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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지난해는 다사다난했다고 한다.

나에게 지난해 역시 그랬다.

봄가뭄과 고라니로 고생만 한 밤호박 농사,

다시 초가을 가뭄과 초겨울 장마 그리고 늦더위로 역시 고생만 한 배추농사로

한해 참 힘겹게 보냈다.

그리고 한중 FTA 등으로 농업의 사회적 여건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위해 

동분서주한 농민회 활동과 11월 14일 전국민중대회를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던 투쟁 그리고 백남기 농민형제가 쓰러진 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농성...

그뿐 아니라 책임을 지고 있는 봉봉협동조합의 출구없는 경영악화,

비젼과 에너지가 고갈된 10몇년을 종사해온 비나리마을 공동체 사업...

이 모든 것이 지난 3월 27일 봉봉협동조합 총회를 기점으로 일단락지어졌다. 

지난 일은 다 묵은 해의 기억들이 되었고 이제부터 만들어나갈 시간은 고스란히 내 손아귀에 있으니...

총회가 끝나자 마자 바로 배낭을 쌌다. 

지리산 장터목 1박을 시작으로 이후 일정을 정해나갔는데

막연히 가보고 싶었던 여수 밤바다에서 1박,

그리고 유년의 기억을 확인하고 싶어 마지막 1박을 진해 군항제 전야제에 맞첬다.



늘 산언저리에서 얼정거리기만 했던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산을 통해 사람과 역사를 느끼고, 

천왕봉에서 넘실넘실 펼쳐진 산의 바다를 바라다 보며

고갈된 삶의 에너지를 채웠다.

산사람의 함성을 들으며 그들이 꿈꿨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그리고 그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했다.

세상은 여전히 정의롭지 못하고 

그들 산사람들이 가졌던 그런 비장함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삶과 역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장터목 대피소의 1박은 불편했지만 설레였고

백무동의 무미건조하고 가파르기만 한 등산로는 나를 지치게 했지만

그래도 오르락내리락거리면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살만한 삶을 기대하게 하는 기운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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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서편으로 반바퀴 돌아 두시간에만에 도착한 여수 밤바다.

새로운 삶을 향한 모험이 시작되는 항구의 서정에 끌려 도착한 여수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설레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갯내음 맡으며 바닷가를 걷고, 한상 가득 해물이 넘치는 밥상을 받고

도시와 바다가 만나는 어시장을 스쳐지나 항구의 밤을 만끽했다.

난생 처음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낯선 젊은 친구들을 만나 

여행의 설레임과 삶의 희망들을 나누었던 기억은 참 오래갈것 같다.

나에게 난생 첫 게스트하우스가 된 여수 곰하우스가 번창하길 빌어본다.



http://gomguesthouse.modoo.at/


승용차를 버리고 케이블카와 버스 그리고 걷기로 여수의 하루를 보냈다. 

돌산도와 향일암, 그리고 오동도... 어디를 가도 바다는 시원했고, 마을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산세와 만난 바다가 멋진 해안선을 만들고

갈매기는 파도소리에 맞춰 생명의 자유를 춤췄다.

봄햇살과 바닷바람 맞으면 걷는 돌살도의 길은

언젠가 다시 한번 더 멀리 오랜시간 걷고 싶은 위시리스트로 남았다.



여수와 순천 그리고 진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지는 해를 맞으며,

유년의 기억을 찾아 진해로 향햤다. 

1963년부터 시작한 군항제는 한해 먼저 세상에 태어난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 이제 54회를 맞았단다.

화려한 불꽃놀이로 시작되던 군항제는 전국의 거리예술가와 스커스단은 물론

소매치기와 야바위꾼이 다 몰려 세상의 온갖 볼거리와 먹을 거리 그리고 즐길거리로 가득찾던 

시절로 나의 유년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유년의 기억 뒤엔 한번도 군항제 전야제의 불꽃을  볼 수 없었다.

모처럼 만든 기회에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와 함께

지난 기억을 되살리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진해거리를 나섰다.

진해의 거리를 걷고 ,어깨 부딪고, 먹고, 놀았다. 



 

3박4일의 지리산-여수-진해 여행을 마쳤고,

다시 한해의 농사와 농민회 그리고 봉봉협동조합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지쳐 스러질것 같은 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졌고

다시 힘겨운 일년을 견딜 자신을 얻었다.

