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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저뭅니다.

한해의 마지막 날 가는 해가 아쉬워 뜬눈으로 밤을 샙니다.
초저녁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 새벽2시부터
책상에 앉았습니다.

무엇을 할까 할참을 망설이다가
자판을 두드립니다.
지난 한해 나를 둘러싼 세상에는 어떤 일이 있었고
나는 어떻게 대응하고 무슨 새로운 시도를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놓쳤는지
정리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농민인 저에게 주어진 지난 한해 최대의 화제는 
한국 농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탄시킬 한중 FTA 협상과
30년래 최대의 농산물가 폭락사태일 겁니다.
한달이 멀다하고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집회를 가야했고
급기야 년말에는 농협은행 마당에 농산물을 쌓고 21일을 넘기며
칼바람 속에서 농산물생산비보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천막노숙투쟁까지 벌였습니다.


지난 한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던 집회와 농성 등이 
외부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대한 일차적 대응이었다면
'봉봉협동조합'은 그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실천이었습니다.
그래서 2013년 저의 삶을 규정하는 최고의 화두는 단연 '협동조합'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극단적 경쟁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왔고
개인의 삶조차 한발짝도 그 지배로 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아가야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감히 '협동과 신뢰'를 기반한 새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협동조합이란 걸 통해 그걸 이뤄보자는 꿈을 나누었습니다.

먼저 시작한 협동조합들도 많고
참 잘하는 협동조합들도 많지만 
우리가 발딛고 사는 조그만 공동체를 기반으로해서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사회를 100개의 한살림과 100개의 아이쿱 그리고 수천개의 
군소 협동조합들로 얽히고 섥힌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세상살이는 좀더 아름답고 편안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봉봉협동조합은
몇달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6월 29일 발족을 했고
다시 몇달의 정비기간을 걸쳐
부족한 중에 10월 중순부터 물품공급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꿈을 꿀 때와는 달리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경영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보고 안되면 말고'가 아니라 꼭 되도록해야한다는 마음의 짐은 참으로 무거웠고
그 짐을 고스란히 지고 나가기엔 허리도 약하고 지혜도 부족했습니다.
좌충우돌하는 지난 몇개월간 낙담을 하고 의기소침하기도 하고
다시 용기를 얻어 일어나 달리기도하고, 넘을 수 없는 벽을 향해 
머리로 부딪혀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맞은 연말,
여러가지 측면에서 되짚고 반성하고 나 자신의 한계, 우리의 한계, 
그리고 시대의 조건에 대해 고민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나누는 일일 것입니다.
지난한해 실수와 실패,  좌절과 고통속에서 나는 무엇을 건졌는지 되돌아보는것 
그것이 송년에 임하는 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주 오래전에 접한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시인의 화두에 비소를 보냈지만
내 삶의 경험속에서 다가온 '사람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은
다시금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화두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합니다.

절임배추 공장과 노숙투쟁천막을 오고가며 지내야하는 와중에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괴로워했지만
또 사람으로 인해 위로받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협동의 편익 이전에 단지 같이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희열은 진정으로 협동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힘은 같이하는 기쁨,
같이 나누는 희열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협동의 참 맛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철처히 가르고 파편화해서 지배하는
이 체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실천일 것입니다.

봉봉협동조합의 존재이유는 신뢰와 협동에 기반한
새세상의 꿈을 만들어 나가고 나누는 데에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조합원이 꿈을 공유하지 않으면
조합은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를 위해 지난 한해의 과오와 성과를 딛고
새로 맞는 2014 갑오년 봉봉협동조합은
조합원간 교류와 교육 사업에 매진해야 할것입니다.
당장은 '경영적 생존'이 더 절박하겠지만
'생존'을 넘는 지점까지 우리의 눈이 가 있지 않다면
그 생존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생존 넘어 있는 '희망'이 이끌어 주지 않는 조직은
그 동력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한해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 속에서 기뻐했고 행복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모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그 인연 내년한해 더 깊어지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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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는 ‘노발대발’하며 하나가 되었다!

