가고, 나의 상념은 지난 세월을 지나 다가올 먼 미래를 오가며 흔들렸다. 수로의 폭은 점점 넒어지고 물길이 깊어지다가 어느새 샛강으로 접어 들기도하고, 다시 넒은 수로로 나아가기를 여러번  능수능란한 늙은 사공의 숨결이 가빠져 갔지만 작은 배는 물살을 일으키며 중심을 잡아 흔들림이 없었다.    


약 1시간의 뱃놀이는 금방 끝이 났다. 발걸음은 선착장에 올려놓자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까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하지만 다 저 물처럼 흘러가는 것. 향유했던 지난 시간의 기억이나마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니겠는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시간을 배로 내려온 수로를 거슬러 이번에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수로와 도로가 헤어지고 한참을 주택지 사이를 헤메기도하면서 원래의 출발지인 야나가와 역을 찾아 나갔다. 깨끗하고 소박한 야나가와의 골목골목을 헤메는 재미에 푹빠져 한시간을 넘어 걷다가 결국 길을 놓쳐버려 다시 한시간을 더 묻고 찾고 한 끝에 야나가와 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랜동안 가졌던 야나가와 방문의 꿈, 카와구타리를 해 보고 싶었던 꿈은 실현되었지만 야나가와를 떠나는 기차를 기다리는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찼다. 세상의 모든 삶의 터전이 다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과 인공이 조화롭게 어우려져 사는 삶의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경우인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삶의 터전은 바로 이렇게 가꾸어나가야하지 않을까는 생각이 이어지고, 기차는 다시 후쿠오카로 향했다.


후쿠오카로 향하는 기차간에서 멀리 일본의 도시와 농촌의 풍경을 두눈 가득 담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일본이 부러워졌다. 최소한 환경과 전통에 대한 일본인의 애착만큼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배워와야할 것들이 아닌가? 아직까지 박정희식 개발만능주의가 국민의 의식을 지배하고, 바로 그와같은 국민의 의식이 MB라는 구시대의 괴물을 현실에 불러들이는 악마의 주술에 빠져있는  우리 사회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오늘의 일본인들 그와같은 개발만능의 시기가 없었겠는가. 시행착오를 피하면 좋겠지만 인간은, 인간의 세상은 그렇게 완벽할 수가 없는걸 어떻하겠는가. 그래서 인간세상인 것을!


하루의 여정으로 끝이 난 야나가와는 하루보다는 훨씬 더 큰 기억으로 나의 뇌리에 남아 오랫동안 나의 삶을 데워줄 것이다. 반추할 수 있는 행복했던 시간을 선사한 야나가와와의 인연에 감사하면서 2011년 야나가와 여행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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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은 강이 녹듯 MB폭정 3년동안 얼어붙은
민주주의가 새 싹을 피우고 생명을 얻는 봄입니다.
멀리 있어 같이 할 수 없지만 반가운 소식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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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든 보수든 고노무현 대통령을 철저히 무시하고 저주했고,
그가 죽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지금까지 그를 격하하고 능욕하는데
침을 튀기는 자들이 있다. 
사실 조중동이나 그 추종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여전히 진보세력 중 일부는 한미FTA와 이라크파병, 대연정제안 등의 사례를 들며
삼성과 노무현의 유착, 정치적 무이념, 나아가 진보를 가장한 보수의 간첩 운운 하며
그를 능욕하기에 망설임이 없다.
충분히 근거있는 입장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니깐
그르거니 하고 일단 이들은 도외시 하자.
이들에 대한 판단은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참 많은 사람들이 고 노무현대통령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에 기대어서나마 나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새로운 사회,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역사적 징조를 보고싶기 때문이다.
[사람사는 세상]은 보편적 인권이 존중되고,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복지제도가 완비된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정의가 통하는 그런 세상이다.
고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인간 개개인의 삶이 보호되고 존중되며,
보다 덜 경쟁적인 사회적 풍토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진실과 정의가, 그리고 옳은 사람이 존중받는
[사람사는 세상]을 예견케하는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섰던 정치적 포지션을 문제삼으며
진보의 적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바로 그 이유로 그를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재임기간동아 실행한 치적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람됨의 매력에 끌려 그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궁극적으로 정치인으로 살았던 한 인간에 대한 판단은
그의 정치적 실천과 사람됨을 통일적으로 바라다 보는게 옳다고 보지만
사실 유독 노무현대통령에 대해서만은 정서적 판단이 앞선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깊이에서 치미는 울컥함이 있다.
그것은 그가 비겁한 정치검찰의 공작의 희생양이되어서가 아니라
그의 재임기간 내내, 아니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고 당선되던 그 순간에 조차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통해, 
굴종의 삶을 강요했던 부정의한 역사에 대한 한국민중의 승리의 감격을 나누었고
그리고 끈질긴 지배세력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에 치를 떨고 맞서야했기 때문이다. 
권모술수와 음모가 항상 승리하는 세상,
돈과 권력이 정의를 짓누르고, 거짓과 위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 노무현의 반역의 삶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바라는
민중의 염원을 현실에 구현했기 때문이고
그 지난한 도정에 같이 서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독선과 비열한 음모, 부정의와 거짓이 판치는
MB정권의 치하에서 3번째 5월을 맞았다.  
5월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자기 삶의 모범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의 다하지 못한 정치적 역정을 계속하기로 다짐하고 실천하는 달이다.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진솔함,
특정 정책적 결정에 대해 철저히 반대하면서조차
그 진정성에 끌려 납득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 노무현이
뼈에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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