여행은 참 좋다. 세상의 모든 행위에는 후회를 남긴다. 사랑조차도 그렀다.

하지만 오직 여행만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 후회되는 여행은 없다.

자 다음 여행을 위해 올 한해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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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관련한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다보면 간혹 속이 확 디집어 지는 경우가 많다나는 솔직히 농촌을 위한답시고 농촌문제를 희화화한 프르그램들이 넘쳐나는 풍토가 못마땅하다한국 농업농촌의 문제는 위기라는 말로 표현될 수 없을 만치 생존의 갈림길에 내몰려있다 절박함은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의 농부가 다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절박한 농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기획된 프로그램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근본'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이번에도 그랬다구미의 한 마을에서 녹화된 대구KBS "농촌탐구생활" '귀농"관련 문제로 도지사 등과 패널로 참가해 토론을 하게 되었다면서 농민회 한 동지로 부터 연락이 왔다온통 관과 관변인들로 구성된 패널사이에서 홀로 진보적 목소리를 내어야하는 부담감때문인지 방청객 질문으로라도 엄호해 달라는 부탁이었다정말 가기 싫었지만 농사일 하루접고 집을 나섰다

먼저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진행된 야외무대 녹화에서 무려 다섯시간동안 방청객으로 사시나무같이 떨어야해서 너무 힘들었다그리고 이번에 촬영한 것이 방송 2회분이라고 했고전반부는 쌀을 주제로 했지만 내용은 전무했고 그냥 출연한 도지사의 노골적인 홍보방송에 불과했다도지사가 떠나고 도청 농정국장이 패널로 나온 후반부는 성공한 귀농을 주제로 했다사실 할말이 많았지만 이런저런 개인적 인연도 있는 방송국관계자와 패널의 입장도 있고 해서 최대한 자제를 했고나를 청한 패널이 요구한 귀농관련한 주제에 관해 하나의 질문만 던지는 것으로 나의 역할을 한정했다



사실 우리 농민은 그나마 농촌문제를 다뤄주는 방송관계자에게 무조건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려야할 형편이다프로그램을 만들려는 PD 등 관계자는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엄청난 난관을 뚫고 노력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더 나아가고 싶지만 나름의 제약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그래서 어렵다제의에 따라 출연할 것인지 말것인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고출연했을 때 어디까지 건드려야할지도 판단이 쉽지 않다사실 하고싶은 말 다하고 난뒤 편집의 절대권력에 휘둘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어렵다방송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클 것이다농촌문제를 다루는 진지한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없을 것이고농촌문제를 쇼화한 프로그램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그렇다고 농촌문제를 외면하다보면 지면이든 방송이든 모든 정보의 흐름에서 농촌문제가 사상될 것이 분명할 것이다나름 엄청난 고뇌의 산물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이번 녹화과정에서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 한가지는 FTA 그것도 농산물시장 개방을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시장의 파고에 맞서 경쟁력있는 한국 경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농산물 시장개방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농업을 시장 바같에 남겨두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스위스가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EU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스위스 경제가 망한 것은 아니다재벌의 시장을 확보해주기위해 농업시장 개방을 선제적으로 하는 한국정부는 이마트가 농산물을 헐값에 내어놓고 미끼상품으로 사용하는 것과 별반다르지 않다그런 천박한 재벌의 상술을 차용해 마구잡이로 농업시작을 개방하는 정부를 제어하지 않고는 미시적 농촌보호정책을 아무리 내어놓아도 아무소용이 없다.



 

사실 귀농정책 관련해서 제기하고 싶었던 질문이 두어개 있었다.

첫째두어가지 귀농성공사례를 보여주며 '농촌에 희망이 있다'고 호도하는 것을 비판하고 싶었다농업정책이 개별적 성공사레 만들기로 흘러가서는 안된다많은 경우 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억지로 성공사례를 만들고 이를 내어밀면 그렇게 성공하지 못하는 일반 농민들에게 상처를 줄뿐 희망의 메시지가 결코될 수 없기 대문이다. 모든 성공사례가 다 그런것도 아니고 이번에 소개한 사레중에는 누가 뭐래도 훌륭한 성공사례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평생농사를 지어오신 우리 동네 어르신이나 형님 등 이웃 농민들은 유명호텔의 세프출신도 아니고박사도명문대 출신도 아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살아남으란 말인가그런데 몇몇 성공사례를 보여주면서 귀농하라고 농촌에도 희망이 있다고 하는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녹화가 끝나고 참석했던 귀농인들의 볼멘소리도 바로 그점을 지적했다. 명문대 박사출신이나 유명호텔 세프출신은 그렇게 했다지만 그럼 평범한 우리는 어떡게하란 말인가를 되불었다