[2013 자원봉사자 봉하캠프 회원후기] “내가 좋아서”라는, 놀라운 힘 확인한 1박2일

회원 ‘송화’님

 

 

노란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 하나,
태양 볕을 홀로 묵묵히 받아내고 있는 큰 바위 둘,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들 셋,
수많은 장면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 곳에 오롯이 머물고 있었다.

지난 주말 봉하마을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1박2일 캠프가 열렸다. 실은 나는 자원봉사자에게 마련된 캠프인지 모르고 신청했다가 운 좋게 얻어 탄 외부인이었다. 그저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였을 뿐 제대로 자원봉사를 해본 적이 없다. 타인 아닌 타인으로 캠프에 참석하게 되었지만 이번 여행은 봉하마을에 머물게 된 것만으로도 참으로 고마운 여행이었다.

8월 10일 토요일 아침.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봉하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막상 버스가 출발하고 나니 기대감보다 큰 초면의 어색함이 엄습해왔다. 어리둥절하게 서서 사람들이 서로 인사 나누는 모습을 구경하고, 그들이 흥겹게 어우러지는 것을 그저 멀찍이서 바라만 보았다. ‘혼자라도 봉하마을을 실컷 즐기다가 가야지’하던 중에 불행 중 다행으로 같이 점심을 먹자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고마운 언니 둘. 통성명을 하고 갖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색함 속에 작은 물꼬가 트이자 친해지는 건 순간이었다.

대학 3학년 영화학도가 만난 ‘내마음속 대통령’

마침내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먼저 오신 자원봉사자 여러분이 우리를 반겼다. 언니 오빠들도 있고, 삼촌과 이모뻘 되는 분들도 많다. 직업과 사는 곳도 참 다양했다. 대구에서 두 딸과 함께 열심히 노무현 대통령님을 응원하고 계신다는 분, 남자친구와 지지하는 당이 달라 고민이시라는 분, 부모님과 정치성향이 달라 갈등을 겪고 계신다는 분, 주변사람들 몰래 오셨다는 분, 매주 한 번씩은 꼭 봉하에 와야 마음이 놓인다는 분,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뒤부터 습관처럼 봉하마을을 찾는다는 분, 온라인 활동만 하다가 처음 나오셨다는 분…, 다들 처음 뵌 분들이었지만 모두가 참 좋은 사람들이란 느낌이 들었다. 하나같이 유쾌하고 싱그러움이 묻어났다.

나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소중한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1박2일 내내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다녔다. 처음엔 내 스스로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의식을 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잘 다가갈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싫어하시거나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꺼림칙해 하실 수도 있다는 우려감, 촬영을 하면서도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촬영을 아예 중단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다. ‘저기요 학생, 촬영 말인 데요…’하는 부름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덜컥 내려앉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오히려 사람들이 먼저 호기심 있게 다가와주었고, 응원을 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도와주겠다는 분도 계셔서 나는 점점 더 대범해질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소문으로만 듣던 아방궁(?)에 들다

대통령님 묘역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예를 표하는 모습, 영상 40도에 달하는 폭염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 대통령 길을 오르는 모습, 봉화산에 올라 평화롭고 아늑한 대지 본연의 풍경도 감사한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앞사람과 뒷사람이 하는 농담과 산속 가득 울려 퍼지는 유쾌한 웃음소리, 방문하는 곳마다 대통령님의 관한 갖가지 숨은 일화가 영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대통령의 길을 걷기 전 노무현 대통령님의 사저를 직접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더위에 지친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권양숙 여사님께서 시원한 차와 수박을 내어주셨다. 환한 웃음, 따스한 그 마음은 카메라에 담지 않기로 했다. 온전히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은 마음이었다.