사실 귀농정책은 농정의 하위 단위일뿐이다나는 경북 농업농촌의 미래상에서 귀농정책이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 궁금하다우리 농촌이 잘 살고 있고희망이 넘치는 곳이고농민들이 농부로서의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고 우리 농민의 자식들이 농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는 세상이라면 별도의 귀농정책이 필요 없을 것이다.그런 면에서 경북 농촌의 미래상이 어떠한지 그 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 귀농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두번째귀농인과 원주민사이의 마찰이 일부 있는데 여기에는 귀농정책이 초래한 측면이 있지않나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삶의 가치지향이나 의사소통방식 등이 다른데서 오는 면이 클 것이긴하지만 귀농정책면에서도 이를 부추키는 면이 있어 보인다귀농인은 정책자금 수혜 등에서 소외된다고 느끼고마찬가지로 원주민은 평생농사지어 온 우리를 외면하고 귀농인만 챙긴다고 불만을 제기한다귀농인은 원주민의 일부가 관과 유착되어 독식한다고 느끼고원주민은 정보 취득에 능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귀농인이 정책수혜를 독점한다고 느낀다이는 개인의 인격이나 품성의 문제가 아니라 금전적 인센티브에 집중된 귀농정책이 야기하는 측면도 있고지역내 정책관련한 정보의 흐름과 하부 행정의 결정과정이 왜곡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고  귀농인과 원주민이 어울려 함께살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귀농정책을 펴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참 아쉬움이 많이 남은 방송녹화였지만고생하는 스탭들을 보니 가슴 징한 면도 있었다그분들께는 감사할 따름이다바라건데 농촌관련 방송이 지위가 높은 분을 초대해 추켜세워주는 대신에 우리 농촌 많이 사랑해 주세요 애원하지 않아도 좋은 세상도시민 여러분 우리 불쌍한 농촌을 도웁시다는 불우이웃돕기 홍보식 방송이 아니어도 좋은 세상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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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농민회는 2월 27일 봉화장날 봉화읍 농협 봉화군지부앞에서 집회를 시작해,
2월 29일 춘양장날에는 춘양농협앞에서,
그리고 오늘 3월 2일은 봉화군청앞에서 3차 집회를 열었다.

이번 집회는 지난 16년간 비료제조업체들의 담합으로 농가가 짊어져야했던 1조 6천억원을
그 부담자인 농민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1월 15일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따라
길게는 16년간 비료값 담합으로 취한 부당이익에 대해
828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그로인해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했던 농민에게는 아무런
배상책이 나오질 않고 있다.

이에 전국 농민회는 소송인단을 구성하여
농민들이 부당하게 부담해야했던 비료값을 돌려받기위한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이를 국민에게 알리고 더불어,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국 농업 농촌에 마지막 치명타가 될
한미 FTA에 반대하는 농민의 뜻을 결집하기 위해 집회를 열게 되었다.

또한 작년 이상기후로 인해 폐농되다시피한
농가들을 살리기 위한 대책을  경상북도 도지사에게 요구했지만 
고작 200억의 예산으로 한 농가당 200만을 연리 3%로로
1년간 융자해 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고 있다.
그것도 200만원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포함한 온갖 서류를 요구해
사실상 아무도 융자를 신청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봉화군 농민회는 피해금액을 800만원으로 현실화하고
상환기간을 연장하고, 서류도 간소화해
실제적으로 피해농가가 이 기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추가 요구안을
집회를 마무리하면서 봉화군과 경상북도에 제출했다.

우수도 지나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준비해야하는 시점에
바쁜 일손을 멈추고 집회를 여는 농민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치미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

춘양장날 집회에는 장을 보러 나오신 농민들께서
모두 쉰명이 넘게  농민소송인단에 가입원서를 내고 1만원이라는 참가비용을 
내 주시는 걸 보고 힘이났지만
우리 농민형제들이 늘상 밭이 아니라 이렇게 거리로 나서야되는
우리의 농촌 현실이 참으로 원통했다.