사저는 목재로 벽이 둘러싸여 있고 마당을 중심으로 부엌과 방이 분리된, 조금 불편하지만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고 느낄 수 있는 구조였다. 잘 정돈된 마당엔 꽃과 들풀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다. 지붕이 낮은 게 눈에 띄었는데,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설계했다고 한다. 대통령님이 업무를 보고 책을 읽으셨던 서재, 사자바위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위치의 사랑방, 소담하지만 기품이 있는 정원. 곳곳에서 소탈하고 진실된 마음이 느껴졌다. 집 안팎의 풍경만 보면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어떤 이가 살고 있는지 절로 느껴질 만했다. 아름다운 집이었다.

자원봉사자 60여 명이 한목소리로 ‘노발대발’했던 밤

그리고 두 번째 날, 아니 봉하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 밝았다. 간밤에 명계남 선생님의 명강연, 김정호 대표와 김경수 본부장과의 살가운 대화, 몸과 마음이 하나 되었던 ‘별밤 운동회’ 그리고 뒤풀이까지… 밤 깊은지 모르고 ‘노발대발’(무현재단이 전해야 한민국이 전한다)를 외치며 보낸 탓에 표정들이 다들 가관(?)이다. 눈곱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채 부어있는 얼굴들이 하나 둘 마당으로 모였다. 마치 오래 함께 산 한식구들처럼 격의 없는 모습. 우리들 사이의 작은 벽은 밤사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화포천 길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싱그럽고 향기 좋은 풀 냄새와 흙내음이 아침잠을 깨웠다. 마음이 정화되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달리는 길이 노무현 대통령님도 자주 산책하며 오갔던 길이라고 하니 기분이 참 묘했다.

화포천 자전거 산책을 마치고 방앗간에 들러 김정호 대표에게 친환경 농사와 봉하쌀의 이모저모를 배워 듣는데 특별한 손님이 우리를 찾아주셨다. 어제 권양숙 여사님에 이은 두 번째 깜짝손님의 등장이다. 문재인 의원님이셨다. 최근 좋지 않은 일들이 이어져서 그런지 조금 수척해진 모습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강한 의지와 힘 그리고 희망이 실려 있었다. 어렵지만 함께 이겨나가자는 말에 용기가 솟았다.

꿈같은 1박2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캠코더의 촬영 표시등에도 이내 불이 꺼졌다. 솔직히 더운 날씨에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고, 등산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금은 주저했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드러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정작 집으로 돌아가는 봉하버스에 앉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버렸다. 뭔가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못 다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봉하로 간 까닭은?

버스 안에서 대통령님의 애창곡 ‘작은 연인들’을 합창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내 나이보다 오래된 노래라 가사도 음정도 잘 모르지만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가슴 뭉클했다.

이제는 좀 더 속내를 터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캠프에 참여 신청을 한 건 당연히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다른 마음도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내 욕심은 봉하마을을 향해 움직이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그 사람들을 봉하로 모이게 하는 ‘그 어떤 것’을 카메라에 담아가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지. 그러나 아직 잘 모르겠다. 1박2일 동안 많은 자원봉사자 분들이 나와의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분명한 대답을 주진 않았다. 대신에 묘하게 자꾸 떠오르는 대답이 하나 있다. “내가 좋아서.”

많은 분들이 같은 말을 했다. 내게는 복잡한 퍼즐 같은 그 말을 이리저리 조합해본다. 내가 좋아서? 그냥 좋으니까 봉하에 온다? 봉하에 무엇이 있기에 그리 좋을까. 퍼즐을 잘못 맞췄는지 애초에 맞출 필요가 없던 것인지, 나 역시 ‘내가 좋아서’라는 말밖에는 별다른 게 생각나지 않는다.

사람들 속엔 씨앗이 있다.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다른 씨앗. 우리는 느리지만, 또 생각보다는 빨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을 닮아가면서 말이다. 다음번 봉하행에서는 어떤 느낌이 들까? 내 카메라에 담길 풍경도 지금과도 또 다를 테지. 아름다운 세상, 봉하와의 재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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