하지만 재벌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미끼로 던져지는 한국 농업, 한국 농촌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해 투쟁하시는 농민회 동지들의 
희생적이고 실천적인 삶이 있는한 아직 한국농촌에는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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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농민회는 지난 10월28일 여의도에서 진행된 한미FTA저지 집회에 다녀왔습니다. 농민회 동지들은 모두가 사과수확에 하루가 급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일손을 뒤로 미루고 길을 나섰습니다. 
여의도에 도착해서는 비싼 주차비에 모두들 놀랐지만 다행히 하루 최고 15,000원인 한강 둔치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고, 국회앞까지 걸어서 집회에 합류했습니다.
집회에 도착하자마자 도로옆 화단에 펼쳐앉아 춘양동지들이 춘양장터에서 준비해온 김밥과 삶은 계란으로 늦은 점심을 떼우고 본격적으로 집회에 합류했습니다.

집회가 행진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한미FTA국회상정을 막기위해 국회 진입을 시도했지만 시위자보다 더 많은 경찰과 물대포를 동원해 시위대를 공격하고 연행했습니다. 경찰과 대치하는 곳 마다 맨 앞줄에는 여성동지들이 나서 몸으로 악으로 경찰의 저지선을 뚫었습니다.  결국 폭력경찰에의해 다 연행되었지만 용감하게 국회경내에 진입해 한미 FTA 결사 반대 구호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모습에 가슴 뜨거웠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동지들의 부축을 받으며 국회 경내에 들어선 백기완선생님의 투쟁에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오후 늦게 이날 국회상정을 포기한다는 소식에 시위를 정리하고 봉화동지들은 한강둔치공원에 다시 모여 남은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날 하루의 노고를 서로 치하하며 동지애를 다졌습니다.  평생을 이렇게 싸워오신 농민회선배 동지들과 함께한 가슴벅찬 하루였습니다

이날 최고의 히트는 서울올라가는 동안 길학이 형님이 제안한 구호였습니다.
"고추수입 앞장서는 명박이 고추 똑따삐자!!"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꼭 연단에 올라가 이 구호를 외쳐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히트는 면사무소에서 온 '동향파악' 전화였습니다.
두려울 게 없기에 참가자 명단 불러주고 "면장님이 여비주실라꼬예?"라고 되물었더니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일제시대에 시작되어 군사독재시절에나 하던 주민 동향파악이 명박이 시대에 다시 부활한 것을 보니 씁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한국 농업을 볼모로 내어주고, 나아가 한국을 미국의 한 주로 갖다바치려는 이완용의 후손 이명박 일당의 시도가 11월 초에 다시 있을 거랍니다. 한미FTA저지를 위한 투쟁에 더 많은 농민이 함께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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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년 10월10일 있은 경북농민대회를 다녀왔습니다.


올해 농산물이 비싸다고
농민이 돈을 벌고 부자가 된듯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 내내 이어진 장마로 농사비를 배로 늘고
수확은 반으로 줄었는데
그나마 다행스럽게
그네들이 신봉하는 시장원리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오른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오른 농산물 가격마저 못마땅한 현정권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이명박정권은  1%를 위한 경제 정책을 통해
국가 경제를 파탄내고 
급기야 물가폭등을 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마하고자 농산물 가격 상승이
 전체 물가 상승을 주도한양
여론몰이 끝에
돼지고기 수입에 항공료까지 보조해 주며

망국적 농산물 수입을 자행해 그나마 올랐던 농산물 가격마저
바닥으로 끌어내렸습니다.

흉년에 농산물 가격마저 없는 농촌은
연말에 닥칠 농자금 상환에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고,
농자재 외상값에 농자금 이자 그리고 아이들 등록금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바로 이를 때 정책적 구제에 나서야할 국가는 침묵하고 있고,
농민이 사회의 일원임을 애써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농민들은 경북도청으로 달려가
'재난지구'지정 등을 통한 지원을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고,  
농민의 사회적 기여도에 맞는 공정한(!) 정책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멀찌기 물대포를 세워놓고 로봇같은 무장 경찰로 애워싸고
우리의 목소리를 짓눌렀습니다.

늘 그렇듯 우리는 우리가 뜻을 같이하고 
없는 주머니 털어 버스 대절해서
같이 고함이라도 지를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며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경북농민대회에 참여하고나서
절망하지 않고, 오히러 즐거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같이한 이웃형님이 있고, 형수님이 있고,
아우가 있고 어르신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늘 지는 싸움을 해도 농민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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